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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13:11:53

존 라우리나이티스

쟈니 에이스에서 넘어옴
파일:존로리맨.png
JOHN LAURINAITIS

1. 프로필2. 소개3. 커리어4. 기타5. 둘러보기

1. 프로필

파일:존로리프로필.png
링네임 쟈니 에이스
(Johnny Ace;ジョニー・エース)
본명 John Hodger Laurinaitis
존 하저 라우리나이티스
생년월일 1962년 7월 31일 ([age(1962-07-31)]세)
출생지
[[미국|]][[틀:국기|]][[틀:국기|]]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신장 194cm
체중 110kg
별칭 금발랑([ruby(金髪狼, ruby=きんぱつろう)])
폭주랑([ruby(暴走狼, ruby=ぼうそうろう)])
Mr.Excitement
가족 관계 로드 워리어 애니멀[1]
조카 제임스 라우리나이티스[2]
동생 더 터미네이터[3]
의붓딸 벨라 트윈스
피니쉬 무브 에이스 크러셔
테마곡 Kickstart my Heart - Mötley Crüe
은퇴[4] (공식) 2000년 9월 6일 아키타현립체육관
전일본 슈퍼 파워 시리즈 2000 15일차
vs 코바시 켄타 & 시가 켄타로
(w/마이크 바튼)

2. 소개

NWA,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쟈니 에이스란 링네임으로 활약했던 전직 프로레슬러이며 WWE 소속 로드 에이전트 겸 프로듀서로 빈스 맥마흔의 측근 중 1명[5]이었지만 2022년에 빈스 맥마흔의 은퇴와 함께 WWE에서 해고된다.

3. 커리어

1986년 자니 에이스라는 링네임을 통해 프로레슬러로 데뷔한다. NWA의 짐 크로켓 프로모션 (훗날 WCW)에서 셰인 더글라스와 "다이나믹 듀즈"라는 태그팀을 결성해서 활동하기도 한다.[6] 1990년대에는 일본 3대 프로레슬링 단체 중 하나인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완전 이적해 "닥터 데스" 스티브 윌리엄스, 코바시 켄타와 태그팀을 맺고 주로 활약했다. 스티브 윌리엄스와 태그팀을 맺었을 때 미사와 미츠하루& 아키야마 쥰, 미사와 미츠하루 & 코바시 켄타와의 경기로 각각 5성 경기를 만들었는데, 이 중 미사와 & 아키야먀와의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에 의해 1996년 올해의 경기로 선정되었다.
전일본 프로레슬링 시절을 회고한 팬 제작 트론
대표 기술인 에이스 크러셔는 모든 커터의 원형이다. 쟈니 에이스의 현역 당시 남발기중에 하나였다. 응용 방식도 정말 많아 눈사태식에서 시작해서 런닝식, 제자리식 등이 있지만 피니시로 거의 많이 쓰이던 것은 페임에써 계열의 길로틴 에이스 크러셔였다. 이후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의 다이아몬드 커터, 스티브 오스틴의 스톤콜드 스터너, 랜디 오턴의 RKO 등 많은 선수의 피니셔로 변용되었다.[7]

2000년에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의 파장으로 전일본과 프로레슬링 NOAH가 쪼개지는 과정에서 프로레슬러로서 완전히 은퇴하고 WCW 각본진의 수장으로 합류한다. 2001년 WCW가 WWF에 매각된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2004년 인사담당 부회장으로 임명이 됐지만 쇼에 나오거나 언급되는 일은 일체 없었다.

주로 선수 영입 담당을 맡고 있었지만 영입된 선수들 반 이상이 데뷔를 못하고 방출당하거나 아니면 직접 해고시키는 등 백스테이지에서 악명이 높다. 2003년 무렵부터 2011년까지 WWE의 인사담당 부사장(Vice president of talent relations)이었고,[8] 짐 로스는 2011년에 존 라우리나이티스가 직책에서 내려왔을 때 '인사담당 부사장이 얼마나 고된 자리인지는 내가 잘 안다. 그의 노고에 갈채를 보낸다'고 트윗을 날렸다. 알베르토 델 리오를 포함한 일부 선수들이 그의 주도 하에서 성장한 스타라고 하지만 존 라우리나이티스가 띄웠다고 할 수는 없다. 과거 스맥다운에서 활동하던 악역선수들인 알베르토 델 리오, 코디 로즈, 잭 스웨거, 드류 맥킨타이어, 셰이머스 등 당시 스맥다운 각본진수장인 마이클 헤이즈가 상당히 공을 들여 밀어주면서 성장시켰고, 이들중 일부는 RAW로 드래프트 된 순간부터 푸쉬가 중단되었다.[9] 존 라우리나이티스가 WWE 레슬매니아 19에서 큰 흥행을 남기기 위해 브록 레스너에게 슈팅스타 프레스로 경기를 끝낼 것을 제안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이런 제의를 한 사람은 커트 앵글이었다. # 인터뷰 원문

