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존슨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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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의 주요 수훈 /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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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이름 |
월터 존슨 Walter John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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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투수 | ||||||||||||||||||||||||||||||||||||||||||||||||||||||||||||||||||||||||||||||||||||||||||||||||||||||||||||||||||||||||||||||||||||||||||||||||||||||||||||||||||||
득표수 | 479,279 | }}} |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
1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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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내셔널스 링 오브 아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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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테드 그레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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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세네터스 | ||||||||||
조 크로닌 | 릭 페럴 | 구스 고슬린 | 클락 그리피스 | 버키 해리스 | ||||||
월터 존슨 | 하먼 킬러브루 | 하이니 마누시 | 샘 라이스 | 얼리 윈 | ||||||
워싱턴 세네터스 | ||||||||||
버키 해리스 | 프랭크 하워드 | |||||||||
몬트리올 엑스포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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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내셔널스 | ||||||||||
프랭크 로빈슨 | 이반 로드리게스 | 제이슨 워스 | 라이언 짐머맨 | 테드 러너 |
※ 1936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이 생기자마자 처음으로 입성한 5명의 선수. | ||||
타이 콥 (98.23%) |
호너스 와그너 (95.13%) |
베이브 루스 (95.13%) |
크리스티 매튜슨 (90.71%) |
월터 존슨 (83.63%) |
※ 퍼센트는 투표 당시 투표율. |
191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 ||||
트리스 스피커 ( 보스턴 레드삭스) |
→ |
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
→ |
에디 콜린스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192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 ||||
베이브 루스 ( 뉴욕 양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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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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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페킨포 ( 워싱턴 세네터스) |
크리스티 매튜슨 ( 뉴욕 자이언츠, 19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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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1913년) |
→ |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 필라델피아 필리스, 1915년) |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 필라델피아 필리스, 1916년) |
→ |
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1918년) 히포 본 ( 시카고 컵스, 1918년) |
→ |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 필라델피아 필리스, 1920년) |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 필라델피아 필리스, 19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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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 ( 필라델피아 필리스, 1924년) 대지 밴스 ( 브루클린 로빈스, 1924년) |
→ |
레프티 그로브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30년) |
1913년 ~ 191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 | ||||
스모키 조 우드 ( 보스턴 레드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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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
→ |
에디 시콧 ( 시카고 화이트삭스) |
191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 | ||||
에디 시콧 ( 시카고 화이트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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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
→ |
에디 시콧 ( 시카고 화이트삭스) |
192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 | ||||
조지 유리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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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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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라이언스 ( 시카고 화이트삭스) 에디 롬멜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1912년 ~ 191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왕 | ||||
빈 그렉 ( 클리블랜드 냅스) |
→ |
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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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레너드 ( 보스턴 레드삭스) |
1918년 ~ 191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왕 | ||||
에디 시콧 ( 시카고 화이트삭스) |
→ |
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
→ |
밥 쇼키 ( 뉴욕 양키스) |
192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왕 | ||||
스탠 코벨레스키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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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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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 코벨레스키 ( 워싱턴 세네터스) |
191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탈삼진왕 | ||||
프랭크 스미스 ( 시카고 화이트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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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
→ |
에드 월시 ( 시카고 화이트삭스) |
1912년 ~ 191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탈삼진왕 | ||||
에드 월시 ( 시카고 화이트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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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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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 코벨레스키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192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탈삼진왕 | ||||
스탠 코벨레스키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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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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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반 쇼커 (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
1923년 ~ 192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탈삼진왕 | ||||
우르반 쇼커 (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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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 ( 워싱턴 세네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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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티 그로브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보유 기록 | |
통산 완봉승 | 110승 |
최다 탈삼진 1위 시즌 | 12회 |
최다 투수 트리플 크라운 시즌 | 3회[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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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트윈스 역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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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세네터스 시대 (1901~1960) | ||||
1대 짐 매닝 1901 |
2대 톰 로프터스 1902~1903 |
3대 말라치 키트리지 1904 |
4대 패트시 도노반 1904 |
5대 제이크 스탈 1905~1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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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조 칸티욘 1907~1909 |
7대 지미 맥알리어 1910~1911 |
8대 클락 그리피스 1912~1920 |
9대 조지 맥브라이드 1921 |
10대 클라이드 밀란 1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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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도니 부시 1923 |
12대 버키 해리스 ★ ☆ 1924~1928 |
13대 월터 존슨 1929~1932 |
14대 조 크로닌 ☆ 1933~1934 |
12대 버키 해리스 1935~1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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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오시 블루지 1943~1947 |
16대 조 쿠헬 1948~1949 |
12대 버키 해리스 1950~1954 |
17대 척 드레센 1955~1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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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트윈스 시대 (1961~) | |||||
18대 쿠키 라바제토 1957~1961 |
19대 샘 멜 ☆ 1961~1967 |
20대 칼 어머 1967~1968 |
