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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7:31:26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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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크에 따른 민족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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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도레 - 《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Jacob Wrestles with the Angel[1]
<colbgcolor=#00008B><colcolor=#FFF> 이름 야곱 Jacob
생몰 연도 기원전 19세기? 기원전 17세기?[2]
출생지 미상
종교 야훼 신앙
부모 이사악, 리브가
배우자 라헬, 레아, 실바, 빌하
형제자매 에사오
자녀 12남 1녀[3]

||<tablealign=left><tablewidth=380> 히브리어 ||יעקב
(Yaʿakov) ||
그리스어 Ἰάκωβος
(Iákōbos)
라틴어 Iacobus, Jacobus
아랍어 يعقوب
(yaʿqūb)
영어 Jacob, James[4]

1. 개요2. 생애3. 현대 성서 주석학적 해석4. 가족 관계
4.1. 에사오(에서)와의 관계4.2. 부인(들) 및 자식들과의 관계4.3. 자녀

[clearfix]

1. 개요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창세기 32장 29절( 공동번역 성서)

구약성경 창세기 등장인물이다.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 리브가의 아들이다. 사냥꾼이었던 에사오[5]와는 쌍둥이 형제지간으로, 야곱이 동생이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고대 히브리어로 '뒤를 쫓는 자', 혹은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이며 야곱의 삶[6]을 생각하면 실로 적절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훗날 새롭게 얻은 이름은 이스라엘로, 히브리어로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혹은 '하나님의 전사'라는 뜻[7]이다.

후술할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야곱이 속한 가정 내의 불화는 대부분 야곱 본인에게서 기인한 바가 크다. 아내 하나만 아껴서 다른 아내를 마음고생시키고 사랑하던 아내가 죽자 그 아내의 자식만을 편애해 다른 아들들의 불만을 사게 하는 등 좋은 가장은 아니었다. 또한 아들들 중 요셉을 늦둥이라는 이유로 너무 편애한 나머지 다른 아들들이 시기하여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버린 후 야곱에겐 짐승에게 물려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8]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 탈적하고 이 일이 알려질까 봐 두려워서 도망친 걸 보면 아들로서도 그다지 좋은 아들이라 보기 어렵고 동생으로 쳐도 좋은 동생이라 보기 어렵다.

사기와 잔머리가 성경 내에서도 손꼽히게 돋보이는데, 이는 말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라헬과 결혼할 당시에는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에게 역으로 사기당하기는 했고[9] 이후에도 생고생을 했는데, 대신 그를 역이용해 재산을 왕창 불렸다.

결국 그는 자신의 기만을 똑같이 당하며 고생했고, 아버지의 재산은 자신이 속인 형 에서에게 전부 넘어가며 자신의 부는 스스로 일구어내었다. 이스라엘의 선조가 될 축복도 이삭을 속여 손쉽게 얻는 듯 보였지만, 결국 신과 대면하여 뼈가 나가도록 씨름하여 의지를 보인 후 직접 신의 축복을 받아 자격을 증명한다. 창세기에서도 매우 입체적인 인물이다.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형제가 서로 싸웠다고 하며, 태어날 때도 야곱이 에사오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하여 이름이 '발꿈치(עקב, akév)를 잡았다'는 뜻인 '야곱'이 되었다. 두 형제가 각각 한 민족의 시조가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고, 이미 야곱이 축복받은 민족의 시조가 될 것임이 점지되었다.

성경적으로는 은혜의 대상은 온전히 전능자의 주권으로 선택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케이스에 속한다. 둘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동생을 형이 섬길 것이 예언되었으며, 후에도 야곱은 사랑하였으나 에서는 미워하였다[10]거나 태어나서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이미 택함을 입었다는 점이 강조된다. 에서 역시 경박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야곱 또한 결코 도덕적이지도, 모범적인 가장이지도 못했으며, 징계와 훈련을 위해 많은 시련을 겪게 되었다. 본인 스스로도 늘그막에 술회하기를 험악한 삶을 살아왔다고 할 정도.[11] 그러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막 살고 이방인 아내를 맞아들이며 부모를 근심시킨 에서와 달리 야곱은 삶 전체에 걸쳐 연단의 채찍이 주어진 것 자체가 은총의 발현으로 여겨진다. 또한 주님의 복을 받고야 말겠다, 허락하실 때까지 놓지 않겠다는 끈기 하나는 본받을 점으로 꼽힌다. 출생 전부터 점찍힌 만큼 사기를 치지 않고 착하게 살았어도 섭리 가운데 자기 손에 들어왔을 것인데 굳이 못된 짓을 하여 고생과 시간 낭비를 어마어마하게 하게 된다는 점에선 후손들인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습도 겁쳐 볼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성경에서는 종종 '야곱'을 이스라엘을 일컫는 대명사로 활용하기도 한다.[예시]

2. 생애

과거 리브가는 이삭과의 사이에 두 아이를 임신하였다. 그런데 아이들을 임신한 뒤 알 수 없는 복통에 힘들어하여 하느님께 이유를 물어보니 "배 속의 두 아이가 장자의 권위를 두고 다투고 있다. 내 생각대로라면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나는 아이가 장자의 권위를 지니게 될 것이리라."라는 말을 듣게 된다. 리브가는 걱정이 되었고 이후 두 아이를 낳았다. 이 중 털이 많고 붉은 피부를 타고난 아이가 형 에서,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아이가 야곱이다.

아버지는 에서가 사냥해 잡아 오는 고기를 좋아하므로 에서를 사랑(편애)하고 어머니 내향적인 성격에 집안에서 자신을 돕는 야곱을 사랑(편애)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가 아무것도 잡아 오지 못하고 굶주린 에사오가 집에 돌아와 야곱이 붉은 죽( 팥죽이라고도 한다)[13][14]을 끓이고 있는 걸 보고 죽을 한 그릇만 달라고 하자, 야곱은 그 대신 '집안의 맏아들로서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고 일족의 우두머리가 되어 군림할 권리', 그러니까 적통을 달라고 했다. 이에 남자답긴 하지만 성급하고 단순한 성격인 에사오는 별 고민도 하지 않고 그러자고 하며 죽을 얻어먹었다. 이것에 대해 적통은 어차피 아버지 이삭의 의중에 달린 거고, 에서도 그걸 알았기에 그냥 구두로(또는 농담으로) 넘긴 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히브리서에는 에서가 장자권을 헛되이, 즉 소중하지 않게 여겼다고 하는 등 에서의 행동을 불의하다고 했다.[15]

시간이 흘러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많이 들어 집안의 장자에게 축복을 내리고 후계자를 결정할 시기가 되자, 이삭은 에서에게 사냥감을 잡아 와 좋은 고기 요리를 만들어 자신에게 가져오면 그 자리에서 장자의 축복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이때 그를 더 사랑한 어머니 리브가는 에서가 사냥을 나간 사이 비밀리에 그 사실을 야곱에게 알려주고, 네 아버지가 늙어 눈이 어두우니 내가 만든 염소 고기 요리를 네가 들고 가 에서인 척하고 축복을 받으라고 시킨다. 형은 털이 많고 자신은 피부가 매끈한 사람[16]이라 오히려 거짓말이 들통나서 하느님의 저주를 받을 것 같다고 야곱이 걱정하자 리브가는 그 저주는 무조건 내가 다 받을 테니 안심하라며 야곱을 부추긴다. 그 후 야곱에게 에사오의 옷을 입힌 뒤, 팔과 목에 염소의 털가죽으로 된 토시를 입힌다. 그리고 이후 리브가는 과연 본인의 말대로 두 번 다시 야곱을 만나지 못하는 불행을 겪게 된다. 본인이 책임을 지게 된 셈.[17]

이삭은 고기를 너무 빠르게 구해 왔다는 점, 그리고 목소리가 다르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품었으나 손을 만져보니 털이 있어서 눈이 좋지 않았던 이삭은 야곱을 에사오라고 철석같이 믿고 장자의 축복을 내렸다. 이후 늦게 에서가 아버지에게 사냥한 요리를 가지고 갔지만 이미 이삭이 야곱에게 모든 축복을 내린 뒤였다. 이삭은 자신이 야곱에게 속은 걸 알았지만 축복의 말은 일단 한번 하면 취소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미 야곱에게 내린 축복은 야곱의 것이 되었다고 얘기했다.

결국 자신에게 크지 않은 축복[18][19]만 돌아오자 분노한 에사오는 동생 야곱을 죽이려 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외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주시켰다. 단, 형식상으로는 이방 여자와 결혼하지 말고 친족인 외사촌과 결혼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어머니의 고향인 '밧단아람'으로 가는 것으로 말해두었다. 이에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고 결혼 상대자를 구하기 위해 보낸다. [20][21]

야곱이 외가로 가는 여정 중에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 하늘에까지 이어진 사다리와 천국에 있는 여호와를 본다. 야곱은 여호와로부터 아브라함의 후계자임을 인정받고 축복과 땅의 상속권을 받자 여호와를 섬기고 십일조를 바칠 것을 약속한다. 야곱이 꿈에서 본 천국에 이르는 사다리를 '야곱의 사다리'라고 하는데 유대교에서는 이를 신과 유대인들을 잇는 연결 고리로, 천사들이 드나드는 지상과 천국을 잇는 통로로 여기고, 기독교에서는 신자들이 승천하여 천국에 이르는 계단으로 여긴다. 이슬람교에서는 지혜의 길로 신에게 이르는 방법을 상징하며 기독교보다 더 중시한다.

외갓집에서 외삼촌의 두 딸[22] 레아 라헬과 만나게 된 야곱은 아리따운 라헬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그 후 사랑하는 라헬과의 결혼을 조건으로 7년을 무상으로 일했지만, 자신이 사는 고장에서는 여동생을 언니보다 먼저 시집보내지 못한다는 것을 이유로 삼촌 라반이 첫날밤에 라헬 대신 레아를 들여보냈고, 7년을 더 일하는 조건으로 라헬과 결혼했다.

라헬과 결혼하고 7년이 지난 후에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라반은 원하는 품삯을 줄 터이니 가지 말라고 야곱을 붙잡았다. 이에 야곱은 장인인 라반의 양 떼를 돌봐주는 대신 그 가운데서 검은 양의 새끼와 얼룩지고 점 있는 염소의 새끼를 품삯으로 달라는 요청을 해 라반의 승낙을 받았다. 그러나 라반은 계약을 맺은 후 자기 아들들을 불러 야곱이 맡은 가축들 중에서 검은 양과 얼룩진 염소를 모두 빼고 야곱에게는 흰 양과 흰 염소만 맡겼다.

