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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고려 거란 전쟁/음악#s-2.2| 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고려 거란 전쟁/음악#s-2.3| Part 3
적동
(붉은겨울)]]
안예은
2024. 01. 18.[[고려 거란 전쟁/음악#s-2.4| Part 4
그 겨울에
나는]]
IYAGI (이야기)
2024. 02. 03.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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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우 張延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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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 |
지위 |
병부시랑·행영도통부사 (4[1] ~ 16회) → 판어사대사 (16 ~ 24회) → 중추사 (25회) → 호부상서 (29회)[2] |
등장회차 | 4 ~ 8회, 10 ~ 27회, 29회 |
배우 | |
이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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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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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배우는 이지훈.
2. 작중 행적
2.1. 4 ~ 6회
4회에서 병부시랑으로 조회 자리에 처음 등장했고, 이후 병부낭중 황보유의와 함께 중대사 강조가 내린 동원령을 점검했고, 5회에 동원령이 내려지자 이현운과 함께 행영도통부사로서 강조의 부관이 되어 출전한다.6회에서는 상관보다는 아랫사람들과 어울리며 특히 같은 병부 소속의 부하이자 행영도병마판관인 황보유의에게 친근감을 표시한다.[3] 그런데 이후 대화에서 제1차 여요전쟁을 겪으며 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인물임이 드러나고, 그래서인지 다가올 전쟁의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태연하려 한다. "이미 한 번 겪어봤으니 낫지 않느냐?"고 묻는 황보유의에게 "2번째로 겪으면 더 마주하기 싫은 게 전쟁"이라고 대답한다. 곧이어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네" 라며 멋쩍게 너스레를 떨었지만, 얼굴에 깊은 수심이 서려있는 모습은 감출 수 없었다. 아마도, 작중 내내 보여주는 겁쟁이같은 모습도 이미 거란의 침공을 한 번 겪어봐서 공포감에 몸을 사리는 모습이 반영된 것처럼 보이는데 상식적으로 참혹한 전쟁을 한 번 겪어보고 나면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2.2. 7회
황보유의와 야간에 순찰 중 탈영병[4]을 목격했으나 바로 칼을 뽑으려던 황보유의를 막아서면서 "어딜 가는 건가? 아? 길을 잃은 건가?" 라며 "나도 진이 너무 넓어 길을 잃는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말을 붙였고, 누가 보면 오해를 하겠다면서 "탈영하다가 평생 가족 얼굴 못 보고 살 텐데 그게 어디 살아도 산 건가? 죽은 거지." 라는 말을 덧붙여서 관대한 태도로 설득하여 탈영을 막는다.사실, 고려시대의 사회는 군신관계와 위계서열이 굉장히 강했던데다 전시상황에서 강제징집된 백성들의 취급은 파리 목숨보다도 못했다는 것을 잘 생각해보면 병사들이 탈영하는 모습을 발견했음에도 이례적으로 대인배처럼 용서해주는 관대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그래도 군율을 지켜야 되는 것 아니냐?" 라고 묻는 황보유의에게 "됐네. 한 사람이 아쉬운 판에 군령으로 처단할 군사가 어디 있는가?" 라고 반박까지 한다. 그리고,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탈영병을 발견하고 "이보게. 아? 자네도 길을 잃었나?" 라고 말을 건다. 아마도 본인이 제1차 여요전쟁에 참전했을 때의 공포감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으니 "탈영으로 도망치는 병사들이 나와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라고 좋게 설득해서 탈영을 하지 않고 군영에 남아있도록 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이 반영된 듯하다.[5]
이후 거란과의 일전에 앞서 편성을 할 때, 본진 후방을 지키는 위치에 편성되었고,[6] 거란군의 기습이 있을 때 강조에게 보고한 이후 거란군을 막으라는 명령으로 출진하는데, 그 때 "예? 제가요?" 라면서 당황했고, 본인이 출전하자마자 이후 거란군이 기습해 도통사 강조가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7]
2.3. 8회
황보유의와 함께 패주 도중 자신에게 접근하는 병사들을 보자 거란군의 추적으로 생각해 이를 피하기 위해 급히 죽은 척을 하자고 제안하고 피를 묻힌 뒤 쓰러졌다. 상처도 없이 누운 둘을 수상하게 여긴 바람에 죽은 척 한 것을 들켰지만 다행히 병사들은 고려군 패주병들이었고, 이들과 합류해 남쪽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여기서 깨알같이 죽은 척한 거냐고 떠본 말에 황보유의가 제안했다고 떠넘기는 등 패전 직후라는 심각한 상황에서 소소한 웃음을 주었다.[8] 이들과 함께 패주하면서도 아예 남하하지 않고 영주성에 합류해 거기라도 지켜보자며 기합을 넣지만, 정작 그 곳의 수장과 군사들은 물론 백성들까지 죄다 도망가 버리는 장면을 목격한다.2.4. 10회