21대 빌리 마틴 1969 |
22대 빌 리그니 1970~1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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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프랭크 퀼리치 1972~1975 |
24대 진 모크 1976~1980 |
25대 조니 고릴 1980~1981 |
26대 빌리 가드너 1981~1985 |
27대 레이 밀러 1985~1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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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톰 켈리 ★ ★ 1986~2001 |
29대 론 가든하이어 2002~2014 |
30대 폴 몰리터 2015~2018 |
31대 로코 발델리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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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 시리즈 우승 / ☆: 월드 시리즈 준우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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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역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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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블루스 시대 (1901) | ||||
1대 지미 맥알리어 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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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브롱코스 시대 (19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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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빌 아무어 1902~1904 |
3대 냅 라조이 1905 |
4대 빌 브래들리 1905 |
3대 냅 라조이 1905~1909 |
5대 디컨 맥과이어 1909~1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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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조지 스토발 1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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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대 (1915~2021) | |||||
8대 조 버밍험 1912~1915 |
9대 리 폴 1915~1919 |
10대 트리스 스피커 ★ 1919~1926 |
11대 잭 맥캘리스터 1927 |
12대 로저 페킨포 1928~1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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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빕 포크 1933 |
14대 월터 존슨 1933~1935 |
15대 스티브 오닐 1935~1937 |
16대 오시 비트 1938~1940 |
12대 로저 페킨포 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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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루 보드로 ★ 1942~1950 |
18대 알 로페즈 ★ 1951~1956 |
19대 커비 파렐 1957 |
20대 바비 브래건 1958 |
21대 조 고든 1958~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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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조조 화이트 1960 |
23대 지미 다익스 1960~1961 |
24대 멜 하더 1961 |
25대 멜 머게이어 1962 |
24대 멜 하더 1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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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버디 테베츠 1963 |
27대 조지 스트릭랜드 1964 |
26대 버디 테베츠 1964~1966 |
27대 조지 스트릭랜드 1966 |
28대 조 애드콕 1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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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 앨빈 다크 1968~1971 |
30대 조니 리폰 1971 |
31대 켄 아스프로몬테 1972~1974 |
32대 프랭크 로빈슨 1975~1977 |
33대 제프 토보그 1977~1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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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데이브 가르시아 1979~1982 |
35대 마이크 페라로 1983 |
36대 팻 코랄레스 1983~1987 |
37대 닥 에드워즈 1987~1989 |
38대 존 하트 1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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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대 존 맥나마라 1990~1991 |
40대 마이크 하그로브 ★ ★ 1991~1999 |
41대 찰리 매뉴얼 2000~2002 |
42대 조엘 스키너 2002 |
43대 에릭 웨지 2003~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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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대 매니 액타 2010~2012 |
45대 샌디 알로마 주니어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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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대 테리 프랑코나 ★ 2013~2023 |
47대 스티븐 보트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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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 시리즈 우승 / ★ : 월드 시리즈 준우승 |
워싱턴 세네터스 등번호 28번 | ||||
결번 | → |
월터 존슨 (1931) |
→ |
린 래리 (1935) |
워싱턴 세네터스 등번호 25번 | ||||
해리 라이스 (1931) |
→ |
월터 존슨 (1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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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보켄 (1933~1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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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페킨포 (1931~1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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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존슨 (1933~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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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유리 (1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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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터 존슨 Walter Johnson |
|
본명 |
월터 페리 존슨 Walter Perry Johnson |
출생 | 1887년 11월 6일 |
캔자스 주 험볼트 | |
사망 | 1946년 12월 10일 (향년 59세) |
워싱턴 D.C.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풀레튼 유니언 고등학교 |
신체 | 185cm / 90kg |
포지션 | 선발 투수 |
투타 | 우사우타 |
프로입단 | 1907년 자유계약 ( WSH) |
소속팀 | 워싱턴 세네터스 (1907~1927) |
지도자 |
워싱턴 세네터스 감독 (1929~193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감독 (1933~1935) |
기록 |
노히트 노런 (1920.07.01) 110 완봉승[2] 417승[3] |
[clearfix]
1. 개요
선수 시절의 월터 존슨 |
그라운드 위에 베이스가 놓인 이래 최고라 불리는 투수가 있었다.
"야구공을 처음 잡았을 때, 마치 그것이 언제나 제 손 위에 있어 왔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걸 던지는 순간 공, 손, 손목, 팔, 어깨가 차례로 하나가 되어 뻗어 나갔어요."[4]
미국의 前 야구 선수. 포지션은 투수이며 명예의 전당에 첫 턴에 입성한 선수다.[5] 명예의 전당 최초의 5인 중 한 사람이다. 또한 역대 최다인 12회의 탈삼진왕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엄청나게 큰 키[6]와 긴 팔을 지녔고, 그 팔로 마치 채찍을 휘두르듯이 사이드암으로 공을 던졌으며,[7]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광속구 하나로 전설이 된 투수이다. 게다가 월터 존슨이 던진 속구에서는 마치 기차 소리가 난다면서 'Big Train'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다른 별명으로는, 아래에서 얘기하는 기품 있고 신사적인 성격 때문에 붙은 ' 백기사(White knight)', '월터 경(Sir Walter)'이 있다. 백기사나 기품 있는 월터 경(Lord)으로 불리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그가 1925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실책에 이은 5자책 끝내기 패배를 당했을 때 했던 행동 때문이다(7-9패). 당시 그는 패전 직후 등을 돌려 실책을 범한 유격수를 껴안았다.
2. 그의 능력
2.1. 패스트볼
캐치볼 영상 |
1924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투구하는 영상(2:18, 2:46)[8][9][10] |
양팔을 뒤로 한 번 돌리는 가벼운 와인드업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고, 이어서 채찍같은 사이드암으로 강속구를 날렸다.
그의 속구에 대해서는 오로지 비범한 소문들뿐인데 "공이 겁나게 빨라서 보이지 않아!"란 이야기는 기본이고, "그 자식 제구력이 형편없었으면 경기 때마다 줄초상 치렀을 것"이란 이야기도 있었다. 상대했던 타자들도 "뭔가 쉭 하고 지나가던데?"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당대에 이름 날리던 타자들도 "뭐 이런 공이 다 있냐"라면서 멍 때리거나 허공을 휘두르다가 삼진당하고 들어오기 일쑤였다. 또한 타자를 맞힐까 봐 몸쪽 공을 던지는 것을 극도로 기피했는데도 타자들이 미처 피하지 못해서 통산 사구(死球)가 역대 4위인 205개라고. 월터 존슨의 통산 이닝이 역대 3위인걸 감안하면 이것도 사실 그렇게까지 몸에 맞는 공이 많이 나온 건 아니다. 타자뿐 아니라 심판들도 "솔직히 존슨의 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래봤자 타자들도 못 보는 건 똑같기 때문에 항의는 없지."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공을 잡는 포수들도 고역이어서, 그와 처음 합을 맞추는 루키 포수를 배려하기 위해 구속을 낮췄다는 기록이 있다.[11]
어떤 경기에서는 그날따라 제구에 난조를 보인 월터가 심판에게 연거푸 실투를 직격한 일이 있었는데, 이에 심판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대낮에 '일몰 콜드 게임'을 선언해버린 일도 있었다.[12][13] 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레이 채프먼[14]은 2구 만에 타석에서 내려와 '2구 삼진'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심판이 아직 투 스트라이크라 지적하자 "나는 공이 보이지 않으니 심판께서 잘 보고 알아서 처리하세요"라고 하고 내려가서 삼진 처리된 것이다. 그때는 타자들이 삼진 아웃당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던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탈삼진 기록을 따내서 '스트라이크 아웃의 제왕(Sultan of Strikeouts)'이란 별명도 얻었다.
2.1.1. 실제 구속은?
투구 폼(느린 화면). 팔이 엄청나게 길고 유연하다. |
1912년 10월 6일 야구 매거진 F.C. 레인이 그의 구속을 측정하기 위해 총기 회사 레밍턴 암즈를 방문한다. 당시 레밍턴 사가 총알의 구속을 측정할 때 쓰던 크로노그래프를 썼는데[15], 월터 존슨은 83마일이 찍히고 냅 러커는 77마일이 찍혔다.
