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고등학교 관련 틀 | ||||||||||||||||||||||||||||||
|
숭실고등학교 崇實高等學校 SOONGSIL HIGH SCHOOL |
|
<colbgcolor=#122A4A> 교훈 | 참과 사랑에 사는 사명인 |
개교 | 1897년 10월 10일 숭실학당 |
유형 | 일반계 고등학교 |
성별 | 남자고등학교 |
형태 | 사립학교 |
학교법인 | 학교법인 숭실학원 |
교목 | 은행나무 |
교화 | 개나리 |
교장 | 송원섭 |
학생 수 | 1,070명[기준] |
교직원 수 | 86명[기준] |
관할 교육청 | 서울특별시교육청 |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은평터널로7길 6 ( 신사동) |
홈페이지 | |
[clearfix]
1. 개요
|
숭실고등학교 전경 (좌측 건물) |
서울특별시 은평구 신사동에 위치한 사립 남자고등학교. 개신교 미션스쿨이다. 1897년에 개교하여 대한민국의 중고등학교 중에서는 역사가 매우 긴 편이다.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위치한 숭실대학교와는 이름이 같고 본래 학교가 세워질 때는 같은 재단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나 모종의 사건들로 재단이 분리되었다.[3]
2. 학교 연혁
은평구가 대체로 청소년 인구 수가 많은 편이기 때문에, 학급 수와 학생 수가 타 지역에 비해서 많다. 고등학교의 경우는 각 학년 당 13반과 특수반 1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 대부분은 은평구에 거주하고 있으며, 일부 마포구와 강서구, 경기도, 고양시[4] 서대문구, 종로구에 거주하는 학생들도 통학한다.- 1897.10.10. : 미국 북 장로회 선교사 윌리엄 마튼 베어드박사가 평양 신양리 26번지 사택에서 13명의 학생으로 개교.
- 1901.10.25. : 평양학교 신양리 39번지에 2층 한옥 교사를 완공하고 학교를 이전함. 기숙사 2개동(24개실) 신축. 진실을 숭상하는 학당이라는 뜻에서 교명을 숭실학당(崇實學堂, The Venerate Truth School)으로 정함.
- 1902.10.01. : 근로장학사업을 위한 기계창인 안나공업소를 완공하고 목공실, 인쇄실, 철공실, 주물실을 설치함.
- 1904.05.15. : 제1회 졸업생 차이석(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최광옥,(애국지사·국어학자), 노경오(교육자) 3명을 배출함.
- 1910. : 제1교가를 만듦.
- 1911.04.04. : 숭실 축구부를 창단함.
- 1915.03.01. : 조선총독부가 「사립학교교칙」을 제정하여 성경과목을 교수하지 못하게 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 고등보통학교’ 인가를 거부하고 숭실학교로 존속함.
- 1915.04.01. : 제2대 교장에 라이너(R. O. Reine 라도래) 박사 취임
- 1918.04.01. : 제3대 교장에 마펫(S. A. Moffett 마포삼열) 박사[5] 취임
- 1919.02.28. : 서울에서 밀송한 기미독립선언서를 본교 기계창에서 3,000매 인쇄하여 평양 시위 군중에게 배포
- 1922.10.10. : 문예지 「숭실활천」 창간
- 1928.05.23. : '지정학교'로 학력을 인정받음.
- 1929.05.09. : 제4대 교장 맥큔(G. S. McCune 윤산온) 박사 취임[6]
- 1930.10.10. : 6천 명 수용 대강당 신축
- 1936.03.05. : 신사참배 거부로 맥큔 교장이 해임 추방되고 제 5대 교장에 한국인 정두현 선생 취임
- 1938.03.19. : 신사참배 거부로 강제 폐교[7]
- 1948.09.15. : 공산 치하에서 남하, 서울시 성동구 신당동 340-24(동양척식회사 건물)에서 재건
- 1954.04.01. :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일대 약 2천평을 대지에 가교사를 지어 이전
- 1956.10.10. : 본관(석조2층, 530평) 준공[8]
- 1965.04.01. : 숭실합창단 창단
- 1968.10.10. : 숭실 건학 이념에 입각하여 교훈을 '참과 사랑에 사는 사명인'으로 정함.