여기에서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개그캐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별 수 없이 영주성을 떠난 후에는 직전에 함락된 숙주성으로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모양인데, 서경으로 가야 한다는 황보유의 말에 자신이 가면 성이 함락된다고 핑계를 대며[9] 허세 잔뜩 들어간 시를 읊는다.[10] 황보유의는 한심하게 쳐다보다 그럼 우리만 가겠다며 일어나는데 그러고도 안 따라가고 하늘을 보면서 "내 충심은 누가 알아주냐?"면서 헛소리를 하다 황보유의가 "안 오십니까?"하니까 "가는 중이네."라면서 툴툴거리면서 따라나선다. 그러던 중 거란 진영에서 도망치면서 추격을 받던 예부시랑 강감찬을 구하면서 본인도 놀랐는지 "예부시랑이 여기 왜 계시냐?"고 물어본다. 이후 서경성이 응전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한 강감찬이 이제 개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고, 본인에게도 개경으로 향하라는 강감찬의 말에 동조[11]하자 이를 본 황보유의가 "개경으로 가셨다가 개경이 함락되면 책임지실 겁니까"라고 딴지를 건다. 하지만 무시하고 개경으로 가서 조정에 복귀했는데[12], 복귀한 이후 승전보를 듣다가 10회 최후반에 탁사정이 성을 버리고 도망갔고, 대도수가 포로가 되었으며, 지채문이 패주했다는 전령의 소식을 듣는다.2.5. 11회
현종의 명을 받고 개경 방어전략을 수립해 승병과 개경 백성들을 소집하면서 이때도 소집을 둘려워하던 몇몇 백성들을 다독거린다. 그리고 황보유의와 작전을 짜면서 개경에 방어성이 구축되지 않은 문제로 인해 개경 북쪽 절령에 방어선을 수립하고 병력을 이끌고 죽음을 각오한 채 출전한다.[13] 앞의 패주 때와는 달리 꽤나 비장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했지만, 덩달아 비장해진 황보유의에게 얼굴을 불쑥 내밀더니 "꼭 오게. 도망칠 생각말고." 라면서 또 다시 서로가 콤비임을 증명하며 여전히 개그 캐릭터임을 어필하는데, 근심에 가득한 황보유의가 그런 장연우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후 절령의 방어선에서 강감찬이 지채문을 위무하면서 반드시 살아남으라고 충고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럼 나는 죽으라는 건가?"하면서 자조적으로 툴툴댔지만, 이후 절령에 다가온 거란군을 상대로 지채문, 황보유의와 사력을 다해서 막는다. 다만, 낮밤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오는 거란군에 지친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패퇴해 개경으로 돌아와 현종의 몽진에 참여한다.2.6. 12 ~ 15회
12회부터 현종의 몽진에 참여해 지채문, 황보유의와 함께 경호를 맡았다. 초반 들른 적성현에서 이들과 채충순과 함께 식사하던 중 연이은 패배로 인해 제대로 먹지 못하던 지채문을 보면서, "입병이 나서 못 먹냐?"고 물었고, 지채문이 밥을 둔 채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아깝다며 눈치 없이 지채문의 밥을 갖다 먹으려다 황보유의가 지채문의 밥을 갖고 따라 나가는 것을 보고 무안해 한다. 그러다가 거란의 추격대가 인근까지 오자 현종과 원정황후는 채충순에게 맡기고, 자신은 지채문, 황보유의와 함께 추격대와 맞서 싸워 이겼는데, 밤중에 거란군 장수를 기습해 승리한 지채문에게 "숨어 있었으면 좋지 않겠냐?"고 말하면서 '참 말 안 듣는 장수'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현종 일행과 떨어져 경호 인력이 없던 이들이 현종을 해치려 든 충주 호장 박진에게 위협을 받을 순간 무사히 구출했고(12회 최후반 ~ 13회 초반) 다시 몽진 길에 나서다가 충주에서 올라오던 통군사 최사위와 충주 사록 김종현 일행을 먼저 발견한다. 그리고 이들과 어느 빈 관아로 이동해 연종과 원정황후 앞에서 최사위, 채충순과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14회에서 몽진 중 중랑장 지채문이 현종을 위해 묘기[14]를 선보여 성공시키자, "저도 해 보이겠습니다."라면서 자신있게 나섰지만, 못 맞혀서 현종과 원정황후를 비롯한 주위에게서 웃음과 망신을 당했다.[15] 실패하자 당황했는지 "손이 미끄러졌다."는 변명과 함께 다시 쏠려고 했지만, 현종이 웃으면서 제지하자 그를 따랐다. 또한, 현종이 "더는 죄 없는 짐승을 해치지 말라."는 말을 하자 냉큼 "옳으신 말씀" 이라고 답한 뒤 지채문에게 "죄 없는 짐승을..."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자리로 오는 감초같은 모습을 또 보였다. 이런 장연우의 행동에 일행들이 전부 웃으면서 한순간이나마 시름을 덜 수 있었다. 그러나 몽진 행렬이 창화현에 이르자 그 곳 호장들의 방해로 따르던 병사들이 도망쳤고, 장연우 자신도 '고양이가 지나가는 소리'를 '적이 당도한 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면서 칼을 뽑아 들었다가 진실을 알고 통군사 최사위한테 면박을 당할 뻔 했다. 그러다가 다시 그 곳 호장들이 백성들을 시켜 몽진 행렬을 방해하자 현종을 호위[16]하면서 싸웠다가 하공진의 등장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이후 친조의 표문을 들고 간 하공진이 돌아오지 않자 다시 몽진에 나서는데, 15회에서 원정황후와 최사위, 김종현과 헤어진 뒤 현종의 명으로 입고 있던 갑옷을 벗고 평복으로 몽진을 수행한다.[17]현종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은 초반에 쌩쌩하게 걷다가 나중에 지친 반면, 본인은 기도하는 사람들 옆에 돌을 놓고 기원하고, 혼자 드러 누우면서 힘들어하거나, 강을 건너다가 물에 빠지려 하는 현종을 구하다가 오히려 물에 빠지는 감초 같은 모습을 깨알같이 보여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공주에서 그곳 절도사 김은부의 환대를 받으며, 12회처럼 채충순, 지채문, 황보유의와 함께 식사를 하다가 백숙의 닭다리를 뜯어 먹으면서 술을 마시려고 술병을 잡으려고 했지만, 지채문의 방해와 힘싸움에서 밀려서 실패하고, 대신 "냄새만 맡은 것일세." 라고 얼버무리며 변명한다.[18] 그리로, 다음 날 김은부의 서신을 받은 현종과 함께 나주로 이동한다.
