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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튼 존/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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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활 치료와 To Be Continued... (1990~1991)2. 제2의 전성기 (1992~1999)

1. 재활 치료와 To Be Continued... (1990~1991)

Reg Strikes Back Sleeping With The Past로 앨범과 싱글의 상업적인 성공으로 음악성은 물론 가수로서 재기에 완전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1990년 여름까지만 해도 엘튼 존의 삶은 망가진지 오래였다. 약물과 알코올 중독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해 몇주간 방에 처박혀 스카치를 퍼마시고, 코카인을 4분에 한 번씩했을 정도로 중독을 넘어 습관이 되었다. 당시 진행된 라이브 공연에서도 성대결절의 영향으로 보컬 상태도 좋지 못했다. 폭식증까지 합쳐 체형이 두꺼워졌고, 전반적인 본인의 모습이 노인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안습인 상태였다. 항상 어두운 계열의 옷만 입고 다녔기 때문에 더욱 나이 들어 보였다.[1] 오죽하면 이 시기의 본인의 모습이 처참하기 그지 없고, 70대 노인 같다고 했다.

그러다가 라이언 화이트로 인해서 엘튼 존의 인생을 바꾸게 된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라이언 화이트와 그의 가족은 에이즈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서 힘든 기간을 보냈을때, 수많은 유명인들이 에이즈 인권 운동에 참여해 라이언과 그의 가족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고, 특히 엘튼 존은 마이클 잭슨과 같이 라이언의 가족들의 절대적인 동료였다. 당시 엘튼 존은 시한부 인생에도 용감한 모습을 보인 라이언에 감동해 엘튼 존 본인이 얼마나 한심하고 막장스러운 삶을 보냈는지 깨달았고, 십수년 동안 마약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본인을 구제할 수 있었다. 엘튼 존은 라이언이 사망하기 전 날에 열린 AID 공연에서 Candle In The Wind,[2] Daniel을 불렀고, 1990년 4월 8일 라이언 화이트가 세상을 떠났을때 엘튼 존은 그의 장례식장에서 Skyline Pigeon을 불렀다.[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4474447-1365939046-1030.jpeg.jpg
1991년 To Be Continued...의 영국판 표지
1990년 2~3월 오세아니아, 1990년 5월 애틀란타에서 Sleeping With The Past 투어의 마지막 일정이 진행되었고,[4] 당시 이기 팝과 작업했던 프로듀서 돈 워스와 같이 1990년 7월 LA에서 잠시 작업을 했고, 5곡 "You Gotta Love Someone", "Made For Me", "Medicine Man", "I Swear I Heard The Night Talking", "Easier To Walk Away"와 나머지 3곡을 녹음했다.[5] "You Gotta Love Someone"와 "Easier To Walk Away"가 1990년 8~9월에 싱글로 발매되었고, 다른 3곡은 각각 싱글 B면에 수록되었다. 'Easier To Walk Away'는 큰 히트를 치지 못했지만, "You Gotta Love Someone"은 캐나다 1위,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1위로 기록되어 히트쳤다. 당시 두 싱글이 발매되고 나서 1990년 10월 1일에 4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The Very Best Of Elton John이 미국을 제외한 여러 국가들에서 발매되었고, 막대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엘튼 존은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1990년 7월 29일 시카고의 파크사이드 루터 병원의 갱생 시설에 입원해서 약물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결정을 내렸고, 약 1년 동안 재활 치료를 했다. 당시 그 갱생 시설에 보냈던 시간을 회고하길, 자신의 방은 그가 그동안 지냈던 화려하고 넓고 사치스러운 방이 아닌 다른 환자들과 같은 평범한 방에 직접 지냈다고 했다. 마치 신병 훈련소 같은 느낌으로 지냈고, TV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그런 시설.[6]