하지만 그게 야곱의 큰 그림이었다. 야곱은 양과 염소들에게 나무껍질을 벗겨 흰 줄무늬를 낸 가지들을 계속 보여주면서 세뇌 교육을 시켰고 가축들이 물을 마시는 구유 밑바닥과 교미하는 자리에 줄무늬 가지를 보여줘 그들이 검은 양과 얼룩진 염소를 낳게 했다. 당연히 아무 가축이나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건강한 양과 염소에게만 보여줬다.[23] # 이렇게 되자. 6년이 더 지난 후에는 야곱의 가축이 훨씬 많아졌고 라반과 그의 아들들이 야곱에게 위기감을 느끼고 이를 느낀 야곱은 라반을 떠나기로 한다. 결국 자신의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의 태도에 서운함을 느꼈던[24][25] 레아와 라헬에게 라반의 집을 떠나자는 동의를 얻은 야곱은 20년 만에 귀향길에 오른다.

그 후 이 사실을 안 라반은 당장 아들들과 장정들을 이끌고 야곱을 잡으러 달려갔고, 야곱과 한나절 사이 거리를 좁히게 된다. 그런데 하느님이 꿈에 나타나 "너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야곱에게 아무 말 하지 말라"라고 명령했고, 라반은 결국 싸우지 않고 조용히 야곱을 만나게 된다. 라반은 '미리 얘기를 했으면 내가 송별회를 열어 주고 축복해 줬을 것을, 마치 강도가 훔쳐 가듯이 돌아가는가'라고 야곱을 찔렀고, 야곱은 '외삼촌이 저를 빈손으로 쫓아낼까 봐 염려했습니다'라고 변명한다. 그러자 라반은 '하느님 말도 있으니 죽이진 않겠고, 대신 드라빔[26]은 우리 집안의 것이니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라헬이 드라빔을 챙겼다는 것을 모르고 있던 야곱은 '집안의 신상을 함부로 훔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직접 찾아보시고 만약 찾으면 그를 죽이셔도 됩니다'라고 한다. 라헬은 급히 낙타 안장을 가져와서 드라빔을 밑에 감추고 그 위에 앉아 아버지를 맞이한다. 그리고는 '생리통 때문에 일어나질 못하니 앉아서 인사하는 걸 용서해 주시라'[27]고 발뺌하고, 결국 라반은 드라빔을 찾지 못한다.[28][29]

안 그래도 그동안 있었던 외삼촌의 부당한 노동 착취에 화가 나 있던 야곱은 폭발해 '해도 해도 너무하시는군요! 저는 단 한 번도 외삼촌의 것을 함부로 빼앗은 적이나 억지를 부린 일도 없고 오히려 외삼촌 당신이 입은 손해를 저의 물건으로 배상을 해주었는데, 당신은 아내 일로 2번이나 저를 속이셨고 그것도 모자라 제 품삯을 10번이나 바꾸시더니 이젠 이런 일로 와서 저를 비난하시는 겁니까? 하느님께서 제게 도움을 주셨기에 다행이지. 만일 그분의 도움이 없다면 저는 아무것도 없는 맨몸으로 내쳐져 죽었을 겁니다.'라며 라반에게 화를 냈고, 라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결국 야곱은 라반과 화해의 언약을 맺기 위해 바위를 하나 세운 뒤 그 주변에 돌을 쌓아 돌무더기를 만들고 두 사람은 서로 이 돌무더기를 넘어가 상대를 해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 뒤 헤어진다.

가나안에 돌아가던 당시 에돔 지방 세일 땅에 있던 에사오의 땅을 지나가야 했는데 야곱은 이전에 사기 치던 게 마음에 걸려 야곱은 형이 반드시 보복할 것이라 예상하고 두려워했기에 형과 만나기 직전에 가족을 세 무리로 나누었고[30] 에사오에게 줄 예물도 잔뜩 준비했다.

또 에사오와의 화해 전날 그를 만나러 가던 야곱이 가족들과 일행을 먼저 강 건너로 보내고 혼자 남아 기도하던 중 누군가를 만나 밤새도록 씨름[31] 했는데, 야곱이 좀처럼 지지 않자 씨름 상대가 그의 환도뼈[32]을 차면서 제발 좀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야곱의 골반이 어긋나 버렸고, 이날 이후로 야곱은 평생 한 다리를 절며 살게 된다.[33]

야곱은 축복을 줄 때까진 절대 놓지 않겠다고 떼를 썼고, 씨름꾼은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하고 말했다. 야곱이 그의 정체를 알려 하자 그런 걸 뭣 하러 알려 하느냐면서 야곱을 축복했고, 야곱은 그가 하느님이라고 굳게 믿고 하느님과 싸워 이겼다고 스스로 놀라면서 그곳을 '브니엘'이라 칭했다고 한다. 야곱과 씨름한 상대는 하느님의 천사였다. 그 후 야곱은 천사의 말대로 '하느님과 겨루었다'는 뜻인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34]

에사오가 사백 명의 장정을 이끌고 오자 야곱은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하며 에사오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에사오는 달려와 야곱을 끌어안고 울면서 맞이했고, 야곱이 데리고 있던 여자와 아이들에 대해 물어본 뒤 야곱의 선물을 보고 "나에게도 많으니 네 것은 네가 가져가거라." 하고 말했다. 그러자 야곱은 에사오를 주인이라 부르며 자신은 모든 것이 넉넉하니 화해의 증거로 호의를 받아달라 부탁하자 받아들이게 된다. 에사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에돔을 세우는 등 성공한 상태였고 야곱의 행동을 보고 용서한 것으로 보인다. 에사오는 야곱에게 자신의 수하들 중 일부를 넘겨주려 하지만 야곱은 정중히 거절한다. 에사오는 세일로 돌아갔으며 야곱은 수꼿으로 갔다.

12남 1녀를 두었으나 첫눈에 반한 뒤로 평생 동안을 사랑했던 라헬의 자식은 11남 요셉과 12남이자 막내인 베냐민뿐이다.[35] 요셉이 이집트에서 살게 된 뒤, 기근이 들어 일가족이 굶을 지경이 되자 야곱은 베냐민을 제외한 열 아들을 이집트로 보내 곡물을 구해 오게 한다.[36] 그런데 요셉이 형제들을 모른 척하며 2남 시므온을 가둬둔 뒤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며 곡식을 주어 보내자 사정을 듣게 된 야곱은 '너희들이 요셉을 잃어버리더니 이젠 시므온과 베냐민까지 같이 잃어버리려 드느냐'며 펄펄 뛰었다. 4남 유다가 책임을 지겠다며 아버지를 설득하여 베냐민을 데려간 뒤, 이국 이집트에서 재상 자리까지 오른 가장 사랑(편애)한 아들 요셉의 도움으로 대 기근이 든 가나안 땅을 떠나 이집트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1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죽기 전, 유언으로서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했는데, 팔을 X 자로 꼬아 안수하고 축복하였다. 때문에 '권능'과 '자격'을 상징하는 오른팔이 둘째 아들 에브라임의 머리에 올라가자 요셉이 '아버지, 에브라임은 둘째 아들입니다. 오른손은 형 므낫세에게 얹으시지요'라고 말하는데, 야곱은 '나도 잘 안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므낫세보다 훗날 더 크게 될 것이다'라며 오른손을 에브라임에게 얹었다.

3. 현대 성서 주석학적 해석

19세기 초중반까지, 윌리엄 올브라이트와 같은 주류 학자들은 그와 그의 아버지 이사악,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은 족장 시대의 인물들이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에 그에 관한 전설들이 융합되어 형성된 캐릭터이며,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성에 근거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 전통적인 견해에 반박이 가해졌고, 현대에는 그를 역사적으로 실존 인물로 보는 학자들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야곱은 앞서 보았듯 천사와의 씨름 결과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어 이스라엘과 히브리인들의 직접적인 시조가 되는데, 이 이야기는 이란 전설 중 자기 부족의 이름을 자기 이름을 따와 지었다는 '바크타리족(Bakhtiari people)'의 바크타리(Bakhtari)의 이야기와 거의 같다. 심지어 두 명의 아내를 둔 목동이었다는 것과, 자신의 부족이 유목 민족 출신이었다는 것[37]까지 일치하며, 따라서 현대 학자들은 야곱의 내러티브가 기본적으로 그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으로 본다. 한편 출애굽기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그가 이집트에서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역사적 신빙성은 그 이야기의 기원이 되었을 법한 사건은 있으나[38] 그 이야기 자체의 신빙성은 상당히 떨어진다. 한편 그의 사후 벌어질 출애굽 이야기의 경우 셈족 노예들이 이집트로부터 일련의 탈출을 통해 가나안 지역으로 이주했을 가능성,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이스라엘이라고 불릴 집단에 융화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나 출애굽 이야기 자체의 신빙성은 더 이상 역사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39]

한편, 그에 관해 가장 유명한 이야기인 하느님(또는 천사)과 씨름한 이야기는 사실 그 전후 문맥을 다 읽어봤으면 알겠지만 굉장히 뜬금없이 삽입되어 있는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 자체의 개연성도 터무니없다. 먼저 전문을 보자.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야곱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하고 여쭈었지만, 그는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그곳에서 야곱에게 축복을 내려주었다.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창세기 32:25-31

이 이야기를 자세히 다시 읽어보자! 우선, '하느님인지 천사'인지 알 수 없는 씨름 상대가 '뜬금없이 등장해서 주인공과 싸움'을 벌이다, '뜬금없이 해'뜨니 '나는 가야 한다는 이상한 설명'만 하며 사라진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야곱이 하느님에게 축복을 받는 이야기이다. 만약 씨름 상대가 하느님이라 가정할 경우[40] 하느님이 뜬금없이 야곱과 심심해서 씨름을 한 건 아닐 것이므로 아마 처음부터 그를 시험하고 축복을 주기 위해 그와 씨름을 한 것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느님(또는 천사)은 야곱의 이름과, 그가 누군지 알지조차 못한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를 시험하고 축복을 내려주신단 말인가? 그리고 다음으로, 야곱은 하느님이 방금 전에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으니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음에도 그 직후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는, 난독증이 의심되는 질문을 한다. 마치 전혀 모르는 존재를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더 웃긴 점은, 그렇게 이름을 물어보는 야곱에게 하느님은 뭐 하러 알려 하냐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하고는 떠난다. 야곱은 그 이후에야 자기가 하느님과 씨름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뒤죽박죽인 서사는 일반적인 다른 성서나 창세기의 논리 전개에 비해 합리성이 극히 떨어지며, 무엇보다도 너무 뜬금없이 이 이야기가 아무런 맥락도 없이 삽입되어 있다. 물론 탈출 4:24-26의 기사처럼 구약성경에 아무런 맥락도 없이 갑자기 난해한 이야기들이 튀어나오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이다. 심지어 이 이야기의 중요성은, 신학적으로 '이스라엘의 귀환과 축복'을 뜻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매우 높다. 대체 성경의 저자는 왜 이런 무리수를 범한 것일까?