2.7. 16 ~ 20회
16회에서 개경에 머물던 거란군이 물러가자 현종이 환궁하면서 갑주를 입고 따라 나서 폐허가 된 개경과 궁궐을 바라본다. 이후 호종의 공을 인정받아 '판어사대사'에 제수되었는데, 잘못을 저지르고도 벼슬이 올라간 탁사정이 안하무인으로 대하면서 먼저 조정에 나서자 이를 예부낭중 강민첨, 시어사 황보유의와 함께 바라본다.17회 이후부터는 현종이 밀어붙이는 '지방개혁'에 있어서 계획자인 형부시랑 김은부를 포함해 중추사 채충순, 참지정사 최사위, 시어사 황보유의와 함께 현종에게 포섭되어 그의 뜻을 지지한다. 다만 다른 이들과는 달리 장연우의 지지 표명은 상당히 '개그캐'의 모습을 보여준다. 초반 현종이 강경한 '지방개혁'을 표명하자 재상들[19]과 모인 자리에서 상당한 우려를 표했는데, 현종이 자신을 포섭하러 가기 전 관청에서 황보유의와 감찰어사 김종현, 진중시어사 조자기 앞에서 전전긍긍[20]하다가 이들 앞에서 "이 개혁안에 반발하는 호족들의 표적이 되어 그들의 자객에 자신이 죽으면 우리 노모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는가" 아이고, 엄... 어머니..."라면서 울었고, 그래도 이들 3인이 부추기자 " 죽느냐 사느냐..."라고 독백하다가 결국 등 떠밀러 가려는데, 기다리다 못해 현종이 직접 행차하자 화들짝 놀라 무릎을 꿇은 채 현종이 제대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전적으로 개혁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황보유의, 김종현, 조자기가 이를 한심하게 바라본다.[21] 그러다가 이러한 개혁에 반발해 관리들이 집단 사직을 하자 당황했고, 이를 김은부가 따지자 "아프다고 사직하는 것을 어떻게 막냐?"고 항변한다.
이후 18회에서 김은부가 제안한 방책대로 지난 전란에서 죄를 저지른 이들의 목록을 모아 『살생부』라 지칭하면서 황보유의에게 소집하라고 지시를 했고, 이 과정에서 파직당한 前 한림학사 승지 강감찬과 갈등을 밎은 현종이 낙마하고 난 19회에서 현종이 의식을 잠시 일었던 틈을 타 권력을 쥔 원정황후와 유진에 의해서 채충순과 최사위가 각각 남쪽과 서북면으로 발령간 뒤 김은부의 호휘를 맡은걸 지시받자 또 "예? 제가요?"라며 크게 당황한다. 하지만 이후 김은부가 잡히면서 아랫사람들에게 떠밀어서 어쩔 수 없이 상소를 쓰긴 했으나 전달하려던 중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빠지려고 했다. 이에 황보유의가 "언제까지 도망만 칠 거냐? 지겹지도 않냐?"고 타박하자 "살아남는 게 지겹냐? 물러나야 할 때를 잘 알아야 산다."고 핀잔을 주면서 결국 안 하겠다고 버텨 황보유의가 본인이 직접 하겠다고 나섰는데, 수창궁[22] 정전에 들어가자마자 황보유의의 손에서 상소를 낚아채고 섰다. 이후 김은부를 심문할 때 유진과 병부낭중 최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신료들이 김은부를 몰아붙일 때 처음에는 전전긍긍하다가 황보유의의 눈치를 받고 결국 변호하지만, 제대로 논지를 전달하지 못해 유진에게 엄청 까였다. 이후 상소를 통해 '지난 전란 당시 징발율 97%를 달성한 절도사는 공주 절도사(당시 김은부) 뿐이라며 호장들의 위세 때문에 더 많은 군사를 징발하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했을 것'이라며 변호의 논지를 제시했지만, 유진이 "그게 나라를 위한 목적이었는지 개인의 사적 목적이었는지 어떻게 아냐?"라고 반문하면서 (이미 한통속인)공주의 호장들을 소환해 김은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자 본인도 더 이상 어쩌지 못했다.
다행히 의식에서 돌아온 현종이 이를 뒤집으면서 김은부의 큰 딸을 부인으로 맞이했고, 지방으로 갔던 채충순과 최사위가 돌아온 20회에 이들을 만나 "자신이 김은부를 적극적으로 변호했다."라는 허세가 섞인 무용담을 연거푸 늘어놓자 두 재상(채충순과 최사위)은 "고맙다."면서 그의 입을 막으려고 했고[23], 내막을 알고 있는 황보유의를 포함해 관청에서 업무를 보던 김종현, 조자기 등이 웃자 "그만 웃으라."라고 딴죽을 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 상황을 뒤집은 강감찬이 제안한 '지방 개혁'의 '수정안'에 대해 현종이 이들(김은부, 채충순, 최사위, 장연우)을 불러 "개혁의 강도를 수정하자."라고 제안할 때 처음에는 "쇠뿔도 단김에 빼란 말이 있다. 여기까지 와서 늦추는 건 아닌 것 같다."라면서 홀로 반대했지만, 자신이 의견을 물었던 김은부를 비롯해 다른 이들이 모두 찬성하자 급격하게 태세 전환을 하는 모습을 보여 현종을 비롯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2.8. 21 ~ 24회
21회 이후로는 현종이 재상들과 한림학사 승지로 복귀한 강감찬과 회의를 할 때 강감찬과 더불어 제일 말석 쪽에 앉거나 조회 때 좌측(현종의 시선)에 설 때는 유방이나 채충순의 오른편, 우측(현종의 시선)에 설 때에는 강감찬의 뒤에 서 있는 모습이 나왔다. 그러다가 23회에서 거란의 '친조 요구'와 '강동 6주(특히 흥화진)의 할양'에 대해 모두 거부한 현종이 역관에 머물던 거란 사신을 불러 귀국을 명령할 때 혹시 모를 백성들의 구타[24]를 염려해 개경 밖까지 호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에 거란 사신이 현종에게 언성을 높이자 사신에게 "어서 나가라!"라고 언성을 높이며 사신위 뛰를 따라 나갔다. 그리고 해당 회차의 후반에 현종이 강감찬을 동북면 행영병마사로 임명하자 이를 '무관에 대한 차별'로 인식한 상장군 김훈과 장군 최질이 이들을 통해 현종을 밀어내는 것을 넘어 없애려고 한 장작주부 박진의 계획에 따라 따르는 장수들과 무장한 채 수창궁에 들어와 정전 앞에서 현종에게 탄원서를 전달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폈고 이를 본 현종이 무관들을 꾸짖을 때 뒤에서 다른 재상들과 함께 보았는데, 이후 벌어질 일을 암시하듯 불안해보이는 모습을 보였다.24회에서 문하시랑 유진과 밤중에 궐내 관청 사이를 걷다가 지난 일(윗 문단에 언급된 무관들의 집단행동)에 현종이 덮은 것을 두고 이를 못마땅하게 본 유진이 조사할 것을 지시하자 "예? 