1990년 11월에 박스 세트 To Be Continued...가 발매되었고, 엘튼 존의 1965년부터 1990년까지의 경력을 담을 정도로 연대기로 정리한 곡들로 수록된 박스 세트이다. 1990년 11월 미국에서 발매되었을때 이 박스 세트의 표지는 엘튼 존의 정규 앨범 커버들과 연대기를 한번에 합친 앤솔로지 분위기의 커버지만, 엘튼 존은 이를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아 영국판에선 깔끔하게 차려입은 엘튼 존 본인 커버로 바꾸었고, 1년 뒤인 1991년 11월에 발매되었다.[7]

1991년 3월 23일 웸블리 아레나에서 열린 조지 마이클 공연에서 엘튼 존이 특별출연해 듀엣으로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불렀다. 이 버전은 1991년 말에 싱글로 발매되어[8] 빌보드 1위, 영국 1위, 다수의 국가에서 싱글 차트 5위 안에 진입해 대부분 1위로 기록되면서 가장 커다란 엘튼 존의 히트곡들 중 하나가 되었다. 1991년에 플루트 연주자 제임스 골웨이가 커버한 애절한 연주곡 "Basque"가 1992년 그래미어워드의 올해의 연주곡 부문에서 우승했다.

2. 제2의 전성기 (1992~1999)

2.1. The One부터 Made In England까지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b5d70b436c2a9f5a8ff3ed62b917eeb4.jpg
1992년 1~3월 사이 프랑스 파리에서 촬영된 사진
1991년까지 꾸준히 이어온 재활 치료 덕에 마약과 술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1991년 12월~1992년 1월 쯤에 머리를 이식해 거의 20년 만에 풍성한 머리숱을 가지게 되었고, 이전보다 더욱 젊어 보이기 시작해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1992년이 오면서 친한 동료 둘을 잃기도 했는데 70년대부터 사적으로 친했던 프레디 머큐리가 1991년 11월 24일에 사망했고, 1970년부터 함께 해왔던 엘튼 존 투어 밴드의 원년 멤버, 베이시스트 디 머레이가 피부암으로 1992년 1월에 사망했다. 엘튼 존은 1992년 3월 15일 미국 내쉬빌 주에서 디 머레이를 추모하는 공연을 열었었고,[9] 1992년 4월 20일 그 유명한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에 참여해서 액슬 로즈와 같이 보헤미안 랩소디 The Show Must Go On[10]을 불러 화제가 되었다.

재활 치료가 끝난 시점인 1991년 11월부터 1992년 3월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앨범 작업에 들어갔고, 1988년 11~12월에 작업된 22집 Sleeping With The Past 이후로 3년 만이다. 그렇게 작업된 23집 The One은 그해 6월 22일에 발매되었다. 알코올과 마약 중독, 폭식증에서 치료되고 나서 처음으로 발매된 앨범인 셈. 영국 2위, 호주 2위, 캐나다 7위, 프랑스 1위, 오스트리아 1위, 독일 1위 등 여러 국가에서 10위 안에 진입되어 상업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 빌보드 200에선 8위로 기록되었고, 1976년 11집 Blue Moves 이후 무려 16년 만에 빌보드 10위 안에 진입한 경우.[11]

싱글은 "The One", "Runaway Train", "The Last Song", "Simple Life"가 발매되었고, "The One"은 빌보드 9위, 영국 10위, 캐나다 1위 등 여러 국가에서 10위 안에 진입되어 히트쳤다. 에릭 클랩튼과 듀엣으로 부른 "Runaway Train"은 영국 31위, 벨기에 17위로 기록, "The Last Song"은 영국 21위, 빌보드 23위, 캐나다 7위,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2위로 기록되었다. "Simple Life"는 1993년 5월에 발매되었고, 영국 44위, 빌보드 30위로 기록,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1위, 캐나다 3위로 기록되어 히트쳤다. 앨범과 싱글들의 상업적인 성공으로 재기에 완벽하게 성공했고, Sleeping With The Past로 부활한 음악성이 그대로 편승되면서 수려하고 높은 완성도를 보인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재기를 통해서 생긴 제2의 전성기도 이 시점부터 생겼다.

