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인물의 조부에 대한 내용은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문서 참고하십시오.
해당 인물의 부친에 대한 내용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문서 참고하십시오.
요르요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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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2년 6월 16일 ([age(1952-06-16)]세) | ||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 |||
재임기간 | 제180대 총리 | ||
2009년 10월 6일 ~ 2011년 11월 11일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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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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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5eaf><colcolor=#fff> 배우자 |
에바 지시미두 (이혼) 안다 파판드레우 (이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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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2명 | ||
학력 |
애머스트 칼리지 (
사회학 /
학사)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 사회학 / 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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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정교회 ( 그리스 교회) | ||
소속 정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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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리스의 제180대 총리.2. 생애
1952년 6월 16일 출생. 이름이 같은 할아버지 요르요스 파판드레우와 자기 아버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모두 그리스의 총리를 지냈던 그리스 정치 명문가 출신.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그리스로 돌아와 아버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창당한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다.2009년 10월 총선에서 경제위기로 민심을 잃은 신민주주의당을 제치고 정권을 잡았고, 집권 후에 감사를 벌이면서 신민주주의당 정권하에서 대규모 재정적자 은폐문제를 폭로했다. 하지만 재정적자 은폐를 폭로하고,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는데, 이미 고실업, 관광산업 침체, 거품경제 붕괴 문제라는 3연타로 신음하고 있었던 차인데다가, 그 동안 쌓였던 부채가 너무 과도해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청년실업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긴축정책을 펼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긴축정책의 부작용으로 인해 오히려 사회시스템 자체가 무력화되고 긴축에 견디지 못한 서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일으키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2011년 하반기에 이 인간의 말 한 마디에 전 세계 주식시장이 출렁거리게 되었는데, 그리스 디폴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라 버렸기 때문. 2011년 11월 1일 뜬금없이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전 세계 증시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가 3일만인 11월 4일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가 가결되자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등 아주 즉흥적인 행태를 보이다가 사퇴했다. 그리고 총선을 거치며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은 3당으로 몰락했다.
2015년 1월 25일에 열리는 조기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신당창당계획을 발표하고 그를 총리로 만들어준 사회당은 반발하는 중. 결국에 민주사회주의 운동(Movement of Democratic Socialists)라는 명칭으로 신당을 창당하였다. 하지만 정작 총선에서 2.4%의 득표율로 사회당의 표를 떼어먹는 수준에 그치며 의석확보에 실패했다.
2023년 이웃한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백혈병으로 사망함으로서 2010년대 유로존 위기 당시 경제 악화와 민심 이반으로 실각했던 남유럽 국가의 전 지도자들 중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