1914년, 시카고의 링컨 파크에서 다른 방식으로 구속이 측정되었는데, 오토바이가 86마일로 달리는 와중에 공을 던져 비교하는 원리였다. 이때 측정된 구속은 99.7마일(160.45km/h). 같은 해에 탄동 진자(Ballistic Pendulum)을 사용한 실험이 있었는데, 기기가 존슨의 투구에 맞는 순간 얼마큼 튀어오르냐로 속도가 측정되었다. 결과는 시카고에서의 실험과 같은 99.7마일. 하지만 이것은 공이 손에 떠나는 순간이 아닌 탄동 진자에 직격하는 순간의 속도, 즉 초속이 아닌 종속이었다. 참고로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구속(전광판이나 TV에서 보는 구속)은 항상 초속으로 기록된다.
1917년엔 엔지니어 프랭크 길브레스가 카메라, 시계, 그리드[16]를 사용한 구속 측정을 실시했다. 찍히는 사진마다 한 시간을 100만분의 1로 쪼갠 것 같이 정확한 시간을 기록했으니
투구 당시의 컨디션이나 측정 위치에 따라 차이가 날 수는 있겠지만,[19] 그의 구속에 관한 전설들이 헛소문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게다가 당시는 타자가 헬멧도 쓰지 않는 시기였으니, 그들의 공포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예상해볼 수 있겠다.
추가로 보면 증언을 통한 간접적인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명전에 헌액된 2루수인 찰리 게링거는 39세의 월터 존슨과 17세의 밥 펠러를 다 상대해 봤는데 존슨이 더 빨랐다고 증언했다. [20] 물론 게링거의 첫 상대 투수가 존슨이었다는 점에서 그 정도의 강속구를 처음 상대해 본 게링거의 뇌리에 존슨의 빠른 공이 깊게 박혔을 수도 있다. 또한 존슨의 39세 시즌은 은퇴 시즌으로 5승 6패에 5.10이라는 도무지 존슨이랑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었다. 과연 이 시즌에 던진 공이 그렇게 빨랐을까 하는 의문점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그 영리한 타자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서 도저히 공략을 하지 못하고 417승이나 헌납을 했고, 그 원인으로 강속구를 공통적으로 꼽고 있으니 당대 독보적인 스피드였던 건 분명하다.
흔히 간과되는 점인데, 존슨은 선수생활 내내 인터리그도 없이 단 7개의[21] 아메리칸 리그 팀들만 상대했다. 매달 같은 팀을 최소 두 번, 많게는 다섯 번씩이나[22] 상대하는 와중에 불펜 등판을 포함해서 1년에 40-50경기씩이나 마운드에 올라오고, 선발 등판한 날의 대부분을 완투했으니 현대 야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그의 속구를 노출한 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단 하나의 구종에 타자들이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은[23] 당대에도 유일한 사례다.[24]
2.2. 변화구
게다가 다른 투수들과는 달리 변화구를 거의 던지지 않았다. 말년에 가서 조금씩 섞어 던지기도 하였지만 팔팔하던 시절에는 오로지 속구만으로 리그를 제압해 버렸다. 13년 동안 속구만 던지다가 부상당해서 속구 위력이 약간 줄어들자 커브를 배웠다. 정확하진 않지만 "야 이거 괜찮네. 좀 더 일찍 배워놓을 걸"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데, 당대 타자들에게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이런 영향으로, 과거 투수들에 대해선 공이 빨랐다고 해도 140km대 중후반 정도로 보고 있지만, 월터 존슨은 어쩌면 꿈의 100마일, 즉 161km대 공을 던졌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이다.[25] 참고로 공식적으로 100mph라는 숫자가 등장하게 된 건 불꽃 같은 강속구를 던진 밥 펠러의 등장 이후이다.
2.3. 고무팔
22세부터 30세까지 매년 300이닝을 넘게 던졌고, 그중 5시즌에서 리그 최고 이닝을 적립했다. 이틀~나흘 간격으로 선발과 구원 등판을 가리지 않고 등판했고, 경기가 연장으로 갈 때는 11~15이닝 등 경기가 지든 이기든 끝날 때까지 던졌다.[26] 같은 시기 완봉형 투수로 이름을 날리던 잭 쿰스, 에드 월시 등이 이만한 성적을 내고 2년도 못 버틴 것은 물론,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는 것을 감안할 때 정말 엄청난 내구성이었다.풀타임으로 뛰기 시작한 20세부터 이런 정신 나간 페이스로 던진 그에게도 결국 세월이 찾아왔는데, 프로 13년차가 되는 32세에 오른팔 통증으로 시즌 절반을 쉬면서 그의 전성기도 끝났다.[27] 그러나 이런 혹사 뒤에도 인대 하나 끊어진 곳이 없어서 그는 바로 다음 시즌에 복귀, 나머지 7시즌 동안 더 이상 던질 수 없을 때까지 매 시즌 200이닝 이상을 던지다가 은퇴했다. 통산 이닝은 5914.1이닝.
3. 성격
하지만 성격은 그야말로 부드러운 젠틀맨 그 자체. 정에 약해서 지인들의 표를 구해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표를 구하러 사방팔방을 뛰어다녀야 했다. 또한 자신의 사인을 받으러 온 캘빈 쿨리지 대통령 앞에서 벌벌 떨었다. 타자가 자기의 공을 맞고 죽을까봐 걱정했으며[28] 실제로 레이 채프먼이 칼 메이스의 공에 맞고 사망하자 더욱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다행히 존슨에게 그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이런 성격을 두고 팀 동료가 "월터가 남자라서 다행이야. 만약 여자로 태어났다면 평생 산부인과 신세를 졌을걸?"[29]이란 말을 남겼다.
카리스마와는 한 100만 광년쯤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당시엔 야구 선수들에게 방탕아, 무법자 이미지가 있었을 정도로 거친 사람이 많았기에 더욱 더 비교가 됐다. 이렇게 다른 동시대 선수들에 비해 임팩트가 부족한 탓에, 저 우주 괴수 같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정작 명예의 전당 투표 당시에는 헌액된 5인 중 가장 득표가 낮았다. 하기야 다른 '최초의 5인'을 보면 우선 압도적인 메이저 리그 기록을 가진 데드볼 시대의 황제 타이 콥과 '야구의 신'이라 칭해지는 베이브 루스, 메이저리거 최초이자 최고의 특급 스타였던 크리스티 매튜슨, 그리고 메이저리그 사상 가장 완벽했다는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 호너스 와그너이다. 투수는 단 2명이고, 500승에 빛나는 사이 영이 초대 투표에선 투표율 50%도 안 나온 것과[30] 또다른 대투수들인 피트 알렉산더, 레프티 그로브도 3수, 4수를 거친 것을 생각하면 한번에 통과한 것 자체가 대단한 위엄이다.