1992년 5월부터 2년 만에 투어 활동을 재개했고, 1993년 9월까지 The One 투어로 진행했다. 1988년부터 사용하던 롤랜드 전자 피아노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투어이기도 하다.[12] 1992년 6월에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진행했고, 에릭 클랩튼도 참여해서 듀엣으로 "Runaway Train"을 불렀다. 그리고 1992년 MTV 뮤직 어워드에서 액슬 로즈의 "November Rain"에 피쳐링해서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다.

1993년 8월부터 9월까지 작업된 23집이자 15명의 뮤지션들[13]과 듀엣으로 부른 합동 앨범 Duets가 그해 11월 30일에 발매되었고, 여러 국가에서 앨범 차트 10위 안에 진입되어 꽤 성공했다. 이 앨범에서 키키 디와 듀엣으로 부른 "True Love"가 싱글로 발매되어 영국 싱글 차트 2위로 기록되었고, 1976년 "Don't Go Breaking My Heart" 이후로 17년 만에 거둔 히트곡이다.

1994년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뮤직비디오.
1992년 말부터 1993년 초까지 팀 라이스 합작으로 라이온 킹의 음악을 작업했고, 1993년 가을부터 1994년 5월까지 작업된 사운드트랙 The Lion King은 영화와 더불어서 전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여러 국가에서 10위 안에 진입했고, 미국에선 1위로 기록했다.[14] 1995년 RIAA 기준으로 미국에선 무려 1천만장의 판매량을 거두어 그해 미국에서 4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고, 다이아몬드를 기록해 가장 많이 팔린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 앨범이 되었다. 1994~1995년 아카데미상, 그래미상, 골든글로브상에서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가 3차례나 수상했다. 상복이 없던 젊은 시절과 달리 라이온 킹으로 인해서 1990년대 중반부터 제대로 상들을 받기 시작했고, Circle of Life와 더불어 엘튼 존의 두번째 전성기를 확실하게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15] 이 두 곡은 1994년 5월, 8월에 싱글로 발매되었고, "Circle of Life"는 빌보드 18위,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은 최고 4위로 기록되는 등 여러 국가에서 큰 성공을 보였다.

1994년 7월부터 빌리 조엘과 합동 투어 Face To Face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2010년까지 16년 동안 세계를 돌면서 진행되었다.

라이온 킹 음악을 한창 작업 중이던 1994년 2월부터 4월까지 영국 런던의 AIR 스튜디오에서 25집 Made In England를 작업했고, 다음 해인 1995년 3월 20일에 발매되었다. 이 앨범도 여러 국가에서 5~10위 안에 진입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고, The One 다음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엘튼 존의 1990년대 앨범이 되었다. 싱글 "Believe"[16], "Made In England", "Blessed", "Please"가 발매되었고, 대부분 싱글 차트 10~20위 안에 진입되어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96년 1~2월 쯤에 Belfast가 싱글로 발매될 예정이었다가 취소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1995년 5월부터 1995년 11월까지 Made In England 투어를 진행했고, 다음 해인 1996년에는 일부 자선 공연을 제외하면 투어를 진행하지 않았다.[17]

1996년에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듀엣으로 부른 "Live Like Horses"가 1996년 12월에 싱글로 발매되어 영국 9위로 올랐다.

1996년 4월 팀 라이스와 두번째 합작으로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모티브한 Aida를 작업했다. 엘튼 존은 25곡을 2주 만에 작곡했고 이후 2년 뒤인 1998년 7월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들이 녹음한 사운드트랙 앨범의 콘셉트 앨범 형식으로 Elton John And Tim Rice's Aida를 작업해 1999년 3월에 발매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는 드림웍스의 장편 애니메이션 The Road To El Dorado의 사운드트랙을 작업해 총 17곡을 작곡했고[18] 2년 뒤 1998년 가을에 사운드트랙 앨범을 작업하고나서 2000년 3월에 발매했다.

