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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노 타카시/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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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cccc,#323232><colcolor=#20272c,#d3dade> 모기업 정보 파일:롯데(일본) 로고.svg 롯데홀딩스
일본시리즈 우승
★★★★
1950 · 1974 · 2005 · 2010
리그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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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노 타카시/선수 경력
핵심 인물 구단주 신동빈구단주 대행 다마즈카 겐이치| 감독 요시이 마사토2군 감독 사부로
선수회장 나카무라 쇼고 | 주장 나카무라 쇼고
경기장 1군 ZOZO 마린 스타디움2군 롯데 우라와 구장
홈 중계 채널 파일:닛테레뉴스24 로고.jpg
구단 상세 역사 선수단 및 등번호 역대 선수 | 유니폼 | 응원가 | 집시 롯데 | 10.19 | 칠석의 비극 | 도시락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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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프로 이전
2.1. 사회인 리그 시절
3. 프로 경력
3.1. 치바 롯데 마린즈
3.1.1. 2010 시즌3.1.2. 2011 시즌3.1.3. 2012 시즌3.1.4. 2013 시즌3.1.5. 2014 시즌3.1.6. 2015 시즌3.1.7. 2016 시즌3.1.8. 2017 시즌3.1.9. 2018 시즌3.1.10. 2019 시즌3.1.11. 2020 시즌3.1.12. 2021 시즌3.1.13. 2022 시즌3.1.14. 2023 시즌3.1.15. 2024 시즌
4. 연도별 성적

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외야수, 오기노 타카시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프로 이전

파일:오기노 타카시 고교시절.jpg
코오리야마 고교 시절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아스카 프레시 주니어스'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코오리야마 고등학교에서는 고교 2년 봄부터 주전 유격수 되어, 3학년 여름 전국고교야구 선수권 나라 대회에서 준우승을 기록하였.

간사이가쿠인대학 법학부에 진학해. 야구부 동기로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미야니시 나오키가 있었다. 대학교 1학년 가을 부터 주전 유격수로 활약, 4학년 봄에는 도루 17개를 기록하며 23년만에 춘계대회 도루 신기록을 달성했다[1]. 최종적으로 간사이 학생 리그 통산 80경기에 출전해 295타수 98안타, 타율 0.332, 3홈런, 35타점, 47도루, 베스트 나인도 수상의 기록에 남겼다. 이처럼 좋은 성적을 남겼지만 최종적으로 일본프로야구 진출 대신 사회인야구 토요타 자동차를 선택하였다.

2.1. 사회인 리그 시절

파일:사회인야구 오기노.jpg
사회인야구 토요타 자동차 시절

2008년 토요타 자동차에 입사와 동시에 외야수로 전향하였다. 시범경기에서 1경기 3홈런을 기록했다.같은 해의 제35회 일본 사회인야구 선수권대회에서 3번 타자로서 출장, 타율 0.409(장타율 0.682)의 좋은 성적으로 팀의 연패에 공헌해 사회인야구 베스트 나인 외야수 부문을 수상했다. 사회인리그 2년차인 2009년 여름에 왼쪽 무릎 반월판을 다치지만 복귀 후 도시대항야구대회에서 활약해 프로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았다.덧붙여 토요타 자동차 시절 팀동료로는, 아라와 쇼나 나카자와 마사토, 후에 롯데에서도 동료가 되는 오타니 토모히사가 있었다.

3. 프로 경력

3.1. 치바 롯데 마린즈

파일:신인 오기노.jpg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복수 구단으로부터 상위 지명 후보로서 리스트업 되어 치바 롯데 마린즈로부터 단독 1위 지명을 받았다.11월 30일에 계약금 1억엔 플러스 거래대금 5000만엔, 연봉 1500만엔(금액은 추정)에 계약하며 프로에 입단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학창시절엔 내야수였던 것과 달리 사회인 야구에선 주로 외야수로 뛰었고 결국 외야수로 지명되었다. 이때 사회인 야구에서 3대 외야수 최대어로 꼽혔고, 마침 대학 외야수 팜이 박살이 났기 때문에 즉전감 외야수는 저 셋 정도로 꼽혀 여러 구단에서 상위픽으로 꼽았다고 한다. 참고로 다른 최대어 둘은 키요타 이쿠히로 쵸노 히사요시. 물론 쵸노는 무조건 요미우리 아니면 입단 안 한다고 했기에 다른 구단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었고, 키요타는 예상과 달리 지명이 안 되다가 롯데에 하위픽인 4라운드로 지명됐다.[2] 여담으로 당시 고졸 최대어는 세이부, 한신, 야쿠르트, 라쿠텐, 주니치, 닛폰햄 등 6개 구단의 지명을 받은 키쿠치 유세이였으며 고졸 타자 중 가장 높게 평가받았던 이마미야 켄타는 소프트뱅크의 단독지명을 받았다.

