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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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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아산업-기아자동차 실업농구단 시절 (1986~1997)2.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97 ~ 2001)
2.1. 1997 시즌2.2. 1997-98 시즌2.3. 1998-99 시즌2.4. 1999-2000 시즌2.5. 2000-01 시즌
3.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2001 ~ 2004)
3.1. 부산을 떠나 울산으로
4.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4 ~ 2017)
4.1. 2004-05 시즌4.2. 2005 ~ 2010
4.2.1. 2005-06 시즌4.2.2. 2006-07 시즌4.2.3. 2007-08 시즌4.2.4. 2008-09 시즌4.2.5. 2009-10 시즌4.2.6. 평가
4.3. 2010 ~ 2012
4.3.1. 2010-11 시즌4.3.2. 2011-12 시즌
4.4. 2012 ~ 2015
4.4.1. 2012-13 시즌4.4.2. 2013-14 시즌4.4.3. 2014-15 시즌4.4.4. 평가
4.5. 2015-16 시즌
4.5.1. 2015-16 시즌 선수단
4.6. 2016-17 시즌
4.6.1. 2016-17 시즌 선수단
5.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2017 ~ )
5.1. 2017-18 시즌
5.1.1. 2017-18 시즌 선수단
5.2. 2018-19 시즌5.3. 2019-20 시즌5.4. 2020-21 시즌5.5. 2021-22 시즌5.6. 2022-23 시즌5.7. 2023-24 시즌

1. 기아산업-기아자동차 실업농구단 시절 (1986~1997)

프로농구 출범 이전에는 기아자동차 농구단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남자 실업농구계를 그야말로 씹어먹은 팀으로 유명했다.

창단 당시에는 회사명이 기아산업이어서 기아산업 농구단으로 출발했다. 구단이 대한농구협회에 등록된 것은 1985년 11월이었는데 당시에는 중앙대 농구부의 신화를 창조한 정봉섭 감독을 창단 감독으로 스카웃하고 한기범, 유재학, 정덕화 등 당대의 스타 선수들을 모아서 팀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정봉섭 감독이 국제대회 출전 중 취재 중이던 기자를 폭행한 사실로 징계를 받은 탓에 기아행이 무산됐다. 결국 방열 현대 농구단 감독을 기아 농구단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1986년 3월에 팀을 공식 창단했다.

기아 농구단의 위용이 본격화된 것은 1987년부터였다. 당시 기아는 현대를 물리치고 1987-88 농구대잔치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듬해 대회인 1988-89 농구대잔치에서는 슈퍼스타 허재를 앞세워 창단 첫 우승의 쾌거를 이룩하면서 왕조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이후 기아는 허재, 강동희, 김유택, 김영만 등 스타 선수들의 조합과 최인선 감독의 지도력이 더해지면서 무려 7번이나 농구대잔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특히 1988-89, 1989-90, 1990-91, 1991-92, 1992-93년 대회까지는 농구대잔치 5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썼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기아자동차 실업 농구단을 프로로 전환하기로 한다.

2.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97 ~ 2001)

파일: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로고.svg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Pusan Kia Enterprise

2.1. 1997 시즌

프로 팀으로 창단한 후 원년 시즌이었던 1997 시즌 정규리그 1위로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해 원주 나래 블루버드를 4승 1패로 꺾고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1]

9월 5일에 용인 구성면 보정리에 있는, 연수원 부지 1만2천5백평을 대한생명(한화생명의 전신)이 인수한다는 기사가 있었다(한국경제신문 문희수 기자, 1997년 9월 5일). 이 부지는 드림 파크(Dream Park)라는 이름으로, 한화생명 연수원으로 쓰이고 있다. 훗날 여자배구의 신생 구단 광주 페퍼저축은행 배구단이 드림파크에서 숙식과 훈련을 해결한다.

2.2. 1997-98 시즌

1997-98 시즌에는 정규리그 3위로 마쳤으나 정규리그 2위였던 LG를 따돌리고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대전 현대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쳤다.[2]

시즌 후 최인선 감독은 기술고문으로 추대됐고, 박인규 코치가 새롭게 사령탑에 앉았다.

2.3. 1998-99 시즌

그러나 1998-99 시즌을 앞두고 허재가 팀과 불화를 일으키며 당시 지명만 해 뒀던 데릭 존슨을 끼워서 제이슨 윌리포드, 정인교와 2:2 트레이드로 나래로 떠나게 되었고,[3] 이때쯤 모기업인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에 인수되는 등 시즌을 앞두고 뒤숭숭한 소식만 들려오게 되었다.[4] 하지만 그게 다 일단락되고 보니 PG 강동희, SG 정인교, SF 김영만, PF 제이슨 윌리포드[5], C 클리프 리드라는, 개사기 정도가 아니라 치트 수준(...)의 팀이 완성되었고,[6] 정규리그 2위를 차지. 3년 연속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현대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 시즌을 정리해 보면 젊은 감독이 늙은 팀을 맡은 것이 준우승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김영만을 제외한 강동희, 정인교, 그 외 벤치 멤버들이 나이가 많이 들어 시즌 후반에 체력적인 안배가 필요했는데, 젊은 박인규 감독은 시즌 막판까지 주전들을 활용하여 경기를 했고, 결국 결승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또한 허재의 공백으로 팀의 명확한 중심점이 없다는 것 역시 정신적으로 흔들리게 된 원인. 다만 노장들과 스타들을 잘 활용하여 팀을 결승까지 끌고 간 것은 박인규 감독의 기량이므로 노련미가 부족했지 무능은 아니었다.

2.4. 1999-2000 시즌

1999-2000 시즌을 앞두고 박인규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후임 감독으로 농구계의 검은 손 박수교가 취임하며, 용병을 전원 교체했다. 토시로 저머니와 존 와센버그[7]로 재편을 한 이 시즌의 성적은 간신히 정규리그 6위였고, 팀은 그대로 6강 플레이오프 1회전 탈락.

2.5. 2000-01 시즌

기아자동차의 이름으로 치른 마지막 시즌이자 부산광역시를 연고지로 했던 마지막 시즌. 팀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며 정규리그 9위라는 처참한 기록을 내고 말았다. 특히 용병 센터였던 듀안 스펜서는 박수교 감독과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시즌 막판 박수교 감독과 벤치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등(...) 깽판을 치다가 그대로 퇴출되고 말았다.

시즌 종료 후인 2001년 4월 11일, 사직체육관 임대료 문제, 그리고 부산광역시의 체육관 유지보수 비협조 등으로 인해 연고지를 울산광역시로 옮겼다. 그래서 이후 현대모비스에 인수되기 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울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라는 팀명으로 잠시 존속하기도 했다. #

3.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2001 ~ 2004)

파일: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로고.svg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Ulsan Mobis Automons

3.1. 부산을 떠나 울산으로

그러나 그 이후 현대자동차그룹이 프로야구단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게 되어 KIA 타이거즈로 팀 명칭을 바꾸게 됨과 동시에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자동차 부품 전문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로 구단이 이관되어[8][9] 기아자동차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기아 농구단은 농구대잔치 시절 기아 왕조라는 이름과 더불어 원년 우승의 위업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10] 2001년 9월 1일부로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출범했다.

하지만 연고지 이전, 모기업 및 팀명 변경까지 모자라 모비스로 재출범하는 과정에서 부임한 새로운 프런트는 과거 기아 시절 색채를 지우겠다고 여러 삽질을 거듭했다. 강동희, 김영만 등 기아 시절부터 팀을 지켜온 주축 선수들을 정리했고, 기아에서 은퇴 후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뒤 코치로 활동 예정이었던 팀 레전드 김유택도 이 때 내쳐졌다. 당연히 기아 시절부터 응원해왔던 팬들의 반발을 샀고 이 중 일부 팬들이 이탈해나갔다.[11]
파일:OOjfhLN.jpg

울산광역시로 연고지를 옮겼던 결정적인 이유는 부산광역시의 미비한 지원 탓이었다. 당시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던 사직실내체육관의 경우, 농구 시즌인 한겨울에도 난방조차 제대로 틀어주지 않는 등 지원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았다.[12] 이로 인해 기아 선수들은 체육관 시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모비스로 바뀌면서 부산 연고 농구 팀이 없다가 2003년 코리아텐더가 여수시에서 부산광역시로 연고지를 옮기고 KTF에 인수된 이후 한동안은 금정체육관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했다.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로 창단한 첫 시즌인 2001-02 시즌에는 결국 꼴찌를 하고 말았으나[13] 2002-03 시즌에는 6강 플레이오프에 들며 기대를 품게 했다. 허나 2003-04 시즌에 다시 꼴찌[14] 이후 기아 농구단 출신이자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감독이었던 유재학 감독을 영입하고, 2003-04 시즌에 전주 KCC 이지스와의 용병 임대 트레이드 (R.F. 바셋 - 무스타파 호프) 조건으로 받은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해 양동근을 전체 1순위로 지명하는 등 의욕적으로 시즌을 맞이했다. 이 때 팀명도 오토몬스에서 피버스로 바꿨다.

