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홍보지에 인상적인 대사를 끼워넣은 짤방. Fender의 스트라토캐스터를 들고 있는 혁명 전사(...)가 인상적이다.2. 원본
그림의 느낌도 그렇고 한국에서는 원본이 북한에서 만들어진 선전용 포스터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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严格训练 做好反侵略战争的准备[정체자] 엄격한 훈련으로 침략 전쟁에 맞설 준비를 하자 |
그런데 북한으로 충분히 오해할 만하다. 당시 소련, 중국, 북한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산권 조종사 복장 및 장비의 외형은 엇비슷했다. 애당초 창군기부터 소련군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고 이후에도 공산권 국가들의 군사장비는 거의 대부분이 소련 것을 받았거나/소련 것을 베꼈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 거의 똑같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회주의 국가들의 선전 포스터는 선전하기에 좋은 강렬한 색채와 선전적인 문구, 적에 대항하는 전쟁의 자세 등의 일관된 유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설령 소련 포스터였어도 글자가 없으면 웬만하면 "서양인이 나온다" 정도밖에, 게다가 소련조차 인구의 상당수가 중국, 북한과 구별이 어려운 동아시아계였던 걸 감안하면 구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2]
때문에 북한 밈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북한인들은 원본 포스터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 70년대 중국의 선전화가 오늘날 북한에까지 잘 알려져 있을 가능성은 낮다.
3. 합성
2003년 미국의 합성 컨테스트 사이트인 http://worth1000.com에서 록 음악을 주제로 한 합성 컨테스트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포스터를 발견하고 거기에 일렉트릭 기타를 합성하여 업로드했다. 이때만 해도 그냥 "공산주의 록(Commie Rock)" 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 외엔 국적을 추정할 만한 어떤 것도 없었다. 해당 작품은 전체 4위에 올랐다. 원본과 나머지 순위권 작품들을 보고 싶은 록 매니아들은 여기에서 확인하시길.[3]이후 한국의 어떤 블로거가 worth1000.com을 소개하면서 록을 주제로 한 합성사진들을 예로 들었을 때 그림 밑에 "제국주의자들 각 잡고 기다려라. 인민들 기타 들고 전진한다" 라는 해설이 달렸지만 여전히 무국적성에 뭔가 임팩트
그런데 2005년 또 다른 블로거가 그 게시물을 인용하면서 그 합성물 밑에 "제국주의자 종간나새끼들에게 내래 인민의 락을 보여주갔어 =ㅁ=!" 라는 해설을 달아놨다. 해당 블로그 이후 지나가던 어느 아무개에 의해 밑에 중국어 문구를 지우고 한국어로 "제국주의자 종간나새끼들에게 내래 인민의 락을 보여주갔어" 를 집어넣은 그림이 짤방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4. 한편, 실제 공산권에서는
실제 공산권 국가(보스인 소련부터 동독, 폴란드, 체코까지)에서는 '인민의 락'이 규제는 받을지언정 공식적으로 금지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장르도 재즈, AOR[4], 락, 댄스, 디스코[5], 일렉트로니카[6] 등 다양했는데 대표적으로 1960년대부터 등장한 동독의 오스트록(Ostrock)[7]은 상당히 질과 음악적 완성도가 높아 서독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으며 현재도 인기는 식었을지언정 여전히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보스' 소련의 예만 들어 봐도 무수히 많다.
