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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05:41:27

이리나 데리우기나

<colbgcolor=#1b3438><colcolor=#ffffff> 이리나 데리우기나
Ірина Дерюгіна | Irina Deriugina
파일:Ірина Іванівна Дерюгіна.jpg
본명 이리나 이바니우나 데류히나
Ірина Іванівна Дерюгіна
Irina Ivanivna Deriugina
출생 1958년 1월 11일([age(1958-01-11)]세)
소련 우크라이나 SSR 키예프
국적
[[우크라이나|]][[틀:국기|]][[틀:국기|]]
종목 리듬체조
은퇴 1982년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스타일3.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전성기4. 몰락
4.1. 2000 유럽선수권 편파판정 논란4.2. 비하인드 스토리4.3. 결과4.4. 2010년대
5. 수상 기록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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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 우크라이나의 前 리듬체조 선수이다. 현재는 어머니인 알비나 데리우기나와 함께 우크라이나 리듬체조 국가대표 헤드코치를 맡고 있다.

2. 스타일

드라마틱한 음악과 그에 혼연일체되는 안무, 그리고 극적인 표정연기 등 소위 '우크라이나식 표현법' 의 창시자이다. 그때문인지 상당히 까다로운 안목을 가지고 있는데 그 까다로움이 난도나 실시를 볼 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선수의 체형을 볼 때만 해당된다. 현재 러시아 헤드코치인 이리나 비녜르가 유연성 덕후라면 데리우기나는 체형 덕후라고 볼 수 있겠다.[1]

이리나가 체형 덕후인 점을 증명하는 증거로 데리우기나 스쿨의 학생들을 들 수 있다. 어머니인 알비나 데리우기나와 함께 운영하는 '데리우기나 스쿨' 은 어느 정도 체형이 안 되면 아예 입학이 불가능하다. 설사 입학하더라도 아름다운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이 클럽의 에이스 선수들은 정말 인간이 아닌 것 같이 마른 몸매에 키는 죄다 180cm에 육박했다.[2]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연성의 비중이 높아지는 리듬체조계의 추세에 따라 선수들의 평균 신장도 많이 작아졌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175cm이다. 한국 천송이 선수가 데리우기나의 간택을 받아 우크라이나에서 전지훈련을 받았었다. 천송이 또한 174cm의 키에 상당히 마른 체형으로 역시 체형 덕후인 데리우기나의 안목을 볼 수 있다.

가장 완벽한 발레리나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들 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볼쇼이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Hyperextended Knee와 발이다. 이게 바로 데리우기나가 원하는 체형인데 이건 연습으로는 만들기 힘들고 타고 나야 한다.[3] 한마디로 이미 주니어 때부터 다리와 발 모양이 평균 미달이면 탈락이다.

사실 볼쇼이나 마린스키 같은 러시아의 유명 발레 아카데미 에서도 10살 남짓한 신입생들을 받을때 체형과 유연성 검사를 하고 뽑는다. 데리우기나는 이걸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셈인데 문제는 발레는 유망주가 체조에 비해 넘사벽으로 많기 때문에 상관 없지만 리듬체조의 인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이대로라면 신입생 수급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참고로 리듬체조 선수들의 훈련 일정 중 하나인 발레 수업(bar class)을 엄청나게 빡세게 시킨다. 얼마나 시키는지 데리우기나 출신 선수들은 하나같이 발레 댄서들 같이 무릎이 심하게 뒤로 휜 다리를 하고 있다.[4] 리잣디노바와 대부분 러시아 선수들의 팡셰할 때 축다리를 비교해 보면 극명한 대비를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연습하는 동영상을 보면 다들 턴아웃도 180도의 완벽한 각도이다. 사실 데리우기나 스쿨 전성기 시절 출신 선수들을 보면 유연성이나 근력이나 발레 댄서들에 근접하다. 현재 트랜드에 맞는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거지 사실 데리우기나 스쿨 학생들 수준 유연성 수준이 발레 댄서들에게 요구되는 레벨에 가깝다.[5] 오죽하면 키가 너무 커서[6] 발레 스쿨을 못 들어간 발레 유망주들이 데리우기나 스쿨로 간다는 말도 있었을 정도였다.