4.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4 ~ 2017)

파일:울산 모비스 피버스 엠블럼.svg
울산 모비스 피버스
Ulsan Mobis Phoebus

4.1. 2004-05 시즌

팀명을 바꾸고 맞이한 첫 시즌이자 유재학 감독 부임 첫 해인 2004-05 시즌. 동시에 양동근의 프로 무대 데뷔 시즌이기도 했다. 7위로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은 실패했지만 양동근이 신인상을 수상하며, 오토몬스 시절의 암흑기를 벗어나 명가 재건의 희망을 확인했던 시즌이기도 했다.

4.2. 2005 ~ 2010

4.2.1. 2005-06 시즌

2005-06 시즌 전에는 전 시즌과는 달리 희망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유재학 감독이 팀을 맡아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전술이 팀에 녹아들었고 양동근, 김동우, 우지원 등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크리스 윌리엄스라는 용병에이스도 얻어 희망적인 시즌 성적이 예상되었다. 2005-06 시즌에는 삼성, 동부와 엎치락덮치락하다가 양동근과 크리스 윌리엄스의 맹활약으로 막판 6연승을 포함, 8승 1패를 기록하여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다.[15] 논란이 있지만 양동근은 서장훈과 정규시즌 MVP를 공동으로 수상했다. 시즌 성적은 36승 18패.

상대전적 열세였던 5위팀 KCC를 3승 1패로 제압하고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으나 서울 삼성 썬더스챔피언결정전 사상 최초로 0승 4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이때 당한 것은 7년 후 서울 SK와 원주 동부에게 그대로 돌려주었고, 삼성에게는 KBL 역대 특정 팀 상대 최다 연승 기록을 세우면서 되갚아주었다. 가드 및 용병 매치업은 나쁘지 않았으나 서장훈을 막을 수비수가 이창수밖에 없었으며, 경험 부족도 한몫했다.[16] 이 시기 원정 유니폼은 진한 파랑색 바탕에 붉은 불새 이미지가 그려져 있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스윕을 당하기는 했지만 유재학 감독 부임 이후 첫 정규리그 우승으로 유재학 감독으로서도, 팀의 중심선수였던 양동근으로서도 한단계 발전의 계기가 된 시즌이었고 실제로 유재학 감독도 이번 시즌에 대해 지금 부족한 점을 다음에 더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감을 말했다.

4.2.2. 2006-07 시즌

시즌 전에는 당연 우승 후보 1순위로 주목을 받았는데, 크리스 윌리엄스가 건재하고 양동근이 발전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비록 개막 3연패를 하면서 초반에 삐끗하나 싶었지만 2라운드에서 미친 상승세로 시즌 성적은 전 시즌과 똑같은 36승 18패. 이후 오리온스를 3연승으로 승리,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부산 KTF 매직윙스(現 부산 kt 소닉붐)를 3승 1패로 앞서가다가 5,6차전을 내줬고 간신히 7차전에서 승리,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통합우승을 이루며 다시 한번 우승한다. 양동근은 플레이오프 MVP 수상. 2006-07 시즌 우승으로 작년 통한의 플레이오프 준우승을 이겨내고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양동근은 점점 안정된 리딩이 장착되었고 부족한면은 크리스 윌리엄스가 채워주며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우지원이 주전에서 내려와 식스맨으로서 팀에 공헌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했던 장면.[17][18]

4.2.3. 2007-08 시즌

2007-08 시즌에는 양동근, 김동우 등 주전 선수들의 군입대와 외국인 선수 선발 실패가 겹치면서 14승 40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9위에 머물렀다.[19] 이 때 뛰었던 키나 영과 케빈 오웬스는 부진한 플레이로 인해 각각 나영이, 오 웬수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 시즌에 1라운드 10픽으로 뽑은 신인 함지훈을 발굴하며 팀의 미래로 키워내는데 성공했다.[20] 여담이지만 박기량 치어리더가 이 시즌 모비스를 통해 치어리더 데뷔하였다.

4.2.4. 2008-09 시즌

시즌 전에는 전망은 크게 좋지는 않았다. 양동근은 시즌 말미에 복귀하고 아직 퍼즐들이 완성되지않았다라는게 중론이었다. 그나마 브라이언 던스톤조차도 대학 졸업이후 첫 프로라는 점으로 인해 용병에서도 밀릴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정규시즌 시작이후 꾸준히 상위권에 진입했다. 김현중이 제 역할을 잘해줬으며[21] 김효범이 포텐셜이 완전히 폭발하여 페이스업, 장거리포, 돌파 등 팀의 주포로서 완벽하게 능력을 개화하여 전성기 시작을 알린 해가 되었다. 브라이언 던스톤도 블록슛을 앞세워 골밑에서 밀리지않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함지훈도 쿼터제를 이용하여 출전 시간동안 용병급 존재감을 보여줬다. 덕분에 팀은 막판 6연승으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다만 역대 1등 팀 중에서 역대 최악의 승률이었던 점은 넘어가자.(35승 19패)[22][23] 하지만 플레이오프 4강에서 또다시 서울 삼성 썬더스에 1승 3패로 패해 정규리그 우승팀이 플레이오프 결승이라 할 수 있는 KBL 챔피언결정전에 못 올라가는[24] 최초의 사례를 만들기도 하였다. 정규시즌 말미에 김현중과 오다티 블랭슨이 시즌아웃 부상을 입은 것이 치명적이었다. 김효범이 시리즈 내내 맹활약을 했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팀을 승리로 이끌기가 힘들었다. 플레이오프 결승전 진출은 실패했지만 김효범이 성장하여 팀의 에이스 카드가 된점은 유재학 감독에게 상당한 도움이 된 시즌이며 함지훈 역시 다음 시즌 풀타임 주축으로서의 도약을 준비하는 시즌이 되었다.

참고로, 6위 전자랜드, 심지어 9위 오리온스에 2승 4패로 상대전적 열세였다.(...)[25] 반면, KT&G에 6경기를 모두 승리해서 KT&G가 29승 25패를 하고도 7위로 떨어뜨린 작은 원인을 제공했다.
또한 이 시즌에 모비스는 kbl이 정한 연봉총액 샐러리캡 하한선 70%를 지키지 못해 kbl로부터 특별 관리 받으면서 시즌을 치러야 했다

4.2.5. 2009-10 시즌

2009-10 시즌을 앞두고 양동근이 제대를 하며 팀에 합류, 양동근-김효범-백업 선수-함지훈-던스톤 이라는 후덜덜한 라인업이 완성됐다. 특히 공격력, 수비력, 3점, 돌파, 리딩 등 모든 면에서 약점을 찾기 힘든 양동근, 김효범의 백코트는 말 그대로 상대 백코트를 밀어버렸다.[26] 또한 함지훈과 던스톤의 프론트코트 역시도 상대팀에게 엄청난 압박을 선보였으며 그 중에 함지훈은 팀의 1옵션으로 맹활약하며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대체용병으로 데려온 애런 헤인즈도 경기가 안 풀릴 때마다 교체 선수로 들어와 뛰어난 득점력으로 빈틈을 메꿔주었다. 전년도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엔 실패 했지만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던 팀에 이렇게 날개가 달리면서 2007년에 이어 다시 한번 정규리그 2연패에 성공했다. 참고로 kt와 승률이 동률(40승 14패)이었고 상대전적도 동률이었지만 득실차 우위로 순위가 갈렸다. 결국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여 전주 KCC 이지스와 맞붙어 4승 2패로 통합우승을 차지하였다. 함지훈은 정규시즌에 이어 플레이오프 MVP까지 수상했다. 이 시기 원정 유니폼은 빨간 바탕에 금색 테두리. 그런데 2009-10 시즌을 끝내고 함지훈이 입대했다. 덕분에 유재학 감독은 다음 시즌 함지훈과 던스톤없이 시즌 준비를 해야하는 상황에 놓여버렸다.

4.2.6. 평가

1차 전성기는 1차우승과 2차우승으로 나눌 수 있다. 양동근, 크리스 윌리엄스가 주축이 된 2005-2007 시즌, 양동근, 함지훈, 김효범, 브라이언 던스톤이 중심이 된 2008-2010 시즌이 있다. 특히 5년동안 무려 4번의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만큼 장기전에선 안정적인 경기력을 꾸준히 보여줬었는데 1차땐 크리스 윌리엄스가 골밑에서 공격하며 비어있는 선수들에게 볼을 배급해주었고 이때 양동근은 역시도 슈팅가드로서의 롤을 많이 맡았다. 2차땐 양동근은 완벽한 포인트가드였으며 함지훈, 던스톤이 1~2 옵션으로 골밑이 비중이 커졌고 경기가 안풀릴때 김효범을 해결사로 두어 해결시켰다. 다만 4번의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지만 KBL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가지 못한 시즌도 있었고 2006년엔 삼성에게 스윕당하는 등 큰 경기에서의 경기력은 좋았다라고 하기는 힘들다. 2007년 우승도 7차전의 대접전이었고 정규시즌 우승팀임에도 결승전에 못간 2009년은 말할것도 없다.

