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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4 16:10:02

공위시대

오스만 공위기에서 넘어옴

空位時代 | Interregnum

1. 소개

한 국가에서 정부의 공백기를 뜻한다. 정의상으로는 국왕의 부재 시기이며 보통 이때는 내란기 내지는 혼란기이다.

이러한 '공백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사실 흔한 일인데, 내각책임제 국가에서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러 새로이 의회를 구성할 경우 그 사이 기간이 이런 '공백기' 가 된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의 공백기는 그 자체로 제도화된 것이기 때문에 전근대처럼 국정 혼란이 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예를 들어 벨기에는 총선에서 어느 연정 세력도 과반을 만들지 못해서 500일 넘게 공백기를 만들기도 했지만 큰 불편은 없었다.

역사를 보면 이런 시기는 의외로 많은 편이지만, 제일 잘 알려진 공위 시대는 일반적으로 1254년 ~ 1273년의 약 20년 동안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없던 시기다. 이 시기는 흔히 대공위시대라고 부르며 영문으로도 보통 Great Interregnum으로 표기한다.

본 문서에서 소개된 공위기에 대해서는 위키백과 영문판 영문위키 참고. 여기에 따르면 교황이 사망하고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의 기간도 공위기에 해당된다. 오늘날이든 옛날이든 교황은 교황령(현대에는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므로.

2. 주나라의 공화(共和)시기

파일:주 금문.png
주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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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 西白
초대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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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국군

부줄
3대 국군

4대 국군

공류
5대 국군

경절
6대 국군

황복
7대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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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국군

훼유
9대 국군

공비
10대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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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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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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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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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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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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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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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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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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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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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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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왕

희왕
17대 왕

혜왕
비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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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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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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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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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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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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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 공화(共和)
정무 관리자 주정공(周定公), 소목공(召穆公)
혹은 공백(共伯) 화(和)
재위 기간 기원전 841년 ~ 기원전 828년

기간은 기원전 841년 ~ 기원전 828년. 사기(史記)에 의하면 주나라 여왕이 폭정을 하다 국인폭동(國人暴動)으로 쫓겨나 주정공(周定公)과 소목공(召穆公)이 천자를 대신해 함께 정사를 보았다고 하며, 이때 공동으로 통치했다고 해서 공화시기라 불리었다고 한다.

다만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이와 다른 기록이 있는데, 주여왕을 쫓아낸 공백(共伯) 화(和)[1]라는 인물이 제후들의 추대를 받아 간왕(干王)을 칭하고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공백 화에게서 '공화(共和)'가 유래했다고 한다. 4년 뒤 공백 화는 정권을 주선왕에게 넘기고 자신은 공산(共山)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2]

이후 근대에 들어 Republic(공화국)의 번역어로 이 '공화'가 채택되었으며, 이때의 의미는 '공동 통치'를 가리킨다.

한편, 이 때의 혼란으로 인해 기원전 841년 이전의 기록들이 많이 소실되었으며[3], 이로 인해 <사기>에서 연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상고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가 바로 기원전 841년이다. 춘추 계통의 문헌 또한 기원전 8세기경이 거슬러 올라가는 한계선이기 때문에, 이 시기 이전의 연대를 확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후대에 연대를 복원하려는 노력도 있었고, <사기> 이전에 개략적으로 (夏), (商), (周)의 연대를 언급한 문헌도 있지만, 연대에 대한 기록이 위키백과에서도 각 문서에서 다르게 나오듯 대개 말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기원전 841년이 현재로서는 거의 확실히 증명된 중국사 최초의 연대 기록으로 봐도 무방하다. 다만 죽서기년에는 그 이후에 일어난 일도 사기와 연도가 다르게 나온 경우가 있다.(...)

3. 랑고바르드 왕국

동로마 제국의 쉽지 않은 재정복 전쟁 직후 이탈리아 반도로 밀고 들어왔던 랑고바르드 왕국은 건국 후 금방 왕이 없는 '공작들의 통치' 시기를 겪는다. 이들은 568년에 이탈리아에 들어와 왕국을 세웠지만 첫 번째 왕이었던 알보인이 572년에 게피드족 왕비인 로자문드[4]에게 암살당한 뒤 즉위한 두 번째 왕 클레프가 574년에 죽은 후 574년부터 584년까지 왕이 없었다.

