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2-12-11 11:30:05

요안니스 4세(트라페준타 제국)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6bd0e, #F9D537 20%, #F9D537 80%, #e6bd0e); color: #6700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670000>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알렉시오스 1세 안드로니코스 1세 요안니스 1세 마누일 1세
<rowcolor=#670000>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안드로니코스 2세 게오르기오스 요안니스 2세 테오도라
<rowcolor=#670000> 복위 제9대 제10대 제11대
요안니스 2세 알렉시오스 2세 안드로니코스 3세 마누일 2세
<rowcolor=#670000>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바실리오스 이리니 안나 요안니스 3세
<rowcolor=#670000>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미하일 알렉시오스 3세 마누일 3세 알렉시오스 4세
<rowcolor=#670000> 제20대 제21대
요안니스 4세 다비드 }}}}}}}}}

파일:요안니스 4세(트라페준타 제국).jpg
이름 요안니스 메가스 콤니노스
(영어: John Megas Komnenos, 그리스어: Ιωάννης Μέγας Κομνηνός)
출생 미상
사망 1460년 4월
직위 트라페준타 제국 황제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트라페준타 제국 제20대 황제.

2. 생애

트라페준타 제국 제19대 황제 알렉시오스 4세 동로마 제국 출신의 테오도라 칸타쿠지니 사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1417년 부친에 의해 데스포티스로 지명되었지만, 황위를 찬탈하려는 야욕을 품었다. 1426년 알렉시오스의 재무관이 어머니와 불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살해하고, 부모마저 살해하려 했다. 하지만 귀족들에 의해 저지되었고 조지아 왕국으로 도망쳤다. 이후 조지아 국왕 알렉산데르 1세의 딸 바그라티오니와 결혼했지만, 트라페준타로 진격할 만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1427년 크림 반도에 있는 제노바 식민지 카파로 이동하여 여러 갤리선과 선원들을 고용했다. 1429년 4월 26일, 그는 함선들을 이끌고 트라페준타 인근에 상륙했다. 알렉시오스는 아들을 치기 위해 진격했지만, 그날 밤 요안니스에게 매수된 귀족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리하여 고대하던 황위에 오른 그는 부친을 살해한 귀족들을 처형하고 메트로폴리탄 교회에 부친의 유해를 매장했다. 이후 투르크의 군소 에미르들이 연합하여 쳐들어오는 걸 격파했다.

요안니스는 제노바 덕분에 황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들과 지속적인 갈등을 벌였다. 1431년 제노바인들에게 빚진 돈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1441년 제노바 선박의 탈취와 약탈을 명령했다. 제노바 측은 배상을 요구했지만 요안니스는 거절했고, 1447년 카파의 제노바인들이 함선을 이끌고 트라페준타로 진격하여 바다를 봉쇄하겠다고 위협했다. 요안니스는 이에 대항하고자 베네치아와 친선 관계를 맺었으나, 베네치아는 흑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 했다.

1442년, 오스만 술탄국의 술탄 무라트 2세는 트라페준타를 공격하기 위해 함대를 파견했다. 이 함대는 트라페준타 시 자체에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지만, 크림 반도에 있는 트라페준타의 속주를 약탈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폭풍을 만나 많은 함선이 침몰했다. 무라트 2세는 이후로는 동로마 제국과 세르비아, 불가리아 쪽으로 관심을 돌렸고, 트라페준타 제국은 이 덕분에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

1451년, 동로마 제국의 외교관 스프란체스가 트라페준타에 찾아왔다. 황제는 오스만 술탄국의 새 술탄 메흐메트 2세가 트라페준타 제국에 무척 호의적이라며, 그 덕분에 제국이 오래갈 수 있을 거라고 밝혔다. 그러자 스프란체스는 그것은 메흐메트가 그를 속이기 위한 책략에 불과하며, 앞으로 동로마 제국과 연합할 필요가 있다고 설파했다. 스프란체스는 트라페준타의 왕녀와 콘스탄티노스 11세의 결혼을 주선하려 했지만, 오스만 제국을 두려워한 요안니스 4세의 비협조로 실패했고, 대신 조지아 왕녀와 약혼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고 콘스탄티노스 11세가 전사하면서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은 트라페준타 제국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메흐메트 2세는 요안니스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불러들여서 트라페준타와 베네치아 선박들에게 높은 통행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 1456년, 메흐메트 2세는 아마시아의 에미르에게 수륙 양면에서 트라페준타를 공격하게 했다. 도시 함락이 임박하자, 요안니스는 연간 2,000개의 금화를 헌납할 테니 제국을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메흐메트 2세는 수락했다. 1458년엔 금화 3,000개로 늘어났고, 오스만 제국의 무거운 통행세까지 겹치면서 도시는 갈수록 쇠락하였다. 요안니스는 어떻게든 제국을 보전하기 위해 서방 세계에 구원을 청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459년 4월 22일 근심 속에서 숨을 거두었고, 동생 다비드가 황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