4.3. 2010 ~ 2012

4.3.1. 2010-11 시즌

2010-11 시즌 시작과 동시에 유재학 감독 및 양동근이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 차출되며 임근배 코치가 팀을 맡아 지휘했지만, 용병 쪽박 및 전년도 대비 떨어진 팀 전력으로 인해 한동안 신나게 꼴찌를 달리다가, 같이 막장을 달리던 대구 오리온스 인삼공사가 계속 나가 떨어졌고, 중간에 5연승을 하는 분전 덕에 2011년에는 SK와 승률이 동률이지만 상대전적 1승 5패로 밀려 8위를 마크했다. 이 시즌 원정 유니폼이 또 바뀌었는데, 연한 하늘색으로 타 팀과는 차별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4.3.2. 2011-12 시즌

2011-12 시즌 초에는 알렉산더 존슨 원맨팀인 SK, 6강 단골 LG 등과 치열한 6강 경쟁을 했으나,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체력 저하로 말콤 토마스가 퇴출된 뒤 용병 테렌스 레더가 합류하고, 시즌 막판에는 함지훈이 제대하면서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모했다. 42경기를 치른 5라운드 중반까지만 해도 3연승도 못하던 팀이[27] 5라운드 막판부터 7연승을 구가하며 2월 16일자로 6강을 확정한 뒤, kt와 만나려는[28]전자랜드마저도 제치고 5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4위 KCC와 5판 3선승제 6강을 치렀다. 시즌 전체적으로 KCC의 높이에 고전했던 모비스였는데 이 6강 시리즈에서는 오히려 모비스의 레더-함지훈 조합이 KCC의 왓킨스-하승진 센터라인을 역으로 농락해버렸다. 다만 시리즈의 스윕 자체는 KCC 가드 전태풍이 부상으로 이탈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4강의 상대는 정규리그 1위 동부였는데, 매치업 상 열세로 지적된 김동우(vs윤호영)의 구멍을 막지 못하고 첫 경기는 땄지만 내리 3연패로 탈락, 그 결과 1승 3패로 시리즈를 내줬다. 다만 함지훈이 김주성을 상대로 포스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경기에서 동부가 크게 고전했는데, 노출된 이 김주성의 구멍을 극대화하여 결승에서 KGC인삼공사가 동부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게 된다.

모비스는 이 시즌에 시즌 초 고전을 했으나 결국 1위와 플레이오프에서 맞붙는 드라마틱한 시즌을 보냈고, 결국 이 때의 경험은 울산 모비스 왕조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4.4. 2012 ~ 2015

4.4.1. 2012-13 시즌

2012-13 시즌 준비과정에서 전력이 더욱 상승했다. 혼혈 드래프트에서 문태영을 지명했고, 가드진에선 특급신인 김시래가 합류하며 모비스 역대 최강의 전력을 구축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만 설자리를 잃은 팀의 프랜차이즈(?) 김동우가 SK로 이적하였다.

비록 고질적인 외곽 3점슛 부재에 시달리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공격과 수비 모두 준수한 성적을 내며 2위 자리를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위가 워낙 막강해서 3월 7일에 SK를 이기고 4강 PO 직행을 확정하는 등 끈질기게 추격했으나 결국 3월 9일에 모비스는 최후의 발악 동부전을 승리했지만 SK도 KCC에 이기면서 모비스는 2위를 확정했다. 모비스는 2위 못박고 SK는 홈에서 우승 못하고[29] SK가 정규시즌에 워낙 독주해서 그렇지 모비스도 평범한 시즌이었다면 1위을 했을 성적이었다.

그러나 12일 삼성과의 맞대결에서는 4쿼터 동안 98점을 득점하였고 14일 kt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여 팀 창단 이후 최다 연승인 11연승을 기록하는 등 신기록 행진을 이어나가며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전자랜드와의 맞대결에서도 초반에 끌려가다가 90-71로 대역전승을 거두며 연승으로 시즌을 마쳤다. 최종 성적은 41승 13패. 이 팀만 아니었으면... 4강에서의 상대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상대전적은 3승 3패에 득실마진도 0으로 팽팽하고, 리카르도 라틀리프- 로드 벤슨의 용병조합이 포웰-카스토보다는 조금 앞서지만 모비스가 시즌 내내 슈터 부재에 시달린 걸 감안하면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는 페이크고 3전 전승을 거두며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1위였던 SK를 상대로 내리 네 경기를 이기며 2009-10 시즌 이후 3년만에 우승을 달성했다. 최종순위가 모비스 1위, SK 2위가 아닌건 함정 모비스는 PO에서 역대 두 번째로 7전 전승 우승을 거두면서 확실한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1월에 LG와 있었던 로드 벤슨 트레이드의 모비스 측 조건이 3년간 1라운드 신인픽 or 김시래였는데 LG가 김시래를 선택한것에 따라서 4월 18일(우승 다음날)자로 김시래가 LG로 트레이드 되었다.

4.4.2. 2013-14 시즌

비록 김시래가 LG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2012-13 시즌 KBL 챔피언결정전의 승리를 이끈 용병인 로드 벤슨과 준수한 센터인 리카르도 라틀리프, 아직도 건재한 양동근, 한참 전성기인 함지훈과 모비스의 팀컬러에 녹아든 문태영이 존재했고, 백업 빅맨을 제외하면 수준급의 뎁스를 갖추었기 때문에 2013-14 시즌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전문가와 팬들 모두에게 꼽혔다.

이후 개막 2연전을 서울 삼성 썬더스 부산 kt 소닉붐을 맞아 내리 2연승을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10월 15일 KCC와의 전주 원정, 그 유명한 이게 불낙이야?가 나온 경기에서 58:101로 승리하며 역대 최다 점수차 승리와 시즌 16연승[30]으로 최다연승 타이 기록을 만들어냈다. 10월 19일 오리온스전에서 마침내 17연승을 이루어냈으나... 10월 23일 안양 KGC인삼공사의 13-14 시즌 첫 승의 제물이 되면서(...) 거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고춧가루를 얻어맞았다.

그 경기를 시작으로 전자랜드와 SK에 패배하면서 3연패를 했으나, 다시 4연승을 달리면서 2위로 상승했다. 그렇지만 주전 포인트가드 양동근의 부상은 팀에 있어서 우려될 부분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대성의 등장으로 그 공백을 최소화했으며 양동근이 돌아온 이후에도 선두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받쳐줄 식스 맨들의 부족과 SK전 열세[31]는 약점으로 꼽히지만 삼성과 동부, kt를 2시즌 동안 호구로 잡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선두권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1월 30일 SK를 상대로 연장승부 끝에 97:85로 이기며[32] 단독선두가 되었으며 2월 1일 LG에게도 승리하면서 단독 선두를 유지했다. 다만 앞에서도 말했듯 SK와 상대전적이 1승 4패이기 때문에 만약 공동 1위로 동률이 되면 2위로 시즌을 마치기 때문에 승수 쌓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5라운드까지 SK, 모비스가 32승 13패, LG가 31승 14패로 1위를 경쟁하고 있었다. 그러다 2월 22일 SK와 다시 연장 접전 끝에 이기면서 단독 선두가 되었다. 그 이후 SK가 나가떨어지고 팀이 10연승을 하면서 3위로 떨어질 우려는 하지 않게 되었으나 LG 역시 갑자기 11연승을 하게 되자 정규시즌 우승의 분수령이었던 3월 7일 LG와의 홈경기에서 4점차 이내로 져야 할 것을 13점차로 패하면서 상대전적이 3승 3패가 되었고 득실차로 인해 LG가 최종전을 지기를 바래야하는 상황이 되었고, 3월 9일에 벌어진 최종전에서 KCC에게 대승을 거두었지만 LG도 kt를 이기면서 13연승에 성공하여 2년 연속 정규시즌 준우승을 기록했다.