- 러시아 락의 '화석'이라는 평가를 받는 극초창기 밴드 마시나 브레메니(Машина времени), 아락스(Аракс), 아크바리움(Аквариум)
- 서양의 락앤롤을 카피하였지만 러시아 고유의 정서를 담은 정통계 락앤롤 밴드 주파르크(Зоопарк)와 세크레트(Секрет)[8]
- 아트 록, 스카, 펑크 등 다양한 장르와 "활발한" 무대로 "아방가르드 샤먼"이라는 평가를 받은 아우크치온(АукцЫон)
- 소련 락의 전설로 꼽히는 키노(Кино)
- 하드 락을 바탕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제시한 데데테(ДДТ)
- 펑크와 개러지 락을 통해 후기 소련의 경직된 체제를 비판한 그라지단스카야 오브로나(Гражданская оборона)[9], 프로미실렌나야 아르히텍투라(Промышленная архитектура), 인스트룩치야 포 브니마니유(Инструкция по вниманию), 얀카 댜길레바(Янка Дягилева)
- 다양한 장르와 감미로운 보컬+가사를 구사한 나우틸루스 폼필리우스(Наутилус Помпилиус)
- 슬라브 민담을 바탕으로 한 맛깔나는 노래들을 발표한 카롤 이 슈트(Король и Шут)
- 소련식 사람 사는 뒷골목 이야기를 펑크로 노래한 섹토르 가자(Сектор Газа)
- 정부 당국과 충돌할 정도로 자극적이고 풍자적인 가사들과 '전자스러운' 음악을 자랑한 텔레비조르(Телевизор)
- 공산주의 음악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헤비한 음악을 보여준 메탈 밴드 아리야(Ария), 크루이즈(Круиз), 마스테르(Мастер)
- 소련 역사상 최고로 감미로운 미성을 자랑한 밴드 알파(Альфа)
- 러시아 바르드 역사에 있어 전설로 꼽히는 블라디미르 비소츠키(Владимир Высоцкий)와 그의 후계자로 꼽히는 알렉산드르 바실라초프(Александр Башлачев)[10][11]
소련 말고도 다른 공산권 국가들에서도 다양한 젊은 음악들이 존재했고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폴란드의 레푸블리카, 유고슬라비아의 파켓 아란즈만, 헝가리의 오메가, 바그타조 할로트키믹 등 문서 참조.
서구권의 록 음악가들도 소련 및 동구권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비틀즈가 소련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끌었다. 체코에서도 비틀즈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기 때문에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시민들이 투쟁 가요로 부른 곡은 행진곡이나 민요가 아닌 Hey Jude의 체코어 번안판이었다. 헤비 메탈 음악들이 1980년대 소련에서 유행하여 스웨덴의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이 1989년 레닌그라드에서 헤비 메탈 뮤지션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련 라이브 공연을 하기도 했다.[12]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락 밴드가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고 북한에서 공식적인 락밴드는 결성된 적이 없고 인기도 없지만(...)[13] 남한 락밴드 일부가 북한에서 공연한 적은 있다.
5. 여담
문화어가 아니라 평안도 사투리다. 북한 사투리 중에서 평안도 사투리가 가장 유명하기 때문이며 함경도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북한이탈주민이 적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짤방이라 특히 더 그렇다. 문화어는 내래를 안쓰고 '내가'라고 쓰며 보여주갔어가 아니라 '보여주겠어' 정도로 쓸 수 있다. 실제 문화어는 사실상 원래 평양 사투리라기보다는 서울말의 변형이라고 평가된다. 미국식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14] 북한에서는 '록크' 정도로 쓸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해당 폰트는 한글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번들로 딸려오는 HY목각파임으로 추정된다.인민의 테크노를 표방하는 밴드가 있었지만 정작 이쪽은 실제 북한 인민이 아니었다. 해당 문서 참조.
롤랜드 에머리히가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이웃이 내 집을 보게 된다면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지도록" 요구해서 집 스타일이 끝내주게 골때리게 되었는데 거기에 이 포스터가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도 나온다. 영화, 웹툰 둘 다 포함.
한편 소련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оба-на"에서 소련 국가를 락 버전으로 부른 사례가 실제로 있다.[15]
[정체자]
嚴格訓練 做好反侵略戰爭的準備
[2]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1989년 기준 20% 이상이 중앙아시아, 캅카스, 이델-우랄과 북아시아의 동아시아계였다.
[3]
Worth1000이 2010년에 사라지면서
원본 링크는 접속할 수 없게 되었다.
[4]
이 쪽에서는 1981년 결성되어 80년대 내내 인기를 몰았던 밴드 "크루크(Круг)"가 유명하다. 1982년 이후 지속된 라이브로 인기를 몰자 당시 문화부에서 기강을 잡는답시고 압박을 몇 번 주었더니 이 밴드의 노래에 빠져 있던 당시 소련 서기장
유리 안드로포프의 부인과 아들이 직접 나서 탄압을 막아 주었다던 후덜덜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5]
이 쪽에서는 소련의 밴드 '포룸(리더 빅토르 살티코프)'가 유명하다.