이 시기에 이 '왕 없는 왕국'을 다스린 것은 8명의 공작들이였으며, 이들이 다시 클레프의 아들인 아우타리를 왕으로 세웠던 것도 프랑크 왕국이 이탈리아를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랑고바르드 왕국은 본질적으로 8명의 영주들의 연합체로써 매우 분권적인 권력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즉 평시에는 지방 세력들의 연합체로 느슨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가 강력한 외침 등 비상 사태가 도래하자 위기 극복을 위해 통일된 리더십을 발휘할 지도자로서 왕을 선출한 것이다.

4. 사산 왕조 사산 공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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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프랑크 왕국

루도비쿠스 1세가 죽은 직후 일어났던 세 자식들의 막장 내전 시기. 840년 ~ 843년.

결국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세 자식들이 프랑크 왕국을 3조각 내서 첫째 로타르가 중프랑크 왕국, 셋째 루트비히가 동프랑크 왕국, 막내 샤를이 서프랑크 왕국을 나눠 가졌다. 855년 프륌 조약으로 중프랑크 왕국이 로타링기아, 부르군트 왕국, 이탈리아 왕국으로 분할되었고,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로타링기아는 서프랑크 왕국과 동프랑크 왕국에게 분할되었다.

6. 신성 로마 제국 대공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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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스만 술탄국

바예지트 1세 티무르에게 앙카라 전투에서 참패 당한 이후 약 10년 동안을 ' 오스만 공위시대' 라고 한다. 1402년 ~1413년.

결국 바예지트 1세의 아들 중 한 명인 메흐메트 1세가 나머지 형제들을 다 죽여버리고 술탄직에 올랐다.[5] 자세한 내막은 오스만 제국/역사 문서 참조.

오스만 술탄국의 팽창을 저지할 절호의 기회였다고 할 수 있으나 서유럽은 이 시기 동안 오스만을 공격한다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먼저 저 튀르크족이 한방에 주저앉았다는 데 충격을 받았기 때문. 즉 '튀르크도 저렇게 쎈데 몽골은 대체 얼마나 세다는 거야...?!' 라는 공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때문에 티무르가 앙카라에서 대승을 거두고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을 초토화하자 공포에 빠진 오스만군 패잔병들이 살기 위해 다르다넬스 해협으로 도망쳐왔는데 해협을 오가는 유럽인 상선들은 해협 건너편으로 도망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요청에 "같은 무서운 놈이라도 아는 놈이 모르는 놈보다 그나마 낫다"는 생각에 오스만군을 해협 건너편으로 태워다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튀르크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었어도 티무르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기 때문. 즉 유럽의 입장에서 '얘나 쟤나 강력한 이교도라는 점에서는 똑같다면, 잘 모르는 이교도보다는 잘 아는 이교도가 그래도 낫다' 였던 것이다.

8. 루스 차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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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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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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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에서는 잉글랜드 내전으로 인해 찰스 1세가 폐위되어 처형된 1649년부터 왕정복고로 인해 찰스 2세가 즉위한 1660년 사이의 기간 동안 왕정이 폐지된 상태에서 올리버 크롬웰 리처드 크롬웰 잉글랜드 연방 호국경으로 통치하던 시기를 공위시대라 일컫는다. 참고로 잉글랜드에서만 이러한 공위 시대가 있었던건 아니고, 중세에 스코틀랜드 왕국에서도 1290년부터 1300년대까지 공위시대였던 적이 있다.

[1] 공(共)나라의 백작 화(和). [2] 다만 계년(繋年)에는 주여왕이 쫓겨난 뒤 공백 화가 14년간 재위한 것으로 나오며, 주선왕이 즉위하자 송나라(혹은 위나라)로 돌아갔다고 나온다. [3] 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대거 소실되었다. [4] 게피드족은 지금의 루마니아 근처에 정착한 동게르만계 부족이었으나 랑고바르드족과 아바르족에 의해 멸망했다. 이때 죽은 게피드족의 왕 쿠니문드의 해골은 알보인의 술잔이 되었고 알보인은 쿠니문드의 딸인 로자문드를 아내로 취했다. 이에 원한을 품은 로자문드가 알보인을 암살한 것. [5] 이후 재위 기간은 1413 ~ 1421년이지만, 1402년부터 술탄으로 재위한 거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는 두 가지인데, 먼저 무슨 생각이었던지 티무르가 메흐메트를 술탄으로 봉했던 사실이 있다. 게다가 내전 동안 네 명의 형제들은 제각기 주화를 발행했는데, 거기에 '술탄' 이라는 칭호를 박아넣었던 사람은 메흐메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