2위로 직행한 플레이오프에선 3위 SK를 맞아 울산 2차전서 큰 리드를 날려먹고 역전패하긴 했으나 기본적인 전력의 우위를 앞세워 3승 1패로 비교적 무난하게 챔프전에 진출하였다. 다만 상대인 LG는 경험부족 따위 개나 주라는 듯 kt 상대로 3연승으로 진출한지라[33] 휴식을 더 많이 취했고, 정규리그에서도 3승 3패로 팽팽했던지라 승부는 오리무중이 될 전망. 발목을 다쳐 플레이오프에서 아직까지 못나오고 있는 이대성의 출장도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1차전을 3점차로 이기고 2, 3차전을 내주었지만 문태종 데이본 제퍼슨에 대한 파해법을 찾아내 4차전을 대승으로 가져갔고, 로드 벤슨이 5차전, 이대성이 6차전 막판 결정적인 자유투를 성공시키며 2연패에 성공했다. 이 2연패는 전주 KCC 이지스가 대전 현대 다이냇이었던 1997-98 ~ 1998-99 시즌 연속 통합우승 이후 2번째이며, 감독인 유재학 또한 신선우의 뒤를 이어 2연패를 이룬 두 번째 감독이 되었다. 2012-13 시즌의 데자뷰

2013-2014 시즌 정규리그 상대전적은 상위권팀 3위 SK 2승 4패 열세, 1위 LG 3승 3패 동률을 기록했으며, 중위권팀 5위 KT 6승 압살, 4위 전자랜드 5승 1패 절대 우세, 6위 오리온스 3승 3패 동률을 기록했으며, 하위권팀 8위 삼성 6승 압살, 7위 KCC, 9위 KGC, 10위 동부에게는 5승 1패로 절대 우세를 기록했다. 특이점은 상위권팀, 6위 오리온스에게는 고전했으나 나머지 중하위권팀들을 압살(삼성, KT에게는 6승)하면서 승수를 쌓은 시즌이었다. 1위 LG한테는 승패, 상대전적 동률이었으나 공방률에서 밀리면서 아쉽게 정규리그 준우승에 그쳤다. 그래도 결과는 챔피언결정전 2연패

4.4.3. 2014-15 시즌

시즌을 앞두고 함지훈, 박구영과 재계약을 큰 잡음없이 끝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로드 벤슨이 몸 관리 부실, 코치진과의 마찰로 퇴출되고 대체용병으로 아이라 클라크를 데려왔다. 이후 신인 드래프트에서 10순위로 한때 로터리픽 지명감으로도 뽑힐수 있다던 경희대의 포워드 배수용과 11순위로 명지대 김수찬을 지명했다. 팬들은 모비스와 유재학 감독이 함지훈을 A급 빅맨으로 키워낸 전력이 있기에 배수용과 김수찬에게도 나름 기대를 거는중. 하지만 로드 벤슨이 갑자기 퇴출된지라 조직력과 높이에 대한 우려가 있다. 개막전에서 창원 LG 세이커스에게 1점차로 패배했지만 이후로 KGC와 KCC, SK를 꺾으며 3연승을 달렸다. 이대성의 부상 장기화와 함지훈의 부상에도 일단 나쁘지 않은 모습. 그리고 초반 8연승을 달리던 오리온스가 주춤하자 1위로 올라섰고, 11연승까지 기록하며 2라운드까지 무려 15승 3패, 12월 5일 기준 18승 4패를 찍으며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번시즌 모비스 경기에서 특기할만한 사항이 하나있는데, 바로 이기든 지든 계속 골을 넣으려고 하는거다. 이기고있으면 점수차를 더 크게 벌리려고 가비지타임에도 후보들이 계속 슛을 시도하고, 지고있을때면 정반대로 실점차를 줄이려고 슛을 시도한다. 이유가 지난시즌에서 골득실차로 크게 피본기억이 있기때문에 올시즌에는 골득실차에서 손해를 안보려고 달려드는 셈. 이런 방식을 라이트팬들은 좋아했지만 농구계나 일부 골수팬들에게서 경기 과열로인한 부상우려, 이미 승부가 갈렸는데도 확인사살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2월 7일 동부전에서는 송창용의 활약으로 87-73으로 승리했지만 문태영이 테크니컬 파울로 인한 퇴장을 당하면서 문태영의 감정 조절이 이번 시즌의 큰 변수가 될 듯하다. 12월 10일 kt에게 70-67로 승리하면서 제일 먼저 20승에 선착했다. 하지만 12월 13일 KGC에게 67-80으로 패했고, 12월 15일 오리온스에게 70-79로 패하면서 시즌 첫 연패를 당했다. 하지만 12월 17일 SK에게 89-88로 승리하면서 연패에서 탈출했다. 이날 경기 4쿼터 막판 1점차 리드 상황에서 전준범이 하지 말아야 할 파울을 하면서 추가 자유투를 내주었는데, 다행히 애런 헤인즈가 이를 놓치면서 연장전으로 가지 않고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덕분에 전준범은 한 숨 돌렸지만 경기 후 유재학 감독에게 혼이 빠져나가도록 엄청 혼났다고 한다. 12월 21일 KCC전은 87-78로 승리했고, 12월 25일 LG전은 접전 끝에 102-97로 승리했다. 12월 27일 SK와의 리턴매치에서도 80-70으로 승리했고, 12월 31일 오리온스도 86-79로 잡으면서 5연승을 달렸다. 하지만 2015년 1월 2일 전자랜드에게 68-72로 1월 5일 kt에게 62-76으로 패하면서 kt전 12연승이 중단되었고 전반기를 2연패로 마쳤다. 전반기 성적은 25승 8패로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 연패에 빠지면서 2위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후반기 첫 경기였던 1월 13일 삼성전에서는 양동근의 활약으로 100-75의 25점차 완승을 거두면서 공동 1위 자리로 올라섰다. 하지만 1월 15일 동부에게 59-67로 패하면서 2위 자리로 내려갔고 2014-15 시즌 동부전 첫 패배를 기록했다. 하지만 1월 17일 KGC에 86-73으로 승리하여 27승 9패로 4라운드를 마감했고, 1월 22일 SK를 80-75로 잡으면서 다시 선두로 복귀했다. 1월 25일 전자랜드에게 90-66 완승을 거뒀지만 테렌스 레더의 테크니컬 파울에 대한 판정 시비로 얼룩진 경기였다. 그러다가 1월 27일 LG에게 74-81로 패하면서 2위로 내려앉았다. 1월 30일 KGC에게도 65-72로 지면서 2연패에 빠졌다. 1월 말 기준으로 SK에게 1경기 차로 뒤져있지만 상대전적에서 4승을 따내 우위에 있기 때문에 선두 경쟁은 여전히 안갯속에 싸여 있다. 과연 정규리그 우승과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동시에 하는 통합 우승을 5시즌만에 재현할 수 있을 것인지가 팬들에게 관심사가 되고 있다. 2월 1일 KCC에게 90-79로 승리하면서 연패를 끊었고, 2월 3일 오리온스에게 80-69로 승리했고, 2월 5일 kt전에서는 양동근의 역전 3점슛으로 92-91 역전승을 거두면서 공동 1위를 차지했고, 2월 8일에 삼성한테 80-57로 승리해 삼성전 19연승을 달성하면서 1위를 탈환했다. 하지만 2월 10일 동부에게 67-76으로 패하면서 동부의 추격을 받았다. 2월 13일에는 접전 끝에 KCC에게 78-76 2점차로 신승했고, 2월 15일에는 SK에 70-60으로 승리하면서 유재학 감독에게 500승을 선물하였다. 하지만 2월 19일 LG전에서는 4쿼터 문태종의 활약을 막지 못하고 72-77로 역전패를 당했고, 2월 21일 오리온스에게 71-80으로 패하며 2연패에 빠지면서 동부에게 공동 1위 자리를 내줬다. 운명의 1위 결정전이었던 2월 23일 동부전에서 양동근의 활약으로 동부를 82-73으로 이기면서 다시 단독 1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동부와의 상대전적에서도 4승 2패로 앞서면서 사실상 우승에 한 걸음 다가섰다. 하지만 2월 25일 하위권 KGC에게 57-81으로 대패하면서 위기감이 잠시 고조되었으나 2월 28일에는 보약삼성에게 85-52 대승을 거두면서 매직넘버를 1까지 줄였고 3월 1일 동부가 SK에게 패해면서 원주 동부 프로미의 추격을 뿌리치고 5년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3월 2일 전자랜드전은 74-66 승리, 3월 5일 최종전 kt전도 87-79로 승리하면서 39승 15패 1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kt전 종료 후 정규리그 우승 시상식을 열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지난시즌 챔결 상대인 LG와 다시 매치업이 이루어졌으나 제퍼슨 없는 LG가 끈질기게 5차전까지 끌고가는 접전 끝에 양동근의 활약으로 역사상 4번째로 3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전신 시절을 합치면 18년 만에 원주 동부 프로미를 상대하게 되었다. 상대 동부는 3위 SK를 3대0으로 박살낸 전자랜드와의 5차전 끝에 간신히 3승 2패로 올라와 그래도 휴식에는 이득을 보았다. 일단 홈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1, 2차전을 모두 쓸어담으며 3연패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는데, 2차전에서 전반에 8점차 뒤지던 걸 단 2분만에 뒤집은 퍼포먼스는 동부 선수들에게 멘탈붕괴를 가져다주었다. 원주에서 열린 3차전도 3쿼터에 1점차까지 쫓겼지만 4쿼터에 더 달아나며 3연승을 거두었다. 삼성 라이온즈, 기다려!!