[6]
이 쪽에서는 에두아르트 아르테메프가 유명한데 이 사람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영화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참고로
크라프트베르크는
동독이 아니라
서독 쪽이다.
[7]
동쪽(Ost)+락(Rock)
[8]
이 쪽은 아예 비틀즈의 곡(Do you want know a secret?)에서 밴드 이름을 가지고 왔다. 여담으로 주파르크도
해당 곡을 리메이크했다
[9]
이 밴드의 주체인 예고르 레토프는 소련 후기의 경직된 체제를 비판하긴 했지만 본인은 공산주의자로 순수한 의미의 혁명 초 소련을 그리워했다. 그의 후기 음악에 공산주의적 표현이 많은 이유다.
[10]
엄밀히 말해 비소츠키와 바실라초프는 락이라기보다는 어쿠스틱 기타 반주가 가미된 포크나 러시아 특유의 바르드 음악 쪽에 가깝지만 이들이 러시아 락에 미친 영향은 절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바실라초프의 경우 레닌그라드 락 페스티벌(레닌그라드 락 클럽 주최)에 참여해 공연한 전력이 있고
예고르 레토프는 러시아 락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하나로 바실라초프를 꼽았다. 실제로 많은 러시아 락의 가사를 분석해 보면 이러한 바르드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다.
[11]
페레스트로이카 전 러시아의 밴드(팝, 락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는 정부의 인정을 못 받고 그 대가로 TV 출연 등 공개 활동에 제약을 받는 언더그라운드 인디 밴드와 공개 활동이 가능하고 직업 뮤지션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제도권 밴드로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언더그라운드 밴드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스베들로프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에 활동 가능한 락 클럽이 있었는데 이 셋은 러시아 락의 3대 성지로 손꼽힌다. 이 중에서는 키노, 아크바리움 등 거물 밴드들이 활동하고 서방의 최동단에 위치한
핀란드의 방송을 통해 다양한 서구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레닌그라드를 한 수 더 쳐주는 편이다. 인디 밴드의 음악가들은 음악가라는 직업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직자가 처벌 대상였던 소련에서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으며 앨범 판매 등에 있어서도 수익을 거의 얻지 못했다. 예를 들어 소련 시절 키노는 자신들이 작업하다 포기한 앨범이 소련의 유일 국영 음반사 '멜로디야'에서 자신들의 동의 없이 저작권료 한 푼 지불하지 않고 마음대로 찍어 거의 20만 부를 파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고 데데테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발매한 앨범이 아닌 최초의 공식 앨범이) 50루블이라는 당시 소련 한 달 평균 월급의 반도 안 되는 금액에 자신들의 앨범에 대한 권리를 빼앗겼다. 이런 문제는 1987년경을 전후로 여려 규제가 풀리면서 그나마 나아졌다. 앞서 언급된 제도권 락밴드는 'ВИА(보컬-기악 앙상블)'가 공식 명칭이었으며 이 쪽에서는 '제믈랴네(제믈랴니예)'가 유명하다.
[12]
최초로 소련에서 공연을 한 서구권 가수는
클리프 리처드로, 무려 브레즈네프가 살아있던 시절인 1976년 8월 소련을 방문하였다.
[13]
김정철이 경음악부에서 기타를 맡으며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한다는 말은 돌지만 공식적인 밴드는 아니고 그냥 사회인 밴드 느낌이다.
[14]
사실 남한에서도 영어의 한글 표기는
영국식 영어 발음을 따르는 게 원칙이다. 영국식 영어에서는 종성 r을 발음하지 않기 때문에 한글로도 "어"라고 쓴다. 언급된 단어 rock은 남한식 영어 표기법으로도 "록"이라고 쓰는 게 맞다.
[15]
이름부터
소련 찬가로부터의 작별이다. 1944년 버전과 1977년 버전을 합쳤으며 예능 자체는 소련 붕괴로부터 4년만에 종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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