OVW & DSW & FCW에서 활동했던 수련생들중 절반 이상은 이인물이 영입한 인물들이고, 영입된 선수들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레슬러들이라든가 빅맨남성이나 외모와 몸매 지향적인 여성들(특히 레슬링 경력도 없는 모델들이나 디바서치 출신들)만을 위주로 영입하고, 레전드들의 자식들도 영입했지만 빈스를 포함해 WWE 수뇌부들이 잘 띄울질 않았다는 점 등이 또다른 문제. 트리플H가 NXT를 총괄하면서부터는 대부분 선수영입은 트리플H의 주도하에 있었기에 존 라우리나이티스가 선수영입을 담당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1년 CM 펑크 존 시나와의 대립과정 중 대본/가이드라인 없는 (후일 파이프밤이라 불리는) 자유로운 세그먼트를 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해 존 라우리나이티스는 얼떨결에(?) WWE 본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WWE 머니 인 더 뱅크(2011)에서 빈스 맥마흔과 더불어 CM 펑크를 엿먹이려는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재연하려 하다가 말아먹었다. 그리고 빈스가 RAW에서 물러나고 트리플 H가 쇼를 운영하는 동안 그의 대항마 격으로 활약하게 되며, 트리플 H가 레슬러들의 불신임을 받고 물러난 뒤로는 RAW의 잠정적 단장 역할까지 겸하게 되면서 CM 펑크, 존 시나 등의 선역 레슬러들과 대립관계를 형성하였다.

2012년에는 스맥다운!의 단장 시어도어 롱과 경쟁하게 되어 레슬매니아 28에서 각자의 팀을 데리고 이기는 쪽이 모든 브랜드의 단장을 겸임한다는 조항을 걸고 경기를 하여 결국 승리했다. 2012년 5월 20일(현지시간)에 열리는 WWE 오버 더 리미트(2012)에서 존 시나그 해 최악에 경기로 선정된 "다른 레슬러 난입 금지, 패배하면 해고"라는 조건이 붙은 1대1 경기를 갖게 되는데, 대략 10분 가까이 회전 고문, 링 벨소리 고문에 아나운서 테이블에 머리를 마구잡이로 부딪히고 해설진 코스프레로 능욕을 당하고 화해의 악수를 청하다가 뺨 맞고 생수로 샤워하고 소화기 세례에 실제 쓰레기통을 엎어쓰고 별별 능욕만 당하다가 그래도 STF를 20초나 버텼다. 간신히 관중석으로 도망치려다 시나가 잡으니까 반격을 성공시켜 체어샷을 몇번 먹이지만 결국 체어샷 파이브 너클 셔플을 맞고 로우블로로 시간을 끌고 도망친 후 지난주에 해고시킨 빅 쇼를 난입하도록 해 물론 그 사이에 연기하느라 빅 쇼에게 손을 밟혔다. 승리했다. 경기로썬 최악이었지만 사람들의 힘으로 승리했다는 같은 마이클 콜의 드립이나 가장 어두운 시간이라는 제리 롤러의 드립 등 한번쯤 봐도 괜찮은 경기다.

WWE 노 웨이 아웃(2012)에서 빅 쇼와 존 시나의 경기에 본인의 단장직이 걸리자 어떻게든 시나가 못 이기게 방해하려했지만 그간 빅 쇼에게 당했던 레슬러들이 방해하는 바람에 빅 쇼가 패하고 빈스 맥마흔에게 해고당한다. 그리고 그 다음 RAW에서 데이빗 오텅가와 빅 쇼에게도 버림받았다.

회전근개 손상이란 진단을 받아 어깨 수술을 받은 이후 별 임팩트있는 장면 없이 지내다가 2014년 10월 10일 스맥다운 15주년 오프닝 세그먼트에 스테파니 맥마흔에게 츳코미를 걸며 등장해 긴 공백기간이 무색할 정도로 관객들의 많은 호응야유[10]을 얻었다.

이후로는 WWE의 특집방송때마다 간간히 특별출연 해준다. 그리고 2020년 2월, 존 모리슨 & 미즈가 태그팀 재결성 기념으로 만든 영상에 랜스 스톰과 함께 출연하여 그들을 칭찬했다.