3.1.1. 2010 시즌

데뷔 시즌부터 큰 기대를 받으며 25년 만이 되는 팀내 신인 외야수의 개막전 선발을 이루었고 이후 경이로운 페이스의 도루,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신인왕, 도루왕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시즌 중반에 무릎 반월판을 다치면서 시즌아웃되었고 우승 반지도 끼지 못하게 되었다.[3]2010 시즌이 끝난 뒤 함께 테이블 세터로 활약하던 주전 유격수 니시오카 츠요시가 해외진출을 하자 구단은 그를 유격수로 전향시켰다.[4]

3.1.2. 2011 시즌

2011년부터 내야수 등록이 되어, 2번·유격수로 개막전에 선발 출장했다. 하지만 5월 13일의 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오른쪽 무릎 통증을 호소해, 17일에 등록이 말소되어, 25일에 오른쪽 무릎의 수술을 받았다. 올스타전후 후반기 복귀를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회복은 좋지 않아 8월 25일에 무릎 수술을 다시 결정했다. 신인 시절의 세 차례 무릎 수술로 인해 오기노는 차세대 1번타자에서 애증의 노망주로 전략하고 말았다. 여담으로 이 해에는 전철의 행선지 간판을 본뜬 굿즈가 출시됐다. 표면에는 「쾌족 오기노 2루(도루)」뒷면에는 「특급 오기노 홈런(3루 경유)」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3.1.3. 2012 시즌

2012년부터는 다시 외야수 등록이 되어, 본인도 「외야수비를 하고 싶다」라고 선언했다. 전년의 교훈에서 개막보다 우선 완치를 목표로해, 스프링 캠프에서도 1군에서 벗어나 다른 훈련을하며 시즌 준비를 실시했다. 개막은 2군에서 맞이해 4월 21일의 2군 리그에서 약 1년만의 실전 복귀를 한다.

6월 13일에 1군 선수 등록되었고, 같은 날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 10회말에 대주자로 출장해 2도루를 기록하며 승부를 결정지었다[5]. 다음 날에는 복귀 후 첫 선발로 시즌 첫 안타를 기록했다.

8월 1일 닛폰햄전에서는 2년만의 홈런을 기록했다. 8월 17일의 닛폰햄전에서 2실책을 기록해, 같은 달 20일에 1군 등록 말소. 2군 조정 후 최단 10일 만에 1군 복귀.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부상으로 인한 이탈 없이 시즌 종료를 맞이했다.

3.1.4. 2013 시즌

2013년에는 허리 통증으로 개막 1군엔트리에 들진 못했지만. 5월 초순에 복귀해 102경기에 출전, 타율 0.276, 도루 26개(성공률 0.897)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3.1.5. 2014 시즌

5월 6일 오릭스 버펄로스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니시 유우키로부터 사상 최초가 되는 초회 선두 타자 초구 러닝 홈런을 기록했다[6].

6월 22일의 주니치 드래곤즈전에서, 왼쪽 어깨 관절이 골절되면서. 그대로 남은 시즌 시즌아웃이되며 2014시즌을 망쳤다.