그 뒤 4월 4일, 원주 동부에게 81-73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5년만의 통합 우승과 한국 프로농구 사상 최초 KBL 챔피언결정전 3연패를 달성했다. 양동근은 평균 20득점 4.8어시 4.8리바라는 자신의 챔프전 커리어하이 기록을 35세에 남기며, 생애 2번째 통합 MVP를 받게 된다. 아울러 결승전에서 4전 전승 우승을 2번째 기록했다.

2014-15 시즌 정규리그 상대전적은 상위권팀 3위 SK 5승 1패 절대 우세, 2위 동부 4승 2패 우세, 중위권팀 6위 전자랜드 4승 2패 우세, 4위 LG, 5위 오리온스에게 3승 3패 동률, 하위권팀 9위 KCC, 10위 삼성에게 6승 압살, 7위 KT 5승 1패 절대 우세, 8위 KGC 3승 3패 동률을 기록했다. 특이점으로는 4위 LG, 5위 오리온스, 8위 KGC와 동률을 이루었고, 나머지 팀한테는 우세를 보였다. 하지만 상위권팀 2위 동부, 3위 SK를 상대로 압도하면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2011-12 시즌 KGC에 이어 삼성, SK와의 잠실 원정 6경기에서 모두 승리한 팀이 되었다.

2014-15 시즌을 총평하면 정규리그 3년만의 우승, 챔피언 결정전 3연패로 3년 만의 통합우승. 그것만큼 잘 설명하기 힘든 말은 없을 것이다. LG, 오리온스, KGC에 많이 덜미를 잡혔고 리그 지배력이 예전만은 못했지만 1위 결정전이었던 동부전에서 잡아내는 등 중요할 때 승리를 챙기면서 우승을 할 수 있었다. 모비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문태영은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평균 16.9점 6.3리바운드 득점 국내 1위를 기록하며 국내 에이스 역할을 해줬고 양동근은 평균 11.7점 4.8어시스트 1.8스틸 스틸 1위를 기록하며 나이를 잊은 활약을 펼쳐주었다. 아쉬운 점은 함지훈이 평균 7.3점 4.3리바운드 3.8어시스트로 데뷔 후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외국인 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는 KBL 데뷔 3년만에 메인 용병으로 올라선 후 평균 20.1점 10리바운드 평균 더블더블, 득점 2위, 리바운드 1위, 야투율 1위를 기록하면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로드 벤슨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활약을 보였다. 아이라 클라크는 작년의 혹사노인학대때문인지 평균 5.6점 4리바운드에 그쳤으나 시즌 후반부터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고 챔프전에서 평균 12.5점 5.8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모비스의 3년 만의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시즌 후 2015년 4월 14일 열린 프로농구 시상식에서는 양동근이 MVP,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외국선수상을 수상하면서 MVP, 외국선수상을 석권하는 경사를 이뤄냈다.

4.4.4. 평가

유재학 감독과 양동근, 함지훈이 쌓아놓은 시스템의 힘으로 이룬 최초의 3연패. 사실 정규시즌에는 최고가 아니었다. 서울 SK 나이츠, 창원 LG 세이커스 등 정규시즌에서 모비스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한 팀들이 있었지만 결국 플레이오프에서는 모두 이겨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3연패를 기점으로 양동근은 KBL 최고의 선수 위치를 공고히 했고 유재학 감독 역시 최고의 감독으로 이름을 새겼다. 다만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데, 너무 전성기가 길어진 나머지 이후 세대교체가 늦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34][35] 사실 3연패 기간에도 이대성, 전준범 등의 출전 시간을 늘려왔던 유재학 감독이지만 2012-13 시즌 우승 이후 김시래의 트레이드가 항상 모비스의 영광 뒤에 발목을 잡을 단점으로 남으며 당분간 전력 약화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4.5. 2015-16 시즌

4.5.1. 2015-16 시즌 선수단

2015-16 시즌 울산 모비스 피버스 선수단
감독 유재학
코치 김재훈, 최명도, 성준모
가드 0.박민혁 1. 김종근 3.김주성 6. 양동근 11. 박구영 20.김수찬 24.김영현
포워드 7. 송창용 9. 천대현 12. 함지훈 15. 배수용 17. 전준범 19.류영환 22.박봉진 23. 백인선 30.커스버트 빅터 31.정성호
센터 13.김동량 40. 아이라 클라크
군입대 이지원, 이대성

2014-15 시즌 종료 후 문태영 서울 삼성 썬더스로 이적하였고, 이대성 상무로 입대, 박종천은 은퇴 후 부산 kt 소닉붐의 코치로 합류하는 등 선수 유출이 발생하였다. LG로부터 백인선을 영입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할 전력보강이 없는, 그야말로 리빌딩을 위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10순위 리오 라이온스, 11순위 커스버트 빅터를 선발하였다.

시즌 전 개최된 2015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서는 부산 kt, 동국대, 연세대에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에 올랐으나 대학최강 고려대에 석패하면서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 KBL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한 2015 아시아 프로농구 챔피언십[36] 결승전에서 다시 한번 원주 동부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MVP는 함지훈.
2위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했기 때문에 약 10일간의 휴식 후 3위 오리온-6위 동부의 승자와 4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상대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동부를 3:0으로 꺾고 올라온 고양 오리온. 고양 오리온은 김승현과 피트 마이클이 있던 2006-07 시즌 이후 9년만에 4강 플레이오프에 올라왔는데, 그때도 4강 플레이오프 상대가 모비스였다. 당시 모비스가 오리온을 꺾고 결승에 진출하여 우승에 성공했는데, 고양 오리온 입장에선 9년 전 패배를 설욕할 기회가 오게 된 것.

고양 오리온과의 4강 플레이오프에선 수비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공격력 부재로 인해 결국 3:0으로 스윕을 당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4강 한 경기 평균점수가 65.0점을 기록했을 정도로 공격력에서 심각할 정도의 부진을 보여준 것이 컸다.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에 들어서 재평가를 받고있다. 다름아닌 수비력이 그 재평가인데.. 동부와 KCC가 매경기 90점대에 육박하는 실점을 하게 만든 공포의 포워드 농구 + 용병 원투펀치의 오리온을 상대로 60점대의 실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모비스를 재평가하는 요소가 되어버렸다.[39]

4.6. 2016-17 시즌

4.6.1. 2016-17 시즌 선수단

2016-17 시즌 울산 모비스 피버스 선수단
감독 유재학
코치 김재훈, 최명도, 성준모
가드 3.김주성 6. 양동근 7.김수찬 11. 박구영 23. 이지원 25. 김광철 26.오종균 34. 김효범 43. 이대성
포워드 2.최지훈 4.류영환 12. 함지훈 17. 전준범 20.정성호 22.네이트 밀러[40] 24.박봉진 28.주긴완
센터 9. 유성호 13.김동량 15. 허버트 힐 32. 이종현
군입대 김영현, 배수용

6월 23일부터 연습경기를 시작하였다. 연습경기 일정

10월 3일 신인드래프트 구단 순위 추첨식에서 1순위로 모비스가 걸렸다! 이날의 백미는 1순위가 걸리자 환하게 웃으면서 두손 꽉 쥐고 크게 환호하는 유재학 감독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날 아시아 프로농구 챔피언십에 한국 대표로 모비스와 같이 출전한 KCC가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모비스와 KCC, 웰링턴 세인츠 세 팀이 모두 2승 1패로 동률이 되었지만 결국 골 득실에서 가장 앞선 모비스가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10월 18일 신인드래프트에서는 예상대로 고려대학교 센터 이종현을 1순위로 지명했다. 그리고 2라운드에서는 후지대 오종균을, 3라운드에서는 동국대 김광철을, 마지막 4라운드에서는 명지대 주긴완을 지명했다. 이날 신인드래프트에서 마지막 4라운드까지 모두 선수를 지명한 모비스 유재학 감독과 오리온의 추일승 감독에게 많은 농구팬들이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10월 22일 울산에서 열린 전자랜드와의 개막전에서 팀의 주축인 양동근이 손목부상을 당해 비상이 걸렸다.[41] 거기에다 3쿼터까지 2점차로 박빙이었지만 4쿼터에만 팀이 7득점 22실점을 기록하는 기행을 선보이며 경기도 63:80 17점차로 완패하였다. 23일 서울 삼성 원정에서도 패배하면서 2연패. 단순히 2연패가 문제가 아니라 점수차가 2경기 모두 10점이상일 정도로 거의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다. 호평일색이던 네이트 밀러의 경우 낮은 득점 성공률로 해결사 역할을 전혀 못해주고, 찰스 로드는 2경기 내내 해설위원이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비판을 할 정도로 움직임도 적었고 볼을 그나마 가져도 미들레인지 점퍼만 남발하는 상황이다. 첫 2경기에 불과하지만 리그 최하위권을 걱정해야 할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10월 26일 전주 KCC와의 홈경기에서 4쿼터 막판 맹추격을 펼치며 동점까지 만들었지만 게임종료 17.4초를 남기고 리오 라이온스에게 결승 득점을 허용하며 아쉽게 패했다. 개막 3연패. 10월 29일 창원 LG전에서도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며 대패했다. 전신 기아 시절 포함 팀 역사상 최초 개막 4연패. 심지어 암흑기 시절에도 개막 4연패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보면 큰 충격. 게다가 팀 4연패는 2011년 2월 이후로 무려 5년 8개월만이었다. 용병 교체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네이트 밀러마저 부상으로 4주간 아웃되었다. 결국 지난 시즌 부산 kt에서 뛰었던 마커스 블레이클리를 대체선수로 영입했다.