계속해서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빈스 맥마흔이 총애하는 측근[11]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고, 그러다가 빈스가 그를 선수 총괄 관련으로 다시 내세우기 시작하며 선수들에게 해고문자를 통보하는 역할로 활동하고 있다.[12]

2022년에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보도한 빈스 맥마흔과 관련해 성추문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전보다 더 추락해 버리고, 결국엔 빼도박도 못하게 되면서 빈스 맥마흔의 회장직 사임과 함께 존 라우리나이티스는 WWE에서 해고된다.[13]

4. 기타

5. 둘러보기

파일:전일본프로레슬링로고.webp 역대 신춘 배틀로얄 우승자
1990 1991 1992
야츠 요시아키 쟈니 에이스 타우에 아키라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
1996년
6월 7일
전일본 프로레슬링
'96 슈퍼 파워 시리즈 최종일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C) (_ 미사와 미츠하루_ & _ 아키야마 쥰_(O))
vs
살인랑콤비([ruby(殺人狼, ruby=さつじんろう)]コンビ) ( 스티브 윌리엄스 & 쟈니 에이스(X))
*****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5성 경기 [★]
1996년
6월 7일
전일본 프로레슬링
'96 슈퍼 파워 시리즈 최종일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
_초세대군_(_[ruby(超世代軍, ruby=ちょうせだいぐん)]_)(C) (_ 미사와 미츠하루_ & _ 아키야마 쥰_(O))
vs
살인랑콤비([ruby(殺人狼, ruby=さつじんろう)]コンビ) ( 스티브 윌리엄스 & 쟈니 에이스(X))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 최악의 경기 [★]
2012년
5월 20일
WWE
오버 더 리미트
NO DQ 매치
존 시나 vs _존 라우리나이티스_
DUD


[1] 본명 조셉 마이클 라우리나이티스 [2] 풋볼 선수로, 로스앤젤레스 램스 소속의 라인배커였다. 2017년 은퇴. [3] 본명 마커스 라우리나이티스 [4]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으로 전일본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새로 창설된 NOAH에 입단하지 않고 은퇴하였다. [5] 나머지 빈스 맥마흔의 측근은 닉 칸, 케빈 던, 브라더 러브로 활동한 브루스 프린차드. [6] 이때 민 마크(Mean Mark)라는 기믹이였던 언더테이커와도 싱글 매치를 가진 적이 있다. 언더테이커의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당시 언더테이커의 매니저였던 시어도어 롱의 갱스터 스타일 등의 비쥬얼 쇼크를 느낄 수 있다. [7] 이중 더들리 보이즈는 둘이서 사용하는 변형식 커터인 3D를 피니시 무브로 썼는데 쟈니 에이스는 이걸 맥시칸식 에이스 크러셔라는 이름으로 혼자서 해내는 모습을 보여줘 원조의 짬밥을 보여줬다. [8] 전임자는 짐 로스, 후임자는 트리플 H다. 다만 전임자와 후임자에 비하면 이쪽은 선수들에게 가차없이 막대하는 스타일이라 선수들의 실수에 대해서도 따지고 들며, 선수들에게 막말 및 욕을 한다. [9] 알베르토 델 리오의 매니저 역할을 맡았던 리카르도 로드리게즈가 한 말에 따르면 트리플 H가 실권을 잡은 후 알베르토 델 리오 및 일부 선수가 푸쉬에서 소외된 것은 그들이 존 라우리나이티스의 업적인 반면 트리플 H는 존 라우리나이티스와 구별되는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실드 와이어트 패밀리를 밀어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별개로 몇몇선수들이 못뜨는데에는 다른 이유가 또 있었고, 당시 RAW 각본진 수장인 브라이언 거위츠가 스맥다운에서 RAW로 이적한 선수들을 밀어주지 않아 명쳐놨기에 선수들이 못뜨는 결정적인 상황을 주도한 또다른 인물로는 존 라우리나이티스도 있다. [10] 처음 등장할 때는 야유를 받았지만 마이크를 잡자 환호를 받기도 했다. [11] WWE에서 활동중인 일부 프로듀서 및 임직원 등을 빈스 맥마흔이 다 해고시켜버린 상황에 이 인물은 빈스가 끝까지 자신의 측근으로 옆에 두고 있다. 요컨대 빈스 맥마흔의 따까리, 딸랑이 역할에 충실해서 출세한 것이다. [12] 2021년에 있는 50명 넘는 선수들의 해고러쉬에 빈스 맥마흔 & 닉 칸 & 브루스 프린차드와 관련해 그 역시 개입하고 있다. 다만 실질적으로 이 일을 결정, 주도한 건 빈스 맥마흔이다. [13] 빈스 맥마흔 은퇴의 계기가 된 성추문에 라우리나이티스도 같이 껴서 했다고 한다(...). 구멍동서 [14] 둘 다 일본에서 활동했지만 애니멀은 미국에서도 유명한데 존은 일본에서만 활동해서 미국에서는 생각보다 이름이 덜 알려져 있는 편이다. [15] 대니얼 브라이언를 사위로, 그의 자식을 손주로 두게 되는거다. [★]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