제가요?" 라며 당황한다. 그래도 내린 지시라 어쩔 수 없이 황보유의와 함께 김훈 등이 올린 상주문을 보면서 관련 무장들을 불러 조사하는데, 이를 보다못한 최질이 직접 어사대에 난입해 따지면서 "자신이 주동자이다."라면서 대들자 그 기세에 잠시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지만, 이내 수창궁 정전에서 현종에게 김훈과 최질의 지난 행동을 거론하여 파직을 요청했고, 이에 유진을 비롯한 다른 재상들도 찬동했다. 이 요청은 현종이 "두 사람이 지난 전란 당시 공이 있었다."면서 무마되었지만, 이후 조회가 끝나고 나오던 중 김훈, 최질과 시비가 붙었다. "공이 그럴 줄 몰랐다."는 김훈의 말과 함께 최질의 협박까지 더해지면서 겁을 아주 감추지는 못한 표정으로 그들과 대치했고, 그들이 떠난 이후 "그래, 어디 두고 보자."라고 떨면서 말했다. 이후 시점이 1014년으로 넘어가 본궐이 복구되자 현종과 황실 사람들의 뒤에서 다른 신료들과 함께 정전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이 잡혔다.
2.9. 25회
중추사가 되면서 중추사 일직이 된 황보유의와 함께 재정을 맡게 되었는데, 처음 재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해당 업무를 지시받자 오랜만에 "예? 제가요?"라며 당황한다. 다만, 당시 참지정사 최항은 실록 편찬, 문하시랑평장사 최사위와 중추사 채충순은 여전히 진행 중인 지방 개혁을 담당해야 했기에[25] 자리에서 수북히 쌓인 재정 관련 책들을 보면서 답답해한다. 그 이후, 현종에게 영업전을 세습하는 관행을 철폐하고 그 영업전으로 문신들의 녹봉을 지급하자라는 상소를 올리고 영업전을 철폐하자라는 말만 들은 김훈과 최질의 분노를 사 그들의 타겟이 된다. 상소를 올릴 때 "제가..."라면서 공을 가로채려다가 황보유의가 고안한 아이디어임을 정직하게 고백하는데, 하필이면 그 최후의 양심 고백 때문에 황보유의까지 동반으로 무관들의 원망을 듣게 되자 사과를 하게 된다.[26] 이후 무관들의 반란이 벌어지고, 반란군은 황궁을 점령한 뒤 장연우와 황보유의의 유배를 요구한다. 관리들이 모두 대전에 그대로 갇히자 황보유의가 먼저 유배를 자청한다. 현종이 이를 거절하자 장연우는 황보유의의 어깨를 두드리며 현종에게 “폐하는 버티시옵소서. 그렇지만 저희는 내보내주시옵소서. 저희를 내주시고 시간을 버시옵소서. 그럼 곧 동북면과 서북면의 군사들이 도착할 것이고 역도들은 놀라서 싸워보지도 않고 흩어질 것이옵니다.”이라고 현종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지금 나가면 반란군이 어찌할지 모른다는 유진의 말에 “각오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폐하, 소신도 한번쯤 당당하게 신하의 역할을 해보고 싶사옵니다.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라는 말을 남기면서 현종과 다른 대신들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자신의 지금까지 행적과는 달리 황보유의의 앞에 서서 스스로 정전의 문을 열고 나가 김훈과 최질 앞에 나섰는데, 다가온 최질이 칼집으로 장연우를 때리면서 이후 황보유의와 함께 무장들에게 피가 토할 만큼 심하게 폭행당했다.[27]2.10. 26회 이후
26회에서 초주검이 된 채 황보유의와 나란히 소달구지[28]를 타고 유배길에 올라 27회에서 유배지에 도착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여생이 얼마 안 남았는지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본래 유배지에서 본래 혼자 살아야 하지만, 부하인 황보유의의 간청에 같이 살게 되었는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써 자기는 죄 없는 충신이라면서 어머니를 찾으며 황보유의의 품에 안겨 울부짖는다. 이후 등장이 없다가 시점이 1018년으로 넘어간 29회 후반 급사중이 된 황보유의의 회상을 통해 그의 마지막이 나왔다. 반란이 평정되고 나서 황보유의와 함께 풀려나와 복직했지만, 반란 도중 무관들에게 폭행당했던 게 아직 낫지 않았는지 결국 얼마가지 못하고 사직했다고 황보유의에게 밝혔다. 비가 내리다가 그친 관청에서 그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나설 때 황보유의가 "남촌에 용한 의원이 있으니 찾아가보라."면서 권유했음에도 자신도 여러 방법을 동원했으나 소용 없었다면서 " 어젯밤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와서 '어서 오라' 하자 어린아이처럼 안겼다."라는 꿈 이야기를 꺼내더니 "거긴 전쟁도 없고 정변도 없는 그런 세상인 것 같았네."라고 덤덤하게[29] 밝히면서 황보유의의 등을 토닥거리고 "먼저 가네."라면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나선다. 이에 황보유의가 부르자 돌아서서 "폐하... 잘 모시게. 그리고... 그동안 정말 고마웠네. 자네 덕분에 즐겁게 보냈네."라면서 회한의 담긴 표정을 끝으로 회상이 끝나고, 비록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래도 존경하던 상관을 그리워하다가 상관이 앉았던 자리 앉아 글을 쓰려는 황보유의의 모습으로 드라마에서 보이지 않았다.[30]이후 최종화에서 목종, 천추태후, 강조, 김훈, 최질, 김은부, 원정왕후와 함께 실루엣으로 등장했다.