4. 전설적인 성적
바로 위에서 서술한, 명예의 전당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대선수 타이 콥의 강력한 천적이 월터 존슨이었다. 야구에 대한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던 타이 콥이었지만[31] 끝내 인정한 3명이 있는데 한 명은 자기가 생전에 못 이긴 선배이자 타격왕 8회에 빛나는 호너스 와그너[32], 한 명은 타격 기술은 자기와 거의 기록이 동격이고 수비와 주루는 더 뛰어나다고 인정했던 '맨발의 조' 조 잭슨이었다.[33] 다른 한 명이 월터 존슨이다. 그는 월터 존슨의 공 앞에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고 시인했다. 타이 콥의 통산 타율은 .366으로 역대 메이저리그 선수 중 1위이다. 2위인 로저스 혼스비가 .358. 하지만 타이 콥의 월터 존슨 상대 통산 타율은 .233이며, 이를 제외하면 .368로 올라가게 된다. 그나마 타자가 다칠까 봐 몸쪽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던 월터 존슨의 심리를 이용, 홈 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타격을 해서 나온 성적이 이 정도이다. 심지어는 월터와 경기에서 처음 대결해본 직후부터 그를 탐낸 나머지, 구단 프런트에 월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빼내 와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타이 콥은 그 괴물 같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정작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해보질 못했는데, 당시 메이저리그 최약체 팀 소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승 반지를 껴 본 월터의 미래를 생각하면 뭔가 조짐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의 소속 팀이 만년 꼴찌였던 워싱턴 세너터스(현 미네소타 트윈스)였던 까닭에 괴수와도 같은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기록에도 불구하고 500승을 넘기지 못 하였으며(그 대신, 한 팀에서 거둔 승수로는 부동의 1위), 동시에 완투패를 가장 많이 기록(그 중 0:1 완투패가 28번)한 투수로 남았다. 그러나 1924년 워싱턴 세네터스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우승 반지는 하나 건졌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그의 말년에는 워싱턴이 꽤 강한 팀으로 성장해서 월터가 나이가 먹었음에도 승수를 많이 올리는 데 기여했고 결국 우승도 달성했다.
그는 야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세 자리수 완봉승의 주인공이다. 110완봉승이고, 그 중 약 35%에 해당하는 총 38번이 1점차 완봉승(즉, 1:0)으로 이 부문에서도 1위이다. 2위는 피트 알렉산더로 각각 90완봉승, 1:0 완봉 19승이다. 야구 평론가 레너드 코페트는 이 점이 피트 알렉산더와 월터 존슨의 차이라고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의 다른 기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뛰어넘은 선수들이 있지만, 현대 야구의 특성상 이 기록은 앞으로도 아무도 깨지 못할 불멸의 기록이다. 이 110완봉승이 얼마나 현대 야구에서 넘사벽급 기록인지는, 로저 클레멘스,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3명의 완봉승 기록을 합쳐야 118 완봉승이라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최후의 완투형 에이스로 꼽히는 로이 할러데이의 통산 완투가 67번이다. 완봉승도 아닌 완투 횟수만 67회이고 완봉승은 20승이다. 선발투수의 이닝 소화가 줄어들고 있는 2010년대로 오면 더욱 이 경향이 심화되는데, 현역 최고의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가 풀타임 8년 동안 기록한 완봉이 총 15회이다. 문제는 커쇼 말고는 두 자릿수 완봉을 기록한 투수도 거의 없다는 것. 풀타임 12년을 뛴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고작 11완봉이다. 나머지는 거의 한 자리.
그의 선수 시절 최전성기인 1913년 시즌에는 11완봉을 거두었는데, 그 중의 백미는 보스턴 레드삭스 원정에서의 15이닝 1:0 완봉승이었다.[34][35]
5. 연도별 기록
월터 존슨의 역대 MLB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1907 | WSH | 14 | 5 | 9 | 0 | - | 110⅓ | 1.88 | 100 | 1 | 20 | 2 | 71 | 1.088 | 129 | 2.2 | 2.8 |
1908 | 36 | 14 | 14 | 1 | - | 256⅓ | 1.65 | 194 | 0 | 53 | 11 | 160 | 0.964 | 138 | 4.5 | 4.8 | |
1909 | 40 | 13 | 25 | 1 | - | 296⅓ | 2.22 | 247 | 1 | 84 | 15 | 164 | 1.117 | 111 | 3.5 | 4.1 | |
1910 | 45 | 25 | 17 | 1 | - | 370 | 1.36 | 262 | 1 | 76 | 13 | 313 | 0.914 | 183 | 9.6 | 10.4 | |
1911 | 40 | 25 | 13 | 1 | - | 322⅓ | 1.90 | 292 | 8 | 70 | 8 | 207 | 1.123 | 173 | 5.9 | 8.5 | |
1912 | 50 | 33 | 12 | 2 | - | 369 | 1.39 | 259 | 2 | 76 | 16 | 303 | 0.908 | 243 | 9.3 | 13.2 | |
1913 | 48 | 36 | 7 | 2 | - | 346 | 1.14 | 232 | 9 | 38 | 9 | 243 | 0.780 | 259 | 8.5 | 15.1 | |
1914 | 51 | 28 | 18 | 1 | 0 | 371⅔ | 1.72 | 287 | 3 | 74 | 11 | 225 | 0.971 | 164 | 7.8 | 11.7 | |
1915 | 47 | 27 | 13 | 4 | 0 | 336⅔ | 1.55 | 258 | 1 | 56 | 19 | 203 | 0.933 | 191 | 8.2 | 11.6 | |
1916 | 48 | 25 | 20 | 1 | 0 | 369⅔ | 1.90 | 290 | 0 | 82 | 9 | 228 | 1.006 | 147 | 8.8 | 10.0 | |
1917 | 47 | 23 | 16 | 3 | 0 | 326 | 2.21 | 248 | 3 | 68 | 14 | 188 | 0.969 | 120 | 6.7 | 7.0 | |
1918 | 39 | 23 | 13 | 3 | 0 | 326 | 1.27 | 241 | 2 | 70 | 8 | 162 | 0.954 | 214 | 6.5 | 10.4 | |
1919 | 39 | 20 | 14 | 2 | 0 | 290⅓ | 1.49 | 235 | 0 | 51 | 7 | 147 | 0.985 | 215 | 6.8 | 10.6 | |
1920 | 21 | 8 | 10 | 3 | 0 | 143⅔ | 3.13 | 135 | 5 | 27 | 5 | 78 | 1.128 | 119 | 2.7 | 2.4 | |
1921 | 35 | 17 | 14 | 1 | 0 | 264 | 3.51 | 265 | 7 | 92 | 2 | 143 | 1.352 | 117 | 4.4 | 4.8 | |
1922 | 41 | 15 | 16 | 4 | 0 | 280 | 2.99 | 283 | 8 | 99 | 7 | 105 | 1.364 | 130 | 3.3 | 5.4 | |
1923 | 42 | 17 | 12 | 4 | 0 | 261 | 3.48 | 263 | 9 | 73 | 20 | 130 | 1.287 | 109 | 3.7 | 4.4 | |
1924 | 38 | 23 | 7 | 0 | 0 | 277⅔ | 2.72 | 233 | 10 | 77 | 10 | 158 | 1.116 | 149 | 4.9 | 6.8 | |
1925 | 30 | 20 | 7 | 0 | 0 | 229 | 3.07 | 217 | 7 | 78 | 7 | 108 | 1.288 | 138 | 3.7 | 4.9 | |
1926 | 33 | 15 | 16 | 0 | 0 | 260⅔ | 3.63 | 259 | 13 | 73 | 5 | 125 | 1.274 | 107 | 4.0 | 3.8 | |
1927 | 18 | 5 | 6 | 0 | 0 | 107⅔ | 5.10 | 113 | 7 | 26 | 7 | 48 | 1.291 | 80 | 1.3 | -0.4 | |
MLB 통산 (21시즌) |
802 | 417 | 279 | 34 | 0 | 5914⅓ | 2.17 | 4913 | 97 | 1363 | 205 | 3509 | 1.061 | 147 | 116.4 | 152.4 |
파란색은 통산 팀 내 1위(투수 한정).