이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답변은, 이 이야기가 원래 야곱의 내러티브에 존재했던 이야기가 아닌, 지역 설화와 같이 전혀 별개의 구전 민담이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만약 이 이야기가 다른 야곱의 내러티브들처럼 전승되었다면, 성경의 저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이야기가 이렇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식으로 전개될 리도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개연성이 개판도 아니었을 것이다. 허나 민담이나 설화들은 개연성이 대게 떨어지며, 맥락이 부재한 경우가 많다. 아마 창세기의 저자는 이 이야기가 신학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보고 무리수를 써서까지 중간에 억지로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이야기는 앞서 설명한 것 이외에도 신화적이거나 설화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다.

우선, 이 이야기의 기본적인 뼈대는 고대 신화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강을 건너야 하는 영웅과 강을 지키는 신, 혹은 정령 간의 싸움' 모티브와 정확히 일치한다.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해서 고대 세계에는 각 하천마다 고유의 신격이 존재했고, 그곳을 건너기 위해서 영웅은 그 신을 패배시켜야만 했다. 신화학자들은 대표적으로 트로이아 성문 밖에서 크산토스강의 신과 싸우는 아킬레우스의 모티브를 야곱의 씨름 이야기와 자주 비교한다. 한편 이 모티브가 게르만족이나 북구 쪽으로 가면 주로 강을 지키는 괴물과의 싸움으로 변한다. 주로 유령, 고블린, 트롤 등이 상대가 된다. 일례로 게르만 서사문학의 걸작인 베오울프 서사시의 그렌델도 유사한 경우다. 이러한 초자연적 존재들의 특징이 하나 있는데, 해가 뜨면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점도 야곱 이야기에서 "동이 트려고 하니 나는 가야겠다"는 신의 모습이 본래 족장 내러티브가 아니라 민담에서 나왔음을 암시하는 한 근거다.

앞서 말했듯, 구약성경에는 이처럼 민담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이전이나 이후의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고 훅 치고 들어오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 앞서 예를 들었던 출애굽 4:24-26의 이야기 또한 신학적으로는 할례와 연관 지어 해석되지만 역사적인 관점으로는 본래 민담의 하나였으나 출애굽기의 저자가 이 이야기에서 가치를 느끼고 중간에 삽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이 이야기가 '프니엘'이라는 지역의 명칭의 기원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원론'은 창세기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실제로 창세기의 족장 이야기 상당수가 이러한 지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할애되고 있다. 이 지역들은 가나안 각 지역에 흩어져 있었을 종교 중심지였으며, 그 지역들마다 고유의 설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설화들이 조금씩 창세기 족장 내러티브에 편입되었을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해 또 다른 힌트를 제공한다. 실제로 근래의 고고학적 연구는 출애굽기 문서에서도 나오듯 이스라엘이 하나의 단일한 뿌리를 갖는 집단이 아니라, 가나안의 여러 부족들 중 일부 구성원들이 당시의 사회 경제적 변동하에서, 산악 지역으로 정착하였고, 이 이질적인 여러 집단들이 결합하여 서서히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부족들은 각자 저마다의 신화와 설화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각 부족들이 원래 자리 잡았던 지역의 종교 중심지들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다양한 설화와 민담들이 발달했을 것이다. 현재 양식 비평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다양한 집단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의 민족을 이루게 되면서, 이 설화와 민담들도 하나의 내러티브로 점차 통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이 관점에 따르자면, 아브라함을 시조로 모시는 부족과 이사악, 야곱 등을 시조로 모시는 부족들은 본래 다른 부족들이었다. 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되면서, 각 부족들의 선조들에 얽힌 설화들도 하나로 통합이 되었고, 나중에는 각 부족의 세력과 친분 관계를 고려한 혈연관계로 정리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이사악은 이스라엘의 세 선조 중에 가장 개성이 부족하고 관련 이야기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인데, 이에 대해서 학자들은 이사악을 조상으로 모시는 부족이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거나 세력이 약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어쩌면 그래도 야곱 부족보다는 뿌리가 오래된 부족이라고 대체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족보상에서 아버지의 위치를 차지했을 수도 있다. 부족들과 설화의 점진적 통합에 대한 이러한 가설은 아브라함 이사악과 야곱이 등장하는 이야기들 중에서 등장인물 이름만 다르고 상당히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 대한 이유도 잘 설명해 준다. 이런 식의 내러티브 일원화 혹은 통합은 고대 시대에 장소와 대륙을 막론하고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신라 초기의 혼란스럽다 못해 어지럽기까지 한 박-석-김 내러티브라 할 수 있다.[41] 이 이야기 또한 신라의 중앙 집권화와 국가 형성 과정에서 별도로 존재했던 이야기들이 일원화되고 통합되어 정리된 것이기 때문이다.

4. 가족 관계

4.1. 에사오(에서)와의 관계

형인 에사오(에서)에겐 지독한 사기를 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리브가의 충동질이 있었다곤 하지만 본인도 자책감이 심했는지 잡히는 순간 죽을 거라고 우려해 고향을 떠나 수십 년을 방랑했다. 훗날 만남에서도 신에게 형이 용서해 주길 바랐고 사과의 의미로 선물을 주었지만, 에사오(에서)도 사백 명이나 되는 장정들을 끌고 온 것을 보면 만일 야곱이 뻔뻔하게 나왔다면 정말로 죽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에사오(에서)와 마지막에는 좋게 끝난 편. 그냥 선물 주고 끝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선물'로 번역된 단어를 자세히 보면 창세기가 굉장히 정교한 문학적 장치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저를 아우로 여기시거든 제 선물(minhah)을 받아주십시오. 형님이 저를 이렇듯이 사랑으로 맞아주시니 형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마치 하느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잘 돌보아 주셔서 제 살림은 이렇게 넉넉하답니다. 그러니 제가 드리는 선물(berakah)을 받아주셔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33장 10-11절
여기서 minhah는 친구 특히 아랫사람이 드리는 선물을 일컫고, 여기까지야 야곱이 숙이는 입장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더 파격적인 표현은 선물과 축복을 동시에 일컫는 단어인 berakah이다. 이를 통해 야곱이 예전에 자신이 움켜쥐었던 축복의 선물을(27장 3-36절) 에사오에게 돌려주는 모양새로 화해가 되었다. 물론 야곱이 받은 축복이 취소되었다고 창세기 저자가 여겼을 리는 없지만, 형제간 불화의 결정적 원인이었던 축복 사건에 대해서 야곱이 용서를 청하는 방식으로 화해가 된 것.[42]

4.2. 부인(들) 및 자식들과의 관계

한편 야곱은 정식으로 결혼한 두 아내를 평등하게 사랑하지 않고 라헬만을 아꼈다. 위에도 나왔듯 레아는 라반이 억지로 결혼시킨 거였다. 이에 사랑받지 못한 레아[43]가 크게 슬퍼하자 하느님이 그 보답으로 레아에게 많은 자식을 낳도록 해주었다. 레아는 아들을 얻을 때마다 '이제 내가 아들을 낳았으니 남편이 나를 사랑할 것이다'라는 기대, 그리고 자신감과, '하느님께서 사랑받지 못하는 나에게 보답을 내려주셨다'와 같은 하느님께 대한 감사를 표하는 뜻의 이름을 많이 지었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나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는데, 사랑받지 못하였으나 다산한 언니를 질투하여[44] 자신의 시녀 빌하를 야곱에게 ( 씨받이)으로 주어 아들을 낳게 했다. 이 시기 레아는 자식이 태어나지 않는 상태였기에 레아 역시 자신의 시녀 질바를 야곱에게 주어 양아들을 얻었다. 빌하와 질바는 본래 이들의 아버지 라반의 몸종이었는데 야곱과 결혼하면서 각각의 몸종으로 준 자들이었다.

그러다 르우벤이 자귀나무를 주워 레아에게 주는데 라헬은 야곱과 레아를 한동안 동침하게 해 주는 것을 대가로 자귀나무를 받아갔고, 그 사건 이후 레아는 다시 자식들을 낳을 수 있게 되어 아들 2명과 딸 1명을 더 낳았다. 한편 하느님은 라헬이 자식을 낳을 수 있게 해 줘서 뒤늦게 아들이 생기자 아들 하나만 더 줬으면 좋겠다면서 요셉이라 이름을 짓는다.

라헬은 야곱이 라반에게 벗어나 이사악의 땅으로 돌아가던 도중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지만 도중에 죽는다. 야곱은 라헬의 장남인 요셉을 편애했는데[45] 편애를 시기한 다른 형제들이[46] 요셉을 죽은 것처럼 위장해 노예로 팔아버리고[47] 요셉의 생존을 알기 전까지는 막내아들 베냐민을 제일 사랑했는데 당시 야곱이 너무 슬퍼하던 게 마음에 걸렸던 건지 베냐민은 최대한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부모에게 물려받은 기질인지는 몰라도 자식과 아내들에 대한 차별 대우가 너무 심했다. 아버지인 이사악은 에사오만, 어머니인 리브가도 야곱만 편애했는데, 앞서 말했듯 리브가는 야곱을 너무 편애한 나머지 사실상 이사악의 권리까지 함부로 침범해 야곱이 수십 년간 고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48]

그런데 야곱은 이런 일을 겪고도 레아와 라헬을 대하는 대우도 차별 대우가 너무 심했다.[49] 아내 차별이 자식 차별로도 이어져 라헬이 낳은 자식들인 요셉 베냐민만 감싸고돌았다. 어찌나 심했던지 요셉의 이복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으며[50] 베냐민은 요셉 다음으로 싸고돌았을 정도. 요셉 이야기에서 요셉이 그토록 고생했던 이유가 따지고 보면 아내 차별과 자식 차별이 쩔었던 야곱에게 있는 셈이다. 하다못해 아버지인 이사악은 그래도 자기가 고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훌륭한 사냥꾼인 에사오를 편애했고[51] 할아버지인 아브라함도 하갈과 이스마엘을 추방하긴 했어도 본인도 처음엔 번민하다가 하느님이 이스마엘과 그 후손도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행동에 옮겼다. 거기다 하갈은 정식 아내가 아닌 소실이란 점에서 애초에 대우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애하는 아내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식들에게까지 차별 대우를 한 야곱의 수준은 위 세대들보다 한술 더 뜬 셈이다.