1996년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Love Songs에 수록된 "You Can Make History (Young Again)"이 1996년 10월에 싱글로 발매되었고, 빌보드 70위,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4위로 올랐다.

1995년 내내 데이비드 퍼니시는 엘튼 존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Tantrums & Tiara>를 제작했고 1997년에 방영되었다. 25집 Made In England 뮤직비디오의 제작 배경과 동료 뮤지션과의 협업, 무대 리허설,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여 등의 다양한 장면들로 수록하여 상당한 반응을 끌었는데 엘튼 존을 사치스럽고 별 것도 아닌 것에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사람이라고 각인시키는데 한몫했다는 부정적인 평도 존재한다.

2.2. Candle In The Wind 1997부터 Elton John And Tim Rice's Aida까지

파일:external/www.billboard.com/elton-john-princess-di-funeral-1997-billboard-650.jpg
1997년 9월 6일 다이애나비의 장례식에서
1997년 1월 17일 프랑스 파리의 샤이요 국립극장 (Theatre National de Chaillot)에서 베자르 발레단 (Bejart Ballet)의 퍼포먼스에 맞춰 의 멤버와 같이 프레디 머큐리, 조르주 돈을 기하는 공연을 진행했고, 엘튼 존은 여기서 The Show Must Go On를 불렀다. 1997년 3월 25일 50번째 생일 파티에서 배우자 데이비드 퍼니시와 같이 루이 14세 복장을 입었다. 1970~80년대에 입던 복장들보다 더더욱 화려하기 그지 없는 파격적인 복장.

하지만 1997년은 엘튼 존에게 비극적이면서 이례적인 해가 되었다. 그해 7월 15일에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이자 엘튼 존의 친한 동료였던 지아니 베르사체가 본인의 마이애미 저택에서 동성애자 연쇄살인범의 총에 맞아 사망했고, 8월 31일 다이애나비가 교통사고로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19] 순식간에 1개월 안에 절친한 친구 2명을 잃게된 엘튼 존은 큰 슬픔에 잠겼었다.

1997년 9월 2일 영국의 기업인이자 버진 그룹의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에게 연락이 왔는데, 다이애나의 누이인 레이디 사라가 엘튼 존을 다이애나의 장례식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걸 원한다고 전했다. 엘튼 존은 버니 토핀에게 연락해서 만약 엘튼 존이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면 부를 곡이 필요하다고 했고, 다이애나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엘튼 존의 Candle In The Wind를 개사 해야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곡이 이 곡이라는 점과 다이애나 비가 생전 이 곡에 대한 애착을 잊어먹을순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서 다이애나의 유족과 왕실에서 허락을 받아 기존의 곡을 개사하기로 했고, 버니 토핀은 원곡의 가사를 다이애나를 추모하는 내용으로 개사했다. 자세한 내용은 Candle In The Wind 1997 문서 참고.

장례식에서 부른 추모 버전이 큰 반향을 끌게 되어 며칠 뒤 9월 13일(UK), 9월 23일(US)에 더블 A면 싱글 Something About The Way You Look Tonight/Candle In The Wind 1997로 발매되었고, 다수의 나라에서 1위로 기록되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 전세계적으로 무려 33,000,000장이나 팔렸고,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은 1942년에 발매되었고, 50,000,000장이나 팔린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이지만, 단기간으로 보면 Candle In The Wind 1997가 가장 많은 판매를 거둔 싱글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최단기 기록 등으로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어 엘튼 존 경력 역사상 가장 성공한 곡이 되었다.