3.1.6. 2015 시즌

2015년에는 부상 등으로 2번의 등록 말소를 맛보는 등 82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출전해 첫 안타에 도루도 기록했다. 좌익수로서 35경기, 중견수로서 34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3.1.7. 2016 시즌

2지난 4월 27일 왼쪽 내복사 근육 이탈로 전치 6주, 9월 20일 오른쪽 대퇴이두 근육 이탈로 두 차례 부상에 시달렸다. 최종 71경기 출전에 그쳐 전년보다 출전 기회를 줄이는 비자발적인 시즌이 됐지만 도루는 16개(성공률.889)를 기록해 입단 1년차부터 이어진 연속 두 자릿수 도루(7년 연속) 기록은 이어갔다. 수비 위치로는 주로 우익수(31경기에 선발 출장)로 기용됐지만 중견수로도 10경기에 선발 기용됐다. 시즌 오프인 12월 15일 유리몸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상실감을 느낀 오기노는 하다못해 부상이라도 제로였으면 좋겠다면서 4번이던 등번호를 0번[7]으로 교체했다.[8][9]

3.1.8. 2017 시즌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1년간 부상 없이 시즌을 마쳤다. 전반전은 타격 부진으로 2번의 2군 강등을 맛봤지만, 8월 1일에 1군으로 승격해, 이후 선발로 정착. 8월은 월간 타율 0.299로 회복했고 9월과 10월은 월간 타율 0.346, 도루 15, OPS 0.862를 기록해 월간 MVP 후보로 선출될 정도로 활약했다.최종적으로는 103경기에 출전해 안타 94개, 홈런 5개 자신의 최다 타이인 26도루(성공률.897)를 기록했다.

3.1.9. 2018 시즌

올 시즌이 끝나면 FA를 맞이하게 된다.

개막전에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볼넷 1도루를 기록했다.

3월 31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도루를 기록했다.

4월 1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을 기록했다. 팀은 위닝 시리즈를 가져갔다.

4월 3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4안타 2타점 1도루로 맹활약하였다. 중간에 주루사로 찬물을 끼얹기는 했지만.

4월 4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그래도 타율은 .435를 유지하며 타율 2위를 기록중이다.

그 후로 계속해서 전 경기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중.

4월 10일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팀은 이겼지만 본인의 타율은 3할 4푼대까지 떨어졌다.

4월 11일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4월 12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해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끝내기 병살타를 쳤다.

점점 더 타율이 떨어지면서 타율 탑 5에서도 밀렸다.

4월 17일에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또한 1사 3루에서 얕은 플라이를 치면서 타점도 내지 못했다.

4월 26일 5타수 2안타 1홈런 3타점으로 활약했고 팀도 이겼다.

4월 28일 3타수 1안타. 근데 그 1안타도 2루수의 실책성 플레이 덕분에 운 좋게 내야안타를 친 거라.[10]

점점 타율이 떨어지는 중.

5월 5일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왔지만 5타수 무안타로 처절하게 말리고 있다.

결국 내려갈 타율은 내려간다고 5월 14일 기준 타율 .255로 추락. 도루도 2주째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5월 20일 기준으로 타율을 2할 7푼대까지 다시 끌어올렸다. 놀랍게도 팀내 2위이자 퍼시픽리그 20위 안의 기록. 얼핏 부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준수한 테이블세터나 다름없다.

6월 3일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하며 타율을 3할까지 올렸다. 퍼시픽리그 타율 5위를 마크.

6월 16일 기준 타율 .301 기록.

6월 17일 결정적인 상황에서 도루자를 기록. 타이밍은 아슬아슬했는데 머리를 태그당하는 바람에 슬라이딩을 잘 했으면 살 수 있는 순간이어서 매우 아쉬움을 주었다.

6월 23일 2타수 1안타를 기록하고 타율을 .308로 끌어올렸다. 현재 퍼시픽리그 타율 5위.

좋은 활약 덕에 올스타전 멤버로 선발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손가락 부상으로 2개월 재활 판정을 받는 바람에 7월 10일 1군에서 말소. 대신 올라온 선수는 이시미네 쇼타.

말소 시기 성적은 78경기 타율 .287에 20도루.

참고로 시즌 100안타를 기록한 해가 한 해도 없었는데 올해 91안타를 치고 재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과연 시즌 막판 복귀 후에 100안타를 치게 될 지가 궁금하나 재활이 더딘 건지 1군에 안 올라오고 있다. 아마 사실상 시즌아웃으로 보인다.