심지어 이스마엘과 이사악은 그리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고,[52] 에사오는 야곱을 죽이려고 할 정도로 싫어했지만 야곱이 먼저 에사오를 속인 데다가 장자권도 어머니와 작당하여 빼앗은 만큼 어그로를 끌 대로 끌어 놨으며 끝내는 자기가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음에도 용서해 줬는데, 요셉과 베냐민을 제외한 다른 형제들은 요셉이 꿈 이야기를 늘어놓은 일이나 형들의 잘못을 야곱에게 꼰지른 일이 있기는 했지만 야곱에 비하면 딱히 잘못한 게 없음에도 야곱의 대놓고 벌이는 요셉에 대한 편애로 요셉을 죽이려고 했다. 물론 이쪽도 결국 형들은 요셉을 팔아넘긴 걸 후회하고, 그걸 본 요셉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 데다가 팔아넘기기까지 한 형들을 용서해 줬다는 훈훈한 결말로 끝나긴 하지만, 에사오-야곱 관계와 비교하면 아버지 잘못으로 형제 관계가 막장이 되어 이 지경까지 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와중에도 야곱은 요셉이 시험 삼아 시므온을 인질처럼 삼아[53] 베냐민을 데려오란 말에 베냐민을 잃는 게 두려워[54] 베냐민을 보내는 것을 한참이나 망설였다.[55] 따지고 보면 본인이 이 모든 일의 원죄를 제공한 셈인데 아버지로서 능동적으로 뭘 해결해 보려는 의지는 없고 심지어 시므온은 확실하게 잡혀 있는데 베냐민을 잃는 게 두려워 머뭇거렸다는 점이다. 심지어 저렇게 보낸 것도 베냐민만 빼고 보냈던 거다. 처음 보낼 때마저 베냐민을 잃을까 봐 요셉의 형들만 보냈던 것이다.

그 업보인지는 몰라도 라헬에게서 낳은 후손들은 행보가 썩 좋지 못했다. 우선 요셉은 두 배로 분배받아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프라임이 므낫세 지파와 에프라임 지파를 형성하지만 에프라임 지파는 다 알듯 여로보암 1세의 출신지고 십볼렛 사건에서 전사 42,000명이 학살당했으며 므낫세 지파도 길르앗에 정착한 므낫세 반지파는 타 지파들에게 차별받았다. 베냐민의 후손인 베냐민 지파도 처음엔 타 지파들 못지않은 세력을 자랑했지만 판관기에서 타 11지파와 맞서다가 남자 600명 제외하고 몰살당하는 참극이 일어난다. 그 후 다시는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그나마 왕정 시대 초기에 베냐민 지파 출신인 사울이 왕이 되나 스스로의 잘못으로 유대 지파 출신의 다윗에게 왕위가 넘어가고 그 이후로는 유다 지파에 흡수되다시피 한다. 물론 끝이 영 좋지 않기로는 유다 지파만 뺴고 마찬가지였지만[56] 물론 지파 개념으로 치면 의외로 세 지파 모두 끈질기게 살아남아 베냐민 지파만 빼면 모두 사마리아인을 이루는 지파다(베냐민 지파는 1968년 단절). 다만 사마리아인이 전 세계에서 수백 명 정도밖에 안 되는 극소수 집단인 데다 정작 12지파에서 가장 번성했다고 할 수 있는 건 유다 지파의 후손인 유대인으로 1500만 명 정도가 있다. 또한 사마리아인을 이루는 다른 지파인 레위 지파와 이다말 지파는 모두 레위의 후손이다.

4.3. 자녀

두 아내와 두 첩에게서 열두 아들과 딸 하나[57]를 얻었고, 요셉의 두 아들도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다. 나중에 그의 이름(이스라엘)이 민족의 이름이 된 것처럼 아들들의 이름이 각 지파의 이름이 되고, 손자들의 이름이 각 씨족의 이름이 된다.

여기에는 각 자녀에 대한 내용만 적었으며, 각자의 후손인 12지파에 대한 내용은 12지파 문서 참조.[58]

4.3.1. 르우벤

야곱과 레아의 장남. 레아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했지만 그 대신 주님이 많은 아들을 내려주셨고, 첫째 아들이 태어나자 내가 장남을 낳았으니 남편이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며 르우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이름의 뜻부터 자신이 아들을 낳은 것을 자랑하는 것으로, 야곱의 총애를 받던 라헬보다 먼저 아들을 낳았으니 자랑스러워했던 것이다.
31. 야훼께서 레아가 남편에게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열어 주셨다. 그러나 라헬은 아기를 잉태하지 못하였다.
32. 레아는 마침내 임신하여 아기를 낳았다. 그리고는 "야훼께서 나의 억울한 심정을 살펴 주셨구나.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해 주겠지" 하면서 아기 이름을 르우벤이라 불렀다.
창세기 29장 31-32절

레아가 유다를 낳고 한동안 임신이 멈추었던 당시, 밀을 거두려 밖에 갔다 자귀나무를 발견하고 레아에게 준 게 르우벤이다.[59]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안 믹달에델 건너편 일대에 머물렀을 당시 야곱의 소실 빌하와 동침하는 추태를 저지르고, 야곱이 이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창세기 35장 21절~22절) 당시 야곱의 반응은 나오지 않으나, 후에 복을 내려줄 당시 이때의 일을 거론하며 남보다 뛰어나지 못하리라 말한 것으로 보아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것에 대해 분노했던 것으로 보인다.
3. 르우벤아 너는 내 맏아들, 내 힘, 내 정력의 첫 열매라, 너무 우쭐하고 세차구나.
4. 터져 나오는 물줄기 같아, 걷잡을 수 없는 홍수 같아, 끝내 맏아들 구실을 하지 못하리라. 제 아비의 침상에 기어들어 그 소실마저 범한 녀석!
창세기 49장 3-4절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고 가나안에 도착해 정착해 살던 시절, 아버지의 편애를 받은 이복동생 요셉을 동생들이 죽이려 하자 "피를 흘리지 말고 광야에 있는 구덩이에 던져 버리자" 제안했는데, 일단 구덩이에 넣었다 나중에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려 했다.[60] 그러다 이스마엘인인 상인들이 이집트를 향해 고무나 유향 같은 물건들을 챙기고 내려가는 것을 본 유다가 그래도 살붙이니 그냥 팔아버리자 제안했고, 미디안인[61]들이 구덩이에서 끌어냈다. 형제들은 요셉을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고 이스마엘인들이 데리고 갔다. 돌아왔을 때 이미 요셉이 없자 옷을 찢고 "그 애가 없어졌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느냐!"라면서 대단히 슬퍼하였다고 한다. 미디안인들은 이집트로 가서 이집트의 경호대장에게 요셉을 팔았다고 한다. 당시 묘사에 이스마엘인과 미디안인들이 같이 나오는 것을 볼 때 두 행상이 같이 다니고 있던 모양.

이후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이 정체를 숨기고 일부러 형제들을 몰아세우자 동생들을 가리켜 "내가 요셉을 해치지 말자고 했는데 듣지 않더니 요셉의 피를 흘린 것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벌을 받는다"고 한 걸로 보아 죄책감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62] 처음 베냐민과 같이 이집트에 가야 한다 제안할 당시 자신이 데려오지 못하면 자신의 두 아들을 죽여도 된다고 말했지만 거절당하고[63], 후에 정말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넷째 아들 유다가 나서서 베냐민의 일을 책임졌다.

르우벤의 후손인 르우벤 지파에 대해서는 문서 참조.

4.3.2. 시므온

야곱과 레아의 차남. 유대인들이 흔히 쓰던 이름 중 하나인 시몬을 뜻한다.[64]
33. 레아는 또 임신하여 아기를 낳았다. 그리고는 "내가 차별 대우를 받아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야훼께서 나에게 또 아들을 주셨구나" 하면서 아기 이름을 시므온이라 불렀다.
창세기 29장 33절

하나뿐인 여동생 디나가 야곱 일가가 거주하던 지역의 토착 세력 족장[65]이자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당하고, 이후 세겜이 정식으로 혼례를 청해오자 할례를 받으라고 이들을 속인 후, 할례받은 뒤의 고통이 가장 심한 3일째 되던 밤에 성을 습격해 세겜의 부족을 도륙할 때 레위와 함께 선봉에 나서 하몰과 세겜을 죽였다.

가나안에 흉년이 들자 이집트에 곡식을 구하러 갔을 당시 요셉이 형제들을 시험하고자 한 명을 인질로 잡는데 그게 시므온이었다.[66]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 곡식을 구할 수 있다며 베냐민을 데리러 갈 것을 부탁하자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다. 그런데 이제는 베냐민까지 데려가려 하는구나."라면서 거부하는데, 이를 보아 자식이라고 생각은 했던 것 같기는 하다. 후에 베냐민을 데리고 오자 요셉이 풀어준다.
5. 시므온과 레위는 단짝이라, 칼만 잡으면 사나워져
6. 나는 그들의 모의에 끼어들 생각도 없고 그들의 모이는 자리에 섞일 마음도 없다. 홧김에 사람을 쳐 죽이고 닥치는 대로 소를 박살하는 녀석들!
7. 저주받으리라. 화가 나면 모질게 굴고, 골이 나면 잔인해지는 것들! 내가 그들을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분산시키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흩뜨리리라.
창세기 49장 5-7절

시므온의 후손인 시므온 지파에 대해서는 문서 참조

4.3.3. 레위

야곱과 레아의 셋째 아들.
34. 그는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아들을 셋이나 낳아 드렸으니 이제는 남편이 별수 없이 나한테 매이겠지" 하면서 아기 이름을 레위라 불렀다.
창세기 29장 34절

레위는 영어권 남자 이름 중 하나인 리바이의 유래이기도 하다.

