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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선수 경력/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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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30452><colcolor=#fff> LG 트윈스 No.53
이대형
李大炯 | Lee Daehyeong
2003~2013

1. 개요2. 2003~2004 시즌3. 2005 시즌4. 2006 시즌5. 2007 시즌6. 2008 시즌7. 2009 시즌8. 2010 시즌9. 2011 시즌10. 2012 시즌11. 2013 시즌

1. 개요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선수 이대형의 LG 트윈스 커리어를 담은 문서.

2. 2003~200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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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부터 도루 능력이 뛰어나고 타격이 정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던 이대형은 계약금 1억원, 연봉 2천만원에 계약했다. # 다만 투수 시절 어깨 부상 때문에 그렇게까지 높은 순위로 계약되지는 않았다. 당시 팀 내 테이블 세터였던 유지현의 에이징 커브가 본격화되자 팀 내에서 차세대 테이블 세터로써 육성하였고, 이는 테이블 세터로 기용되던 이병규의 십자인대 파열과 일본리그 진출로 공백이 생기자 주전 자리를 바로 차지함으로써 팀 내 입지를 다졌다.

2003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데뷔 후 2년 동안 이병규, 김재현, 박용택, 마르티네스의 견고한 외야라인 사이에서 60경기에 출장하며 미래 외야 자원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고교 때 부터 존재했던 몸이 심히 앞으로 나오면서 때리는 습관은 이때부터 이대형의 약점으로 지적 되었다. 이대형에게 이런 습관이 생긴 이유는 몸을 앞쪽으로 내면서 빠른발과 좌타자의 이점을 이용해 1루에서 살아나가기 위함이었다. 대부분이 이대형의 이러한 문제점을 언급하며 교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2007년 당시 타격코치였던 김용달은 이 문제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데 주력,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이대형이 KIA로 이적하자 2007년 전성기 타격폼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폼을 유지하였다.

3. 200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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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이대형은 대주자 위주로 나와 타율 0.268, 34안타를 기록했지만 당시 도루왕인 박용택[1]과 단 도루 5개 차이인 37도루로 도루 3위를 달성했다.[2] 만약 출장 기회가 더 있었다면 규정타석의 절반도 채우지 않고 도루왕을 차지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4. 200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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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근과 주전 경쟁을 하던 시기이다. 87경기에 출장해서 타율 0.258을 기록했고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 쏠쏠한 활약을 했다. 또한 오태근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주전 도약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5. 200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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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2007 시즌 소개 영상
첫 풀시즌인 2007년, 개막전 1번타자는 오태근에 밀렸으나, 바로 다음 경기부터 톱타자로 선발 출장하며 주전 자리를 공고히 다진다. 김용달 코치의 지도 아래 .308을 침과 동시에 LG 구단 내 최고 기록인 53 도루로 유지현의 기록을 갱신하면서 2007년도 도루왕과 외야수 부분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쥐었다. 저때 친 3할 8리의 타율은 2007년 기준 팀내 최고 타율이었다. 참고로 2위가 최동수의 0.306였다. 그리고 이 시즌은 커리어 내내 세이버 메트릭스에서 항상 낙제점을 받던 이대형이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리그 평균 이상의 타격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wRC+ 102.4)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이대형[3]

6. 200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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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KBO 리그 도루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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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해태 타이거즈(現 KIA 타이거즈)의 이종범(64도루) 이후 11년 만에 한시즌 60도루를 기록했다.

임준혁과의 빈볼 시비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KIA 타이거즈/사건사고 참고. 그리고 이 일을 전후하여 이대형의 성적이 떨어진 계기가 되었다. 이 일 이후 멘탈에 문제가 간 것도 있었으나 부진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내야수들이 이대형을 잡기 위해 극단적으로 전진 시프트를 걸기 시작한 것.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지만 타격 능력이 좋아 이를 해결한 이종욱과는 달리, 이대형은 갖다 맞추는 스타일이어서 부진이 장기화되기 시작, 상당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막장스런 팀 타자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풀타임 주전으로 뛰었기 때문에[4]이 해 부진은 팀 성적과 겹친 일시적인 타격 부진으로 여기는 팬들이 많았고, 2009년에 다시 타격 성적을 어느 정도 회복하며 팬들의 기대를 걸게 만들었다.

