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3:28:19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공안부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
Itamar Ben-Gvir | אִיתָמָר בֶּן גְּבִיר;
<colbgcolor=#ececec><colcolor=#29499d> 출생 1976년 5월 6일
이스라엘 메바세렛
재임기간 제22대 공안부 장관
2022년 12월 30일 ~
배우자 아얄라 님로디 (결혼: 2004)
자녀 슬하 5명
종교 유대교
소속 정당 오츠마 예후디
경력 종교 시온주의당 당대표 (2021~2022)
오츠마 예후드 당대표 (2022~)

파일:220103-Itamar-Ben-Gvir-al-0529-cc7495.webp

1. 개요

이스라엘의 변호사이자 극우파 정치인으로, 2022년부터 이스라엘 국가안보부 장관을 역임하고 있다. 크네세트 소속인 국회의원이자, 극우 정당 오츠마 예후디의 대표이기도 하다.

2. 생애

1976년 5월 6일,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메바세렛 시온(Mevaseret Zion)에서 태어났다. 부모 둘 다 이라크계 유대인( 미즈라힘)으로 아버지는 석유회사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참고로 어머니가 쿠르드족이었다. 집안 자체는 세속적이었고 평범했지만, 벤그비르는 1987년 시작된 1차 인티파다를 계기로 극우파가 되었다. 처음에는 극우 정당이었던 몰레뎃(Moledet)[1]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카흐[2]에 가입해 청년당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카흐가 얼마나 극우적이었으면 이스라엘 정부에서도 테러단체로 지정하고 강제로 해산시킬 정도였다. 원래 만 18세가 되는 1994년에 군에 입대해야 했지만 벤그비르는 너무 정치적으로 극단적이라 군대마저도 면제를 받았을 정도였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는 시위에도 여러 번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95년 10월, 이츠하크 라빈 당시 총리의 전용차인 캐딜락의 후드 장식을 훔친 뒤 그걸 들고 방송사와 인터뷰를 해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켰다.[3]

파일:bengvir.jpg
1995년 10월, 라빈 총리의 캐딜락 전용차 후드장식을 들고 언론과 인터뷰중인 벤그비르

3. 법조인 경력

10대 시절부터 극우파 활동으로 인해 여러번 기소됐던 벤그비르는 법정에서 자기 자신을 여러번 직접 변호하기도 했고, 이런 경험 때문인지 법조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텔아비브에 있는 오노 아카데믹 컬리지(Ono Academic College) 법학과에 진학해 법학을 공부했는데, 이스라엘 변호사 협회는 벤그비르가 변호사 시험을 치루는 걸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법적 다툼 끝에 결과적으로 벤그비르는 변호사 시험을 치룰 수 있게 됐지만 먼저 불법집회, 공무원 방해 등 세 가지 혐의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아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벤그비르는 3가지 혐의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변호사 시험에 응시했고, 합격해서 결국 법조인이 되었다.

그는 변호사로서 테러와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된 극우파 유대인 활동가들을 변호해왔다. 벤그비르는 자신이 그들을 도운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신념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4. 정치인 경력

벤그비르는 이미 18살이던 1994년에 극우파 정치인이던 마이클 벤 아리(Michael Ben-Ari)의 보좌관을 역임한 적이 있다.

2019년 2월 25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에 충성하지 않는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을 모두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래 2019년 9월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에 출마할 예정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되고 2021년 3월에 치러진 제24대 이스라엘 크네세트 선거에 출마해 마침내 당선되며 처음으로 크네세트에 입성했다.

파일:Itamar Ben Gvir Tel Aviv video foorage social media parking lot screengrab 22-12-2021.jpg
파일:pic00023.jpg

2021년 12월에는 텔아비브 컨퍼런스 센터 지하 주차장에서 아랍계인 주차 요원에게 권총을 겨눈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경비원이 처음에 벤그비르에게 주차 금지 구역에 차를 주차했으니 옮겨달라고 부탁했는데 벤그비르가 권총을 꺼내 휘둘렀다. 벤그비르와 경비원 모두 자신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경비원은 비무장 상태였다. 다만 벤그비르가 실제로 살해위협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며, 이듬해인 22년 1월부터 자신의 경호를 대폭 강화하기도 했다.

2022년 11월 있었던 제25대 이스라엘 크네세트 선거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와 손을 잡고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네타냐후는 1년만에 다시 총리로 복귀했고 벤그비르, 베잘렐 스모트리치 등 극우파 정치인들에 내각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파일:Image-from-iOS-4-e1690442245852.jpg
2023년 1월 3일, 예루살렘에 있는 무슬림 성지인 알아크사 모스크를 방문해 아랍권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 EU는 우려를 표시했고 중동의 아랍 국가들은 크게 분노했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으로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했고 1달 후인 11월, 벤그비르는 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고 발언했다.

2024년 1월에는 이번 전쟁이 가자지구 주민들을 이주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발언했다. 또한 가자지구에서 절대 철수할 수 없으며, 가자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도 배제할 수 없고 이는 중요한 일이라고도 덧붙였다.

2024년 1월 26일, 국제사법재판소를 반유대주의 혐의로 고발했다.

5. 여담



[1] 1988년 창당되었으며 아랍인들을 이스라엘에서 모두 추방하자고 주장했다. 2013년 해체 [2] 1971년에 창당된 극우정당으로 몰레뎃보다도 더 극우적이었다. 1994년 해체되었는데 오츠마 예후디는 이 정당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3] 라빈 총리는 그 후 몇 주 뒤인 11월 4일, 극우파 유대인인 이갈 아미르(1969~)에게 암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