세겜 사건에서 시므온과 함께 하몰와 세겜을 죽이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5. 시므온과 레위는 단짝이라, 칼만 잡으면 사나워져
6. 나는 그들의 모의에 끼어들 생각도 없고 그들의 모이는 자리에 섞일 마음도 없다. 홧김에 사람을 쳐 죽이고 닥치는 대로 소를 박살하는 녀석들!
7. 저주받으리라. 화가 나면 모질게 굴고, 골이 나면 잔인해지는 것들! 내가 그들을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분산시키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흩뜨리리라.
창세기 49장 5-7절

레위의 후손인 레위 지파에 대한 내용은 문서 참조

4.3.4. 유다

야곱과 레아의 넷째 아들.
35. 그는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는 "이제야말로 내가 야훼를 찬양하리라" 하면서 아기 이름을 유다라 불렀다. 그 뒤 얼마 동안 레아는 아기를 낳지 못했다.
창세기 29장 35절

이후 한동안 레아의 출산이 멈춰 질바에게서 두 아들을 얻었고, 르우벤이 가져온 자귀나무 소동 이후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더 가질 수 있었다.
8. 유다, 너는 네 형제들의 찬양을 받으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멱살을 잡겠고 네 아비의 자식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9. 유다는 사자 새끼, 아들아, 너야말로 짐승을 덮쳐 뜯어 먹고는 배를 깔고 엎드린 수사자라 할까?
10. 왕의 지팡이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지휘봉이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참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분이 와서 만백성이 그에게 순종하게 되리라.
11. 포도나무에 나귀를 예사로 매어 놓고 고급 포도나무에 새끼 나귀를 예사로 매어 두리라. 포도주로 옷을 빨고 포도의 붉은 즙으로 겉옷까지 빨리라.
12. 눈은 포도주로 상기되고 이는 우유로 희어지리라.
창세기 49장 8-12절

인생은 다사다난했다. 장남과 차남은 잘못을 저질러서 하느님에게 저주를 받아 죽어버리고,[67] 아내마저 일찍 죽고 만다. 형사취수제에 따라 맏며느리 다말은 셋째 아들 셀라에게 주어야 했는데, 유다는 셀라까지 죽을까 봐 셀라가 아직 어리다는 구실로 그녀를 친정에 돌려보내고 찾지 않았다.

다말은 이에 의도적으로 창녀로 변장하고 양털 깎으러 다말의 고장을 방문하던 시아버지 유다를 기다리고 있었고, 유다는 유혹에 덥썩 넘어가서 그녀가 자기 며느리인지 모른 채 동침한다. 이후 며느리의 임신 소식에 불살라 버리라며 노발대발했지만 다말이 자신이 창녀에게 내밀었던 삯인 소지품을 보여주자 그제서야 그 창녀가 자기 며느리란 걸 알고 그야말로 멘탈붕괴. 의도적으로 저지른 짓은 아니라고 하나 며느리랑 동침해서 아이까지 낳은 과오를 저질렀음에도 축복을 받은 이유는 다말의 책임보다 형사취수제의 원칙을 어기고 며느리를 내친 자신의 책임이 더 크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다시는 그녀를 가까이하지 않은 점이 크게 인정된 거 같다. 그리고 며느리와의 사이에서 낳은 베레스의 집안이 유다 지파의 종가(宗家)가 되며, 다윗과 예수로 이어진다. 베레스는 셀라의 동생이지만, 형사취수의 원칙에 따르면 베레스는 어머니 다말의 남편, 곧 유다의 장남 에르의 가문을 이어가는 책무를 담당하는 것이라서 이렇게 된 것 같다.

동생 요셉이 구덩이에 빠져 있을 당시 요셉을 해치지 말고 상인에게 팔아버리는 선에서 퉁치자고 형제들을 달래 그의 목숨을 구명했다. 기근이 닥치자 자기가 가장 어린 베냐민을 책임질 테니 부족을 위해서 식량을 구하도록 베냐민을 보내달라고 아버지를 나서서 설득하고, 요셉이 형제들을 떠볼 심산으로 베냐민을 억류하여 종으로 삼으려 하자 베냐민이 돌아가지 못하면 아버지는 돌아가실 것이라며 자기를 종으로 삼고 베냐민과 나머지는 보내달라고 간청하는 등 아버지 야곱이 가장 사랑한 두 형제의 문제에 앞장서서 나섰다. 르우벤도 나름 요셉의 목숨을 보전하려 했고 베냐민을 데려가려 할 때 자신의 두 아들의 목숨을 걸었으나 유다는 베냐민이 잘못될 경우, 모든 저주를 자신이 받겠다며 사실상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기 때문에 야곱의 믿음을 더 얻은 것으로 보인다.[68][69]그 결과 살아있을 때는 아버지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였지만 살아있을 때의 축복인 장자권은 요셉에게, 영적인 축복인 치리자의 권리는 유다에게 가면서 사실상 가장 큰 축복을 받게 되었다. [70]

위의 형제들이 각각 사고를 치면서 복들을 별로 받지 못한 데 반해, 많은 공훈을 세운 유다는 위 형제들 몫을 대신 받아서 다른 형제들보다 많은 복을 받을 수 있었다.

유다의 후손인 유다 지파에 대한 내용은 문서 참조

4.3.5.

이스라엘의 5남이자 라헬의 시녀 빌하의 장남.
라헬은 자기가 야곱에게 아이를 낳아 주지 못하는 것 때문에 언제나 시샘하며 야곱에게 말하였다. "저도 아이를 갖게 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죽어버리겠습니다." 야곱은 라헬에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소생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이오?" 그러자 라헬이 말하였다. "보십시오, 제 몸종 빌하가 있습니다. 그 아이와 한자리에 드십시오. 빌하가 아기를 낳아 내 무릎에 안겨 준다면, 그의 몸을 빌려서나마 나도 아들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라헬이 야곱에게 자신의 몸종 빌하를 아내로 주자, 야곱이 그와 한자리에 들었다.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라헬은 "하느님께서 나의 권리를 되찾아 주셨구나. 그분께서는 내 호소도 들으셔서 나에게 아들을 주셨다네." 하면서 그 이름을 단('내 권리를 되찾아 주셨다'와 관련된다)이라 하였다.
창세기 20장 1-6절

라헬이 불임이던 시절[71] 몸종을 통해 얻은 아들이다.
단은 이스라엘의 여느 지파처럼
제 백성을 정의로 다스리리라.
단은 길가의 뱀
오솔길의 독사
말 뒤꿈치를 물어
그 위에 탄 사람이 뒤로 떨어진다.
창세기 49장 16-17절

이스라엘은 유다에 대해 말한 뒤 즈불룬, 이사카르 뒤에 단에 대해 말했다.

단의 후손인 단 지파에 대한 내용은 문서 참조

4.3.6. 납달리(납탈리)

이스라엘의 6남이자 빌하의 차남.
라헬의 몸종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야곱에게 두 번째 아들을 낳아 주었다. 라헬은 "내가 언니와 죽도록 싸워서 이겼다." 하면서 그 이름을 납탈리('싸움'과 관련되다)라 하였다.
창세기 30장 7-8절

이 당시 레아는 이미 아들이 넷이나 되었고, 라헬에게 있어 두 번째 아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양자지만) 정신승리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레아와 달리 라헬은 남편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기 때문에 총애받지 못한 언니와 달리 총애받는 상태에서 아들 둘이 생겼으니 내가 우위다라 여긴 것으로 보인다.
납탈리는 풀어 놓은 암사슴
예쁜 새끼들을 낳는다.
창세기 49장 21절

이스라엘은 르우벤, 시메온 & 레위, 유다, 즈불룬, 이사카르, 단, 가드, 아세르 다음에 납탈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납탈리의 후손인 납탈리 지파에 대한 내용은 문서 참조

4.3.7. 가드(갓)

이스라엘의 7남이자 레아의 시녀 질파(질바)의 장남.
레아는 자기의 출산이 멈춘 것을 알고, 자신의 몸종 질파를 데려다 야곱에게 아내로 주었다. 그래서 레아의 몸종 질파도 야곱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레아는 "다행이로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가드('다행, 행운'와 관련된다)라 하였다.
창세기 30장 9-11절

레아는 르우벤에서 유다까지 낳고 나서 최소 2년 이상 출산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 사이 라헬이 빌하를 통해 단과 납탈리를 얻은 걸 보고 질파를 통해 아들을 가지고 자신의 권리를 되찾아 주셨다며 가드라 지었다. 레아는 총애받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에게 많은 아들이라는 권리를 받았는데 라헬에게 아들 둘이 생기며 자신이 이겼다고 하자 그 권리를 되찾기 위해 질파를 통해 아들을 가진 것이다.
가드는 약탈자들의 습격을 받겠지만
그 자신이 그들의 뒤를 습격하리라.
창세기 49장 19절

이스라엘은 르우벤, 시메온 & 레위, 유다, 즈불룬, 이사카르, 단, 가드 순으로 언급했다.

가드의 후손인 가드 지파에 대한 내용은 문서 참조

4.3.8. 아세르(아셀)

이스라엘의 8남이자 질파의 차남.
레아의 몸종 질파가 야곱에게 두 번째 아들을 낳아 주었다. 레아는 "여인들이 나를 행복하다고 할 것이니, 나는 행복하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아세르('행복')이라 하였다.
창세기 30장 12-13절

당시 레아는 친자식 넷에 양자 둘을 합쳐 아들 여섯으로, 가정[72]에서 아들이 많은 여자가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좋게 여길 만했다.
아세르는 양식이 넉넉하여
임금에게 진미를 올리리라.
창세기 49장 20절

이스라엘은 르우벤, 시메온 & 레위, 유다, 즈불룬, 이사카르, 단, 가드, 아세르 순으로 이야기했다.

아세르의 후손인 아세르 지파에 대한 내용은 문서 참조

4.3.9. 이사카르(잇사갈)

이스라엘의 9남이자 레아의 5남.
밀을 거두어들일 때, 르우벤이 밖에 나갔다가 들에서 합환채[73]를 발견하고, 자신의 어머니 레아에게 갖다드렸다. 라헬이 레아에게 "언니 아들이 가져온 합환채를 나눠 주세요."라고 하자,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내 남편을 가로챈 것으로 모자라, 내 아들의 합환채까지 가로채려느냐?"[74] 그러자 라헬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언니 아들이 가져온 합환채를 주면, 그 대신 오늘 밤에는 그이가 언니와 함께 자게 해 주겠습니다." 저녁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자, 레아가 나가 그를 맞으며 말하였다. "저에게 오셔야 합니다. 제 아들의 합환채를 주고 당신을 빌렸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그날 밤에 레아와 함께 잤다. 하느님께서 레아의 소원을 들어 주셔서, 그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다섯 번째 아들을 낳아 주었다. 레아는 "내가 남편에게 내 몸종을 준 값을 하느님께서 나에게 갚아 주셨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이사카르('값', 또는 '빌리다')라 하였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 레아와 라헬 사이의 기싸움이 무척 강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 레아가 유다 이후 한동안 자식이 태어나지 않았던 게 사실 야곱이 레아와 한동안 동침하지 않아 그런 것으로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사카르는 튼튼한 나귀
가축우리 사이에 엎드린다.
쉬기에 좋고
땅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는
그곳에서 짐을 지려고 어깨를 구부려
노역을 하게 되었다.
창세기 49장 14-15절

이유는 불명이나 이스라엘은 유다 다음에 즈불룬부터 말하고 그다음에 이사카르에 대해 말했으며 즈불룬보다 내용도 좋지 않다.