3. 묘사
원작 소설에서는 존재감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인물로 원작 기준 제2차 여요전쟁 시점에서는 56세라서 강조보다도 나이가 많은 관료인데, 음서로 관직을 시작하여 승진에 운이 없다가 강조에 의해 병부시랑이자 도통부사로 발탁되었다고 나온다.[31] 드라마에서는 전체적으로 암울한 기조를 띄는 작품에서 나름대로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주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휘하인 황보유의와 함께 본 작품의 '개그'를 담당하면서 소위 'MZ장군', '제가요'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냥 평범한 관료였다고 만 기록된 역사와 달리 본작에서는 다른 무장들과 마찬가지로 무예 또한 나름 뛰어나 거란군들과 여러분 싸우며 적지 않게 활약하는 문신이 아닌 무신 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묘사된다. 비록 나오는 장면보다 겁은 많지만,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는 착실히 일을 수행하면서 벌령이나 남쪽으로 몽진을 가는 현종을 지채문 등과 함께 여러번 위기에서 구해주며 추격해 오는 거란군과 정면으로 맞닥뜨리자 겁먹지 않고 힘이 들었음에도 차례차례 쓰러트리는 모습이나 병부시랑이나 몽진 이후 관료로서 행정 업무를 하거나 시를 읖는 모습에서 행정 관리나 장수로서도 꽤 유능한 인물로 사료에도 기재될 정도이다. 무엇보다 삼수채에서 탈영병을 설득하거나 개경에서 항전을 벌일 때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다독거리는 모습은 비록 사료에서 장연우의 실제 생년은 알 수 없지만, 제1차 여요전쟁으로 전쟁의 공포감을 경험했다고 발언한 바로 보아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다만, 그 과정에서 나름의 빌드업. 정확히는 장연우와 황보유의의 인생뿐만 아니라 고려 초 '성군'이라 불렸던 현종의 흑역사라 할 수 있는 김훈 최질의 난[32]과 관련해 그의 묘사에 비판이 있긴 하는데, 이는 장연우가 초반 회차(12회, 15회)에서 무관으로 그려진 중랑장 지채문[33]과 대치되는 행보(12회 초반에서 먹지 않고 나간 지채문의 밥을 훔쳐 먹으려고 한 점과 15회 주반 공주에서 식사를 할 때 술을 마시려한 행동) 때문이다. 당시 현종의 몽진은 거란군의 추격 위협 속에서 지방의 일부 관리들과 호족들의 비협조와 방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서 적성현에서는 암살 위협, 창화현에서는 호장의 방해 등 우여곡절이 많았고, 특히 창화현에서 하루나 허비한 이후로는 하루에 한 고을을 지나갈 정도로 빠르게 이동했던 상황이다. 그래서 다들 지쳤음에도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혼자서 저렇게 태연한 첫 술을 마시거나 남의 밥을 훔쳐 먹으려는 행동을 보인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이후 조정에 돌아와 중책을 맡기면서 벌어진 여러 에피소드에서도 두 사람에 대해 어떻게 묘사할 지가 관건이었는데, 사실 드라마에서 '개그 콤비'로 활약했지만, 개그를 떠나 장연우는 겁이 많지만 선한 성품을 지녔고, 황보유의는 강직하면서도 행동력이 있는 인물로 묘사되면서 이들의 작중 행적은 충의가 있는 신하에 해당해 자칫 묘사를 잘못하면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다. 사실 이 드라마가 17회 이후 메인 작가의 무리한 각색으로 인해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사실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일이나 실제 기록과 완전히 다른 스토리의 전개로 인해 온갖 비난을 받고 있는데, 물론 시청자들의 우려(두 사람의 실책을 고의가 아닌 일로 각색되거나 아니면 정말로 현종이 하사한 권력에 취해서 타락한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대로 가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장연우의 행보는 17회에서 언급했듯이 정말 이도 저도 아닌 난감한 상태에서 현종이나 재상들(특히 최선임인 유진)의 편에서 그에 반대되는 세력(호족들, 김훈·최질을 비롯한 일부 무관들과 이들의 배후인 박진)과의 대결에 직책 때문인지 몰라도 본의 아니게 맨 앞에서 이들 반대 세력들과 싸우는 입장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17회 이후 24회까지 현종이나 재상들에 뜻에 따르면서도 한 편으로는 불안한 자신의 마음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데, 휘하의 '부하'라고 할 수 있는 황보유의와 나눈 대화나 행동들을 보면 현종과 김은부가 계획한 급진적인 지방 개혁이나 현종의 관용에도 불구하고 무관들의 반발을 누르려는 재상들의 의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을 보임에도 쉽게 거절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르는 모습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25회부터 벌어진 김훈과 최질(시청자들 시각에서는 최질과 박진이지만)이 반란을 일으키던 전후 과정들을 보면, 사실 본인은 그 부분(관리들의 재정을 담당하는 일)을 하기 두려웠지만 다들 하고 있던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맡았고, 나름 황보유의와 나름 머리를 굴러가며 얻은 결론이 결국 무관들의 불만을 폭발시켜 궁궐을 점거하는 일을 촉발시켰다. 그러자 정전에 갇힌 현종과 다른 문관들을 살리고, 구원하러 떠난 강감찬의 동북면 군사들과 유방의 서북면 군사들이 올 시간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서 지키기 위해 황보유의와 함께 그들에게 던져질 제물을 자청하여 굉장히 비장하게 반란군들에게 걸어가 대치하다가 맞는 장면으로 묘사되면서 결론적으로 '자신을 희생하여 왕과 신하들을 지키는 충신'으로 묘사되었다. 해당 회차의 시작과 끝을 확실하게 장식했다.