3.1.10. 2019 시즌

이구치의 쓸놈쓸 덕에 대주자로만 나오다가 4월 3일 1번타자 중견수로 첫 선발출장했다. 이날 2루타 하나를 쳤다.

4월 14일 2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 2루타 하나를 치긴 했으나 1사 1,2루 득점권에서는 포수 플라이나 치면서 팀의 스윕패에 공헌했다.

시즌 초의 이구치의 1번타자 계획이 다 실패하면서 결국 대주자 전용에서 다시 주전 1번 중견수 자리를 되찾았다. 현재 3할대 후반의 고타율을 기록하면서 날아다니는 중.

4월 28일 기준 13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 본인의 실력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4월 29일 1번 중견수로 나와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14경기 연속 안타. 타율은 현재 .355로 좋다.

5월 1일 1번 중견수로 나와 4타수 무안타를 기록. 막판엔 라인드라이브 병살까지 나왔다. 연속안타가 14경기에서 끊겼다.

5월 8일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5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이날 기준 25경기 92타수 28안타 타율 .304에 1홈런 8타점 7도루를 기록하며 순항중.

꾸준히 1번타자 중견수로 나오면서 타율 2위까지 찍는 중.

6월 23일 1번 중견수로 나와 멀티히트를 쳤으나 멀티도루자로 팀의 혈을 다 끊어먹었다.

7월 1일 기준 타율 .336으로 1위를 차지하면서 타격왕 경쟁을 하면서 커리어하이를 찍을 기세다. 이 활약 덕분에 올스타전에도 뽑혔다.

올스타 브레이크 시기 기준 73경기 타율 .330에 6홈런 28타점 18도루 OPS .892로 순항중. 타율은 현재 1위이며 5안타만 더 치면 데뷔 첫 1시즌 100안타를 기록하게 된다.

7월에 결국 데뷔 최초의 시즌 100안타를 달성하였다. 아쉬운건 7월부터 타격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타율 1위를 모리 토모야에게 빼앗겼다.

만 34세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시즌 내내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결국엔 규정타석 3할과 두자릿수 홈런[11], 도루를 기록하였다. 자신이 괜히 1라운더 출신인게 아니라는 것과 부상만 아니었으면 리그 탑급의 리드오프가 될 수 있음을 거의 10년만에 증명한 셈이다.

그리고 생애 최초로 골든글러브 베스트 나인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10월 31일에는 FA를 드디어 획득했으나 획득한 국내 FA권을 행사하지 않고 잔류한다고 발표된 뒤 아직 보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앞으로 제대로 보답하고 싶습니다라고 멘트를 남겼다. 12월 25일에는 3300만 증가의 추정 연봉 7800만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3.1.11. 2020 시즌

어느덧 팀내 최고참 외야수가 되었다. 이번 시즌 역시 많은 경기에 출장해 팀에 공헌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또 부상을 당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회복이 되었는지 2군 연습경기에는 정상적으로 출장했다. 코로나로 인해 시즌이 끝도 없이 미뤄지는 상황이라 개막전 합류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개막전에 3번 좌익수로 나왔으나 한 경기만에 후쿠다 슈헤이가 부상을 당해서 다시 1번 중견수로 돌아왔다. 매년 1번 타자/중견수 자리를 타 선수에게 빼앗기는데 시즌이 개막하고 좀만 지나면 오기노가 주구장창 1번 중견수로 나오고 있다.

6월 23일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 4타수 무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타점은 끝내기 몸에 맞는 공으로 낸 것.

그 후로 7월 초까지 7도루를 기록하면서 순항하고 있다. 그러나 7월 중순 12도루로 여유롭게 도루왕을 찍나 싶더니 바로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되었다. 결국 8월 중순에야 2군 경기에 복귀하면서 또 한 달을 날렸다. 결국 올해마저도 사실상 부상으로 시즌을 꽤 날린 셈. 워낙 벌어둔 도루갯수가 많아서 도루 1위를 꽤 길게 유지했으나, 같은 팀의 대주자 전문 와다 코시로가 선발로 나온 3경기에서 5도루를 하면서 14도루로 도루 1위를 역전했고, 매년 도루왕 후보인 닛폰햄의 니시카와 하루키도 12도루까지 따라오면서 현재 공동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빨리 복귀하지 못하면 결국 올해도 도루왕은 어려워 보인다.[12]

