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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19:45:39

어니 셰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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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 셰이버스
Earnie Shavers
<colbgcolor=#000000><colcolor=#aa9872,#8c7a55> 본명 어니 디 셰이버스
Earnie Dee Shavers
출생 1944년 8월 31일
미국 앨라배마주 갈런드
사망 2022년 9월 1일 (향년 78세)
미국 버지니아주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권투
전적
91전 76승(70KO) 14패(7KO) 1무
신장/리치 183cm / 201cm
체급 헤비급
스탠스 오서독스
링네임 Black Destroyer


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언급6.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전 권투 선수.

2. 전적

3. 커리어

22세에 복싱에 입문했고 AAU 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아마추어 총산전적 20승 6패를 기록한 후 1969년 프로로 전향했다.

프로 전적 44승 2패 43KO 기록한 후 셰이버스는 1973년 6월 18일, 전 WBA 헤비급 챔피언 지미 엘리스를 1라운드 KO시켰다.

그러나 1973년 12월 14일 제리 쿼리에게 1라운드 만에 KO패를 당했는데, 셰이버스는 그 전까지 32연승을 달리고 있었으며, 그 중 31번은 KO로 승리했다.

1975년 9월 13일 론 라일에게 6라운드 KO로 패배했다. 셰이버스는 2라운드에 레프트 훅으로 라일을 다운시키며 이번에도 KO승을 거두는가 했지만, 라일은 6라운드에 오른손 스트레이트 연발로 셰이버스를 잠재웠다.

1977년 9월 29일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 경기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겨루었다. 알리는 2라운드 셰이버스의 라이트에 데미지를 심하게 입었지만, 그 라운드를 살아남은 후 고전 끝에 15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1978년 3월 25일 WBC 타이틀 결정전에서 래리 홈즈에게 12라운드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이후 홈즈는 켄 노턴과의 타이틀 매치에서 접전을 펼치며 15라운드 스플릿 판정승을 거두고 WBC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다. 하지만 셰이버스는 1979년 3월 23일 WBC 타이틀 결정전에서 노턴을 1라운드 만에 제압했다.

1979년 9월 28일 WBC 헤비급 챔피언십을 위해 홈즈와 2차전을 벌였다. 셰이버스는 첫 6라운드를 홈즈에게 압도당했으나, 7라운드에 오른손 오버핸드로 홈즈에게서 다운을 뺏었다. 홈즈는 쇠망치에 맞은 것처럼 쓰러졌지만, 금새 일어나서 라운드를 버텼고 11라운드 TKO로 셰이버스를 제압하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셰이버스는 홈즈에게 패배한 후 망막 박리 진단을 받았는데, 망막을 다시 붙이는 수술을[1] 받고 꾸준히 경기를 가지며 1995년까지 경기를 치르고 은퇴했다.

이후 버지니아주에서 후진을 양성하다가 2022년 향년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4. 파이팅 스타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복싱 매체나 동시대 선수들의 경험에 따른 평가에서 펀치력만큼은 올타임 베스트로 뽑힌 헤비급 최고의 핵펀치 보유자다. 지금도 복싱 역사상 최고의 핵펀치를 뽑으라고 하면 나오는 소니 리스턴, 조지 포먼, 디온테이 와일더와 함께 무조건 한손에 꼽을 정도로 거론되는 슬러거중 한명이다. 무하마드 알리, 켄 노턴, 래리 홈즈 등 셰이버스를 상대했던 모든 선수들이 당대 경쟁자인 조 프레이저나 포먼보다도 셰이버스가 셌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실제로 KO율이 92.11%다. 리치도 길어서 리치싸움에서 크게 밀리지는 않았다. 시그니처는 오른손 어퍼컷에 이은 왼손 훅 콤비네이션, 오른손 스트레이트 인데 특히 오른손 스트레이트 한방으로 침몰시킨 선수가 꽤 많다.

단점은 복싱을 늦게 시작해 기본기가 부족했다. 거리조절 능력이 부족하고 펀치의 회수가 느려 카운터를 많이 허용했고 가드역시 부실했다. 헤비급인 것을 감안해도 맷집이 강한 편은 아니었다.

5. 언급

"어니가 나를 너무 세게 때려서, 아프리카에 있는 내 친척들이 충격을 받았다."
"Earnie hit me so hard, it shook my kinfolk back in Africa."
무하마드 알리
"어니는 마이크 타이슨을 포함한 다른 어떤 파이터보다 나를 더 세게 때렸다. ... 마이크 타이슨에게 맞는 건 질주하는 페라리에 맞는 것 같았다. 어니 셰이버스에게 맞는 건 맥 트럭에 맞는 것 같았다."
"Earnie hit me harder than any other fighter, including Mike Tyson. ... Being hit by Mike Tyson was like getting hit by a speeding Ferrari. Being hit by Earnie Shavers was like being hit by a Mack Truck."
래리 홈즈
"내 인생에서 가장 세게 맞았다. 조지 포먼은 펀치를 날릴 수 있었지만, 어니 셰이버스만큼은 날릴 수 없었다. 그가 당신을 때렸을 때, 불이 꺼졌다. 지금에서야 웃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웃기지 않았다."
"Hey man, that's the hardest I've ever been hit in my life. And George Foreman could punch, but none of them could hit like Earnie Shavers did. When he hit you, the lights went out. I can laugh about it now, but at the time, it wasn't funny."
론 라일
"셰이버스처럼 때리는 사람은 없다. 만약 누군가 셰이버스보다 더 세게 때린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총을 쏘겠다. ... 어니는 오른손으로 네 목을 때려서 발목을 부러뜨릴 수도 있다."
"Nobody hits like Shavers. If anybody hit harder than Shavers, I'd shoot him. ... Earnie could punch you in the neck with his right hand and break your ankle."
랜달 콥

6. 여담

1라운드 KO승만 23회이며, 3라운드 이내에 KO로 승리한 횟수는 무려 50회다.

영화 록키 3의 메인 빌런인 클러버 랭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실베스터 스탤론[2]과 스파링을 하였는데 스탤론은 힘 조절을 하는 셰이버스에게 진심을 다할 것을 요구했고 그의 진심을 다한 리버샷을 맞은 후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토를 하였다고 한다.[3]

조지 포먼은 복귀 후 토크쇼에 출연하여 자신이 만난 최고의 하드펀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진행자가 셰이버스에 대해서 물어보자 "전 어니 셰이버스와 싸운 적이 없습니다. 정말 다행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셰이버스도 1987년에 한 번, 1995년에 두 번 복귀 경기를 치르기도 했지만 포먼처럼 재기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은퇴 후 목사가 되어 목회 활동을 하였다.

슬하에 5명의 딸을 두었다.


[1] 이 수술은 나중에 망막 박리를 겪은 슈거 레이 레너드를 수술한 로널드 G. 미셸스 박사가 진행했다. [2] 알리와 셰이버스의 경기를 보러가기도 한다. [3] 셰이버스는 결국 캐스팅에 떨어졌는데 이유는 목소리가 너무 높아서 위협적인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