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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준혁의 평가를 다룬 문서.2. 타격 및 수비
KBO 리그 최고의 비율스탯을 자랑하는 선수로,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또한, 이견의 여지가 없는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지명타자이기도 하다.[1]사실상 KBO판 테드 윌리엄스로 불릴 정도로, 순수 타격 실력은 KBO 리그 역사상 최고. 스탯티즈 기준 통산 wRC+ 2위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1위인 장효조는 통산 타석이 양준혁의 절반도 안 된다. 범위를 비율 타석 집계 기준인 3,000타석에서 1,000타석까지 내려도 양준혁을 앞지른 것은 장효조를 제외하면 외국인 선수인 펠릭스 호세, 에릭 테임즈, 래리 서튼밖에 없다. 누적 기록도 정말 대단해서, 수비 포지션이 3루수라서 기록에 유리한 면이 있는 WAR 1위 최정은 양준혁의 18시즌 WAR을 앞지르기 위해 19시즌이 필요했다. 양준혁은 수비 기여도가 낮은 1루수, 코너 외야수, 지명타자를 돌아다녔으니 정말 오로지 타격만으로 WAR을 뽑아낸 것이다.
풀타임 3할 이상을 보장하는 훌륭한 컨택능력, 30홈런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급 장타력을 겸비했으며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장점은 선구안. 선구안이 기가막힌 수준이라 출루율이 매우 높다. 통산 타출갭이 0.1을 넘고, BB/K(볼삼비)의 수치가 통산 1.4이며 단 한 시즌을 빼고 모조리 1.0을 넘었다. 보통 타자들의 평균적인 BB/K는 0.6에서 0.7 정도로 형성되며, 이대호가 0.73, 김태균이 0.82를 기록했다. 사족으로 1.0 못 넘은 그 한 시즌도 0.7. 통산 BB/K는 4위에 BB%(타석당 볼넷 비율)는 2위인데, BB/K와 BB%가 모두 5위권 안에 들어가는 선수는 양준혁과 장효조 밖에 없고 10위권으로 범위를 늘려도 장성호만이 추가로 포함된다.
즉, 다른 선수들이 적극적인 타격으로 삼진 갯수를 줄여 BB/K는 높지만 볼넷도 적다든가, 신중하게 볼을 골라서 볼넷은 많지만 삼진도 많은 유형이라면, 양준혁과 장효조는 볼은 거르고 스트라이크는 안타로 만드는 완전체에 가까운 교타력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데뷔 시즌을 빼면 홈런 갯수가 적었던 장효조와는 달리, 양준혁은 300개가 넘는 홈런을 치면서도 이러한 선구안을 자랑했다. 실제로 양준혁은 30홈런 정도를 칠 수 있는 파워에 장효조급 출루율을 겸비한 타자라고 볼 수 있으며, 둘의 통산 출루율 차이는 겨우 0.006밖에 되지 않는다. 비록 대졸이라서 비율 스탯에 어느 정도 이득을 본 면이 있긴 하지만[2], 고졸인 장성호가 말년에 스텟을 다소 까먹은 반면 양준혁은 은퇴 직전인 2009년에도 332타석에 BB/K 2.63으로 자신의 커리어 중에서도 최고의 BB/K를 찍었으며 은퇴 시즌에도 1.4의 BB/K를 기록하는 등 괴물 같은 선구안을 유지했다.
은퇴 시점에서 1위를 기록했던 수많은 누적 기록 중 대부분이 후배들에 의하여 경신되었으나 볼넷만큼은 누구도 넘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그래서인지 스스로도 볼넷의 가치를 높게 친다. 은퇴 직후 아직 기록들이 갱신되지 않았을 때부터 각종 인터뷰 등에서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타이틀로 최다 볼넷 타이틀을 언급하기도 했으며, 해설위원 활동을 시작하면서 "주자가 없는 상황에는 1루타보다 볼넷이 더 효과적이다. 상대투수와 수비진에게 가하는 스트레스가 볼넷이 더 크기 때문이다. 구단에서 타자에게 보너스를 줄때 볼넷에는 1루타보다 더 큰 가중치를 줘야 한다."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2024년 6월 기준 양준혁의 통산 볼넷은 1278개이며, 2위가 1141개인 김태균, 4위가 1101개인 장성호로 모두 은퇴 선수들이고 3위가 1104개로 현역인 최형우인데, 그 다음 현역이 1008개로 6위인 최정인걸 감안하면 사실상 양준혁의 볼넷기록은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 시점에서 그정도로 볼넷을 잘 골라낼 정도의 선수면 출루율이 무지막지하게 높다는 소리고, 보통 그정도의 탑클래스 선수들은 해외 진출 시도를 하기 때문에 해외 진출 기간동안 누적을 쌓지 못하기 때문.