2군 경기에 복귀하고도 한 달 이상 어영부영하다가 9월 25일 겨우 1군 경기에 복귀했다. 사실상 부상때메 시즌의 절반을 날리면서 올해도 부상악령에 발목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복귀하고 10일 남짓 지나 10월 6일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으며. 또다시 이탈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10월 20일에 다시 1군에 복귀한 후 16경기에서 타율 0.305, 1 홈런, 4 타점의 성적을 기록하며, 팀 13년만의 2위·4년만의 CS 출장에 공헌했다.

시즌 오프에는, 국내 FA권의 행사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 보도되었지만, 12월 4일에 잔류하는 것이 발표되었다.12월 21일에는 추정 연봉 8000만엔의 2년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FA 신청 대신에 맺은 느낌.

3.1.12. 2021 시즌

다행히도 2021년에는 지난 시즌에 겪었던 힘든 순간들을 딛고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중견수는 아무래도 체력이나 기량 면에서 어려운지 좌익수 출장이 많아졌다. 6월 16일 기준 타율이 0.309로 요시다 마사타카에 이어 퍼시픽리그 타율 2위다. NPB 전체 타율로 따져도 요코하마의 사노 케이타와 공동 4위다. 게다가 안타는 무려 84개를 기록하며 NPB 전체 1위를 기록중이다. 작년 악재가 있었음에도 리그 정상급 타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건재함을 드러내고 있다. 출루율도 0.364를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12위에 등극하였다. 이대로 시즌을 마감한다면 2021년은 오기노에게 최고의 한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8월 15일 기준 15도루 9도루자로 도루성공율 63%를 마크중이다. 도루는 사실상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8월 30일 기준 타율 0.303으로 퍼시픽리그 6위를 기록중이다. 3부터 6위까지 차이가 근소하여 충분히 5위권 안에는 들 수 있는 상황이다.

정규 시즌 최종전이 된 10월 30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 24개째의 도루를 기록해 와다 코시로, 니시카와 하루키, 겐다 소스케와 함께 자신의 첫 도루왕을 달성했다. 4명의 선수가 동시에 도루왕이 된 것은 NPB 사상 최초이다. 구단에서의 도루왕 획득은 2006년에 획득한 니시오카 츠요시 이래 15년만으로, 36세의 도루왕 획득은 35세에 획득한 오오이시 다이지로, 이토이 요시오 등을 웃돌아 사상 최연장자가 되었다.

타율보다 눈에 띄는 건 안타 갯수다. 8월 30일 기준 퍼시픽리그 안타 120개로 요시다 마사타카와 공동 1위를 기록 중이다.(2,3루타 제외). NPB 전체로 따졌을 땐 한신의 치카모토 고지(123안타)에 이어 공동 2위다.

하지만 도루는 여전히 좋지 못하다. 성공률이 명성에 비해 많이 낮아진 게 문제.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며 주루 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쉬운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루왕을 따내며 커리어 첫 도루왕 기록을 세웠다. 또한 최다안타상도 수상하며 2관왕.

12월 2일에 발표된 골든 글러브 외야수 부문을, 12 구단의 외야수로 톱의 득표수가 되는 224표를 받으며 수상했다.골든 글러브상 수상은 2019년 이후 2년 만에 두 번째가 됐다.12월 15일에는 2000만엔증가의 추정 연봉 1억엔으로 갱신해, 프로 12년째에 첫 억대연봉을 기록했다.

3.1.13. 2022 시즌

전년부터의 피로 축적에 의해 스프링 캠프부터 컨디션이 상승하지않고, 또 캠프중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나 옆구리통증에 의해, 1군 합류는 5월 27일의 한신전까지 밀렸다.

1군 승격 후 한동안은 타격 부진에 빠지지만 서서히 컨디션을 되찾아, 1번 좌익수에 정착했다. 타카베 아키토와 함께 팀의 리드 오프 맨으로서 활약을 보였다[13].