- 1972.09.20. : 서울특별시 은평구 신사동 산93의 11호의 대지 11,222평과 건물(60평, 12개 교실) 매입
- 1975.02.10. : 서울특별시 은평구 신사동으로 고등학교 교사(지하1층, 지상5층, 총 1,944평)를 신축 이전해 입교
- 1979.02.28. : 중학교 교사(지하1층, 지상5층, 총 1,380평) 완공
- 1982.05.03. : 도서관(3층, 건평 558평, 860석) 개관
- 1983.10.10. : 제2교가 제정
- 1986.09.17. : 「숭실학원헌장」 제정·공포
- 1997.09.19. : 「숭실 100주년 기념관」(건평 1,730평, 2700석) 봉헌
- 1997.10.10. : 개교 100주년 기념식 거행
- 1997.11.15. : 「숭실 100년사」 편찬
- 2002.12.20. : 종합교육관 준공
- 2004.02.14. : 정보도서관 개관 (장서 32,000권)
- 2005.02.17. : 숭실사이버스쿨 개강
- 2006.02.14. : 숭실중학교 신축교사 입실 예배
- 2007.10.10. : 개교 110주년 기념식 거행
- 2007.02.17. : 개교 110주년 기념 연구 논문 발표
- 2009.03.12. : 인조잔디 운동장 완공 예배
- 2019.12.11. : 급식실 및 체육관동 준공
- 2022.02.10. : 제105회 졸업
- 2024.02.07. : 제107회 졸업
3. 교훈 및 상징
교훈: 참과 사랑에 사는 사명인
숭실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소명자로서, 진리와 성실과 사랑을 실천하는 사명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명인이다.
숭실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소명자로서, 진리와 성실과 사랑을 실천하는 사명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명인이다.
교화는 개나리이며, 교목은 은행나무이다.
|
학교 교표 |
4. 교가
4.1. 제 1교가
원곡은 미국의 남북 전쟁 때 북군의 군가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가 된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이다. 3년간 이 교가를 부를 일은 입학식, 졸업식, 방학식 5번이다. 나머지 행사에서는 제 2교가를 사용한다.다만, 제1교가를 부를 때에도, 1절부터가 아닌 4절만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절 가사 앞부분이, " 모란봉이 달아오다 돌아앉으며, 대동강수 흘러내려 감도는 곳에, 백운간에 솟아있는 층층한 집은 합성숭실학교"로 시작한다. 숭실고등학교가 처음 세워진 곳이 평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게 없지만...
4절은 지역색이 없다. 다만, 종교색이 약간 느껴진다. "신기하다 우리학교 생긴 연원은 만세반석 열린 곳에 터가 되었고,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생명샘물이 사해에 퍼지네."