6.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월터 존슨 | 150 | 420 | 364 | 82 |
HOF 입성자 평균 | 40 | 185 | 100 | 50 |
- JAWS - Starting Pitcher (1st)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월터 존슨 | 165.6 | 89.5 | 127.5 |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 73.9 | 50.3 | 62.1 |
7. 선수 경력
7.1. 정규 시즌
키가 크고, 스무살 남짓의 어수룩해 보이는 녀석이었는데, 팔이 소매 밖으로 나올 정도로 길었어. 처음에는 사이드암으로 던지는 투구 폼이 별 거 없어 보였지...
우리 팀 선수 중 하나가 소 울음소리를 흉내냈고, 우리는 캔틸론 감독[36]에게 외쳤지: '조, 쇠스랑을 준비해야겠어, 자네 시골뜨기가 외양간에 가는 중 같은데.' ...[37] 타석에서 처음 만났을 때, 존슨이 편하게 와인드업을 하더군. 그리고 잠시 뒤 뭔가가 휙 지나갔는데, 순간 움찔했어. 건드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어...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역대 최강의 팔을 가진 투수를 만난 걸 깨닫게 됐지.[38]
타이 콥, 1907년 8월 2일 월터 존슨의 데뷔전
타이 콥, 1907년 8월 2일 월터 존슨의 데뷔전
존슨의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그의 팔이 앞으로 나오는 것을 보는 순간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뿐이다.
버리 크리, 뉴욕 양키스 외야수
버리 크리, 뉴욕 양키스 외야수
7.2. 포스트시즌
첫 포스트시즌 경험 때 그의 나이는 이미 황혼기에 접어든7.2.1. 1924년 월드 시리즈
1924년 뉴욕 자이언츠와의 월드 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는데, 3:3으로 8회까지 팽팽하게 맞서고 9회가 된 상황에서 갑자기 관중들이 월터의 이름을 연호하며 그의 등판을 요청했다. 감독 버키 해리스는 월터가 이전 경기에서 부진했던 까닭에 등판시키길 망설였지만 그 사이에 월터가 자진해서 등판했고, 이후 매 회마다 주자를 내보내는 불안한 피칭 속에서도 12회까지 무실점으로 4이닝을 막아냈다. 그리고 12회 말에 행운의 불규칙 바운드(그것도 2번이나)에 힘입어 세너터스가 우승을 거두었다. 이를 두고 자이언츠 선수들도 "신께서 월터에게 승리를 주길 원하신 거다"라면서 분루를 삼키면서도 월터의 승리를 축하했다.7.2.2. 1925년 월드 시리즈
그 다음해 1925년에도 세네터스는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데, 상대는 피츠버그 파이리츠. 이번에도 월터 존슨은 3번 등판한다(1, 4, 7차전). 3경기 모두 완투였는데, 1차전은 4-1승, 4차전은 4-0 완봉승을 거두어[39] 우승을 눈앞에 두었으나 팀이 5차전, 6차전을 내주며 7차전의 책임이 그에게 주어졌다. 당시 그는 은퇴를 2년 앞둔 37세였고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비가 계속 내리고 안개가 껴서 3회까진 내야 안의 시야조차도 확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기자석에서 외야수들이 보이지 않았고, 7회에 심판이 인정한 피츠버그 맥스 커레이의 2루타는 페어존에서 최소한 2피트(60cm) 벗어난 파울볼이었다고 한다.[40] 다리가 발목까지 진흙에 빠지는 상태에서 존슨은 7회말까지 4실점을 하나 팀이 6득점을 해서 승리를 앞두는 상황까지 갔다.그러나 그 후 세네터스 유격수 로저 페킨포의 7, 8회 에러로 인해 그는 4점을(모두 비자책점이었다) 내주며 패전 투수가 된다. 경기 기록지 아이러니하게도 페킨포는 bWAR 기준 역대 17위의 통산 수비 스탯을 자랑하는 최고의 유격수였고,[41][42] 1925년 시즌 당시 리그 MVP였다.[43]
당시 2루수 겸 세네터스 감독이었던 버키 해리스는 왜 구원투수를 쓰지 않았냐는 무수한 질타를 받았으나, '감정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그때로 돌아가도 다시 존슨을 끝까지 기용했을 거라고 대답했다.
