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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04:22

이진호(1966)

파일:살인용의자 이진호.png [1]
이름 이진호
생년월일 1966년([age(1966-12-31)]~[age(1966-01-01)]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신체 170cm[2]
학력 동국대학교 전산원
가족 아내 정 모씨, 슬하 2녀(2011년 사망)
직업 전직 컴퓨터 엔지니어(현재 무직)[3]
범죄유형 살인

1. 개요2. 상세3. 범행4. 사건 이후

1. 개요

일산 여중생 자매 백골 시신 사건의 가해자. 범행 당시 45세였다.

2. 상세

아내 정 씨(당시 36세)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학습지 판매원으로 일했는데 팀장이 되기 위해 빚을 내 가면서 무리하게 학습지 판매를 강행[4]하다가 2010년 9월 이런 방식을 회사에 들켜 징계[5]를 받게 되었다. 결국 1억 3,000만 원이나 되는 빚을 견디다 못 한 아내[6]는 그[7]에게 동반자살을 권유했고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가족이 얹혀 살던 그의 누나가 살던 집도 월세가 밀려 어려운 처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3. 범행

2011년 2월 14일에 가족여행을 명목으로 딸들을 데리고 나와 포천시 민박집에서 숙박한 그와 아내 정 씨는 자녀가 잠들자 번개탄을 피워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4. 사건 이후

다섯 번에 걸친 자살 시도가 전부 무위에 그치자 그와 아내는 그때서야 생존을 선택했다. 그와 아내는 지인에게 약간의 돈을 빌려 동상과 머리의 상처를 치료한 후 검거 전까지 2년 동안 진천[11], 강릉, 밀양, 부산 등에서 일용직 근로 생활을 하며 숨어지내는 삶을 살다가 부산 기장에서 검거되었다. 어떻게 검거되었냐면 당시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에 거주하던 A(당시 52세)씨가 업무차 인근 은행을 찾았다가 은행 벽에 붙어 있던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그가 있음을 보고[12] 자신의 집 근처 농장에서 그가 일하던 걸 목격한 기억을 떠올려 경찰에 신고했다.[13]

징역 10년을 선고[14]받아 복역한 후 2023년 4월 9일에 만기출소하였다.

[1] 2013년 상반기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등록된 이진호의 사진이다. [2] 2013년 상반기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신장 170cm, 보통 체격으로 기재되었다.
[3] 후술할 내용대로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 사업을 하다가 사업에 실패하였다. [4] 빌린 돈으로 교재를 사서 인터넷에 염가로 파는 방식 [5] 팀장 직위 박탈로 평사원 직위로 강등되었다. [6] 큰딸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교복을 살 돈마저 없었다. [7] 당시 집 전세금을 털어 아는 사람들을 모아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 관련 사업을 했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스티로폼 공장 기능공으로 일하던 상황이었다. [8] 어쩌면 여기에서 범행을 저지를 것이 암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9] 당시 그의 용산전자상가 컴퓨터 사업과 아내 정 씨의 학습지 판매원 일로 서로 돈을 벌어 잘 살아 보려고 했던 것을 말한다. [10] 그의 컴퓨터 사업 실패와 아내 정 씨의 염가판매 행위에 의한 징계로 생계가 막막해짐을 말한다. [11] 진천에서는 오이 농장에서 일했다. [12] 2013년 상반기 고유번호 1번. 다만, 공범인 아내 정씨는 등록되지 않았다. [13] 거동수상자로 신고되었다는 말도 있다. [14] 항소하였으나 항소심도 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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