실제로도 세이버메트릭스가 등장한 후 양준혁이 현역시절 기록한 높은 출루율은 각종 수치를 통해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으며, 선동열, 이종범, 임창용, 이승엽 등 당대의 괴물들에 버금갈 정도로 양준혁은 WAR*에서 꾸준하게 탑급이었다. 이렇게 양준혁은 기본적으로 선구안과 타격기술이 매우 뛰어난 교타자라고 할 수 있으나, 야구계 선배이자 스승이었던 김응용처럼 전형적인 장사 체형으로 몸이 거구에다, 신체적인 힘이 뛰어나서 제대로 맞으면 타구를 까마득하게 날려버릴 수 있다. 그로 인해 슬럼프가 쉽게 오지 않아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타격에선 그 존재감과 꾸준함을 드러내, 현역 말기까지도 양준혁을 빼면 타순이 안 짜여질 정도였다.[3]
수비에서는 주로 코너 외야수와 1루수를 뛰었다. 외야수로서는 수비범위가 아주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 몫은 해냈고, 송구 능력도 그럭저럭 있는 수준이다.[4] 1루수로서는 이승엽이나 채태인 급의 수비수는 아니지만 덩치가 커서 타겟이 넓으므로 수비수들이 편안하게 던지면 받을 수 있는 수준은 된다. 즉 평균 이상의 수비는 해냈다는 이야기. 물론 국가대표 기준으로 올린다면 리그에서의 양준혁의 타격성적이 훨씬 높다고 하지만 국대에서는 수비를 더 신경쓰는 편이다. 또 경쟁하는 선수들과 포지션이 겹치는 것은 물론, 군 문제도 해결된 선수였기 때문에 프로 이후 국가대표로 선발된 적은 거의 없다. 야구의 경우 방콕 아시안 게임 이전까지 국가대표는 아마추어 선수들만 나가는 대회였으며 이후에도 1루, 지명타자 자리는 이승엽, 김태균, 이대호 등 걸출한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양준혁의 자리는 없었다. 사실 국가대표를 뽑는 시기였던 2000년 초반, 2002년, 2005년에 유독 부진한 활약을 보이기도 했었다. 아마추어 때는 국가대표였으며, 리그 최고의 선수들을 뽑아가던 한일 슈퍼게임에는 2번 참여했었다.
3.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의 대표적인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꾸준함이다. 2002, 2005년, 2008년을 제외하고 항상 타율 3할을 기록했고,[5][6] 9년 연속 3할 타율을 쳐내 장성호, 손아섭과 함께 공동 2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7] 데뷔 이후로부터 16년 연속 100안타로 연속기록 1위,[8] 15년 연속 10홈런으로 연속기록 1위[9]이라는 역사를 써나갔다. 또한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초로 개인통산 2000안타를 이루어낸 선수이다. 다만 본인은 안타기록보다 자신의 선구안의 증명인 볼넷기록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은퇴 시점에서 개인 통산 최다 안타, 최다 타석, 최다 홈런, 최다 사사구, 최다 2루타, 최다 루타, 최다 장타, 최다 득점, 최다 타점, 최다 출장, 최다 타수에 1위로 랭크되어 있었다. 이후 홈런, 2루타, 타점, 장타 등의 기록은 일본에서 돌아온 이승엽에게 빼앗겼고, 안타와 타석의 기록도 박용택에게 뺏기긴 했지만 볼넷과 관련된 기록은 넘사벽으로, 통산 사사구 개수가 2위 김태균과도 무려 131개나 차이나고 심지어 김태균의 NPB 경력을 합쳐도 못 넘는다. 더불어서 역대 최고령 기록 부분에 들어가면 정말 기록이 한도 끝도 없게 된다. 비율 스텟도 우수해서 은퇴 시점에서 개인 통산 타율 2위(.316)[10], 출루율 2위(.421)[11], 장타율 4위(.529)[12]를 기록했고, 더해서 도루 19위까지 기록했다.
머슴스타일의 외모와 주루방식,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친다' 라는 타격에서의 명성 때문에 가려져있지만 도루기록도 상당히 준수하다. 2007년에 38세의 나이에 기존의 이종범을 넘어 당시 기준 역대 최고령 20-20에 가입하였다.[13] 발이 아주 빠르다기보다는 타이밍을 잘 포착하는 편이다. 실제로 평균 주력은 평균보다 살짝 빠른 정도로 덩치를 감안하면 빠르다고 느낄 정도이다.[14] 다만 도루 성공률은 심하게 떨어지는 편. 통산 도루가 193개로 꽤나 많지만 통산 도루실패 또한 113개로 매우 많다. [15] 흔히 도루성공률이 65% 이하이면 경기에 별 도움 안 되는 민폐 도루라고 여겨지는데[16] 양준혁의 통산 도루성공률은 61.8%이며 20-20을 기록한 4시즌 중 2007년 1시즌을 제외하고 도루성공률 70%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없다. [17] 그냥 '도루가 가능할 정도의 느리지 않은 발을 가졌다.' 정도로 여기면 될 듯. 참고로 2015년까지 삼성에서 개인통산 도루 1위였다. 이는 기존 삼성에서의 1번 타자였던 류중일, 강동우, 박한이의 개인통산 도루가 양준혁을 못 넘었다는 소리이다. 이후 김상수와 박해민 등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며 이 명예인지 불명예인지 모를 기록은 깨졌다.