4. 총평
메인 주인공들(현종, 강감찬, 양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현종의 몽진길을 지키고 지방개혁을 도맡는 등 조연 중에서는 비중이 컸다. 특유의 "예? 제가요?"라는 대사로 'MZ장군' 이라는 별명을 부여받으며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각인되었다. 회차마다 소소한 개그씬을 도맡아 전체적으로 침울하고 비장한 분위기의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에게 숨 쉴 틈을 제공하는 작중 유일한 개그 캐릭터라는 평을 받았다. 이전 KBS 대하드라마 속 인물들로 보면, < 용의 눈물>의 '조영무', < 태조 왕건>의 '아자개', < 대조영>의 '흑수돌'&'계필사문', < 정도전>과 < 태종 이방원>의 '이지란'[34]과 비슷한 위치라고 볼 수 있다.또한 개그 이미지와 달리 꽤 유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초반엔 겁이 많고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일은 최대한 회피하려고 하는 성격 탓에 마냥 우습기만 한 인물로 그려지는가 하였지만, 절령에서 결사대를 이끌고 명령을 받은 대로 거란군의 개경 입성을 저지하려 하였다. 현종의 몽진을 끝까지 함께하더니 호족 세력에 맞서 현종의 개혁을 지지하는 등, 겁은 많지만 막상 일에 착수하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인물임을 보여주었다. 작중 현종도 이러한 노력을 인정하여 본궐이 복구된 시점에서 그를 중추사로 임명하여 재상의 자리에 올리는 승진인사를 단행하였다. 한마디로 할 때는 하는 사람...이었으나 재상에 올라 황보유의와 만담을 나누며 출세를 하였다고 기뻐하던 모습도 잠시, 무관들의 불만이 커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영업전을 회수하여 재정 위기를 넘겨야 한다는 판단으로 인해 김훈과 최질의 난에 명분을 제공하는 실책을 저지르고야 만다.
그럼에도 난을 수습하고자 황보유의와 함께 정전 밖으로 나가 구타당하는 것을 자처하면서 그 동안 보여주었던 겁쟁이스러운 모습이 아닌 충실한 신하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전형적인 사례. 그 자신은 충신이고자 하였으나, 왕조가 통째로 흔들릴 뻔한 무신정변의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현종에게 도움과 시련을 동시에 준 양면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때문에 현종이 그 동안 극복했던 고난을 회상하는 최종화에서 목종, 천추태후, 강조, 최질, 김훈, 김은부, 원정왕후와 함께 정전에 등장한다.
5. 인간관계
- 현종 - 함께 몽진까지 떠난 충신이었지만 후에 안타까운 사건으로 마무리하게 된 안타까운 사이 . 현종의 몽진을 함께 떠난 몇 없는 충신이었고, 이후 현종이 지방 개혁을 추진할 때 채충순과 최사위, 김은부와 함께 개혁을 추진하였던 몇 안 되는 재상급 신하였다. 하지만 후에 현종과 문관들의 실수로 무관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이에 장연우와 황보유의가 유배를 가게 되면서 정말 안타깝게 끝나 버렸다.[35]
- 황보유의 - 가장 신뢰하는 직속 부하이자 동료. 첫 등장 이후 내내 데리고 다니면서 온갖 케미를 다 보여주었다가 25회에서 재정을 확보할 계획을 그에게 또 다시 떠넘겼는데, 지금까지 난감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서지 않고 숨기만 했던 것이 못내 미안했는지 "자넨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러나 정작 황보유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을 나가버려 "간만에 진심이었는데"라며 혼자 무안해 한다. 그리고 같이 책임을 뒤집어쓰고 유배를 떠났는데, 그럼에도 불평은커녕 복직하고서 자신이 먼저 떠나자 즐거웠다면서 회한을 남겼고 시점이 지난 뒤 그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본 황보유의도 그를 그리워했다.
- 지채문 - 말 안 듣는 부하 장수라기 보다는, 같이 현종을 호위하는 동료 신하. 그리고 지채문은 느끼지 못하지만 초반엔 장연우가 지채문을 약간의 '라이벌'로 보았다. 물론 몽진에서 돌아오고 난 이후에는 그런 느낌이 사라졌다.
- 강감찬 - 위장 항복 서신 전달 이후 거란군에 쫒기던 강감찬을 구해주었지만, 이후 절령에서 자신의 안위를 강감찬이 묻지 않아 서운해한다. 물론 전쟁 이후로는 장연우 본인과 지채문의 관계처럼 따로 접점이 없는 사이로 남았다.
- 김훈, 최질 -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 초반에는 그닥 접점이 없었지만, 본인은 주변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서 한 재정과 관련된 일 때문에 저 두 사람(특히 최질)의 불만을 사 구타를 당하고 유배까지 가게 되었다. 물론 저들이 처단되고 난 후 복직하게 되었지만, 그 기간은 짧았다.
6. 어록
두 번 겪으면 두 배로 두려운 게 전쟁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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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는 건가? 아? 길을 잃었는가??