2.1. 우크라이나 리듬체조

전체적으로 볼 때 1990년대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데리우기나는 아름다운 를르베[7]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이런 점이 위에서 말한 키 크코 마른 체형과 맞물려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피봇을 돌 때 축이 미친 듯이 흔들린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유연성이 떨어지는 편이라[8] 다만 고관절 유연성만큼은 좋아서 점프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한다. 하지만 또 등 유연성이 부족해서 백벤드를 잘 구사하지 못한다.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러시아 벨라루스 선수들은 매 시즌 몇몇 안무를 재탕하고 그 안무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는 경우가 많은데(한마디로 음악이 마음에 안들면 시즌중에 바꿔도 무리가 없는 루틴이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안무 재탕이 드물다. 루틴은 음악을 먼저 고른 뒤에 만들어지고 음악과 안무의 혼연일체를 강조하는 편이라 음악에 딱딱 맞는 리스크를 선호하면서 관객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경우가 많다. 특이하게도 안무 재탕은 안하지만 잘 빠진 루틴이 나오면 다른 후배 선수가 그대로 물려받는 일이 많다. 여러모로 루틴을 그냥 경기용으로 보기보다는 일종의 작품 취급을 하며 안무 스타일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리고 갈라 연습도 단체팀과 함께 합동으로 자주 하는지라 상당히 호흡이 잘 맞는 편이다.

데리우기나 출신들이 안무를 대중 친화적으로 잘 짜고 음악도 잘 고르지만 직접 보면 사실 그렇게 빨리 움직인다는 느낌은 받기 힘든데 점프할 때는 제외 이유는 첫번째로 위에 말했듯이 높은 를르베를 유지하면서 난도를 하느라 그렇고 두번째로는 모든 동작을 딱딱 끊어서 하는걸 좋아한다. 이게 어떤 말이냐면, 러시아나 벨라루스 선수들을 보면 피봇을 마무리 하는 동작 이후에 상체 움직임이나 안무 등등을 추가해서 동작과 동작의 사이가 비지 않게 하는데 이걸 안 좋아하는 팬들도 있다. 피봇의 실시가 좋지 않았을 경우(회전이 부족한 경우나 축다리가 흔들린 경우가 있다.) 추가된 안무가 안좋은 실시를 가리기 위한 치팅을 하는걸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9]

데리우기나를 위한 변명을 해 보자면 사실 데리우기나 스쿨은 20년 전만 해도 독창적인 예술성과 우월한 신체 이외에도 굉장히 깨끗한 실시로 유명했다. 애초에 실시가 실시가 망이면 올림픽 우승자를 여러명 배출했을수가 없다. 카테리나 세레브리안스카 올레나 비트리첸코는 당시 기준으로 높은 난도와 정확한 실시로 포디엄에 자주 올랐다. 특히 세레브리안스카는 정말 정석적인 올드스쿨 데리우기나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연속 립도 사실 베소노바 이전에 이 선수의 전매 특허였다. 한마디로 1996년 이후 규정이 바뀌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는 당시에 요구되던 난도들은 전부 정석적으로 수행 했다. 수행이 시망이 되기 시작한건 카바예바 등장 이후 안 하던 고난도 신체난도를 점수 따기 위해 반강제로 루틴에 넣기 시작 하면서부터다.

베소노바는 구채점 시기에 주니어였고 당연히 야나 바티시나 알리나 카바예바와 같은 유연성 훈련은 받은 적이 없다.[10] 그런데 팡셰 피봇, 아치턴 등등의 유연성이 요구되는 기술들을 다른 선수들이 너나 할것 없이 들고 나오니 어쩔 수 없이 루틴에 넣고 수행은 시망이 되는 것이다.

그나마 막시멘코 세대부터 시작해서 주니어때 유연성을 위한 훈련을 받은 선수들은 팡셰나 백스케일 피봇 등등 높은 신체난도가 요구되는 기술을의 실시가 좋아진 편이다. 심지어 링피봇을 하는 선수도 보인다! 선수들이 실시가 좋을때는 좋지만 컨시스턴시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건 사실 러시아도 탑 선수 몇명을 빼면 해당되는 이야기이긴 하다. 데리우기나 스쿨 전성기에는 전부 리저브 수준에서 끝났을 선수들인데 우크라이나의 선수 풀이 러시아에 비교가 안될 만큼 작기 때문에 이런 선수들도 대회를 나갈 수 있다.