8. 평가
빌 제임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로 우완 월터 존슨을 꼽고 두 번째로 좌완 레프티 그로브를 꼽았다. 이 둘의 업적에 대해서는 지금의 전문가들 사이에도 은근히 불꽃 튀는 최강자 떡밥이 전개되는데, 이는 바로 데드볼 시대와 라이브볼 시대의 커다란 간극 때문. 일단 가장 간단하면서도 쉬운 투수 비교 방법인 조정 평균자책점에서는 근소하게 레프티 그로브가 앞선다(역대 순위: 마리아노 리베라, 클레이튼 커쇼, 페드로 마르티네즈, 짐 데블린, 레프티 그로브ㆍ 제이콥 디그롬, 월터 존슨) 하지만 승 수 자체를 놓고 보면 417승과 300승이라는 넘사벽의 차이가 존재하니 월터 존슨이 밀리는 것은 딱히 없다.야구 평론가 레너드 코페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로 월터 존슨을 꼽았다. 그가 위대한 투수로 꼽은 기준은 누적 성적, 구위, 제구력, 투구 요령, 배짱으로 보았다. 누적 성적으로 인하여 5년간 강력한 임팩트를 보여준 샌디 쿠팩스, 심지어 통산 266승 투수이며, 2차 대전에 참전하여 조국에 헌신한 밥 펠러도 제외되었다. 구위를 통하여 짐 파머와 같은 제구력 피처가 제외되었고, 제구력으로 '강철 팔' 놀란 라이언 또한 제외되었다.[44] 상기된 레프티 그로브는 누적된 성적은 좋으나 실제로 강속구를 잃어버린 시점부터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여 투구 요령이 없다고 보아 제외되었다. 이런 식으로 많은 투수들이 떨어졌고 남은 선수는 트리플 크라운 3회의 피트 알렉산더와 월터 존슨.
여기에서 레너드 코페트가 월터 존슨을 위로 놓은 이유는 바로 완봉승의 질이었다. 월터 존슨은 110완봉, 피트 알렉산더는 90완봉을 기록하여 아주 큰 차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완봉 중 완봉이라 불리는 1:0 완봉에서 38완봉과 19완봉으로 2배의 격차를 벌렸기에 월터 존슨의 배짱, 즉 유연하면서 자상하고도 강철 같은 멘탈이 인정받게 되었다.
9. 어록
9.1. 본인의 어록
"The beanball is one of the meanest things on Earth and no decent fellow would use it. The beanball is a potential murderer. If I were a batter and thought the pitcher really tried to bean me, I'd be inclined to wait for him outside the park with a baseball bat." ("
빈볼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악행 중의 하나고, 좋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써서는 안됩니다. 잠재적 살인입니다. 내가 타석에 섰는데 상대 투수가 진짜로 내 머리를 맞추려는 감이 들었다면, 전 경기장 밖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그를 기다리는 것을 고려하겠습니다.")[45]
"(Bob) Feller isn't quite as fast as I was." ("
밥 펠러의 공이 제 현역시절의 공만큼 빠르지는 않습니다.")
"I throw as hard as I can when I think I have to throw as hard as I can." ((구속 조절에 대해서) "최고 구속으로 던져야 할 필요를 느낄 때 전력투구를 합니다.")
"I was the greenest rookie that ever was. One evening I was standing out on the sidewalk when a stranger approached and said, 'You're famous already kid. See, they've named a hotel for you.' I looked across the street and sure enough, there was a big illuminated sign that read 'Johnson Hotel.' Well, do you know that I was so green that I actually believed the man!" ("전 루키중에서도 가장 순해 빠진 루키였습니다. 언젠가 보행자길에서 서있는데 지나가던 낯선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죠: "꼬맹이, 자네는 이미 유명해졌다고. 저거 봐, 네 이름을 딴 호텔도 있잖아." 그 말에 길 건너편을 쳐다보니 '존슨 호텔'이라는 커다란 전광판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제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전 그 말을 그대로 믿었고요!")
"Can I throw harder than Joe Wood? Listen mister, no man alive can throw any harder than Smoky Joe Wood." ("제가
스모키 조 우드보다도 더 세게 던질 수 있냐고요? 이보세요 선생님, 그 누구도
스모키 조 우드처럼 세게 던질 수는 없어요.")
출처9.2. 그에 대한 어록
"He's got a gun concealed about his person. They can't tell me he throws them balls with his arm." ("그는 총을 숨기고 있다. 그 팔로 공을 던진다는 말을 믿으라는 건 아니겠지?")
링 라드너
링 라드너
"Just speed, raw speed, blinding speed, too much speed." ("그저 빠름 그 자체, 순수 날 것의 빠름, 보이지 않는 빠름, 너무나도 지나친 빠름.")
타이 콥
타이 콥
"That young fellow is another Cy Young. I never saw a kid with more than he displayed. Of course, he is still green, but when he has a little experience he should be one of the greatest pitchers that ever broke into the game. He has terrific speed and a motion which does not put much strain on his arm and this will all improve as he goes along." ("그 어린 녀석은 또 하나의
사이 영이다. 그 나이에 저렇게까지 잘하는 투수를 또 본 적이 없다. 물론 아직 루키 티를 못 벗었지만 경력이 조금 쌓이면 역대 최고의 투수 반열에 오를 것이다. 엄청난 구속에 팔에 무리 안가는 투구폼까지 갖춰 있으니, 앞으로 모든 게 발전하기만 할 것이다.")
애디 조스[46]
출처애디 조스[46]
10. 참고 자료
11. 기타
- 무려 12회의 탈삼진왕 타이틀이 있고, 8년 연속 탈삼진왕 기록도 있다. 둘 다 역대 최다 기록이다.
- 1921년 12월에 두 살이었던 딸 엘리너가 독감으로 사망했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월터와 헤이젤 부부는 농장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 그의 부인 헤이젤과는 금슬이 좋은 걸로 유명했는데, 안타깝게도 헤이젤은 딸을 떠나보낸지 10년도 되지 않은 1930년에 열사병으로 36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사랑하는 딸과 아내를 연거푸 잃은 월터는 이에 극심히 슬퍼했고 여생 동안 매우 힘들어 했다고 한다. 월터는 후에 59세에 뇌종양으로 별세, 메릴랜드에 있는 부인의 무덤에 같이 안치되었다.[47]
- 타이 콥과 같은 팀 소속이었던 샘 크로포드와[48] 절친한 친구였는데, 종종 주자 없는 상황같이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친구를 위해 일부러 치기 쉬운 공을 던져주는 우정을 발휘했다. 프로 무대에서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을 만큼 존슨은 자상한 인품의 소유자이면서도 사기적인 실력을 가졌었다. 반면 콥은 상술했듯 홈플레이트에 몸을 바짝 붙이는 위험한 짓까지 동원해가며 존슨을 상대로 얻어낸 타율이 겨우 2할 3푼이었을 정도로 존슨에게 고전했다. 콥은 이런 뒷사정을 전혀 눈치를 못 챘다보니 자신보다 한 수 아래[49]인 크로포드가 어떻게 존슨의 공을 자신보다 더 잘 공략했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 했다고 한다.
