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 IKAR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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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D3980> 업종 | 버스 제조업 |
설립일 | 1895년 |
설립자 | 임레 위리 |
회장 | 가보 실레 |
기업 형태 | 비공개 회사 |
소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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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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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95년에 설립된 헝가리의 버스 제조업체. 1895년 설립된 업체는 2003년 청산 및 폐업하였고, 이후에는 다른 기업들이 브랜드명을 사용하며 명맥을 잇고 있다.
2. 역사
1895년 위리 임레의 작업실(Uhry Imre Kovács- és Kocsigyártó Üzeme)에서 시작한 기업으로 그 역사가 대단히 오래된 기업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한 이후로도 헝가리의 주요한 제조기업으로서 잘 나가게 된다. 192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상용차량을 제작하기 시작한다.그러나 세계 대공황은 헝가리를 빗겨가지 못했고, 직격탄을 맞은 회사는 한 차례 파산했다. 그러나 창업자의 자손이 다시 회사를 창업해서 1948년까지 이어지게 된다.
1948년에 헝가리가 공산화되면서 이 회사는 강제로 국유화되었고, 국영 기업으로서의 맹위를 떨쳤다. 국유화가 되자마자 Ikarus Gép- és Fémáru Rt, Repülőgépgyár Rt 두 회사와 합병되었고, 이때부터 Ikarus가 사명이 되었다. 이후 전후 사회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호황을 맞이했고, 다양한 차량을 개발하고 생산하였으며 주변 국가들로 수출로를 넓혔다. 1963년에는 Általános Mechanikai Gépgyár와 합병하여 Székesfehérvár( 세케슈페헤르바르)에 공장을 마련했고, 1960년대 중반 연구개발을 통해 생산을 시작한 게 전설의 200 시리즈였고, 거의 모든 공산권 국가로 수출되면서 레전드가 된다. 1967년에 250 모델부터 1971년부터 260/280 모델을 생산하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기록을 남긴 자동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차량으로 남아있다. 200 시리즈는 서유럽 지역에서도 많은 호평을 받았고, 급기야 북미에 수출된 변형 모델 286도 생산했다. 이때의 연구개발은 서유럽 회사 못지 않게 활발했고, 코치형 모델 300, 200의 후속 차량 400형도 개발하였다.
그러나 1989년에 벌어진 동유럽 혁명 이후 수출량과 수주량이 모두 급감했고 재무적 부담이 급증했다. 신규차량 개발은 여전히 활발했고 저상버스도 생산했으나 반응은 시큰둥했고 몇개 남아있는 발주와 꾸준한 영국의 수주로 간신히 유지되다가 1999년 이리스버스(Irisbus)에 인수되었다. 하지만 이리스버스는 이카루스에 별 관심이 없었고, 2003년 회사가 부도 및 청산 처리되었다.
자회사로 1989년 세워진 Ikarus EAG라는 회사가 있었다. Ikarus Egyedi Autóbuszgyár라는 뜻으로 연구개발을 통해 만든 차량들 중에서 본사에서 대량생산하기는 여의치 않은 특별한 모델들을 만들던 회사였다. 독일과 스웨덴의 까다로운 조건도 전부 만족했고, 차량 품질 또한 만족스러웠기에 북유럽 지역에 성공적으로 납품되었다. 나중에는 서유럽/북유럽 지역을 공략하기 위한 E시리즈 시내버스형과 코치형 모델을 만드는 회사로 변모했다. 본사와 달리 재무상태가 안정적이었지만 결국 2007년 모회사 이리스버스에 의해 청산되었다.
이후 최후의 대표이사였던 가보 실레(Gábor Széles)가 주도하여 이리스버스와의 협의 아래 이카루스 브랜드를 딴 차량을 다른 제조사가 만드는데 이게 V127/V187 모델이다. 하지만 실적은 영 부진해서 한 업체는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말았다. 2017년에 Gábor Széles는 Ikarus Global Zrt.라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아직도 생산하는 차량이 없다.
3. 공산권 버스의 대표주자
1980년에 촬영된 방송의 캡처. 방송 자체는 1984년 ~ 1985년이라고 한다. 사진 속의 모델은 260.
1960년대 들어 소련과 그 위성국들을 중심으로 이 회사의 버스를 대량으로 굴리기 시작했다. 특히 소련과 동독이 가장 많이 사 갔으며, 멀리 중국이나 북한, 베트남 등지에까지도 진출했다. 덕분에 세계 4대 버스 제조업체에 들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이들 국가에서는 이카루스 버스가 무한 증식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냉전 시절에 굴리던 차들을 현재도 굴리고 있는가 하면, 이카루스의 최신 모델도 굴린다.
4. 생산 차종
4.1. 단종 차량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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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2.03
1985년 헝가리 공항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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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1968년부터 1996년까지 페이스리프트와 수 차례의 개량을 통해 꾸준히 생산되었던 최장수 모델로, 소련에서 260모델과 함께 불티나게 팔렸던 모델이다. 260과의 차이라면 이 차량은 시외형 차량이라는 것이다.
60년대 말에 등장한 버스치고는 대단히 현대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데, 당대 소련 버스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성능과 우수한 편의성을 자랑했던터라 모스크바 올림픽 무렵에는 외국인 관광객과 귀빈 의전용으로 자주 투입되는등 많은 사랑을 받은 버스이다. 연식이 있다보니 요즘은 보기 힘들어졌지만 우크라이나 등지에선 최근까지도 시외버스로 운행되었었다. 참고로 80년대 북한에서도 관광객 수송용으로 소수를 도입했었는데 현재까지도 지방 시외버스로 사용하는듯 하다.
구 소련의 밴드 키노의 리더 빅토르 초이는 1990년 라트비아에서 자신의 차량(모스코비치)을 몰고 가다 이카루스 250형 빨간색 모델과 충돌해 즉사하였고, 이후 동구권 인터넷 문화에서 이 버스는 대한민국의 마티즈 드립과 비슷한 밈이 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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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80
1969년에 첫 생산되어 동구권에서 죽도록 우려먹었던 시리즈였다. 260번대가 일반, 280번대가 굴절버스 모델이다.
4.2. 생산 차량
파일:external/m.cdn.blog.hu/10.jpg- V-127
- 412.82 GT
- 187
- C80
- C56
[1]
그도 그럴 것이 소련의 사법부는
목격자의 증언 대다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