11월 2일 원주 동부와의 원정경기에서 드디어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비자 문제로 인해 블레이클리가 아직 뛸 수 없어 용병은 찰스 로드 혼자 뛰어야 하기에 어려운 게임이 예상되었으나, 외곽슛이 터지며 경기를 대등하게 끌고갔다. 경기종료 18초를 남기고 찰스 로드의 공격자 파울 및 5반칙 퇴장 이후 공격권을 내줬고 이후 팀 파울로 윤호영에 자유투를 헌납했으나 자유투 1개가 실패했고, 2점 뒤진 모비스의 마지막 공격, 전준범이 경기종료 2초를 남기고 3점슛 성공하며 75-74로 역전, 극적으로 승리하며 개막 4연패 끝에 드디어 시즌 첫승을 따냈다. 이후에는 순조롭게 승수를 쌓으며 중위권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12월 23일 서울 SK와의 홈경기에서 4쿼터에 터진 찰스 로드의 동점 버저비터와 연장전에서 터진 박구영의 역전 버저비터 덕분에 극적으로 승리하였다. 이 경기를 승리하면서 승률 5할을 넘기고(11승 10패), 단독 5위에 올랐다. 시즌 초반의 우려를 돌아보면... 역시 한국농구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은 모비스 걱정이다.

2016년을 12승 12패, 딱 5할로 마치면서 선전한 모비스는 2017년 새해 첫 날 이틀 연전에서 안양 KGC를 상대로 극심한 체력저하를 보이면서 전반 한 때 23점차까지 끌려가는 등 23-41로 뒤졌다. 그러나 3쿼터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네이트 밀러가 3쿼터에만 15점을 퍼부으며 팀이 기록한 31점 중 절반을 쓸어담았다. 모비스는 3쿼터를 무려 31-9로 압도하는 괴력을 발휘하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4쿼터 들어서는 그 반대였다. 득점으로 흥한 자, 득점으로 망하리라 이번에는 반대로 KGC에게 4쿼터에 25점을 허용하고 자신들은 단 9점에 그치면서 결국 63-75로 패배했다. 전준범은 3점슛 8개를 모두 실패하는 등 단 2점에 그쳤다. 1월 4일 창원 LG와의 경기에서도 모비스는 4쿼터 한 때 10점까지 리드했으나, 4쿼터 막판 4분여 동안 단 한 점도 넣지 못하며 73-76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이날 경기로 3연패에 빠졌다.

2017년 1월 7일 서울 삼성과의 홈경기, 영원한 캡틴이라 쓰고 구리구리라 읽는다 양동근이 무려 78일만에 돌아왔다. 거의 두 달 반 만에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양동근은 복귀전에서 13점 6어시스트로 녹슬지 않은 실력을 발휘, 삼성을 78-71로 꺾고 3연패에서 탈출했다. 여세를 이어 이틀 연전이었던 8일 원주 동부와의 경기에서도 73-66으로 승리하며 양동근 복귀 후 2연승을 달렸다.

그러나 이후 1월 11일 안양 KGC와의 경기에서는 양동근이 5점에 그친데 이어 안양 KGC의 키퍼 사익스에게 농락당하고, 찰스 로드가 3쿼터까지 단 7점에 그치는 부진을 보이면서 68-76으로 패배했다. 이어 다음 경기인 인천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도 양동근은 7점 6어시스트에 그치며 아직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듯 했다. 모비스는 전반 한 때 15점차까지 뒤졌다가 3쿼터를 22-7로 압도하며 역전에 성공했으나, 4쿼터에 단 9점에 그치며 60-64로 또다시 역전패를 당했다. 이로써 양댕의 복귀 이후 2승 2패. 그놈의 득점 빈곤이 모비스의 발목을 번번히 붙잡는 모양새다.

2월 안드레 에밋의 복귀와 계약만료로 KCC를 떠나게 된 단신 선수 에릭 와이즈를 영입했는데, 팬들의 예상과 달리 교체 대상이 다름아닌 찰스 로드였다. 이전에 영입하려다 실패한 마커스 블레이클리, 아이라 클라크 재영입을 고려했던 것도 모두 찰스 로드를 교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결국 둘다 실패하자 에릭 와이즈를 선택했고 외국인 선수 규정이 바뀌고 난후 최초로 2명 모두 단신으로 뛰게 되었다.[42] 이종현이 있기 때문이라서?

5라운드에서 6승3패의 성적으로 공동 4위(24승 21패)로 올라섰다. 오리온, LG, KGC에게는 승리했으나 홈에서 kt에 덜미를 잡혔고 하락세를 타고 있던 전자랜드에 또 패배하여 위기가 있었지만 원주 동부에게 승리하여 상대전적 우세를 확정지었다. 다만 여전히 인천 전자랜드에는 아직까지도 단 1승도 못했다. 꼴찌권 kt, KCC, SK도 성공한 전구단 상대 승리를 아직도 못했다 전준범, 이대성의 부상이 향후 모비스의 행보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 단신-단신 조합 탓에 이종현의 체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와이즈를 퇴출하고 허버트 힐을 영입하게 되었다.

3월 3일 전자랜드전에서 드디어 전 구단 상대 승리를 달성했고, 3월 26일 서울 삼성 썬더스와의 시즌 마지막 정규경기에서 111:70으로 대패했다. 더 가관인 것은 전반 스코어가 64:20으로 44점 차이가 났으며 이는 KBL 전반 최다 점수차 패배이다. 이전에 시즌 최다 점수차 패배는 KT의 40점차 패배(77:117 KGC에게 패배, 55:95 모비스에게 패배)의 기록을 넘었다. 28승 26패 4위로 정규시즌을 마감한 뒤 플레이오프에서는 정규시즌 5위 원주 동부 프로미를 3전 전승으로 완파하면서 4강 플레이오프까지 올라갔지만 정규시즌 1위 안양 KGC에게 3전 전패로 물러나면서 이번 시즌을 마무리했다.

5.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2017 ~ )

파일: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엠블럼.svg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Ulsan Hyundai Mobis Phoebus

5.1. 2017-18 시즌

엠블럼을 바꾸고 구단 명칭도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로 바뀌었다.

구단 명칭에 모기업인 현대모비스의 풀네임이 다 삽입되면서, 2001년 대전 현대 걸리버스가 전주 KCC 이지스로 구단 명칭을 바꾼 후 16년 만에 KBL현대라는 이름이 담긴 팀이 다시 등장하게 됐다.[43] 그래도 구단 약칭으로는 계속 울산 모비스가 쓰일 전망이다.

5.1.1. 2017-18 시즌 선수단

2017-18 시즌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선수단
감독 유재학
코치 김재훈, 최명도, 성준모
가드 1. 김동희 2. 김광철 4. 박형철 5. 이정석 6. 양동근 8. 손홍준 9. 박경상 11. 박구영 16.김태형 20.이민영 23. 이지원 25.남영길 43. 이대성
포워드 3.정성호 7.김윤 12. 함지훈 15. 배수용 17. 전준범 22.마커스 블레이클리 24. 레이션 테리
센터 13.김동량 32. 이종현
군입대 김영현, 김수찬

김효범이 은퇴를 선언했고, 이대성이 G리그 드래프트에 도전하게 되면서 공백이 생긴 가드진의 보강이 시급해졌다.
7월 20일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마커스 블레이클리와 애리조나 리드를 지명했다. 지난 시즌에도 단신-단신 조합을 선보였지만 아예 드래프트에서부터 2명의 외국인 선수를 모두 단신으로 뽑은 것은 역대 최초이다. 전 시즌에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이번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기량이 뛰어난 장신 선수들은 대거 불참했고, 시즌이 시작되면 장신 선수를 중심으로 경력자 교체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기사마저 나올 정도이니 이 조합이 시즌 내내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모비스 팬들도 작년에 좋은 활약을 보여준 블레이클리의 지명은 반기는 편이지만 결국 시즌에 돌입하게 되면 두 선수 중 한명은 장신 선수로 교체되지 않겠느냐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결국 애리조나 리드를 방출하고 레이션 테리를 영입한다. 그런데 레이션 테리는 득점력은 좋지만 수비와 몸싸움을 피하는 경향이 있어 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무엇보다 블레이클리와의 조합 때문에 골치 아프다. 둘 중 한 명이 활약하면 한 명이 부진하고, 둘 다 혼자서는 잘하는데, 같이 붙여 놓으면 영 좋지 못한 플레이가 나온다. 올 시즌 모비스는 용병 문제로 골머리 썩고 있다. 심지어 다른 팀들을 모두 한 번도 못 이기는kt에 삼성과 함께 유이하게 패배를 허용하는 그 와중에 팀 성적도 승패를 계속 반복해 5할 언저리에서 놀다가...