대부분의 타격 관련 누적 기록을 갖고 있었고 은퇴 시점에서 통산 홈런 역대 1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 홈런왕을 차지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양준혁의 은퇴 후 통산 홈런 기록을 경신한 후배들이 여러 번의 홈런왕을 수상해본 것과 대비된다.[18] 또한 시즌 MVP나 한국 시리즈 MVP 수상도 전무했다. 그것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2인자라고 여긴다지만[19], 홈런왕과 도루왕을 제외한 다른 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인생에서 단 한번만 기회가 올 수 밖에 없는 KBO 신인상을 무려 이종범을 이기고 차지했으며, 특히 타격왕은 4회나 차지하여 장효조와 더불어 이 부문 공동 1위이다.
프로야구 10000호 홈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으나 송지만이 홈런을 치고 누의 공과를 하는 바람에 9999 홈런이 되어버려서 펠릭스 호세에게 돌아갔다.
4. 세이버메트릭스 최강자
양준혁은 분명히 KBO 역사상 손에 꼽는 선수이나, 아쉬운 점이라면 시대를 지배한 1인자로써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점.[20] 양준혁은 명실상부 KBO 역대급 타자이며 세이버가 확산된 지금은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대우받으나 당시에는 그나마 저평가를 받았으며 결정적으로 KBO MVP 수상 기록이 한 번도 없다. 세이버가 확산되기 전 양준혁은 대충 '임팩트는 부족한데 누적 성적이 빛나는 선수' 따위의 저평가를 받았으나, 현재는 그 누구도 양준혁이 임팩트가 부족한 선수였다고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데뷔 첫 해 타격왕과 홈런, 타점 각 2위를 차지하며 괴물신인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홈런왕이 고평가 되던 시대에 훌륭한 통산 기록에 비해 단 한 차례도 홈런왕을 해보지 못했고, 거의 매년 꾸준하게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90년대 중반엔 이종범에, 90년대 후반부턴 이승엽에 묻히고 말년엔 이대호가 있었기에 1인자라 불리진 못했다. 특히 같은 팀에 이승엽이 있었다는 게 양준혁에게는 불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이렇게 타자들끼리 논쟁이 붙으면 각 팀의 팬들이 각자의 선수를 옹호하느라 진흙탕 싸움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양쪽 다 할 말이 있는 비교가 이루어지는데, 삼성 팬들이 이승엽과 양준혁을 두고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임팩트 있는 기록을 다수 남기고 해외에도 진출한 이승엽에게 밀리게 된 것이다.
다만 야수로서의 종합적인 평가가 아닌 타격적인 지표만 보자면 양준혁의 데뷔 시즌 wRC+인 212는 이종범의 wRC+ 커리어하이(198.3)를 능가하며, 커리어하이의 이승엽(2002년의 198.5) 및 심정수(2003년의 210.7), 이대호(2007년의 194)보다 높다. 93년부터 97년까지 5년 동안의 WARbat도 양준혁(39.3)이 동기간 1위로 2위인 이종범(33.64)을 앞선다.[21] 물론 수비, 주루 등 야수로서의 종합적인 면에서는 유격수 이종범보다 단기 임팩트에서 밀린다는 게 중론이지만, 최소한 방망이에서만큼은 이종범이 아니라 이승엽과 심정수, 이대호라는 시대를 풍미한 타자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커리어하이 시즌을 가진 선수가 양준혁이다.
또한 2021년 KBO리그의 가장 뛰어난 타자라 할 수 있는 이정후와 강백호의 시즌 wRC+가 각각 165.8과 165.5인데, 양준혁의 커리어 전체 통산 wRC+가 160이다. 즉, 양준혁은 2021년 이정후와 강백호의 타격 생산성을 커리어 평균으로 보여준 셈이다.
MLB에 대입하여 이렇게도 이해해볼 수 있다. 알버트 푸홀스가 에인절스에서 커리어를 말아먹기 전 아름다운 10년(2001-2010)동안 쌓은 통산 wRC+가 169인데, 양준혁의 커리어 통산이 160이다. 즉 리그 내부의 타격 생산성 위상으로 따지면, 양준혁이 전성기 푸홀스에 대입 가능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불방망이를 커리어 통산으로 휘둘렀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2인자 이미지로 굳어졌다.
