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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 오스트리아 |
1. 개요
오스트리아와 크로아티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유럽연합 회원이지만 크로아티아는 유로화 대신 쿠나화를 사용한다.2. 역사적 관계
2.1. 근세
자세한 내용은 크로아티아 왕국(1527년~1868년) 문서 참고하십시오.중세 당시 헝가리 왕국 및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아오던 크로아티아인들은 오스만 제국이 모하치 전투에서 야기에우워 가문 출신 왕 러요시 2세를 전사시키자,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기반으로 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 1세를 크로아티아 국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2.2. 19세기
1848년 혁명 당시 헝가리인들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에 맞서 봉기하자 크로아티아인 군인들은 헝가리인들의 봉기를 진압하였다. 그러나 1867년 대타협을 계기로 오스트리아 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이 되고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이 헝가리 왕국에 지배를 받게 되자, 크로아티아인들은 오스트리아 측에 커다란 배신감을 느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남슬라브 민족들은 2등 신민 취급을 받았고, 여기에 반발한 슬라브 민족 출신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각지에서 민족주의가 발전하였다. 한 편 19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이 발칸 반도 일대에서 러시아-튀르크 전쟁을 통해 오스만 제국을 밀어내는 상황 역시 범슬라브주의에 상당한 영향을 남기게 되었다.한 편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신민으로 편입된 세르비아인(주로 정교회 신도)이나 보슈냐크인( 무슬림)들은 크로아티아인들과 거의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으나( 세르보크로아트어) 가톨릭 제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들이 더 큰 특혜를 누린다고 생각하였고, 이는 20세기 들어서 민족 갈등으로 이어졌다.
한 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사이 상당수의 크로아티아인들이 오스트리아 왕국 여권 혹은 헝가리 왕국 여권을 들고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으로 이민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전까지 크로아티아 출신 이민자들은 새로 이민 간 국가에서 명목상으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분류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크로아티아인들은 선원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2.3. 20세기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배하고 이후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크로아티아인들과 세르비아인/보슈냐크인 거주 지역은 세르비아 왕국의 영토로 할양되었다. 세르비아 왕국은 크로아티아인과 보슈냐크인, 슬로베니아인 등 여타 남슬라브 민족들을 포괄하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거듭났다. 한 편 일부 크로아티아인들이 거주하던 부르겐란트 일대는 생제르맹 조약 이후에도 오스트리아의 영토로 남았고,[1] 이들은 부르겐란트 크로아티아인이라는 오스트리아 내 소수민족 그룹이 되었다.양국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병합이나 우스타샤 같은 흑역사를 일정 부분 공유하기도 했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산정권이 수립되었으며 한동안 나치 독일에 합병되었던 오스트리아는 다시금 분리/독립되었다. 1990년대초부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해 해체되면서 크로아티아는 독립국이 되었다. 독립국이 된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와 1992년 1월 15일부로 수교하였다. 이후 상당수의 크로아티아인들이 이주노동자가 되어 오스트리아에 정착하였다.
2.4. 21세기
유럽 난민 사태 당시 크로아티아 측이 중동/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유입되지 못하도록 국경을 막으면서 이들 상당수가 오스트리아로 유입되었던 바 있다. #3. 문화 교류
크로아티아 국내 경제 규모가 다소 협소하다보니 오늘날 크로아티아에서는 독일 혹은 오스트리아에서 구직할 목적으로 독일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다. 독일어만 쓰고 다녀도 생활에 별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오늘날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이다.[2] 유럽 내 여러 저가 항공사들이 빈(오스트리아)와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를 연결하는 노선을 운영 중이다.
양국은 가톨릭 문화를 배경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오늘날 크로아티아와 오스트리아 양국 모두 탈종교화가 상당수준 진행된 나라이다보니 오늘날 양국 관계에서 가톨릭은 과거만큼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
4. 참고 문헌
5. 관련 문서
- 크로아티아/외교
- 오스트리아/외교
- 크로아티아/역사
- 오스트리아/역사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경제
- 오스트리아/경제
- 크로아티아인)/ 오스트리아인
- 세르보크로아트어 / 독일어
- 가톨릭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중부유럽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