이종현의 각성, 레이션 테리의 득점력 폭발, G리그 유학 다녀온 이대성의 복귀, 그리고 기존 레귤러 양동근, 함지훈, 전준범이 돌아가며 활약하고 트레이드로 가세한 박경상까지 적재적소에서 감초 역할을 하며 10연승을 기록, 순식간에 상위권으로 진입해 3강 체제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특히 신년 kt와의 경기에서 양동근의 위닝 샷은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올 시즌 유독 홈에서는 약하고 원정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원정에서 삼성을 상대로 30점차 대승을 했으며, 전주에서 KCC를 압살한데다가 홈 깡패 DB를 상대로 원주에서 진 적이 없다. 반면 울산에서의 홈 경기는 처참한데, 10연승의 기록도 원주 DB에게 홈에서 패하면서 멈추고 말았고, 안드레 에밋 없는 KCC에게 신명나게 털렸고,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는 조쉬 셀비가 3쿼터 막판 부상으로 빠진 와중에 4쿼터에만 0-11로 거하게 털리는 바람에 막판 전자랜드의 개그에도 불구하고 패배.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퐁당퐁당 승패를 반복하는 와중에도 홈에서 지고, 원정에서는 이기는 모습이다. 홈 경기는 3연패가 진행 중...이었다가 LG에게 승리하면서 홈 연패 탈출에 겨우 성공했다.

현대모비스의 이러한 모습에 울산 홈 팬들은 웃픈 상황.(…) 게다가 타 팀 팬들로부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를 원정 깡패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인터뷰를 보면 유재학 감독이나 선수들도 이 점이 꽤나 신경쓰이는지 홈 팬들에게 죄송할따름이라고 항상 말한다. 유재학 감독은 유독 홈 경기때 득점이 안 터진다고 한다.

여담으로 함께 부울경을 대표하는 구단인 창원 LG, 부산 kt와 상성이 특이한데, 현대모비스는 올 시즌 LG를 상대로 진 적이 없는 반면, kt에게는 3승이나 내주었다. 한편으로 LG는 kt에게 진 적이 없다. 정말 특이한 관계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한 시점에서 팀의 핵심 센터 이종현이 아킬레스건 파열로 시즌 아웃되면서 초비상 상태에 놓였지만, 함지훈, 배수용, 이대성이 주축이 되어 이종현의 공백을 채우고 테리와 블레이클리도 리바운드와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세하여 높이는 좀 낮아졌으나, 무시무시한 공격력으로 6연승을 질주하며 SK가 주춤하는 사이에 공동 3위까지 올라왔다.

6라운드가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원주 DB의 정규리그 우승은 거의 확정적이다. 현대모비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고, SK, KCC와 함께 플레이오프 4강 직행이 가능한 정규리그 2위 자리를 놓고 마지막까지 혈투를 벌이게 되었다곤하는데 최근 DB가 이 선수 파문 때문에 흔들리고있어서 이거 설마(...)?했으나, DB에 처참히 발리면서 사실상 SK와 함께 1위는 물 건너 갔다.

9연승이 끊긴 건 그렇다 쳐도 레이션 테리, 박경상을 부상으로 잃은 것이 치명타. 42-29로 앞서간 이후, 24분동안 꼴랑 17득점에 그쳤다. 결국 3, 4쿼터 모두 10득점 미만을 기록하며 시즌 후반 최소 득점을 경신하고 말았다. 게다가 유재학 감독의 말로는 테리의 부상 부위가 이번 시즌 라틀리프 부상 부위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이게 심하면 최악의 경우 대체 선수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테리는 다음 경기에 복귀했지만 모비스는 남은 경기에서 모두 패배하면서 정규리그 4위로 6강 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9연승으로 2위 자리를 충분히 기대해볼만 했지만, 4연패로 한 순간에 밀려나면서 허무하게 시즌을 마감하고 플레이오프에 임하게 되었다.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인삼공사에게 73:84로 패배하면서, 지난 시즌부터 이어져온 플레이오프 인삼공사전 4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2차전에서는 이대성 박경상의 활약으로 대승하였으나, 양동근, 함지훈의 체력 저하와 이종현 시즌 아웃 등의 문제로 오세근이 부상당해 결장한 안양 KGC인삼공사에게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7년만에 4강 진출에 실패하며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2017-18 시즌을 총평하면 아쉬운 성적이지만, 모비스가 그토록 바라던 양동근의 후계자를 찾았다는데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하지만 이종현이 정체된 모습을 보인 것은 아쉬웠고, 장신 센터 용병의 부재는 정규리그에서는 테리와 국내선수들의 활약으로 버텼으나 6강 PO에서 사이먼에게 털리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다시 한번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신 센터 용병이 필수라는 것을 보여준 한 해였다. 이 팀이 우승했을때는 브라이언 던스톤, 로드 벤슨, 리카르도 라틀리프라는 걸출한 센터들이 있었다.

상대전적은 LG에게 6승으로 압살했고, 오리온에게 5승 1패로 절대우세, KCC, KGC, 삼성에게 4승 2패로 우세, DB, kt에게 3승 3패 동률, kt 상대 3패가 4위에 큰 영향을 주었다 SK, 전자랜드에게 2승 4패로 열세를 기록했다.

개인성적을 보면 미국 진출 후 돌아온 이대성은 평균 12.7점 2.6어시스트 3점슛 1.6개로 활약하면서 양동근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함지훈 이종현의 부상 후 고군분투하면서 평균 9.4점 5.1리바운드로 골밑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양동근은 평균 9.8점 5.3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점점 노쇠화가 오고 있는 모습이고, 전준범은 작년보다 더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평균 9점 2.8리바운드 3점슛 2.3개를 기록하면서 작년보다 안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종현은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던 상황에서 큰 부상을 당하면서 올 시즌은 물론 내년 시즌도 제대로 뛸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외에도 트레이드로 데려온 박경상이 이대성과 함께 주측 가드로 성장했고, 전역 후 돌아온 배수용 역시 주전 자원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국인 선수 레이션 테리는 초반에는 겉도는 모습이었으나 3-4라운드부터 에이스 역할을 제대로 해줬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는 데이비드 사이먼을 막지 못하면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지만,[44] 그래도 정규시즌에는 평균 22.1점 7.3리바운드 3점슛 1.6개로 1옵션 외국인 선수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줬다. 마커스 블레이클리는 찰스 로드와 함께했던 작년 모비스, 높은 기량을 보였던 kt 시절을 기대하며 데려왔으나, 기복이 심하며 이지슛을 놓치는 모습을 많이 보였고 언더사이즈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평균 14.5점 8.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5.2. 2018-19 시즌