최종적으로는 규정타석 미달(373타석)하면서 타율 0.310, OPS 0.811, 홈런은 5개 중 3개가 선두타자 홈런을 기록. 게다가 도루는 15개(성공률.833)를 기록해 입단 후 13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했다. 또, 여러가지 고비를 맞이한 시즌이 되어, 7월 17일의 소프트뱅크전에서 사상 48번째 통산 250 도루, 8월 10일의 소프트뱅크전에서 사상 313번째 통산 1000개 안타, 9월 7일의 세이부전에서 사상 516번째 통산 1000 시합 출장을 달성하며 기록의 시즌이 되었다.

12월 12일에는 현상 유지 추정 연봉 1억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3.1.14. 2023 시즌

시범 경기부터 15경기에 출전. 타율.302, 2홈런, OPS.813을 기록하며 개막전 1번 우익수로 출전하며 꾸준히 주전으로 출전했으나, 그놈의 유리몸 기질 때문에 시즌 중 다리 부상만 2번을 당하며 시즌 50경기 출전에 타율 0.240, 1홈런-1도루에 그치고 말았다. 노쇠화가 확연했던 시즌이었는데, 특히 프로 입단부터 계속해서 기록하던 연속 두 자릿수 도루는 13년 만에 중단되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소프트뱅크와의 1차전에서 선두 타자 홈런을 치며 1999년 일본 시리즈의 아키야마(당시 다이에 호크스 소속)의 37세 6개월의 기록을 갱신했다.

3.1.15. 2024 시즌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0 치바 롯데 마린즈 46 175 .326 57 9 2 1 17 29 25 18 .383 .417
2011 23 91 .264 24 4 0 0 10 14 14 8 .320 .308
2012 61 165 .224 37 5 0 1 8 18 13 16 .293 .273
2013 102 335 .275 92 14 3 4 28 56 26
(4위)
41 .351 .370
2014 40 142 .261 37 10 2 3 12 26 15 8 .300 .423
2015 82 279 .269 75 9 2 2 13 42 18
(4위)
20 .317 .337
2016 71 192 .250 48 11 1 3 21 35 16 18 .314 .365
2017 103 356 .264 94 22 1 5 24 53 26
(3위)
27 .315 .374
2018 78 317 .287 91 15 3 2 25 52 20 22 .330 .372
2019 125 508 .315
(3위)
160 35
(1위)
7
(1위)
10 46 76 28
(4위)
48 .371 .470
2020 53 203 .291 59 17 0 1 10 52 19 26 .370 .389
2021 143
(1위)
570
(1위)
.296 169
(1위)
33
(5위)
5
(4위)
10 45 86
(2위)
24
(1위)
65 .367 .425
NPB 통산(12시즌) 927 3333 .283 943 184 26 42 259 513 244 317 .343 .392