어찌 되었건 이 해 성적은 클래식은 나름 보기 좋게 찍은 거 같지만 문제는 나머지. 출루율이 0.317에 장타율이 0.281이다. 아무리 투고타저라지만 타율이 0.264인데 타출갭이 5푼도 안 되고 장타율은 그 출루율보다 더 낮다. OPS는 0.6도 안 되며 장타는 다 합해서 10개가 되지 않는다. wRC+는 60대. 오로지 주력 원툴로 먹었는데 출루율도 낮으니 계륵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대형을 대체할 외야수라고는 정의윤 정도밖에 없었으니 내년도 주전 확정.
참고로 이 해 기록한 순장타율(IsoP)는 0.017로,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역대 꼴찌 기록이다.

7. 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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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KBO 리그 도루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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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최초 3년 연속 50도루 달성 뒤 세레머니[5]
4월 12일 두산과의 3차전에서 김동주의 평범한 플라이성 타구가 조명에 들어가면서 포구에 실패했고 신인 최동환이 데뷔 첫 패전을 떠안으면서 LG 공홈의 커뮤니티 '쌍둥이 마당'에서 맹비난을 받았다.

4월 21일 잠실에서 삼성 선발투수 안지만을 상대로 밀어서 좌월 홈런을 쳐냈다. 통산 2호 홈런.

2009년 6월에 다이빙캐치 실패로 인해 이대호의 인사이드 파크 모텔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말았다. 기록은 3루타 + 이대형의 실책. 정작 본인도 해당 시즌에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정재훈을 상대로 기록했다.

2009시즌, 50도루를 채우며 KBO 사상 최초로 3년 연속 50도루를 기록했다. 종합 64도루. 타고투저의 열풍이 불며 .280이라는 무난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대형이 유일하게 한 시즌 2홈런을 기록한 해다. 잠실에서 때려낸 X-존을 훌쩍 넘기는 홈런 하나와 또 잠실에서 친 인사이드 파크 호텔이라는 기묘한 기록. 또 부진했던 2008년보다 확연히 나아진 타격을 보이며 내년 모습을 다시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클래식 스탯은 좋아졌지만 여전히 3-3-3에 2루타가 겨우 10개밖에 되지 않는 절망적인 장타력을 선보인 해였다. 게다가 리그가 투고타저가 완화된 탓에 OPS가 올라갔음에도 sWAR은 오히려 전보다 줄어든 데다가 wRC+는 여전히 60대... 심지어 작년보다 모든 세이버 스탯이 하락했다.

8.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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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KBO 리그 도루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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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8일 롯데전에서 송승준을 상대로 1년만에 4호 홈런을 쳤다. 그것도 쓰리런! 잠실 X-존이 아닌, 오리지널 펜스를 훌쩍 넘기는 홈런이었다!!! 사실 X-존은 이미 철거한 지 오래였다.

2010년에는 초반에 삽좀 들다가 주전들이 부상이나 부진으로 2군에 간 시기인 5월 중순부터 폭발. 6월에는 롯데 타선이 싹쓸이하던 타격 부문에서 4위나 5위에 링크되면서 롯데 독재를 막은 영웅으로 평가되었고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나가 선발 중견수로 나왔는데, 앞서 서술한 4호 홈런 이후 고질적인 타격 문제가 뒤늦게 빛을 발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여 2010년 7~8월에는 43연타석 무안타라는 충격적인 기록을 작성했다.[6] 기존 기록은 태평양 염경엽의 51연타석 무안타. 덕분에 출루율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8월 28일에는 계속 1위를 달리던 도루 부문에서도 김주찬에게 넘겨줘야 했다.