이런 스타일의 리듬체조를 거의 2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도 고집하고 있어서 안나 베소노바 이후로는 이렇다 할 스타 선수가 잘 안 나온다. 그나마 2013년 이후로 신체난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면서 잠깐이나마 빛을 봤었다. 그리고 찾아온 크림 반도의 역습

3.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전성기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 초반에는 우크라이나가 리듬체조계의 1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11] 당시 데리우기나 스쿨과 우크라이나 체조협회의 로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덕분에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우크라이나 출신의 선수인 올렉산드라 티모셴코 옥사나 스칼디나를 발 빠르게 독립국가 연합 리듬체조 대표로 등록시키는 등 러시아를 관광 보낸 적이 있다.[12]

이렇게 러시아에게 굴욕을 주던 데리우기나였지만 이리나 비녜르가 1990년대 중반에 러시아 리듬체조 헤드코치로 들어오면서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리나 비녜르의 무지막지한 영향력 때문도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데리우기나 본인의 삽질 때문이었다. 다만 단순히 개인의 삽질이라 하기엔 애매하고 우크라이나 리듬체조 내부의 권력문제라고 하는게 적절할듯 하다 올레나 비트리첸코의 어머니 니나 비트리첸코가 딸의 우수한 경기력을 토대로 슬슬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에 개입하려 하였고 점차 데리우기나의 입지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데리우기나는 자기 권력을 사수하기 위해 심판 단합으로 비트리첸코의 순위를 고의로 떨어뜨리는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4. 몰락

4.1. 2000 유럽선수권 편파판정 논란

데리우기나는 원래 본인의 미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선수는 설령 자신이 직접 키운 제자거나 자국 선수라 해도 과감히 버렸다. 이 때문에 데리우기나가 심판으로 활동할 당시 피해를 입은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올레나 비트리첸코였다. 이 선수가 키도 작은 편[13]에 체형도 마른 편이 아니라서 데리우기나는 비트리첸코를 좋아하지 않았다. 때문에 데리우기나는 의도적으로 비트리첸코의 점수를 낮게 주기 시작했다.(다만 단순히 싫어해서 낮게 줬다기보단 비트리첸코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점수를 낮게 주었다는 것이 적절할듯 하다.)두 야심가 사이에서 재능있는 애꿎은 선수만 피해본 셈이다.

이런 삽질이 대대적으로 터진 게 2000 유럽선수권이었다. 다른 심판들과 담합해 비트리첸코의 점수를 노골적으로 낮게 준 것이다. 이 결과로 비트리첸코는 별 실수도 없었는데 개인종합 16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4.2. 비하인드 스토리

사실 이 사태가 발생한 데에는 카테리나 세레브리안스카와 비트리첸코의 어머니[14]에 관련한 신경전이 크게 한 몫 했다.

비트리첸코의 어머니인 니나 비트리첸코가 유럽선수권 심판에 배정되고 카테리나 세레브리안스카가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자 세레브리안스카의 어머니가 '내 딸의 라이벌을 딸로 둔 사람이 공정한 심판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럴 바에는 공정성을 위해 나도 심판을 보게 해달라' 라며 항의를 했으나 이 항의는 기각되었다.

결국 카테리나 세레브리안스카는 어머니의 건강 악화를 핑계로 세계선수권을 포함한 모든 국제대회에 불참하고 그 길로 은퇴해버렸다. 라이벌이 없어진 올레나 비트리첸코는 그 후 승승장구하고 니나 비트리첸코는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리듬체조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데리우기나가 의도적으로 올레나의 점수를 누르면서 니나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2000년 유럽선수권에서 대대적으로 터진 것이다.

비트리첸코에게 16위를 준 것은 앞으로도 올림픽 출전권과 세계선수권, 유럽선수권 모두 안정권으로 발탁되는 국내대회 2위 안에 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3위권으로 밀리는데, 보통 메이저 대회 개인전은 쿼터제 때문에 국가당 2명씩 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4.3. 결과

결국 경기 결과에 관중들이 분노하여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데리우기나는 국제체조연맹에 제소되어 중징계를 받았다. 국제체조연맹에서는 심판인 벨라루스의 나탈리아 스테파노바, 오스트리아의 가브리엘르 스터머, 라트비아의 갈리나 마리나, 독일의 우르술라 솔렌캄프, 러시아의 나탈리아 라치신카야 그리고 데리우기나에게 1년간 심판 정지 및 심판 26명 전원에게 다음 올림픽 심판 정지 징계를 내렸다. 당시 기술위원장인 마담 아브루치니는 데리우기나에게 무기한 영구 징계를 내렸으며, 2008 베이징 올림픽 직전에도 국제체조연맹 회장에게 서면상으로 데리우기나의 복귀를 막아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리듬체조 내에서의 우크라이나의 권력은 상당히 축소되었다. 하지만 안나 베소노바를 올림픽 2연속 동메달리스트로 만드는 등의 영향력은 아직 남아있다.