이사카르의 후손인 이사카르 지파에 대한 내용은 문서 참조

4.3.10. 즈불룬(스불론)

이스라엘의 10남이자 레아의 6남.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야곱에게 여섯 번째 아들을 낳아 주었다. 레아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좋은 선물을 주셨구나. 내가 남편에게서 아들을 여섯이나 낳아 주었으니, 이제는 나를 잘 대해 주겠지." 하고는, 그 이름을 즈불룬('잘 대해 주다'와 관련되다)이라 하였다.
창세기 30장 20절

레아가 낳은 마지막 아들로[75] 많은 아들이라는 선물을 내린 하느님께 감사하고 남편에게 많은 아들을 낳아 주었으니 잘 대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담아 지은 이름이다.
"즈불룬은 바닷가에 살며
배들의 항구가 되고
그 경계는 시돈에 이르리라."
창세기 49장 13절

이스라엘은 유언으로 즈불룬의 자손들은 해안에 살며 페니키아의 도시 시돈까지 이르리라 말했다. 한 가지 특징은, 이스라엘은 르우벤에서 유다까지는 태어난 순서대로 말했지만 유다 다음에 즈불룬부터 이야기했다. 이스라엘의 예언도 그럭저럭 무난한 편.

즈불룬의 후손인 즈불룬 지파에 대한 내용은 문서 참조

4.3.11. 요셉

이스라엘의 11남이자 라헬의 장남.
그 뒤에 하느님께서 라헬을 기억하셨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청을 들어주셔서 그의 태를 열어 주셨다. 그리하여 라헬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하느님께서 나의 수치를 없애 주셨구나."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나에게 아들 하나를 더 보태 주셨으면!" 하면서 그 이름을 요셉('치우다' 또는 '보태다'와 관련되다)이라 하였다.
창세기 30장 23-24절

야곱이 유일하게 사랑하던 아내 라헬이 처음으로 낳은 아들로, 라헬이 오랫동안 불임이었다 레아가 마지막 자식을 가진 이후에 하느님이 태를 열어 주셔서 가진 아들이다. 라헬은 이때 아들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바라는데,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가는 사이 막내아들을 낳다 죽게 된다. 라헬만이 총애받았기에 레아에게 많은 자식이라는 복이 내려졌는데, 같은 시기 라헬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 서로의 충돌이 클 게 뻔하기에 우선 레아에게 많은 자식을 내려준 뒤에 라헬에게 자식을 내려준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사항은 요셉을 참고하시길.

이스라엘은 죽기 전 아들들을 부르기 전에 요셉을 불러 므나쎄와 에프라임를 양자로 삼아 제 형들과 같은 상속 재산을 받을 것이고, 그 이후에 태어나는 아들들은 그냥 네 아들들이라 말한다. 이스라엘이 나이가 많아 눈이 침침하자 요셉은 장남인 므나쎄를 오른손으로 이끌고 차남 에프라임을 왼손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손을 교차해서 머리에 손을 댄다.

이스라엘은 그 상태에서 요셉에게 축복하였다.
"저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을 당신 앞에서 살아가게 하신 하느님,
제가 사는 동안 지금까지 늘 저의 목자가 되어 주신 하느님,
저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 주신 천사께서는 이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
나의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름이
이 아이들에게 살아 있으리라.
또한 이들이 세상에서 크게 불어나리라."
창세기 48장 15-16절

이를 본 요셉은 손을 교차한 이스라엘의 손을 정정시키려 했으나 이스라엘은 "아들아, 나도 안다, 나도 알아. 이 아이도 한 겨레를 이루고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우가 그보다 더 크게 되고, 그의 후손은 많은 민족을 이룰 것이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으나 이스라엘 본인이 차남으로서 겪은 여러 일들 때문에 차남 쪽에게 더 큰 복을 내려준 것으로 보인다.
그날 야곱은 그들에게 이렇게 축복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너희를 들어 말하며 이렇게 축복하리라.
'하느님께서 너를 에프라임과 므나쎄처럼 만들어 주시리라.'"
이렇게 그는 에프라임을 므나쎄 앞에 내세웠다.
창세기 48장 20절

그리고는 이스라엘은 요셉에게 "나는 너의 형제들보다 너에게, 내 칼과 활로 아모리족의 손에서 빼앗은 스켐 하나를 더 준다."라고 말해준다.

나중에 모든 아들들에게 예언할 당시 이스라엘은 요셉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요셉은 열매 많은 나무
샘 가에 심긴 열매 많은 나무.
그 가지가 담장 너머로 뻗어 간다.
궁수들이 그를 어지럽히고
그에게 활을 쏘며 덤벼들었어도
그의 활은 든든히 버티고
그의 손과 팔은 날쌔었다.
이는 야곱의 장사 손,
이스라엘의 목자요 바위이신 분의 이름 덕분이고
네 아버지의 하느님 덕분이시다. 그분께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전능하신 분 덕분이다. 그분께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위에 있는 하늘의 복,
땅속에 놓여 있는 심연의 복,
젖가슴과 모태의 복을 내리시리라.
네 아버지의 복은
예로부터 있던 산들의 복보다,
처음부터 있던 언덕들의 탐스러운 것들보다 크다.
그 복이 요셉의 머리로,
제 형제들 가운데에서 봉헌된 자들의 정수리로 내리리라."
창세기 49장 22-26절

납탈리 다음에 언급된다.

요셉의 후손인 에프라임 지파 므나쎄 지파에 대한 내용은 각각 문서 참조.

4.3.12. 베냐민

이스라엘의 12남이자 막내아들이며 라헬의 차남.
그들이 베텔을 떠나 에프라타까지는 아직 얼마 더 가야 하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었는데, 산고가 심하였다. 이렇게 라헬의 산고가 심하자 산파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번에도 아들입니다." 라헬은 마침내 죽게 되어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아기의 이름을 벤 오니('내 고통의 아들')라 하였다. 그러나 아기의 아버지는 베냐민('오른손의 아들' 또는 '오른쪽의 아들')이라 불렀다.
창세기 35장 16-18절

베텔에서 에프라타에 가던 당시 라헬이 낳은 아들로 베냐민을 낳고 라헬은 사망한다. 그 때문에 라헬은 에프라타 즉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가에 라헬의 묘비를 세웠다.

친형 요셉이 죽은 걸로 알려졌던 당시 이스라엘은 유일하게 남은 라헬의 아들 베냐민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베냐민이 아주 어린 시절에 요셉이 이집트로 끌려간지라[76] 성장한 베냐민을 만나고 싶어해 시메온을 인질로 잡아가면서 불러왔고, 베냐민에게는 다른 형제들보다 다섯 배로 많은 식사를 베풀어 주었다.
"베냐민은 약탈하는 이리
아침에는 움켜진 것을 먹고
저녁에는 잡은 것을 나눈다."
창세기 49장 27절

이스라엘이 죽기 직전에 자식들에게 복을 내려주던 제일 마지막에 언급된다. 그런데 당시 요셉에게는 온갖 꼼수로 잔뜩 줬는데 베냐민은 평범하게 복을 내려준 걸 보아 베냐민은 요셉보다는 덜 사랑받았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베냐민이 태어나면서 사랑하던 라헬이 죽은 요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베냐민의 후손인 베냐민 지파에 대한 내용은 문서 참조

4.3.13. 디나

이스라엘과 레아의 고명딸이자 막내딸. 다만 디나가 태어난 이후에 요셉과 베냐민이 태어났기 때문에 요셉과 베냐민에게는 누나다. 이름의 뜻은 '공의', '심판'.
레아는 또 얼마 뒤에 딸을 낳아 그 이름을 디나라 하였다.
창세기 30장 21절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고 에사오와 만나 헤어진 뒤 파딴 아람을 떠나 가나안 땅에 있는 스켐 성읍에 무사히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천막을 치고 스켐의 아버지 하모르의 아들들에게 돈 백 닢을 주고 천막을 친 땅을 사들여 제단을 세워 그 이름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스라엘의 하느님 엘)이라 하였다. 디나는 그 고장 여자들을 보고 싶어 성으로 들어갔다 족장인 히위 사람 하모르의 아들 스켐이 디나를 보고는 잡아가서 겁탈했다. 스켐은 디나가 마음에 들어 다정하게 이야기했다는 것으로 보아 적당히 위로해 준 모양. 스켐은 하모르에게 가서 디나의 집안에게 부탁해 정식으로 아내로 받게 해 달라 요청했다. 당시 야곱은 그걸 들었지만 아들들이 들에 있어서 말하지는 않았다.

하모르가 야곱에 대해 이야기하러 왔을 당시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집에 돌아온 상태였는데 이스라엘에게 추잡한 짓을 했다며 화가 치밀어 있었다. 하모르는 각자의 딸들끼리 겹사돈을 맺고 함께 살자는 제의를 하고, 스켐도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충분한 몸값과 선물을 혼수로 줄 테니 디나를 아내로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감히 여동생을 건드렸다며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던 디나의 오빠들은 성읍의 사람들이 모두 할례를 한다면 디나를 넘겨주고 아니면 그냥 떠나겠다고 거짓말했다.

스켐의 아버지 하모르는 고장에서 가장 존경받는 원로였기에 성읍 사람들은 하모르의 말을 따랐다. 이때 하모르는 이스라엘과 한 겨레가 되어 함께 어울려 살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이나, 이스라엘의 본목적이 아버지가 있는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기에 아들들이 사고를 치지 않아도 디나만 준 뒤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은 약속대로 디나를 넘겨줬으나,[77] 야곱의 둘째 아들 시메온과 셋째 아들 레위가 칼을 들고 아직 할례한 상처가 다 낫지 않아 일어나 싸울 수 없는 상태였던 하모르와 스켐을 비롯한 성읍의 사내들을 간단히 죽인 뒤 스켐의 집에서 디나를 데리고 나왔다. 다른 아들들은 여동생을 더럽힌 것에 대한 복수로 성읍을 약탈해 재산을 빼앗고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잡아가고,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약탈했다고 한다. 여진족, 몽골족을 보면 알겠지만 정착민과 달리 유목민들에게 약탈과 학살은 흔한 일이었다.

이걸 안 이스라엘은 아들들을 불러 "가나안 족속(페니키아인)과 프리즈 족속에게 적대되어 이들이 힘을 합쳐 우리에게 쳐들어오면 우리는 꼼짝없이 몰살당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면서 노발대발했지만,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그들이 우리 여동생 디나를 창녀처럼 다루어도 아버지는 좋다는 겁니까?"라고 따졌다. 이스라엘은 디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던 것으로 보이는데, 레아의 딸이라서 그런 모양. 이 때문에 이 일을 주도한 시메온과 레위는 후손들이 흩어질 것이라는 저주를 받았다.