- 타격 재능도 뛰어나서 통산 타율이 투수 기준으로는 수준급인 0.235이나 되고, 특히 1925년엔 0.433을 기록했다. 외야수로 13번 뛰었고, 타석에서 21시즌동안 2할을 넘기는 시즌이 13번, 1914년엔 홈런을 3개를 쳤다. 1917년엔 130타수에 2루타 12개, 3루타 1개를 쳤다. 그의 통산 24홈런은 역대 투수 홈런 9위의 기록이다. 월터 존슨이 데드볼 시대와 라이브볼 시대에 걸쳐있는 선수인 것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기록인데, 전성기를 보낸 데드볼 시대에 친 홈런만 놓고 봐도 16개나 된다. 또한 투타겸업이 아닌 투수로 뛴 선수만 놓고 봤을때는 통산 3루타 1위 기록(41개) 또한 가지고 있다.
- 40-50년대에 미국 정치인 조세프 W. 마틴 주니어가 존슨을 의회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는데, 말주변이 정말로 없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직원들을 시켜서 명연설 원고 두 개를 써줬죠, 하나는 농촌 지역 주민들한테 읽을 것이었고, 나머지는 공업 지역 사람들을 위한 것. 그런데 그것마저 헷갈려서 농부들한테 비즈니스에 대한 연설을 하고, 비즈니스맨들한테 농촌 지역 문제에 대한 연설을 했어요.[50]
- 월터가 1924년 팀을 우승으로 이끈 이후 워싱턴 D.C.에 연고를 둔 팀이 우승하는 데는 2019년 워싱턴 내셔널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때까지 무려 95년이 걸렸다.
- 클레이튼 커쇼가 200승을 하자 원클럽 200승 투수들의 목록이 공개되었는데, 13명밖에 없는 목록에서 존슨의 압도적인 417승이 재조명 되었다. 출처[51] 268승으로 2위인 짐 파머와의 격차가 무려 149승이다. 한마디로 넘사벽의 기록.[52]
[1]
피트 알렉산더,
샌디 쿠팩스와 동률.
[2]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세자리 수 완봉승
[3]
MLB 통산 승수 2위
[4]
http://sabr.org/bioproj/person/0e5ca45c
[5]
역대 최다 승에 빛나는
사이 영도 재수를 거쳐 헌액되었던 명예의 전당을 단 한 번의 투표로 들어갔다. 통산 fWAR 3위, bWAR 1위. fWAR도
로저 클레멘스를 제외하면 2위이며, 이 선수 위엔
사이 영뿐이다. 이 둘의 통산 이닝은 무려 1441이닝이나 차이나는데, fWAR은 5.7밖에 차이 안나며, bWAR는 오히려 1.3차이로 더 높다. 다만 이건 투타 WAR를 전부 합친 기록으로 투수 WAR만 따지면 bWAR도 사이영이 1위이다. 월터 존슨은 투수치고 타격실력도 굉장히 뛰어났는데 타자로 얻은 WAR도 무려 12.7이나 되기 때문이다.
[6]
186cm. 현재는 일반인들치고는 크고 투수들 중에선 그다지 큰 편이 아니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기인 20세기 초에서는 서양인 중에서도, 야구 선수 중에서도, 투수 중에서도 엄청난 장신이다. 당시는
북유럽계 남성의 평균 신장도 170cm을 약간 웃돌던 시절이라 현재의 관점으로 환산하면 거의 200cm에 육박하는 장신이었던 셈이다. 현재는 메이저리그에서 186cm의 선발투수는 오히려 작은 축에 들지만, 저 시대엔 180cm를 넘기는 사람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에 186cm면 매우 컸다. 월터 존슨의 시대로부터 100년이 지난 현재의 MLB 선발투수의 평균 신장은 193cm다. 다만, 당대 메이저리그 대표 투수였던 사이 영이나 베이브 루스보다는 작았고, 무려 타자였던 타이 콥과 비슷했다. 키가 크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시대에 비하면 매우 크다 뿐이지, 키가 순수하게 정말로 큰 편인
랜디 존슨같은 다른 메이저리그 레전드와 비교했을 때 거인 수준은 아니다.
[7]
MVP 베이스볼 시리즈의 MVP 베이스볼 2005에서 그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실제 투구 영상
[8]
이것이 그의 7차전 마지막 투구. 다음 이닝에서 끝내기로 경기가 종료, 승리는 그에게 간다.
[9]
1:04초의 선발투수 컬리 오그덴의 투구와 비교하며 감상하자.
[10]
영상에서 미국 대통령
캘빈 쿨리지가 나온다.
[11]
1910년 9월 7일 경기. 이때 포수는 당시 스무살의 에디 에인스미스로, 이 경기에서 합격점을 받아 이어지는 1911년부터 그의 전담포수로 210번이나 합을 맞췄다.
출처
[12]
당시 메이저리그 경기는 경기장에 조명이 없어서 주간 경기였기 때문에 날이 어두워지면 경기를 끝냈다.
[13]
타자들도 그냥 모자를 쓰고 타석에 서던 때라 당연히 헬멧 외에 심판 보호 장비 같은 것은 전무했다. 강속구가 날아와 맞으면 다치기 십상이고 재수없으면 사망할 수도 있었다.
[14]
뉴욕 양키스 소속 투수
칼 메이스가 던진 공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 걸로 유명한 선수로, 월터가 더더욱 몸쪽 공을 기피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15]
길이는 15피트, 넓이는 2X2피트.
[16]
이 사람이 썼던 건 그냥 거대한
모눈종이를 생각하면 된다.
[17]
[18]
http://scoutee.co/the-historic-quest-for-speed-in-baseball/
[19]
다만 기반 기술은 이미 개발되어 있었다.
도플러 효과 역시 19세기 말에 발견된 것으로, 국가 등급의 연구소에서라면 높은 정확도로 측정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20]
밥 펠러는 당시 시험중이 였던 미육군 포탄 탄도속도를 측정하는 장비로 측정시 최대 98마일까지 기록을 하였다.
[21]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 각 8팀씩, 팀당 1년 154경기
[22]
예를 들어 1912년에는 7월에 화이트 삭스를 상대로 두 번 선발 등판하고 (9이닝, 8이닝, 두 등판 사이에 이틀 휴식), 바로 다음 달인 8월에는 4일, 5일, 7일, 15일, 16일에 두번의 선발과 세번의 구원으로 등판했다.