그러나 9월 들어 타격은 새털만큼 좋아져 어쨌거나 타율 .261을 찍었고, 엄청난 도루 페이스로 김주찬을 맹추격하여 시즌 한 경기를 남기고 65도루를 찍었다. 시즌을 마친 김주찬과 도루 공동선두를 기록한 후 마지막 경기에서 폭우가 쏟아져 도루를 못한 김주찬과 달리 1도루를 추가해 해담선생에 이은 4년 연속 도루왕 달성.[7]

5년 연속 도루왕을 노리고 있었지만 주전경쟁에 따라 본인의 몸상태와는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기록이 무산될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대주자 & 대수비로 떨어질수 있다는 얘기. 타팀에서도 작뱅과 이대형을 견주면 작뱅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러브콜하는 반면 이대형에게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누가 우위인지는 명백했다.

이대형은 주전보다는 백업 수비수나 대주자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팬들의 얘기도 그랬지만 트레이드 시장에서 타팀이 이대형은 거들떠도 안 보는 것만 보더라도 타팀 감독 & 코치진들의 생각도 거의 일치했다. 타고난 타격재능 자체가 떨어지다 보니 이래저래 계륵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2008~2009년보다 장타가 늘어나면서 컨택만 개선하면 되겠다고 싶었고, 모든 세이버 스탯이 상승하며 내년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8] 실제로 외야 빅5에서 이진영, 이택근 다음이고, 이택근은 규정타석 미달+이대형을 가볍게 능가하는 최악의 클러치와 수비 실력으로 인해 마이너스 WPA는 확정이라 오히려 이대형은 예년보다 성적이 좋은 편이다. 김주찬보다도 WAR이 0.61이나 높다. 그러나...

9.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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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까지는 괜찮았는데 김수완에게 사구를 맞아 생긴 부상 이후로는 이보다 더 깝깝할 수 없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그의 타격 능력이 급격하게 추락했다.[9]

10. 2012 시즌

내야안타가 30개가 넘는 선수가 타율이 3할이 안된다는 건 정말 문제가 많은 겁니다 - 1루까지 전력질주 하시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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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지 못한 스윙 모션이 항상 약점으로 지적받았기에 새로 부임한 김무관 코치는 김용달 코치와는 달리 이 버릇을 고치기 위해 이대형의 상체를 밧줄이나 고무줄로 묶고 직접 잡아당기며 고치려 했다. 그리고 초반에는 어느 정도 김무관 코치의 조련이 통했는지 발이 빠지는 타격폼이 많이 좋아졌지만 막상 타격은 매우 저조했다.

이렇게 타격폼 수정이 실패하면서 이대형은 2012~2013시즌을 말아먹게 된다. 결과적으로 안 건든거만 못한 결과가 나왔다. 이대형은 은퇴 후 코치님의 지도대로만 해야하는 주변 환경 때문에 자신에게 맞지 않는 타격을 해야 했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본인에게 맞는 타격폼을 스스로 발견해서 반등할 수 있었다고. #

0.193의 안좋은 타율을 보이며 5월 24일 결국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하지만 6월 4일 이진영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함에 따라, 외야 구멍을 메꾸기 위해 다시 1군에서 뛰게 되었다.

깝깝한 타격은 변하지 않아서 아니나 다를까 2012년 6월 12일 SK전에서 한아두를 기록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김기태 감독이 계속해서 주전으로서 기회를 주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톱타자로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중요한 찬스마다 족족 말아먹는 모습이 계속 나오면서 LG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런데도 계속 1번 타자로 기용되면서 김기태 감독의 양아들이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결국 6월 21일 2군으로 내려갔고 팀은 그날 이틀 연속 패배했던 한화에 스코어 11:2라는 대승을 거두었다.

7월 13일의 금요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팀이 스코어 5:0으로 지던 3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상대 선발 투수 김영민의 공을 밀어쳐서(!) 좌측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치면서 깝수육 쿠폰을 한장 더 적립했다. 그런데 이 당시 LG는 6연패의 극심한 부진 중이었고, 연패 탈출을 위해 나선 선발 투수 벤자민 주키치마저 부진하여 2⅔이닝 5실점 5자책점으로 조기 강판 당한데다가 이대형이 홈런을 친 후 곧바로 4회초에 다시 4점을 내줘서 LG 트윈스는 스코어 9:1로 넥센 히어로즈에 크게 뒤지고 있던 상황이었고, 마침 날씨는 폭우가 쏟아지기 직전 날씨였기 때문에 (실제 서울의 다른 지역은 폭우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LG팬들은 보기힘든 이대형의 홈런이 나왔음에도 오히려 정지훈이 등판하여 우천 노게임이 되어 경기기록이 다 무효가 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불행히도(?) 5회말 공격이 끝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정식 경기가 확정되었고, 이대형 선수의 통산 6호 홈런도 정식 기록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팀의 7연패도 확정되었다. 이날 이대형은 5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1득점으로 오랜만에 좋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팀이 스코어 10:2로 패하고 7연패를 하는 바람에 이대형의 활약은 묻히고 말았다.