4.2. 제 2교가
1교가과 비교하여 최근에 만들어진 교가이다. '가고파'의 작곡가로 잘 알려진 김동진이 작곡했다.5. 학교 생활
5.1. 주요 행사
5.1.1. 참랑마당
고등학교 축제로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다면 12월에 진행한다.[9] 각 동아리별로 소개팅 부스, 노래방 부스, 타투 부스 등 다양한 부스들이 준비되며, 특히 학부모회에서 진행하는 먹거리 부스는 학생, 교사 할 것 없이 몰려가서 줄을 선다. 저녁 7시~9시에는 100주년 기념관에서 공연이 있다. 100주년 기념관은 예배당으로 쓰는 곳인 만큼 실내이고 넓은 공간과 많은 좌석수, 다양한 공연팀이 준비 되어있는 것이 장점.본래 코로나 이전만 하더라도 재미없다는 평이 많았으나, 2022학년도 참랑마당은 이 근처 학교들 중 가장 재밌는 축제라는 여론이 있을 정도로 매우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5.1.2. 스포츠한마당
구기대회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종목엔 축구, 농구[10]가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등교 확대하던 시기에는 9월 초, 중순에 진행했다.6. 학교 시설
상대적으로 타 고등학교에 비해 매우 넓고 크다. 축구장의 크기가 FIFA규격에 맞는다. 운동장에는 인조잔디가 깔려있으며 FIFA규격의 축구장을 제외하고도 농구장이 좌우로 몇 개씩 있다. 심지어는 고등학교라 놀림받는 서강대학교보다 부지가 클 것이라는 농담도 돌 정도이다.6.1. 본관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은평구 신사동으로 학교가 이전하자마자부터 쓰기 시작한 건물이다. 약 50년 정도 연식이 된 건물로, 몇 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교실 상태는 상대적으로 깨끗한 편이다. 2018년 겨울방학, 봄방학 중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를 하였으며, 2019년 '우리학교 고운 색 입히기' 공사로 내부 도색을 하였으며, 책걸상, 칠판, 사물함 등을 모두 교체한 상태이다. 별관 건물과 긴 램프를 두고 이어져 있다.다만 연식이 연식이다 보니 본관 건물의 외관이나 창문, 안전바 등이 매우 낡아 보기 흉하다.[11] 거기에 학교가 산 밑에 위치해 있다 보니, 교실이나 화장실에 벌같은 비행곤충 등 자유로이 출입하는 것이 불편한 점.
6.2. 별관
학습정보관과 본관 사이의 건물로 1층은 특수반 교실, 2, 4, 5층은 교실, 3층은 학생안전부, 교목실, 진로상담부, 상담실로 이루어져 있다.6.3. 학습정보관
숭실고등학교가 음악거점학교로 지정되면서 빈 공간이었던 1층을 음악관련 교실로 개조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2층은 도서관, 3층은 제2교무실과 컴퓨터실, 4층과 5층은 1학년 교실이 있다. 건물의 용도가 교실이 아닌 특별실 등 타 용도였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교실들은 타 교실과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6.4. 100주년기념관
학교를 상징하는 건물. 개교 100주년을 맞아 1997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숭실교회의 대예배실이자 학교의 강당은 2,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이다. 이 곳에서 전국노래자랑 은평구 편을 촬영하기도 했고, 매년 숭실 축제인 참랑마당을 여기서 열기도 한다. 숭실소년관현악단이 자주 여기서 정기연주회를 연다.이 곳에서 학생들은 매주 1회 예배에 참여한다.[12] 그런데 건물이 가뜩히나 언덕 위에 지어진 학교의 맨꼭대기에 있는 관계로 접근하기 굉장히 힘들다. 고등학교 본관에서 건물이 있는 언덕 정상까지 직통으로 연결된 다리가 있어 본관 고층에 있는 학생들은 이 다리를 통해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가 있다.
6.5. 행정동
지상 9층 건물이며 외부와 100주년기념관의 연결통로 역할을 한다. 위에서 언급된 고등학교 본관과 100주년 기념관을 이어주는 다리처럼 이곳에도 행정동 건물과 100주년 기념관을 직통으로 이어주는 다리가 존재한다.학교 교문 바로 옆에 높은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이 행정동이다.[13]
중학교 일부 수업과 고등학교 음악, 미술 수업을 이곳에서 진행한다.
3층은 고등학교 자율학습실, 4~6층은 수업 교실, 7~8층은 중학교 관현악단 연습실로 이루어져 있다. 연습실은 2020년에 새로 리모델링했다.
6.6. 자율학습관 및 축구부 숙소
숭실 졸업생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이름이 길어서 교사들은 도서관, 학생들은 야자실이라고 부른다.[14]6.7. 급식실 및 실내 체육관
지상 3층 건물이며 옥상에 30대 규모의 주차장이 있다.본관에서 옥상의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작은 다리를 건너고, 급식실(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통해 급식실로 이동할 수 있다. 급식실은 450석 규모이다.
체육관은 농구장 1면보다 좀 크며 무대가 있고 3층 높이다.