(황보유의가 칼을 꺼내려고 하자 막으면서) 아. 그럴 수 있네. 그럴 수 있어. 군영이 좀 넓은가? 나도 도통사 군막을 찾아가다가 몇 번이나 길을 잃었네. 헤헤헤. 저기 저 횃불이 많은 곳으로 가게. 그럼 길을 찾을 수 있을걸세. 앞으론 조심하게. 그러다가 탈영한 군사로 몰릴 수도 있네. 그럼 평생 처자식 얼굴도 못 보고 도망치며 살아야 되는데, 그게 어디 산 건가? 이미 죽은 거지. 내 말, 알겠는가? (탈영병: 예, 감사합니다.) 어서 가게.[36] (황보유의가 탈영병을 군령으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하는것 아니냐고 묻자) 됐네. 한 사람이 아쉬운 판에 군령으로 처단할 군사가 어디 있는가? (황보유의: 그래도...) 아유... 처음부터 용맹한 사람이 어디 있나? 그저 싸우다보니 용맹해지는 거지. 흥화진이 좀 더 버텨줬으면 다들 저렇게 사기가 땅에 떨어지지 않았을걸세. '거란놈들도 별거 아니구나' 하고 자신감이 생겼을 걸세. 이보게? 아, 자네도 길을 잃었나?[37] |
(병력을 이끌고 가서 거란군을 제압하라는 강조의 명령을 받자 놀라면서) 예? 제가요?[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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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러 가네. 폐하께 절령에서 싸워야 한다 고하고 선발대와 함께 절령으로 가겠네. 자넨 내일 나머지 군사들을 이끌고 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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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소신도 한번쯤 당당하게 신하의 역할을 해보고 싶사옵니다.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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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 배후 이지훈은 KBS 대하드라마에서 <태조 왕건>과 <무인시대>, <서울 1945>와 <대조영>에 출연했고, 이 중 <태조 왕건>과 <대조영>에서 메인 주인공인 최수종과 만난 장면이 있었다.
-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많아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파괴왕'이란 별명울 붙어주기도 했는데, 10회에서 언급했듯이 자신이 있던 삼수채, 영주, 숙주가 모두 점령당하거나 패했고, 이후로는 절령(개경 방어전)에서도 사투를 벌였지만 패해 현종이 몽진을 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공주까지 들르는 고을마다 암살이나 추격 위협, 방해 등에 시달렸다. 다만, 본인이 들어가지 않았던 서경은 비록 그 곳에 지원하려 온 지채문이 패하고 대도수가 포로가 되고 탁사정이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조원, 강민첨, 조자기 등의 하급 무관들이 악착같이 성을 지켰다.
- 주인공인 현종과 강감찬 그리고 가장 큰 인기를 얻은 인물인 양규를 맡은 지승현과 더불어 나름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끈 캐릭터라서 인지 종영 후 방영된 스폐셜 에피소드 토크대첩에도 김동준, 하승리, 이시아, 지승현, 김혁, 김준배 등과 함께 출연한 단 8명 중 한명으로 나오게 되었다.
[1]
아래 행적에 언급했듯이 4회에서는 '병부시랑'이었고, 5회부터 '행영도통부사'를 겸했다.
[2]
다만, 이 시점은 회상으로 자막조차 없었다. 25회 막판 반란군에 의해 구타당한 뒤, 파직 및 유배에 나섰다가 반란군들이 진압되고 난 이후 돌아와
호부상서를 맡았다는 『고려사』 기록이 있다.
[3]
아마도 훗날 일어난
김훈·최질의 난의 포석으로 보이는데, 해당 반란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 바로 저 두 사람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4]
KBS 아나운서
김종현으로
역사저널 그날 촬영 차 본 드라마 촬영장을 방문할 때 특별 출연했다.
[5]
그리고,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거란군에서 개경을 함락하는데 성공했고 연이어 승전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도 거란군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탈영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처럼 전쟁에 참전하는 병사들은 이기든 지든 당연히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6]
강조가 임무를 배정하려할 때 장연우는 긴장해서 표정이 굳다가 강조가 눈치챈 듯 후방 임무를 맡기자 안심하고 표정이 풀린다. 본인도 전장이 두렵기에 위에서 탈영하려던 병사를 이해하고, 처벌하는 대신 설득하고 다독인 듯하다.
[7]
이 장면에서 엿볼 수 있는 건 강조는 장연우가 전쟁을 두려워하는 걸 눈치채고 있는데도 그에게 임무를 맡길 정도로 거란의 기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강조의 패전 과정이 매우 축약된 이 드라마에서 장연우가 강조의 방심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 셈이다. 한편, 장연우 입장에서는 일종의 '
새옹지마'로 여겨지는 것이 본인은 굉장히 가기 싫어하면서 갔지만, 이로 인해서 자신은 지휘부를 이탈했고, '지휘부 하나'만을 노리고 기습해 들어온 거란의 별동대에게 강조를 포함한 장수들이 줄줄이 포로가 되는 와중에 잡히지 않고 살아남게 되었다.
[8]
비겁함을 강조하기보단 장연우 본인의 온후한 성품 때문에 서로 콩트를 하는 분위기에 가깝고 황보유의도 알면서 마치 교과서를 읽는 톤으로 맞받아쳤다. 그리고 이 둘에게 천운이 따른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곳으로 거란군의 약탈이 시작되면서 전사자들의 유품을 뜯어갔으며 이 중엔 장비가 잘 안 벗겨지자 시체를 토막내서 뜯어간다. 들키지 않았다면 포로로 잡혔거나 어디 한두 군데는 잘렸을지도 모른다.
[9]
핑계라기도 뭣한 게 삼수채의 본군은 궤멸, 영주성과 숙주성은 함락되는 등 가는 곳마다 재앙이 들이닥치며 거의 '파괴신'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준다. 본인도 이를 강하게 의식하는지 "겁 먹은 게 아니라 진짜 서경을 위해 이러는 것."이라면서 항변한다.
[10]
장연우는 실제로
한송정곡이란 시를 남기는 등 문학적 소양을 보였는데,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1]
시간상 서경으로 향하면 거란군과 마주칠 확률이 높았다.
