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엘리는 그리스 왕국이 제1차 발칸전쟁 당시 그리스가 승리했던 해전인 엘리 전투[1]의 이름을 딴 방호순양함이다.2. 제원
운용 국가 | 그리스 왕국 |
전장 | 98m |
전폭 | 12m |
높이 | 4.3m |
표준배수량 | 2,149t |
만재배수량 | 2,642t |
최대속력 | 18kt(1940년까지), 26kt |
무장 |
152mm 단장포 3기 76mm 함포 2기 40mm 대공포 3기 기뢰 100개 수용 가능 483mm 어뢰발사관 2기 |
승원 | 238명 |
기공 | 1911년 6월 14일 |
진수 | 1912년 5월 9일 |
준공 | 1913년 11월 |
3. 상세
엘리는 1913년에 완성되어, 청나라가 미국에 주문한 자오허급 방호순양함중 3번함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청나라에서 신해혁명으로 인해 구매를 취소한다. 완성함을 폐기시키고 싶지 않았던 뉴욕조선공사는 발칸 전쟁 이후 해군 확장 계획을 하던 그리스에 판매를 한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을 겪는다. 이때 그리스는 총리였던 베니젤로스는 협상국을 옹호했고 국왕이던 콘스탄티노스 1세는 중립을 옹호하면서 국가 분열을 초래했다. 1916년 11월에 프랑스가 그리스를 압박하기 위해 그리스 함선들을 압수한다. 압수된 함선들은 1917년 6월 그리스가 협상국 편으로 참전하기 전까지 에게해에서 호송 및 순찰임무를 수행했다. 그후 그리스 해군은 에게해에서의 협상국의 작전을 돕는다.1920년에 요르요스 아베로프 장갑순양함과 함께 프랑스에서 개장을 받았다. 이때 기뢰 부설장비를 갖추게 되었다.
4. 침몰과 그리스 침공
1940년 8월 15일 오전 8시 25분, 성모 승천 대축일 행사를 위해 에게 해의 티노스 섬에 정박해 있던 엘리는 이탈리아 왕국의 스쿠알로급 잠수함 "델피노[2]" 가 발사한 세 발의 어뢰 중 한 발을 보일러실에 맞고 화재가 난 후 침몰했다. 이로 인해 수병과 하사관 9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다. 사건 후 그리스군이 어뢰의 파편을 조사한 결과 이탈리아군의 어뢰로 확인되었으나, 그리스 정부는 이탈리아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를 은폐했다.문제는 1939년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왕국 합병과 1940년 추축군의 프랑스 침공으로 이탈리아-그리스 관계가 매우 악화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이탈리아에서는 그리스를 영국의 동맹국이라며 비난하는 여론이 일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리스에서는 이탈리아가 엘리를 격침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며, 이는 그리스인을 단결시켜 그리스 침공에서의 강렬한 저항의 계기가 된다.[3]
5. 함명의 계승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이탈리아는 그리스 왕국에게 두카 다오스타급 경순양함의 2번함 에우제니오 디 사보이아를 엘리의 침몰에 대한 배상함으로 넘겼고 1950년 6월 그리스 해군사령부겸 함대 총기함[4] "엘리"로 취역한다.그 후 1981년 그리스 해군은 네덜란드로부터 코르테나르급 호위함의 6번함 "피터 플로리스"와 7번함 "위트 드 위트"를 구매하고[5] 6번함을 엘리급 호위함 1번함 "엘리"로 명명, 현재까지도 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