유리몸인게 얼마나 뼈아픈지 보여주는 산증인. 2010년 데뷔할 시기부터 올해 도루왕은 오기노라는 소리를 들어왔으나 매년 부상 등으로 달성하지 못하다가 데뷔 12년차에야 겨우 도루왕을 달성했다. 여담으로 공동 도루왕이 4명이나 나왔으며, 역대 최저 도루갯수 도루왕이자[14] 역대 최고령 도루왕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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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 춘계대회 종료 시점에서도 깨지지 않았다 [2] NPB는 KBO랑 달리 일반적으로 신인드래프트에서 4-8명 정도밖에 지명을 안 한다. 근데 이 해에 롯데는 드래프트에서 4명,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 1명을 뽑았으니 사실상 최하위픽만 겨우 면한 셈. [3] 입단 동기이자 그보다 한참 늦은 순번으로 지명된 키요타 이쿠히로가 일본시리즈에서 맹활약하며 우승 반지를 꼈고, 만년 백업요원인 미나미 류스케, 코베 타쿠미도 일본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가서 반지를 얻은 걸 생각하면 이 부상이 매우 뼈아팠다. [4] 거기다가 2010년 드래프트에서도 중견수 자원인 이시미네 쇼타를 1라운더로 뽑아서 중견수는 이시미네에게 줬다. 즉 어지간하면 잘 하지 않는다는 똑딱이 외야수 1픽을 무려 2년 연속 한 셈. 거기다가 이시미네가 데뷔시즌에 30도루를 넘기면서 한때는 오기노가 이시미네한테 입지가 밀리기도 했었다. [5] 여담으로 이때 오기노가 대주자로 등장했을 때, 본래는 타석에 들어갔을 때 부르는 오기노의 응원가가 외야 응원석에서 흘러나왔다. 이 사실을 오기노는 7년 후인 2019년에 '기억하고 있네요. 좀처럼 대주자로 나가서 응원가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지금도 인상깊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였다. [6] 타구를 쫓던 오릭스의 좌익수 타케하라 나오타카가 넘어져 일어나 공을 포구하는 사이에 홈런까지 생환한 것이었다. [7] 공교롭게도 후술할 팀 선배 투수인 오기노 타다히로의 등번호였다. [8] 이 유리몸이 진짜 뼈아팠던게 오기노와 동갑이었고 같은 대졸사회인 출신에 같은 발 빠른 똑딱이 중견수였던 오시마 요헤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이 선수는 그 키요타 이쿠히로보다도 기대치가 낮아서 5라운드로 주니치 드래곤즈에 지명되었는데, 오기노와 다르게 부상이 거의 없던 선수라서(10년 연속 규정타석 돌파) 누적기록은 오시마가 훨씬 우위다. 거기다가 오시마는 발만 빠르지 주루센스가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도루성공률도 통산 71.3%로 낮은 등 건강한 오기노와 비교하면 오기노에게 확실히 밀리는 선수인데(컨택과 장타력 OPS 등은 크게 차이가 안 나지만 주루면에서 오기노가 압도적인 우위다. 오기노의 도루성공률은 82.4%. 한참 높다.) 정작 오시마는 도루왕 경험이 있고 오기노는 없다가 2021년에 겨우 처음으로 도루왕을 차지했다. 참고로 도루왕을 기록한 시즌에서 오시마는 32도루 17도루자로 도루성공률 65%를 찍었다. 이 정도의 도루성공률이면 그냥 자기 도루왕 따려고 시도만 엄청 한 거지 오히려 팀에는 -라는 것이 정설. 실제로 시도횟수 자체가 1위였다.(웃긴 건 오기노도 노쇠화로 도루 실력이 줄어든 상태에서 간신히 도루왕을 기록한거라 2021년의 도루성공률은 68.6%로 좋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는 타이틀홀더를 한 번 더 따는게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곳이 프로야구인만큼 오기노에게는 유리몸이 정말 뼈아픈 것. 거기다가 오시마의 경우는 2023년 2000안타를 찍고 기어코 명구회 입성을 해내면서 누적 성적의 차이가 더 벌어졌다. 오기노는 명구회 도전이 당연히 불가능하다. [9] 오기노는 원래 데뷔 첫 해부터 올해 도루왕은 당연히 오기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주루에서 극찬을 받았다. 심지어 당시 퍼시픽리그는 카타오카 야스유키가 3년 연속 도루왕+2년 연속 50도루를 하면서 제패하던 시절이었고 2010년에는 카타오카가 건재할 때였음에도 불구하고(실제로 그 해 카타오카는 59도루로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대놓고 오기노가 카타오카를 제칠 것이라는 말이 나왔던 것. 실제로 첫 해 오기노의 주루실력은 70도루는 무난하고 80도루도 노릴 만한 성적이었으니 무릎 부상이 정말정말 뼈아팠다. [10] 1루수가 송구를 받을 때 베이스에서 한 걸음 나와서 송구를 받아야 할 정도로 악송구를 했다. [11] 여담으로 10홈런 중 5개가 1회 선두타자 홈런이다. [12] 결과적으로, 그 해의 도루왕은 호크스의 대주자였다가 주전 도약에 성공한 슈토 우쿄가 차지했다. [13] 팬으로부터는 이 콤비를 오기타카야, 오기베 등으로 불리고 있다 [14] 세-파 합쳐서 지금까지 역대 최저 도루갯수 도루왕은 24개이며, 2021년 파리그는 타이기록이다. 파리그만 보자면 31도루 도루왕이 역대 최저였는데 이것을 갱신했다. [15] 만 36세 10일. 이전 기록은 만 35세 2개월의 이토이 요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