어머니의 과욕으로 인해 비트리첸코는 심판들의 눈 밖에 나버려 결국 은퇴했다.[15] 한편 니나는 딸이 은퇴한 후에도 코치직과 심판직을 계속 맡았다.[16]

역설적이게도 지도자들끼리는 그토록 척을 진 사이였지만 비트리첸코의 제자들도 데리우기나의 제자들처럼 마른 몸매에 뛰어난 미모를 가진 선수들을 선호하는 스승의 취향을 보여주는 외모를 가졌다. 그 때문인지 많은 선수들이 은퇴한 후에 대만이나 일본에서 CF 모델로 활동했다.[17]

4.4. 2010년대

2013 세계선수권 이후로 4년 만에 자국에서 키예프 그랑프리 - 데리우기나 컵을 개최하였다. 안나 리잣디노바, 빅토리아 마주르, 올레나 디아첸코를 포함하여 5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총출동하였다. 당연히 팬들은 키예프 개최지 버프로 우크라이나 선수가 포디움 한자리 정도는 차지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안나 리잣디노바는 첫 루틴인 후프를 진행한 후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대회를 기권해버렸고, 나머지 선수들은 수 많은 수구 드롭으로 도저히 홈 어드밴티지를 바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결국 데리우기나컵의 개인종합 포디움은 1위 폴리나 코니나( 러시아), 2위 율리아 브라비코바( 러시아), 3위 빅토리아 바인베르크 필라노브스키( 이스라엘)가 차지했다. 우크라이나 대회에서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가장 큰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 2인자 선수에게 정복당한 이 상황은 현재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위기를 한 눈에 보여주었다. 안나 리잣디노바 이후의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수구 안정성이 굉장히 떨어지는 편이며, 이에 대한 개선이 진행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의 리체3국[18]의 지위가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난도 점수를 10점 이상으로 짜는게 가능해진 현 채점제로 인해 한동안 암흑기였던 불가리아가 깨끗한 실시와 창의적이고 안정적인 수구 구사로 포디엄에 서고 있고 인프라가 엄청나게 커진 이탈리아도 우크라이나를 위협 중이다. 2018년 시즌에는 블라다 니콜첸코가 종목별 결선에도 메달을 따고 세계선수권에도 4-5위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어서 겨우 한 풀 놓였다. 안나 리잣디노바에게 그러했듯이, 2017-2020 시즌에는 블라다 니콜첸코에게만 단독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길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니콜첸코도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은퇴한 이후로는 이렇다 할 유명 선수들이 없다.

5. 수상 기록

구 소련 출신으로는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2연패를 한 유일한 선수였고 1970년대 최고의 미녀 선수로 시대를 주름잡았었다.
세계선수권
금메달 1977 바젤 종합
금메달 1977 바젤 리본
금메달 1979 런던 종합
금메달 1979 런던 곤봉
은메달 1977 바젤
은메달 1977 바젤 후프
동메달 1979 런던
유럽선수권
금메달 1978 마드리드
은메달 1978 마드리드 종합
은메달 1978 마드리드 리본
은메달 1978 마드리드