[23]
존슨이 변화구를 장착한 건 속구의 위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커리어 후반기다.
[24]
동시대에 활약한
크리스티 매튜슨과 시대가 겹치는
사이 영도 구종이 두 개 이상이었다.
[25]
김형준 기자의 레전드 스토리에 따르면 평균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26]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Game Log 참고.
[27]
부상당한 시즌인 1920시즌 부터 1927시즌 까지 그가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순서대로 3.13-3.51-2.99-3.48-2.72-3.07-3.63-5.10 이다. 부상 전까지 매시즌 1점대 중반은 가볍게 찍는 성적을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전성기만큼의 피칭을 보여주진 못한 것.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상당한 시즌에 그의 유일한
노히터를 기록했다.
[28]
당시 강속구 투수로는
스모키 조 우드와 월터 존슨이 유명했다. 전술한 내용들을 고려하면 진짜 사람 하나 요단강 건너게 하는 것도 불가능이 아니었다.
[29]
들이대는 남자들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뜻.
[30]
사이 영은 이듬해 투표에서는 76.1%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데 성공한다. 사이 영의 동료급 선수들이 대부분 베테랑 위원회에 의해 헌액되었고, 또 그러라고 베테랑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투표로 2번만에 들어간 사이 영의 위엄 역시 대단한 것이다. 제시 버켓,
에드 델라한티,
휴이 제닝스,
에디 플랭크,
모데카이 브라운, 에디 조스같은 사이 영과 동시대에 뛰었던 대선수들이 베테랑 위원회로 들어갔다는 것이 그 증거다.
[31]
타이 콥은 천하의
베이브 루스조차 우습게 봤다. "그가 어떻게 야구를 잘한다고 할 수 있지?"라고. 그러나 은퇴 후에는 그를 두고 그의 파워와 선구안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다며 인정했다.
[32]
역대 NL 최다에 해당한다. 타이 콥은 11회로 AL 및 MLB 역대 최다.
[33]
블랙삭스 스캔들에 연루되어 타자로서 전성기인 31세에 선수 경력이 빨리 끝나서 통산 기록은 대단하지 않지만 그래도 타격 3위에 해당한다, 타이 콥과 타격왕을 다툴 수 있던 선수.
[34]
https://www.baseball-reference.com/players/gl.fcgi?id=johnswa01&t=p&year=1913
[35]
1913년 7월 3일에 있었던 경기. 여담으로 이 경기 후 5일이나 쉴 수 있었지만, 나머지 등판은 거의 모조리 1-3일 휴식으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굴려졌고, 시즌 기록은 346이닝에 36승 7패로 리그 최다 이닝과 최다승, 그리고 아메리칸 리그 MVP. 당대 기준으로도 무식할 정도로 혹사한 시즌이었지만, 안식년 없이 그대로 3년이나 더 연속으로 최다 승/완투/이닝을 동시에 기록했다. 그 후로 최다 탈삼진을 6번이나 더 했지만 최다 승/완투/이닝을 기록하는 일은 없었다.
[36]
당시 워싱턴 세너터스의 감독이었던 조 캔틸론을 의미한다.
타이 콥의 회상에 의하면 이때가 워싱턴과 디트로이트의 더블헤더 1차전이었다.
[37]
월터 존슨이 농가 출신인 점과 더블헤더 1차전이라는 중요한 경기에 별 거 아닌 것으로 보이는 신인을 내보낸 조 캔틸론 감독을 조롱한 것이다.
[38]
He was a tall, shambling galoot of about twenty, with arms so long they hung far out of his sleeves, and with a sidearm delivery that looked unimpressive at first glance.... One of the Tigers imitated a cow mooing, and we hollered at Cantillon: 'Get the pitchfork ready, Joe—your hayseed's on his way back to the barn.' ... The first time I faced him, I watched him take that easy windup. And then something went past me that made me flinch. The thing just hissed with danger. We couldn't touch him.... Every one of us knew we'd met the most powerful arm ever turned loose in a ball park. 출처: Stump, Al (1994). Cobb: A Biography.
[39]
http://www.baseball-reference.com/players/gl.cgi?id=johnswa01&t=p&year=0&post=1
[40]
http://www.espn.com/blog/sweetspot/post/_/id/18091/important-delays-in-world-series-history
[41]
https://www.baseball-reference.com/leaders/WAR_def_career.shtml
[42]
이때는 지금과 달라서 그라운드 관리도 형편없었고 글러브도 저질이었다. 게다가 비까지 쏟아져 진창이니 최고의 유격수라도 얼마든지 실책을 할 수 있었다.
[43]
그런데 정작 MVP를 수상한 1925년엔 bWAR이 겨우 2.6로 급락했지만 나머지 5-6점대 경쟁자들을 제치고 받았다. 아무리 WAR 측정법이 없던 시기였어도 의외인데, 약팀 세네터스가 2연속 아메리칸 리그를 우승한 게 컸을 거라고 추정된다.
[44]
오히려 놀란 라이언은 가장 화려한 투수로 꼽았다.
[45]
순둥이로만 알려져있지만 엄연히 그 살벌한 100년전 MLB에서 군림한 선수다. 당연히 이 정도 성깔은 있었던 것이다.
[46]
역대 최저 WHIP 기록(0.968)의 보유자로,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다.
[47]
https://sabr.org/bioproj/person/0e5ca45c
[48]
통산 타율 .309, 통산 안타 2,961의 외야수. 통산 309 3루타로 역대 최다 3루타 기록 보유자이자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하게 300개 이상의 3루타를 쳤던 선수. 1957년에 명예의 전당 입성.
[49]
크로포드도 베테랑 위원회로 HOF에 입성했을지언정 엄연한 명전 멤버지만 타이 콥은 역대 최상위권에서 노는 선수이다. 커리어 WAR도 크로포드와 두 배 차이가 난다.
[50]
Joe Martin to Robert J. Donovan, My First Fifty Years in Politics, p. 24 (New York City: McGraw-Hill Book Company, Inc., 1960), 261 pp. Library of Congress No. 60-150012
[51]
참고로
원 클럽 플레이어만 포함한 목록이라
돈 서튼같은 투수들은 생략. 이 때문에 커쇼를 돋보이기 위해 만든 목록이라며 항의하는 반응들이 꽤 있다. 다만 원팀 커리어 승으로 확대해도 존슨이 넘사벽 1위다.
[52]
참고로 해당 리스트가 만들어진 시점에는 아직 200승이 아니었기에 리스트에 없었지만
애덤 웨인라이트 또한 2023 시즌에 5승을 추가해 원 클럽 플레이어 200승 대열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