다만 위안이라고 할 수 있는건, 은퇴에 다다라서는 대부분의 타격 지표에서 1위를 기록했다는 점. 이종범은 일본 진출 후 페이스가 꺾였고[22], 이승엽은 일본프로야구에서 8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양준혁의 은퇴시점에 KBO리그의 최다 홈런, 최다 안타, 최다 타점, 최다 사사구를 비롯한 통산 타격 11개의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은퇴하게 되었다. 선수 시절 1인자를 못했던 한을 은퇴할 때 풀었다. 이승엽이 KBO에 복귀한 후에는 후배들에게 하나씩 기록을 내주긴 했으나, 비슷한 시기에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두로 타격에 대한 재평가가 일어나 위상이 한없이 치솟고 있다.
[1]
KBO 레전드 지명타자하면 김기태도 꼽히나, 양준혁의 스탯이 더 높고, 양준혁은 커리어 절반 이상을 지명타자로 출전했기 때문에 보통 역사상 최고의 지명타자는 양준혁으로 간주된다.
[2]
마찬가지로 장효조도 실업야구에서 뛰다가 프로에 데뷔했다. 장성호의 초반 4년을 제외하고 비교하면 BB/K가 1.42로 양준혁보다 더 높다.
[3]
그래서
양준혁을 은퇴시킨
선동열이 라이온즈와 타이거즈 팬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까이는 것이다. 후대에는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가 아버지의 강제 은퇴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평생 기아 싫어할 것"이라는 말에서 비롯돼, "평생 선동열 싫어할 것"이라는 드립이 흥하기도 했다.
[4]
본인이 반농담으로 주자들이 양준혁쪽으로 타구가 가면 송구가 약할줄 알고 무리한 주루플레이를 많이 해서 그걸 노리고 보살을 많이 잡아냈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5]
사실 1994년의 타율은 0.2997로 엄밀히 따지면 3할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사사오입으로 인해 기록상 3할로 간주한다.
[6]
2007년까지 팀의 우승 또는 본인의 3할타율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수립했다.
[7]
1위는 10년 연속 3할의
박용택
[8]
박한이와 공동이었다.
[9]
장종훈,
최정과 공동. 2008년에 8홈런을 치면서 끊겼는데, 2009년에 다시 11홈런을 쳤다.
[10]
1위는 장효조 (.331).
[11]
1위는 장효조 (0.427).
[12]
이승엽, 심정수, 데이비스에 이은 기록.
[13]
이 기록은 2021년 10월 5일
추신수가 경신했다.
[14]
당시만 해도 양준혁 정도의 덩치에 저렇게 달리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농구에서는 데뷔시즌의 서장훈도 그 키에 그 정도 스피드는 빨랐다고 느꼈다고 한다. 물론 서장훈도 그 당시로는 평균보다 살짝 빠른 발이었다.
[15]
참고로 통산 도루실패가 113개로 같은
이종범의 통산 도루는 510개. 이종범의 경우 도루성공율이 무려 81.9%로 300도루 이상자 중 유일한 도루 성공율 80% 기록자로, 도루수에 비해 도루실패가 놀라울 정도로 적다.
[16]
73% 이상이면 대체적으로 확실한 이득, 그 정도는 아니어도 65%는 넘기면 투고타저 시즌이라면 적극적으로 도루를 시도해도 될 수준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17]
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로 박재홍이 있다.
30-30을 3시즌이나 기록하였고 크보 유일의 250-250을 달성한 호타준족이지만 통산 도루성공률은 고작 64%이다.
[18]
최형우만이 홈런왕을 한 번 해봤고
최정,
이승엽,
박병호,
이대호 모두 두 번 이상의 홈런왕을 차지했다.
[19]
그래서 무릎팍도사 출연시 고민이 '2인자의 설움을 말할 곳이 없다'였다.
[20]
이건 플레이스타일의 영향도 있다. 선구안에 특화된 중장거리 타자들은 홈런왕을 따낼 경우 무결점의 올라운더라며 극찬을 받지만, 만약 홈런 타이틀이 없다면 저평가되기 십상이다. MLB에서의 이 케이스가
조이 보토. 이런 유형은
세이버메트릭스 쪽에서는 아주 좋아하지만 스타성에서 심각한 피해를 보며, 심지어는 찬스 상황에서 해결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볼넷만 고른다며 폄하당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21]
하지만 이는 이종범의 대단함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한데, 유격수 포지션에 최상위의 주루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타격으로도 리그 최고의 타격을 가진 선수 바로 밑에 위치해 있었다는거다.
[22]
300타석 가까이 소화하고도 wRC+가 한 자릿수인 흑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