7. 운동부
- 축구부가 1911년에 창단되어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 1927년, 1930년, 1931년, 1934년 전조선축구대회에서 총 4회 우승을 차지하여 배재고, 경신고, 휘문고, 중동고와 함께 전조선축구대회 우승기록이 있다.
- 축구부가 2023년 경인리그1을 우승하고 서울특별시협회장배를 준우승하며 뛰어난 성적을 내고있다
- 야구부도 운영중인 것으로 보인다. 단 이 쪽의 경우는 EPBC(구 은평BC)로 운영되고 있어 연관성이 낮은 편.
8. 출신 인물
- 강신욱
- 강준만
- 구흥남
- 김기훈: 영어강사
- 김동인
- 김동진(작곡가)
- 김민석
- 김선호: 전 수도방위사령관, 현 국방부차관
- 김양호
- 김일재
- 김태원
- 김현승
- 김형석(교육자)
- 김형직: 김일성의 아버지
- 박영진
- 백인엽
- 석주명
- 손범규
- 손정도: 독립운동가, 김일성의 회고록에 의하면 아버지인 김형직과 가까운 사이로 김일성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어서 북한에서도 존경받는다고 한다.[15]
- 신성우
- 신승범
- 심재원
- 신정환
- 심주석
- 앗싸참수리 : 본명 김영솔
- 안익수
- 안익태
- 엄태준
- 옌자민
-
-
오종혁-[16] - 유건형[17]
- 유제철: 전 환경부차관
- 윤동주[18]
- 오왼
- 이민종
- 이용설
- 이특[19]
- 임성민
- 장유식
- 장이욱
- 장인종: 전 법무부 감찰관
- 장하늘
- 진원: 성악가
- 재희
- 정관용
- 정재설
-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거래소 이사장
- 조남호
- 조만식
- 조병옥
- 조청연
- 주요섭
- 진의장
- 차리석: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 최경식(1957):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선수
- 최종환
- 최진영
- 현제명
- 홍주찬
- 황성수
- 황순원
- 김상우
- 릴보이
9. 기타
- 역사도 오래되었고, 학생 수도 1000명이 넘어가는 학교답게 소문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학교 축제에 참여한 연예인들은 톱스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소위 말하는 강남 8학군 학교들과는 다르게, 예산문제로 인하여 축제 때 인기가 별로 없는 연예인을 섭외하는데, 참랑마당이라고 불리는 숭실축제에 참여한 연예인은 이후 인기가 절정에 올라 성공한 톱스타 반열에 오른 경우가 있다. 축제에 왔었던 라인업이 아이유[20], 포맨[21], 다비치[22], 스텔라였다. 심지어 아이유의 경우 1집 '마시멜로우'를 막 내고 이제 활동하기 시작한 때였기에 처음 아이유가 온다는 소문을 들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슨 이상한 여자애가 와서 공연을 한다"라고 하기도 했다.
- 특이하게도 교복이 없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이 사복을 입고 학교 생활을 한다. 심지어 체육복도 규격이 아니다. 교복이 없는 이유는 교복은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폐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인 이유를 보자면, 1983년 이전에는 숭실고도 교복이 있었고, 1983년 교복자율화 조치로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 사복등교를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1980년대 중후반~90년대 중반에 걸쳐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 교복이 대부분 재도입되었고, 생활복 등교가 일상화된 2010년대 중반 이후로도 형식상으로 남아있는데 반해, 숭실고는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지 않아서, 교복자율화를 유지한것이다. 참고로 1983년 이전에 교복을 채용했을 시절에도 숭실고는 교복착용 관련해서 상당히 널널한 편이었다고 한다. 형제학교인 숭실중도 교복이 없다.