그 뒤 야곱은 에사오에게서 도망치던 당시 하느님을 만난 장소인 베텔을 지나 에프라타로 가는 사이 벤야민이 태어난다.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일족들을 이끌고 갈 때 디나도 동행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후 디나는 혼인하지 못하고 친정에서만 살다 죽은 것으로 보인다.

영미 문학 작품 중에 디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있다. 제목은 '붉은 천막(The Red Tent)'. 작가는 '애니타 다이아먼트(Anita Diamant)'.


[1] 어째서 이 아닌 천사가 그려져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당대에는 대리자가 한 일을 보낸 자가 한 것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창세기 서술상으론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였다고 이해하여도 문맥상 문제가 없고, 실제로도 적지 않은 신자들이 이렇게 이해한다. 호세아 12장 3~4절에도 천사라고 적혀있다. [2] 한결이 지은 만화 성경의 연표에는 기원전 2006년생으로 나온다. [3] 요셉(창세기) 포함. 다만 후술하듯 딸이 더 있을 수도 있다. [4] Jacob이 정석적인 이름이고 James는 변종이다. Jacob은 Iacobus가 바로 영어화된 이름이다. 그리고 라틴어가 마지막으로 일상 언어로 쓰이던 시절 구어에서 Iacobus가 Iacombus*(추정)를 거쳐 Iacomus로 바뀌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따로 영어에 유입돼 탄생한 게 James이다. 사전에서는 Jacob은 구약 인물인 '야곱'을 뜻하고, James는 신약에서 등장하는 여러 명의 야고보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5]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에서'라는 이름이 더 친숙할 것이다. [6] 형과 아버지를 속여 탈적했다. [7] 출처 [8] 그나마도 처음엔 아예 꿈꾸는 놈이 온다고 경멸하며 죽이려 했지만 몇몇 형제들의 제안으로 팔아버리는 것으로 끝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요셉은 갖은 고생을 하다가도 꿈해몽의 소질이 있자 파라오의 눈에 들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오히려 후에 기근으로 궁핍해진 가족들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9] 아이러니하게도 레아가 '장녀'라는 이유로. [10] 이렇게 표현되지만 그조차 생전엔 크게 번성했으며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군할 때에도 그의 자손인 에돔인들의 땅은 침범하지 말라고 엄격하게 제한되는 등 아브라함 자손으로서의 특권은 입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백성의 계보에 속하냐 마냐 자체가 너무 커서 비교 불가인 것. [11] 창세기 47장 9절 "이 세상을 떠돌기 벌써 백삼십 년이 됩니다. 얼마 되지는 않으나, 살아온 나날이 궂은일뿐이었습니다. 소인의 조상들이 떠돌아다니시며 누리신 수에 미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예시] 야훼 나의 주님, 야곱은 약할 대로 약해졌습니다. 이 이상 더 견뎌낼 것 같지 않습니다.(아모스 7장 2절) [13] 정확하게는 렌즈콩 스프를 말한다. 구약성경을 번역하면서 렌즈콩이 한국에 없는 작물이다 보니 색깔이 비슷한 팥으로 대체한 것. [14] 이 죽을 얻어먹은 이후 '붉다'는 뜻인 에돔이 에사오의 별명이 된다. 붉은 죽 한 그릇에 적통을 넘긴 에서를 조롱하는 뜻이었을 듯. [15] 이 대목에 대해서 설교하는 목사나, 신부 등의 성직자들 중에는 저 상황에 대해 어린 동생인 야곱이 음식을 만들었는데, 에서가 한 그릇 달라니, 그럼 나더러 형이라고 해봐! 해서 그래 네가 우리 야곱 형라는 식으로 알기 쉽게 해석하고, 나중에 그 약속으로 인해 정말 하느님이 야곱에게 형의 축복을 주었다. 같은 동화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도 영미권 성경 일화로 쓴 판본이 있다. 일반적인 형제지간이었으면 형한테 한 방에 얻어터지고 그냥 뺏겼을 텐데 에사오는 성격이 좋은 형이었던 듯하다 [16] 야곱이 따로 팔의 털을 제모하지 않은 이상 일란성 쌍둥이라면 이 정도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이를 근거로 에서와 야곱 형제는 이란성 쌍둥이라고 볼 수 있다. [17] 게다가 리브가의 죽음에 대한 얘기도 없는데 창세기의 족장들과 부인들의 죽음은 ~가 XXX세로 사망했다라는 식으로 다 있음에도 리브가만은 없다는 점에서 성서학자들은 남편인 이삭과 장남인 에서가 애도하지 않은 것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놈의 차남에 대한 편애로 죽은 뒤에도 가장 자신의 죽음에 슬퍼해 줘야 할 남편과 장남에게 도리어 외면받았다는 지독한 저주를 받은 셈. 물론 리브가와는 달리 에서를 편애한 이삭도 편애 문제에서는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장자에게 축복을 내리고 후계자를 결정할 권리는 자신에게 있으며 에사오가 장남이니 권리를 침해하고 원래 돌아가야 할 권리를 교묘하게 가로채게 한 리브가가 미워 보일 수는 있다. 게다가 야곱을 말리기는커녕 부추기기까지 했다. [18] 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저주 수준이었다. 너의 후손들은 기름진 땅에서 떨어져서 살게 될 것이고, 너의 후손들은 동생의 후손들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내용. 여기에서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부분이 있다면, 언젠가는 그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다. [19] 에사오의 후손은 이후 에돔인으로 명명되었다. 에돔인은 야곱의 후예라고도 할 수 있는 남유다 왕국과 갈등을 일으키다가 기원전 586년에 유다 왕국이 망하자 유다 왕국 영토의 남쪽 지방을 침공했고, 이두매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두매 사람인 안티파트로스(당시 로마 제국의 행정관)의 한 아들이 형과의 내전 끝에 자신의 뒷배인 로마 제국의 허가를 받고서 유대의 왕으로 즉위한다. 그자가 신약성경에 나오는 헤로데 1세, 즉 헤로데 대왕이다. [20] 이 당시에는 친족 간 결혼이 장려되었다. 야곱이 친족과 결혼하기 위해 떠나자, 이방 여성과 결혼한 에사오가 부모님 눈치를 보다가 큰아버지 이스마엘의 딸을 처로 한 명 더 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21] 자료 비평적 관점에서는 '에사오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떠남'이라는 전개와 '친족과 결혼하기 위해 떠남'이라는 전개가 서로 다른 소스 텍스트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22] 즉 야곱에게는 외사촌 누이들이 된다. [23]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야곱이 후성유전을 이용했다고 한다. 물론 기원전 시기에 살았던 야곱이 유전학을 알았을 리는 없고 경험상 체득한 지혜였을 것. [24] 4. 야곱은 사람을 라헬과 레아에게 보내어 그의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내어 5. 의논하였다. "당신들의 아버지가 나를 보는 눈이 전과 같지 않소. 그러나 내 아버지의 하느님께서는 내 곁을 떠나신 적이 없었소. (창세기 31장 4~5a절) ... 14. 라헬과 레아가 대답하였다. "아버지 집에서는 우리에게 돌아올 몫을 더 바랄 수 없습니다. 15. 아버지는 우리를 마치 남처럼 여겼습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팔아먹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돌려주셔야 할 돈도 혼자 가로채신 거예요. (창세기 31장 14~15절) [25] 그도 그럴 게 야곱은 찐사랑인 라헬만을 원했지만 라반은 언니가 시집을 안 갔으니 동생을 먼저 보낼 수 없다는 것을 핑계로 애꿎은 레아가 마음고생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고, 라헬 입장에서도 다산한 데다 연장자이기까지 해서 위치가 견고한 레아와 남편을 두고 다투게 만들었으니 이만한 웬수가 따로 없다.(라반 입장에서는 야곱이 동생의 아들이기도 하고 형의 장자권을 가로챘을 정도로 야심가인 데다 하는 일마다 다 잘되는 신의 가호가 함께 하는 전도유망한 젊은이이자 유능한 노동력이니만큼 남 주기 아까웠을 것이다.) 거기다 그렇게 10년이나 넘게 부려먹고도 야곱에게 제대로 된 품삯조차 주지 않는다는 건 야곱에게 시집간 두 딸에게 돌아갈 재산 역시 상정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니만큼 두 딸 입장에서 보자면 '시집가면 출가외인'이란 식으로 먼저 손절 친 건 엄연히 라반이다. [26] 도자기, 돌 등으로 만든 작은 인형같이 생긴 신상. [27] 정확히는, 유대교 율법에선 생리하는 여성을 정결치 못한 상태로 취급했기에 생리 중인 라헬에게 접촉하면 귀찮은 정결례를 치러야 하게 되므로, 자신을 적극적으로 수색하려 들지 않을 것을 노린 행동이다. [28] 의외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당시 집안의 수호신상을 소유한 자는 그 집안의 상속자로 정식 인정되었다. 라헬은 라반에게서의 상속권을 노리고 드라빔을 몰래 가져온 것. [29] 이후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난산으로 죽은 것은 이 일에 대한 하느님의 벌로 여겨진다. [30] 당시 막내를 임신한 상태였던 라헬과 라헬의 첫 아이 요셉을 가장 안전한 뒤편에 위치하도록 배려했고 가운데에는 첫째 부인 레아와 그 아들들 및 딸을 자리 잡게 했으며 첩인 빌하, 질바와 그녀들의 아들들은 가장 덜 안전한 앞편에 서있게 했다. 야곱 자신은 모든 무리의 맨 앞에 서서 에사오에게 절하며 다가갔다. [31] 여기서 말하는 씨름(abaq, אָבַק)은 "샅바 싸움 정도가 아니라 둘이 맞붙어 땅에 뒹굴면서 드잡이질하는 격렬한 싸움이다."( 《보시니 참 좋았다: 성서가족을 위한 창세기 해설서》, 성서와함께, 창세기 32,2-36,43 해설) 어원은 '먼지 속에서 구르다'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bedust에 해당한다. 영어 번역본에는 레슬링으로 번역되어 있다. [32] 대퇴골 [33] 현실로 치면 대퇴골 골절, 혹은 고관절 탈구로 평생 고생할 상처다. [34]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이 소고기 등을 먹을 때 허벅지에 가까운 부위는 코셔로 인정하지 않는데, 바로 이 일화에 근거한 것이다. 정확히는 힘줄을 먹지 말라는 것이지만 서양의 육류 정형 업종에서는 한국처럼 고기를 부위별로 잘게 나누지 않아 힘줄을 제거하는 것이 귀찮다 보니 대다수 유대인 도축업자들은 머리에 가까운 부위들만 코셔로 인정한다. [35] 때문에 요셉이 형들에 의해 이집트로 팔려 가고 곰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위장하자 거의 삶을 포기할 듯이 절망하며 슬퍼했다. 