6. 기타


[1] 유연성과 체형 모두 리듬체조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자질이다. 현 리듬체조 규정상 유연성 좋은 게 훨씬 유리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유연성과 체형 모두 갖춰야 된다는 것이다. 알리나 카바예바가 대단한 이유가 남다른 유연성으로 불리한 체형을 극복했다는 것이고 예브게니야 카나예바가 대단한 이유가 유연성과 완벽한 체형을 모두 갖춘 선수라는 것이다. 물론 비녜르도 체형을 상당히 보는 편이다. 다만 유연성을 최우선 순위로 놓고 본다. 결국 리듬체조를 잘 하는 애들 중에서 체형이 좋은 선수들만 살아남는다. [2] 카테리나 세레브리안스카도 178cm였다. [3] 연습벌레로 유명한 발레리나 강수진조차도 저 다리와 발등 고는 없다. 특히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은 발등 고를 가졌을 확률이 더 낮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발레 유망주들은 발을 억지로 늘리는 스트레처를 써서 발등 고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심지어는 발등뽕 같은 것도 나와 있다. [4] 위에서 언급한 Hyperextended Knee이다. [5] 발레 댄서들이 유연하긴 하지만 리듬체조 선수들처럼 백벤드 하고 이런 레벨의 유연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컨토셔닝에 가까운 유연성은 기피한다. [6] 발레리나는 군무가 곁들여지고 남성 발레리노가 들어주어야 하는 특성상 키가 너무 커도 실격이다. 170cm를 넘어가면 모던/컨템포러리면 몰라도 고전 발레의 주연은 맡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은근히 현대무용을 하라고 주변에서 한 소리 하기도 한다. 그나마 최근에는 발레리나들의 평균 신장이 증가하는 추세고 자하로바 같은 경우 장신(173cm 정도)이지만 파트너 안드레이 우바노프가 키가 195cm 가까이 육박하므로 커버가 가능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발레리노 평균 키가 180cm 초반대인데 예쁘게 나오려면 키가 20~25cm 가량 차이가 나줘야 하므로 163cm 정도를 선호한다. [7] 발레와 리듬체조에서 까치발로 서면서 다리를 지탱하는 자세를 를르베라고 한다. 사실 리듬체조 선수라면 모두 아름다운 를르베를 위해 신경을 쓰지만 데리우기나가 유독 많이 따지는 편이다. [8] 링이나 백스플릿 등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는 데 애로사항이 꽃핀다. [9] 마문의 2013년 루틴들이 이런 이유로 비판을 많이 받았다. [10] 사실 비트리첸코는 우크라이나 선수치고 등이 상당히 유연한 선수였다. 작은 키였지만 날렵한 몸을 이용한 다이나믹한 루틴으로 유명했는데 데리우기나는 그런 스타일이 클래식하지 않다고 싫어했다고 한다.한마디로 비녜르와는 달리 미래를 못 내다본 데리우기나의 패착이라고 할 수 있다. [11] 불가리아는 비앙카 파노바의 은퇴 이후 이렇다 할 선수가 안 나오면서 거의 세력을 잃어버렸다. [12] 이때 피해를 본 선수가 옥사나 코스티나이다. 소련 붕괴 전에도 데리우기나 세력에 밀려서 심판 판정이나 대회 참가 등에서 많은 피해를 봤다. 올림픽이 끝난 후 티모셴코와 스칼디나가 은퇴하자 1993 세계선수권에 참가해 최초 전관왕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 해에 남자친구의 음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13] 168cm였는데, 어디까지나 우크라이나 선수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거다. [14] 두 선수의 어머니들 모두 국제심판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15] 올레나는 후에 자서전 및 인터뷰에서 '너무 힘들었다. 세레브리안스카와 나는 친자매 같은 사이였는데 결국 데리우기나에 의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했고 남자친구가 생기면 엄마나 코치보다 먼저 알려주는 사이였다' 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한편 세레브리안스카 또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지 1년이 지난 후 세계선수권을 보이콧하는 이유를 밝힌 인터뷰에서 둘 사이는 물론 둘의 어머니까지 등을 돌리게 된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나에게 레나(올레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은 없었다. 우린 모든 걸 공유했다.(I had no closer friend than Lena. We shared everything)이라고 밝혀 올레나와 서먹하기 전까지 절친이었다는 것을 인증했다. [16]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수석 무용수인 크리스티나 셰브첸코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전에 4년 동안 오데사에 있는 니나의 리듬체조 학교에 다녔었다. 인터뷰를 보면 국가대표 후보 선수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인 학교라 그런지 트레이닝도 3살부터 시작하고 엄청나게 엄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한 시간 동안 스트레칭, 한 시간 발레 클래스를 한 후에야 수구 연습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국가대표 육성 학원이라 그런지 유치원생 대상의 프로그램 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빡센 점을 알 수 있다. 힘들어서 우는 학생들도 많았다고 한더. 그리고 이 발레리나를 보면 니나 비트리첸코 역시(본인 딸이 체형때매 불이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데리우기나와 같은 매우 놓은 신체 기준을 요구하는것을 알 수 있다. 밑에 올레나의 예를 보아도 우크라이나 리듬체조는 마르고 조각으로 빚은 것 같은 뼈대의 사람을 선호하는 게 기본이다. [17] 축구 선수 안정환의 '꽃을 든 남자' CF에 나온 동유럽 미녀 병풍들이 바로 우크라이나 선수들이다. 그 중 가장 인기있던 모델은 라리사 바쿠로바였다. 10년 간 데리우기나 스쿨에서 활동한 바쿠로바는 은퇴 후 '리샤' 라는 애칭으로 대만에서 에스티로더 모델로 활동했다. [18] 리듬체조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3개의 국가는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다. [19] 빅토리아 베소노바 역시 리듬체조 선수 출신이었고 데리우기나와 동시대에 활약한 선수로 단체전 세계선수권 2회 우승팀 멤버라 그다지 꿀릴 것도 없었다. 주니어 시절 내내 딸이 연습하는 데에 찾아왔다고 한다. 딸과 마찬가지로 선수 시절 빼어난 미모로 유명하기도 했다. [20] 사실 블로힌이 베소노프보다 조금 더 화려한데 이쪽은 무려 발롱도르 수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