[12]
대사 없이 관리들 사이에서 관복을 입고 서 있어서 자세히 보지 못했다면 놓치기 쉽다.
[13]
훗날 이를 경험삼아 이중으로
개경에 방어성을 짓게 된다. 단순히 방어만이 아니라 이런 성벽이 있다면, 적도 함부로 침공하기 힘드니 전쟁 예방책으로도 좋다. 이 방어성은
제3차 여요전쟁을 거쳐 현종 재위 말년인
1029년에야 완성된다.
[14]
활로 날아가는 철새 떼 중 한 마리를 명중시키는데, 실제 지채문은 활을 잘 쏘았다고 한다.
[15]
옆에서 지켜보던 황보유의는 '저 인간을 어쩌면 좋냐...'는 식으로 한숨을 쉬었고,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참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16]
그 와중에 농민들을 피해 도망할 때마다 농민 증원 병력이 새롭게 늘어나자 지채문, 최사위 등 다른 인물들이 농민들을 맞서 싸우러 나가고 지휘할 장군이 자신밖에 없자 "자기 차례가 왔다." 라면서 싸웠다.
[17]
다만 '역사 탐구' 문서에도 나오지만, 드라마처럼 험준한 산을 탄 경우는 없다.
[18]
이 장면이 코믹하게 묘사되어서 그렇지, 장연우의 행동은 정말로 잘못된 것인데 위기의 전시상황에서 황제를 호위하는 도중에 감히 술을 마시려고 한 것이다.
[19]
당시 재상단은 위의 채충순, 최사위를 비롯해 내사시랑평장사 유진, 정당문학 최항이었다.
[20]
황보유의와 김종현, 조자기의 발언으로 볼 때 현종의 '호출'에도 나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1]
황보유의에 '강조' 표시를 한 것은 다른 두 사람에 비해 본인이 더 심하게 표정을 지었다.
[22]
지난 전란(제2차 여요전쟁) 당시 본궐은 거란에 의해 불타면서 현종은 본궐이 복구될 때까지 수창궁에 머물렸다.
[23]
심지어 김은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물었는데도
계속해서 자기 자랑을 하자, 이에 채충순이 "고맙다고 했소." 라고 말을 끊었다.
[24]
해당 사신은 22회 초반 개경에 진입할 때 친조하는 척 북쪽으로 이동하려던 현종의 앞을 막아섰던 개경 백성들이 발견하고 몰려와 구타하는 봉면을 겪었다. 현종의 명으로 친종장군 지채문이 백성들을 막지 않았으면 그대로 죽을 뻔했다.
[25]
그렇다고 검교태사 수문하시중으로 사실상 최고위직인데다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유진이 재정을 담당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26]
어차피 병부낭중 최구가 두 사람 모두의 말(정확히는 무관들의 명부를 달라면서 말한 황보유의)을 엿듣고 박진을 통해 김훈, 최질과 공유했으니 황보유의가 타겟에서 제외될 일은 없었겠지만, 장연우는 내막을 알 길이 없으니 오로지 자신이 입을 잘못 놀린 탓에 부하가 휘말렸다고 생각했다.
[27]
『고려사』의 '황보유의' 열전에 따르면, '
두 사람은 결박된 채로 채찍으로 거의 죽을 정도로 맞았다'라고 적혀있다.
[28]
'역사 탐구' 문서에도 나오지만, 본래 소달구지는 사형을 앞둔 죄수들이 타는 것으로 실제 유배를 가는 사람들은 말을 타거나 걸어갔기에 드라마에서는 4회 초반 김치양의 일파였던 이주정 등이 묶인 채 걸어서 유배길에 오른 것이 고증에 맞다. 다만, 이전 회차에서 피를 토할 정도로 심하게 맞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달구지에 싣고 보낸 것으로 보인다.
[29]
'반전주의'와 '태평성대'에 대한 염원을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0]
실제 장연우는 1015년 3월 반란이 진압된 뒤 조정에 복귀해 그해 윤6월 '호부상서'까지 오르다가
그 해 11월에 사망했다. 그리고 장연우를 회상한 황보유의에 이어 아들을 낳고 연경원주가 된 김씨 부인(후에 원성황후)와 궁에 들어온 그녀의 두 여동생이 '먼저 떠난 아버지 김은부'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장연우 또한 사망이 확정되었다.
[31]
참고로 원작에서는 자신의 아버지를 닮아 한어(漢語)에 능통하다는 설정이 있으며, 첫 등장 당시 강조에게 거란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 "게가 맛있었다."는 등의 담소를 나눈다.
[32]
우리가 잘 아는
무신정변보다 약 170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33]
현종의 몽진 이후 친종장군, 우상기를 거치는데, 실제 기록에는 우상시에 제수되면서 무관직을 겸하라고 하였다.
[34]
물론, <태종 이방원> 속의 이지란은 <정도전>보다 개그적 요소는 거의 없는 편이다. 해당 드라마에서 굳이 찾자면 '이화상' 정도.
[35]
위에 언급했듯이, 장연우는 반란이 진압되고 나서 돌아와 복직했지만, 그 사건 때문에 몸이 많이 쇠약해져 반 년도 안 돼서 사직했고, 곧 사망하였다. 그걸 감안하면 현종과는 약 4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있었으나 여러 이유들로 인해서 많은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36]
탈영을 시도하는 병사를 다독이며 다시 군영으로 돌려보내면서 하는 말이다.
[37]
"이보게" 부분부터는 다른 탈영병을 보고 한 말이다.
[38]
이 발언은 이후 19회에서 김은부의 변호를 부탁할 때, 24회에서 무장들의 탄핵을 유진에게 부탁 받을 때, 25회에서 중추사로 임명된 후에도 등장하는 등 장연우의 대표적인 어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