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 에글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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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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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안드레 에글리 André Egl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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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8년 5월 8일 ([age(1958-05-08)]세) | |
스위스 바레스윌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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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축구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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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1978~198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1984~1985)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1985~1990) 뇌샤텔 크사막스 FCS(1990~1992) 세르베트 FC(1992~1994) |
감독 |
FC 툰(1995~1999) FC 루체른(1999~2001) SV 발트호프 만하임(2001~2002) FC 아라우(2004~2005) SC 조피겐(2006) FC 비엘-빈(2006) 부산 아이파크(2006~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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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79경기 9골( 스위스 / 1979~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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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위스의 축구 감독.2. 선수 경력
에글리는 1978년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에서 데뷔했으며, 1984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해 2년간 활동했으며, 특히 당시 바이어 레버쿠젠의 핵심 공격수 차범근과 공수의 핵으로 충돌한 바 있다.이후 1985년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로 복귀했으며, 뇌샤텔 크라막스와 세르베트를 거쳐 1994년 은퇴했으며,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 스위스 대표팀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스위스 대표팀으로 79경기에 출전한 나름 스위스 내에서는 스타플레이어로 1990년 스위스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3. 지도자 경력
1995년 FC 툰 감독을 시작으로 FC 툰, FC 루체른, FC 아라우 등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FC 툰 시절에는 2부리그에 머물던 팀을 승격시켜 1부리그에 안정적으로 잔류하였고, 알렉산더 프라이를 발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로는 지도자로서 크게 인상적인 경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며, 2004년에는 세인트 칼렌 CEO를 역임했다가 2006년 7월에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부임하였다.당시 부산은 이안 포터필드 감독 사임, 22게임 무승 행진과 4연승 행진 등 기복이 상당히 심한 팀으로서 팀을 연승 가도로 올려놓았던 김판곤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왔을 정도로 부임에 있어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고, 2006 시즌 팀 최다 득점자였던 뽀뽀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서 우려를 낳기도 하였다.
부산 감독 부임 후 에글리는 높은 곳에 있어야 선수들의 플레이가 잘 보인다며 클럽하우스 지붕에 올라갔고, 출퇴근을 지하철로 하면서 외국인 코치와 함께 경기 티켓을 부산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으며, 해운대 호프집에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혼자서 물어물어 방방곡곡에서 벌어지는 축구 경기를 관전하러 다니는 등 기이한 행동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07 시즌, 2승 4무 7패로 14개 팀 가운데 13위에 머물러 에글리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이 제기되었으며, 특히 새 코치와 외국인 영입을 둘러싸고 구단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2007년 6월, 감독직에서 사임하였다.
부산 감독에서 물러난 후인 2007년 공석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공개적으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스위스에서 축구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