세월이 흘러 가난 때문에 베냐민을 이집트로 데려가야 했을 때도 금지옥엽인 아들을 또 잃을까 봐 노발대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베냐민은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이 죽으면서까지 낳은 막내아들이자 요셉의 실종 이후 마지막 남은 라헬과의 자식이었기 때문. [36] 요셉이 당시 이집트의 총리로 있었다는 건 당연히 모르고 있다. [37] 정확히는 히브리인의 경우 그렇게 성서에서 여겨지는 것 [38] 제12왕조 시절 크눔호텝 2세의 재위기에 일련의 셈족들이 이집트로 망명을 온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가 대략 기원전 1900년대 초쯤이라고. [39] 현대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전기설이니 후기설이니 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 고려되지 않는다. [40] 사실 천사라 해도 결론은 똑같긴 하다 [41] 좀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한번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 기사를 개연성과 각 인물들의 생몰 연도에 유의해서 자세히 읽어보자. 개연성이 개판인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42] 사실 물질적으로만 봐도 동물 550마리는 엄청난 선물이다.(참고: 욥 1장 3절) 나를 지금 돈으로 매도하려는 겐가! ....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43] 그래도 라헬이 죽었을 땐 따로 무덤을 만든 것에 비해 레아가 죽었을 때엔 아브라함 사라, 이사악 리브가가 묻힌 가족묘 막벨라 굴에 장사 지냈고 나중에 야곱 자신도 여기에 묻히는 등 말년에는 정실로서 인정해 준 듯하다. [44] 고대에는 자식, 특히 대를 이을 아들을 많이 낳은 여인이 가정에서 영향력이 컸다. [45] 단순히 이뻐한 수준을 넘어 장남, 후계자에게 할 법한 대우를 했다고 하니 애기였을 막내를 제외하고 솜털 보송한 애송이가 장성한 형아들을 제치고 후계자 수준의 이만한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은 좋은 결과를 볼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경우 어느 나라든지 간에 절대 좋은 꼴을 못 봤다.멀리 볼 것도 없이 당장에 조선 시대만 해도 이것 때문에 난리가 났다 [46] 그나마도 르우벤은 장자라는 입장상 요셉을 몰래 빼돌릴 생각이었고, 유다는 우리 손으로 동생을 죽이는 건 아니지 않느냐면서 상인에게 요셉을 팔아넘기는 수단으로 요셉을 살렸다. [47] 이스마엘인과 미디안인들이 행상으로 이집트에 가던 도중 그들을 발견하고 팔았다고 한다. [48] 다만 이것은 리브가가 아니라 오히려 이사악이 잘못한 것인데 하느님은 분명히 에사오와 야곱이 태어났을 때, 형인 에사오가 아닌 동생인 야곱을 통해 계보를 잇겠다고 알려줬는데도 이사악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에사오를 더 사랑한 게 문제였다. 그래서 오히려 리브가가 에사오 대신 야곱이 장자권과 축복권을 가져가도록 하느님의 뜻에 따라 바로잡은 결과가 되었다. 그래서 이사악은 불순종한 자, 리브가가 순종한 자로 기록이 남게 되었는데 만약 이사악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에사오 대신 야곱이 대를 잇도록 해줬다면 집안의 막장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에사오와 야곱 사이에 형제간의 불화가 발생하는 정도로 끝났을 것이며 그마저도 애초에 하느님의 뜻이므로 에사오도 어쩌지 못했을 테니 그냥 형제 사이에 까칠해지는 정도로만 끝나며 문제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문제의 근본 제공은 가장인 이사악이 한 셈. [49] 원래 사랑해서 결혼하려 한 여자가 라헬인 데다가 라헬이 더 매력적이었던 만큼 라헬을 좀 더 챙겨 주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당시로서는 여러 부인들 중 가장 자식 많은 부인이 넘버 원이 되는 상황에서도 라헬만 지나치게 싸고돌았다. 그렇다고 라헬의 처신이나 성품이 좋았던 것도 아니다. [50] 물론 이것은 당시만 해도 철없는 동생이었던 요셉이 형들의 눈치를 보며 사리기보다는 아버지를 믿고 좀 설치고 까불어서 형들을 더 약 오르게 한 탓도 있다. 그 때문에 노예로 팔려가게 된 후 이집트의 총리가 될 때까지 요셉의 성장기가 더욱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51] 그리고 편애했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적당한 수준의 편애였을 수도 있다. [52] 그나마 애매한 게 창세기 21장 8절(직역: 이스마엘이 이사악을 웃었다[meṣǎ·ḥēq])인데, meṣǎ·ḥēq는 '비웃다'라고도 번역 가능하고 갈라디아서 4장 29절에서 바울로는 그러한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부정적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개신교 표준새번역, 개역개정의 관점) 그러나 창세기 자체로만 보자면 이스마엘이 이사악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명시되지 않아서 그냥 이스마엘이 이사악과 놀고 있던 거라고 번역하기도 한다.(공동번역, 가톨릭성경의 관점) 설령 전자의 입장을 취하여 이스마엘이 이사악을 놀려댔다고 해도, 어린이가 동생을 놀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를 본 사라가 하갈을 쫓아내라고 성을 냈다는 구절을 보면 하갈이 이스마엘을 임신했을 때 몸종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에도, 본처인 사라를 업신여겼다는 것을 감안하면 PTSD가 도졌을 수도 있지만 단순히 형으로서 동생에게 놀리는 수준이었는데도 그랬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53] 말이 좋아 인질이지 어차피 테스트였기에 시므온은 잘 지내고 있었다. [54] 물론 베냐민이 당시로서는 죽었다고 판단한 요셉 외엔 라헬이 남긴 유일한 아들이라 참작할 만도 한데 베냐민이 라헬의 자식이 아니었다면 정말 저 정도로 아꼈을까? [55] 참고로 저때 요셉의 형들은 "이게 다 요셉 팔아먹은 우리 죄다!"라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베냐민도 라헬의 아들이고 요셉만은 못해도 편애받고 살았으나 베냐민은 안 미워하고 지냈다. [56] 특히 시므온 지파는 분열 시대 이후로는 유다 지파에 흡수되다시피 해서 전혀 이름을 드러내지 못한다. [57]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딸의 이름을 굳이 기록하지 않는 고대의 특성상, 기록되지 않은 딸이 더 있을 수도 있다. 스켐성 사건에서 디나와 정식으로 결혼하고 싶어한 상대방이 "당신의 딸들과 우리 딸들을 서로 결혼시키자"는 제안을 하는 구절이 있다. 당시 야곱은 자기 처자식과 하인들만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친척 조카를 데리고 있지 않은 상태라 가능성이 있다. [58] 참고로 12지파란 제사장 레위 지파 + 12지파로 실제론 13개 지파다. 요셉의 두 아들이 각각 지파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59] 자귀나무는 지중해 일대에서 자라는 풀로 임신 촉진제로 쓰던 약이다. [60] 뒷부분의 언급을 보면 처음에는 살해하지 말자고 주장했는데 형제들이 듣지 않아서 이 정도로 타협을 노린 것 같다. [61] 아브라함이 사라 사후 결혼한 크두라 사이에서 낳은 넷째 아들 미디안의 자손. [62] 사실 다른 형제들도 '요셉이 애원하는 걸 무시했더니 이렇게 벌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피를 흘렸다'고 운운하는 것으로 보아 르우벤은 요셉이 살해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 [63] 야곱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애꿎은 손자들을 죽여도 된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당연히 거절한다. [64] 서구권 국가들에서도 흔히 쓰이는 이름이기는 한데, 이 경우는 이 사람의 이름을 본뜬 시몬 베드로의 이름을 따서 쓰는 것인 만큼 조금 다른 의미... [65] 혹은 족장의 아들. [66] 시므온이 인질이었던 이유는 르우벤이 서모와 간음한 걸로 장자의 자격이 없어지며 이 인간이 그 역할을 대신한 거란 썰도 있고, 걍 얘가 형제들 중 제일 악질이라 요셉이 저랬다는 썰도 있다. [67] 장남의 잘못은 언급되지 않고, 형사취수제에 따라 차남이 다말을 취하지만 자식이 태어나도 명분상으로는 형의 자식이 될 것이기에 임신을 피하려고 질외사정을 했다. [68] 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자식이 본인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무거운 담보를 내밀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불륜 사건 때문에 믿음을 잃은 게 큰 듯. [69] 아버지 야곱은 본인과 같이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본 유다의 설득이 더 와닿았을 것. [70] 이때 베냐민을 놔주지 않으려는 요셉을 설득하기 위하여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이라고 하면서 제 자식을 잃고 난 뒤,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여 베냐민마저 잃으면 아버지가 크게 슬퍼할 것이라며 설득하고 베냐민의 죄(사실 요셉이 뒤집어씌운 무고)를 자신이 담당하겠으니 저를 붙잡고 베냐민을 놔달라는 모습을 보이며 요셉 때와는 달리 기독교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인 진정한 회개를 한 모습을 보여 그에 대한 것으로 가장 큰 축복을 받게 되었다고도 한다. 저게 굉장히 감동적인 사건이었던 건 요셉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유다의 저 말이 나오자마자 요셉은 대성통곡하며 자기 정체를 밝힌다. 대속이라거나 온전한 회개와 용서라는 기독교의 핵심 알레고리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71] 레아가 막내딸 디나를 낳은 뒤에야 하느님께서 태를 열었다 나오는 것을 통해 당시까지는 불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2] 20세기까지의 선진국과 현대 선진국 제외한 나라의 가정들. [73] 지중해 일대에 자라는 풀로 임신 촉진제로 쓰인다. [74]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말인데, 본래 레아는 라반이 사기 쳐서 야곱의 아내가 된 거고 본래 라헬과 결혼할 예정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가로챘다는 것은 그 때문에 아들을 많이 낳아도 총애받지 못한 서러움과 총애를 많이 받고 아들 둘이 생겨 의기양양해하던 라헬에 대한 질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75] 이후 딸 디나가 생긴다. 아들로는 마지막. [76] 베냐민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거의 다 왔을 당시에야 태어난 늦둥이었다. [77] 이스라엘의 반응을 봐서 아들들이 거짓말한 걸 눈치채지 못하고 아들들의 주장을 수긍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