5.3. 2019-20 시즌

5.4. 2020-21 시즌

5.5. 2021-22 시즌

5.6. 2022-23 시즌

5.7. 2023-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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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지막 농구대잔치 시즌이었던 1996-97 시즌 허재가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구속되어 하위권으로 떨어졌던 흑역사가 존재한다. [2] 팀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부상 투혼을 보여줬던 허재는 KBL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3] 지난 시즌 결승의 맹활약은 팀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고 떠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진심일 수도 있고, 농구판에 남아있는 한 계속 볼 사람들끼리 서로 얼굴 안 붉히려고 좋게 넘어가기 위해 만들어낸 말일 수도 있지만, 그 활약만큼은 진짜였다. [4] 최인선 감독도 이 때 서울 SK 나이츠로 옮겨 갔다. [5] 윌리포드는 골밑을 주로 맡았지만, 3점슛도 잘 던졌고 강동희를 대신해 PG를 본 적도 있을 정도로 외곽 플레이에 능했다. [6] 다만 이 때의 정인교는 이적의 영향과 제2외곽슈터로 변한 역할 적응 실패 등의 이유로 부진한 성적을 보였다. [7] 기존 외국인 선수가 시즌 개막 전에 부상을 당해서 대체 선수로 합류. [8] 구단 홈페이지의 연혁에는 인수라고 되어 있고 기아자동차와 모비스 간 인수 대금까지 오갔지만, 실은 1사 1팀 정책에 따라 구단의 관할 모기업이 조정된 것일 뿐이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 전북 현대 모터스 프로축구단을 전담하게 되었으며, 현대자동차 배구단은 현대캐피탈이 전담하게 되었다. 똑같은 이유로 SK 빅스는 전자랜드에 매각하여 현재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가 되었다. [9] 만약 이때 기아 농구단이 그대로 유지되고, 해태 타이거즈가 현대모비스 타이거즈(...)가 되었다면 프로야구에서도 현대 유니콘스 현대가 더비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10] 기아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마지막 전성기 시즌이었던 1999년은 부산광역시 프로 스포츠 구단들의 리즈 시절이기도 했다. 당시 K리그 대우 로얄즈는 물론이고, 롯데 자이언츠도 1999년에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등 부산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팀들은 전부 잘 나갔다. [11] 이 모든 게 2001년 한 해에 일어났다. 자세한 건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비판 문서 참조. [12] 그리고 이 악순환은 20년 뒤인 2021년 같은 부산 연고였던 농구 팀 수원시로 연고지를 옮겨가면서 반복된다. 심지어 이 사건도 연고 이전 이슈가 나온 사유가 정확하게 똑같이 부산광역시의 미비한 지원. [13] 9위 TG삼보와 같은 성적인 18승 36패를 거두었으나 상대전적에서 밀렸다. [14] 15승 39패로, 2007-08 시즌 전까지 모비스 최악의 성적. [15] 이 6연승 전까지 모비스의 2005-06 시즌 중 최다연승 기록은 4연승으로, 원년 제외 정규시즌 우승팀 역대 최소연승 기록(6연승) 및 54경기 체제 정규시즌 우승팀 최소 승률을 갈아치울 수도 있었다. [16] 안준호 감독에게 유재학 감독이 판짜기에서 완전히 밀렸다. 유재학 감독은 올루미데 오예데지와 서장훈의 포스트 수비를 준비했지만 안준호 감독은 강혁을 중심으로 한 픽앤롤을 구상했고 유재학 감독의 이 판짜기 미스는 시리즈 스윕에 결정적인 전술차이를 가져와버렸다. [17] 농구 대잔치 시절의 스타였던 우지원이 '우승을 하기 위해선 자신이 주전이어선 힘들다'라는 점을 느꼈다는 것은 세대교체의 시기가 오고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18] 사실 당연히 세대교체는 해야하는 것이지만 당시 농구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고 그와중에 아직도 개인적인 팬덤이 있던 농구대잔치시절의 스타들인 이상민, 우지원, 문경은, 신기성 등이 후보로 내려가는 것은 팬들이 쉽게 용납하질 않았었다. [19] 어떤 팀이 워낙 폭삭 망해버리면서 이 시즌의 모비스는 11연패를 두번이나 했음에도 꼴찌를 하지 않았다! 비슷한 경우는 2009-10 시즌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가 있다. 이 해 전자랜드는 무려 13연패와 12연패를 한 시즌(...)에 하고도 9위였으며 7위와 8위와는 고작 1게임차였다. [20] 알다시피 현재 함지훈의 위치는 양동근과 함께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다. [21] 제 역할 정도가 아니라 플루크 시즌이었다. 유재학 감독 부임 이후 모비스에서만 특출난 활약을 보이고 타팀에서는 죽쑤는 케이스가 많이 관찰되는데 이 김현중이 대표적이고, 삼성 우승연, SK-KCC 김효범, SK 이병석 등도 마찬가지의 평가를 받고 있다. [22] 그래도 승률이 6할대 중반이다. 까지 말자. 물론 농구 기준으로는 1위 승률이 낮은 편이다. [23] 저 당시의 정규리그 우승은 원주 동부 프로미와 함께 양강 독주체제를 달리다가 동부의 주포 웬델 화이트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페이스가 떨어지자, 모비스가 따라잡고 결국 정규리그 우승을 탈환한 것이었다. [24] 반대편에서도 2위 동부는 KCC에 2승 3패로 챔프전 진출에 실패했다. [25] 전자랜드는 4라운드까지 동률이었지만, 5라운드부터 14승 4패로 폭주해버려서 그 기간의 2경기를 모두 내준 것이고, 오리온전은 반대로 3라운드까지 모비스가 오히려 관광당하다가, 4라운드부터 오리온이 DTD를 시전하며 5승 22패로 망한 와중에 3경기 중 1경기를 더 내줬다. [26] 상대가 되는건 전태풍, 강병현을 보유한 KCC 정도 뿐이었다. [27] 그래도 최다연패가 3이었고 18승 24패를 했다. [28] kt는 KCC를 제외한 나머지 6강 경쟁 팀들에 열세였다. [29] SK가 첫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곳은 전주실내체육관이다. [30] 12/13시즌 13연승 포함, 챔프전까지 포함하면 23연승!!! [31] 1월 17일 울산 홈경기 패배로 열세 확정인 상황이었다. [32] 2013-14 시즌 울산 모비스의 SK전 첫 승이다. 그때부터 플레이오프 포함 5승 1패. [33] 물론 kt가 전자랜드와의 5차전 혈투 끝에 올라온 것도 있었고 더군다나 모비스보다 LG가 4강을 먼저 시작한 상황이었다!! [34] 사실 2연패 이후 유재학 감독은 팀의 세대교체를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으나 의외로 성적이 너무 좋게 나와 우승으로 시즌 중에 목표를 바꿨다. [35] 주전과 비주전의 심각한 기량 격차를 주전 선수들이 나올때 비주전을 내보내며 실력 격차를 시스템으로 묶는 경기 운영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3연패 이후 주전 선수들인 문태영과 라틀리프의 이적으로 주전 선수진 중 절반이 나가버렸다. [36] 아시아 프로농구 챔피언십은 2015년에 출범한 프로농구 아시아 국제대회다. 축구로 치면 AFC 챔피언스 리그, 야구로 치면 아시아 시리즈에 해당되는 수준의 아시아 프로농구 국제대회다. 아시아 농구 교류 활성화와 농구 저변 확대를 위해 대한민국(울산 모비스, 원주 동부), 중국(랴오닝), 필리핀(토크 앤 텍스트) 등 총 3개국 4개의 프로팀들이 참여했다. 2015년 9월 2일부터 9월 6일까지 대회가 진행되었으며 울산 모비스는 결승에서 같은 한국 팀인 원주 동부를 71:68로 이기고 초대 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프로농구 역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이룬 구단이 되었다. 초대 대회라서 3개국 4개 프로팀 밖에 참가팀이 없어서 아직은 대회 규모가 작지만 언젠가 축구의 AFC 챔피언스 리그, 야구의 아시아 시리즈처럼 좀 더 규모가 큰 아시아 국제대회로 성장할 수 있기를 언젠가 기대한다. [37] 특히 1쿼터에서는 모비스가 27점을 낸 반면, SK는 단 9점만 냈다. [38] 이날 이후 전준범 데이가 만들어졌다. [39] KCC가 오리온을 상대로 강점과 약점이 너무 뚜렷했다는 것도 원인이 되었다. 하승진 에밋이라는 확실한 빅맨과 스코어러가 있지만 하승진은 오리온에 없는 높이가 있는 대신 스피드가 너무 느리다. 장재석 이승현, 최진수 등 장신 포워드들이 하승진이 높은 곳에서 리바운드를 놓칠 때마다 귀신같이 리바운드를 따내고, 에밋은 본인의 해결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공격시 볼을 너무 끌어버리니 이미 수비가 갖춰진 오리온은 포워드진의 신장 차이로 더블팀 수비를 걸어 에밋을 틀어막았다. [40] 원래 32번이었지만 새로 입단할 이종현에게 양보했다. [41] 병원진찰 결과 손목이 골절당했고 수술에 들어가기로 했다. 최소 3~4개월 결장 확정. [42] 비슷한 시기 외국인 선수를 교체했던 인천 전자랜드의 경우 아이반 아스카가 1cm 차이로 장신 선수로 분류되었다. [43] KCC로 팀의 이름이 바뀌기 전 현대 걸리버스의 운영 주체는 현대전자가 소속된 현대그룹이었다. 현대모비스 농구단의 운영 주체는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서로 다르다. 만약 아직도 현대 걸리버스 농구단이 남아 있었다면 K리그1에서처럼 현대가(家) 더비가 벌어졌을수도... 게다가 연고지도 서로 바뀐 울산과 전주이다. [44] 이건 포워드와 센터라는 포지션 차이에서 오는 한계라는 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