엘튼 존의 음악 판매량을 이 싱글로 인해 완전히 절정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 그 결과 1998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 최고의 남성 팝 보컬로 우승했고, 1998년 BRIT 어워드에선 올해 최고의 영국 싱글로 노미네이트되었다. 그리고 이 천문학적인 수익금 전액(을 다이애나비 측에 기부했다는 것이다. 정확한 금액은 확인할수 없을 정도이고, 정말로 커다란 금액을 내놓기는 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다음해인 1998년에 엘튼 존이 기사작위 서임자로 발표되면서 설명된 서임배경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For services to Music and for charitable services. CBE 훈장을 받은지 불과 약 2년 뒤에 대영제국 서훈자 명단에 기사 작위 대상자로 이름이 올라 기사 작위를 받은 것.

1995년 9월 15일 영국 런던의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열린 몬트세랫 자선 공연인 Music for Montserrat에 참여하여 Your Song,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Live Like Horses"를 피아노 솔로로 불렀고, Hey Jude의 2절을 살짝 부르기도 했다. 1997년 9월 27일 An Audience With.. 프로그램[20]에 출연했고, 9월 19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VH1 Storytellers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작은 피아노 솔로 공연을 열었다. 그리고 1997년 11월 BBC의 <Children In Need> 자선 싱글 Perfect Day에 참여했고, 이 곡은 영국에서 1위로 기록되었다.
파일:external/3.bp.blogspot.com/ScreenHunter_54+Apr.+06+19.01.jpg
1999년 3월 Elton John And Tim Rice's Aida 공식 석상.[21]
1997년 봄부터 여름까지 북런던의 The Townhouse 스튜디오[22]에서 26집 The Big Picture를 작업했고, 그해 9월 22일에 발매되었다. 세계적으로 막대한 성공을 거두던 Something About The Way You Look Tonight/Candle In The Wind 1997 버프로 인해 여러 국가에서 10위 안에 진입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전작들에 비하면 그다지 큰 반응을 끌진 못했다. 전작들에 비해 미치지 못한 느슨한 완성도와 오버 프로덕션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앨범의 6번 트랙 "Something About The Way You Look Tonight"을 Candle In The Wind 1997에 수록해서 더블 싱글로 묶어서 발매되었고, 일반 싱글은 9월 5일에 발매되었다.[23] 1998년 4월 1일에 "Recover Your Soul", 6월 1일에 "If The River Can Bend"가 발매되었고, 왠만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Candle In The Wind 1997의 그림자에 가려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1997년 7월부터 다시 투어 활동을 시작, 1997년 10월부터 The Big Picture 투어를 진행하기 시작하여 1998년 11월까지 1년 동안 진행되었고, 빌리 조엘과 함깨한 <Face To Face> 투어도 같이 진행했다. 투어 중, 짐 캐리 무대로 올라 엘튼 존과 Rocket Man을 유쾌하게 부른 적도 있다. 당시 짐 캐리는 피아노 건반에 머리로 마구 두들겼다.

1998년 7월에 1996년에 작업한 아이다 콘셉트 앨범 형식으로 유명 뮤지션들이 참여해서 작업해 1999년 3월에 Elton John And Tim Rice's Aida로 발매되었다. 리앤 라임즈와 듀엣으로 부른 "Written In The Stars", 아이다 뮤지컬의 초연 배우 헤더 헤들리와 셰리 르네 스캇과 부른 "A Step To Far"가 싱글로 발매되었고, "Written In The Stars"는 캐나다 4위, 빌보드 29위,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2위, 영국 10위로 기록되어 히트쳤다. "A Step To Far"는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15위로 기록되는 걸로 그쳤다.