8월 17일 현재, 타율이 0.170으로 자기 키보다도 못쳤다.

그러던 9월 8일, 연장 12회 말 선두타자로 나왔고 LG팬이고 KIA팬이고 모두 원아웃은 잡고 가는구나 하던 순간에 뜬금없이 3루타를 쳤고 뒤이은 김용의의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경기를 끝냈고 순식간에 이날의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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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다음날인 9일에도 연장 10회말 투아웃 만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고 이틀 연속 영웅이 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178, 출루율 0.253, 장타율 0.236, 19타점, 32득점 1홈런 25도루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10] 그런데 이번에도 연봉 대폭 삭감될 줄 알았으나 동결되었다.

유망주라고 부르기 민망한 나이도 돼 가는 데다 타격 실력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본인이 분발하지 못하면 주전자리에 크게 멀어질 것으로 보였다. 초반에 못해도 밀어주던 김기태 감독도 도저히 안되겠는지 후반기 들어서는 이대형 자리에 박용택이나 이병규를 넣는 라인업을 꾸렸다.

11.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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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7회초 1사 1루 상황에서 박용택의 동점 적시타에 홈을 밟는 모습[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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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3년과 더불어 40도루를 넘긴 유이한 시즌이었다. 사실 나이 들어서 주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박용택은 한때 그 이종범보다도 통산 도루 성공률이 높았을 정도로 도루 능력이 좋았던 주자다. [2] 이 시기부터 도루왕 경쟁을 하던 이종범의 도루 수가 감소했고(그래도 2005년에도 28개로 시즌 6위이긴 했다), 그 덕에 박용택은 손쉽게 도루왕을 가져오게 되었다. [3] 현대의 이택근1표차로 제치고 2007년도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다만 2007시즌 당시 이택근이 타율, 홈런, 타점 부문에서 이대형보다 우세했고, 이대형은 3할/도루왕에 안타가 더 많았는데 이대형이 수상한 것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알다시피 2010년대 초반까지는 도루의 가치가 높게 책정되었고 한 단계 더 높은 팀 순위+3할 도루왕+사실상의 신인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4] 2할 6푼대 타율임에도 최다 안타 5위라는 기묘한 기록이 이 해 타자들의 전체적인 성적을 가늠하게 한다. 작년보다도 심한 투고타저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5] 6년 뒤 NC 다이노스 외야수 에릭 테임즈가 40-40 클럽 달성 후 해당 세레머니를 하였다. [6] 다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결장이 없던 데에는 꾸준히 볼넷은 찍어줬기 때문. 이 해 이대형은 예년보다 많은 볼넷을 기록했다. [7] 이후 2015 ~ 2018시즌까지 박해민이 4년 연속 도루왕 타이기록을 세웠다. [8] 실제로 wRC+가 60대에 불과했던 앞의 2년과는 달리 이때는 적어도 75는 기록했다. [9] 다만 wRC+로 보면 2011년은 2010년과 그렇게 차이가 나진 않으며 2008~2009년보다는 오히려 더 높다. 즉 타율만 2할 5푼이 안 될 뿐이지 생산성은 그냥 평소대로의 이대형만큼은 기록했다. 역으로 부상 없이 .270정도만 찍었으면 wRC+가 80을 넘겼을 것이다. [10] OPS가 5할도 안 되며, 적어도 70은 기록한 전년과 달리 wRC+가 30대로 추락했다. WAR*가 고작 -0.1인 게 놀라운 수준. [11] 이 경기는 이대형의 통산 마지막 포스트 시즌 경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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