1999년 초에 코미디 영화 The Muse의 사운드트랙을 작업했고, 그해 8월에 The Muse로 발매되었다. 1999년 2월부터 엘튼 존은 피아노 한대만 구성된 피아노 솔로 투어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그해 12월까지 10개월 동안 진행되었다. 1999년 12월 31일에는 라스베가스에서 공연을 열었고, 엘튼 존 밴드가 참여했다. 1999년에 진행된 공연들 중에서 유일하게 밴드가 참여한 공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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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0년 초에는 체중이 100kg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2] 원래 처음에 I'm Still Standing을 불렀다가 상황과 안 맞는 곡이었기 때문에 곡 도중에 중단하고 이 곡으로 넘어갔다. [3] 참고로 엘튼 존은 장례식 준비를 도왔고, 관을 옮기는 사람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4] 이 시기의 엘튼 존은 정말 건강 상태부터 모든게 최악에 달았다. 주변 동료들도 그가 무대에서 휘청거리거나 피아노 연주나 보컬도 이전 만도 못했다고 했고, 마치 망가진 엘비스 프레슬리의 재림이라고 여겼었다. [5] 이 곡들은 공개되지 않은 미발매곡들이다. [6] 하지만 십수년 간의 약물 복용을 단지 재활 치료로 끝낼수 없다고 생각해 재활 치료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가 여러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고, 병원의 권위적인 체계에 익숙하지 못해 2번이나 짐을 싸서 도망칠려고 하는 등 마음고생이 심했다. [7] 1991년 영국판에 수록된 몇 추가된 곡은 1991년 11월에 녹음된 신곡 "Understanding Women"과 "Suit Of Wolves"이다. "Understanding Women"은 1992년 The One에 10번 트랙으로 수록되었고, "Suit Of Wolves"는 1992년 "The One" 싱글 B면에 수록되었다. [8] 1974년 원곡, 1987년 호주 공연의 라이브 버전까지 합쳐서 이 곡의 3번째 싱글이었다. [9] 검은색 롤랜드 디지털 피아노 한대로 진행되던 작은 공연이었다. 당시 엘튼 존은 폭식증과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던 재활 치료 시점이 거의 끝나 가고 있었지만, 성대가 그리 온전치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평소보다 좀 나긋하게 불렀다. 이 공연은 1976년 9월 17일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공연 이후로 16년 만에 다시 진행된 피아노 솔로 공연이기도 하다. [10] 이 곡은 1992~1993년 The One 투어의 레파토리로 자주 불렀다. [11] 9위로 기록된 1997년 26집 The Big Picture를 제외하면 이후에 발매된 앨범들은 미국 빌보드에서 10위 안에 진입되지 못했다가, 2010년 30집 The Union이 미국 빌보드 200 3위로 기록되었고, 이후에 발매된 앨범들은 꾸준히 빌보드 10위 안에 진입했다. [12] 그해 9월 31일부터 진행되기 시작한 레이 쿠퍼 투어에서 다시 그랜드 피아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3] 리틀 리처드, 돈 헨리, 키키 디, 조지 마이클, 닉 커쇼, 글래디스 나이트, 폴 영, 보니 레잇, 레너드 코헨 등 라인업이 아주 화려하다. [14] 1975년 11집 Rock Of The Westies 이후 처음으로 1위로 기록된 엘튼 존 앨범으로 볼 수 있다. [15] 현재도 엘튼 존하면 떠오르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라이온 킹의 사운드트랙이다. 라이언 킹 사운드트랙을 계기로 엘튼 존은 1990년대부터 영화, 뮤지컬의 사운드트랙에 매진하기 시작한 것. [16] 싱글로 발매되기 전인 1994년 9월 공연부터 먼저 공개되었다. [17] 1997년부터 다시 진행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 한번도 투어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18] 한스 짐머 작곡의 연주곡이 아닌 엘튼 존/팀 라이스 작사작곡 한정. [19] 다이애나비는 지아니 베르사체의 장례식에서 엘튼 존과 동행하기도 했다. [20] 엘튼 존이 해당 에피소드에서 MC로 진행해 관중석에 앉아있는 유명인들과 대화를 하거나 노래를 몇곡 부르는 형식의 인터뷰 프로그램. [21] 왼쪽부터 헤더 헤들리, 룰루, 엘튼 존, 빅토리아/ 데이비드 베컴. [22] 2001년 27집 Songs From The West Coast까지 이 스튜디오를 사용했다. [23] 일반 싱글로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1위, 캐나다 14위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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