- 학교 언덕이 좀 많이 높다. 그것도 높은 언덕이 하나도 아니고 2개나 있어서, 접근성이 정말 좋지 않은 편이다. 우선 7715번이나 7212번 버스 정류장이 있는 GS25 편의점 앞에서 가파른 경사를 진 긴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단, 마을버스는 언덕 위, 교문 바로 앞까지 올라간다. 또 교문에서 다시 좀 더 작은 규모의 언덕을 올라야 고등학교 건물에 도착할 수 있고, 중학교 건물은 옆으로 걸어야 한다.[23] 올라갈수록 경사가 급하고 워낙 힘들어서 기억에 강하게 남다 보니 학생들은 '숭실언덕' 혹은 '골고다언덕'[24]이라고 부르며[25] 자전거 통학의 경우, 자전거 거치대가 교문으로부터 50~70m씩이나 떨어져 있다. 겨울철에는 폭설이 내려 언덕길이 얼면 어떤 차량도 출입할 수 없던 적이 있었다. 일례로, 2011년 1월 경에는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언덕길 전체가 얼어 급식차가 올라오지 못해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할 수 없게 되자, 결국 학교 측에서는 단축수업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경우가 있다.[26] 현재는 학교 언덕에 열선을 깔아 언덕이 얼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상태. 하지만, 인도 쪽은 열선이 설치되지 않아 간혹 언덕이 얼어 미끄러운 경우가 있으니 주의 요망.
- 학교괴담이 존재한다. 일단 학교부지가 과거 공동묘지였고[27],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 미스테리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학교 뒷산(비단산)이 조선시대 기생 무덤터여서 자는 학생들을 괴롭힌다는 전설이 있다.[28][29] 전산을 뒤에 끼고 있고 언덕 위에 있는 학교라 늦은 밤 풍경이 을씨년스러워서 그 괴담의 공포는 배가된다.[30] 운동부 학생들 중 한 명이 현재 백주년 기념관이 위치한 공사부지에서 숨졌다는 괴담이 있는데, 사실 뒷산 꼭대기에 올라 오른쪽으로 가면 산동네, 왼쪽으로 가서 산을 조금만 걸으면 상신초등학교 후문 바로 옆에 있는 등산길로 내려올 수 있지만, 그 등산길로 통학할 수는 없다. 정문으로 등교해야 하기 때문에, 산길이 아닌 포장도로를 1km 이상 돌아서 가야 한다. [31]
-
은평터널로9길에서 학교건물까지는 직선거리로 10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학교측에서는 정문으로 등교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거주하고 있는 은평터널로9길, 11길, 13길, 가좌로11길 (신사동 200번지, 237번지) 등에서는 등교를 할 때 최소 1km 정도를 돌아간다. 그것도, 그 악명 높은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 서울대입구역과 비슷하게, 숭실고등학교 역시 새절역 앞에 '숭실고입구, 새절역'라는 정류소 이름을 갖고 있지만, 보통걸음으로 새절역에서 학교를 걸어온다면 약 15분 내외가 소요된다.[32] 대부분의 학생들은 구산역에서 7715 혹은 응암역에서 7212번 버스를 타고 학교 앞에서 내려 걸어올라오거나, 새절역에서 7017로 환승해 상신중에서 걸어간다. 2016년 3월 7일부터 마을버스 은평10번이 3대로 운행을 시작하면서 새절역에서 숭실고로 바로 가게 되어 학생들의 고생이 조금 나아졌다만 새절역에서 걸어가는 인원+기존에 7017을 타던 인원이 합쳐지면 임시차라도 끌어와야 될 판. 10~15분 간격으로는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출•퇴근시간+하교시간용 예비차를 한 대 더 추가했다.
- 학교 시설 관리가 매우 뛰어나다.
-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1화 중 박무진의 아들 박시완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버스에 새겨진 '숭실고등학교축구단' 문구가 '용전중학교축구단'으로 합성되었다.
- 2019년 8월 28일에 숭실중고등학교에서 과거 평양숭실의 3.1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진을 재현해 '숭실평화 대행진'을 진행하였다.
- 2019년 11월 15일에 '은평구 청소년 생명 존중 콘서트'의 일환으로 RBW의 남성 5인조 밴드 원위와 퍼플키스(당시 프랙티스 365)가 공연을 진행했다.
- 한 때 특수지 고등학교였으나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로 환원됐다.
- 1986학년도 대학입학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배출했다. 1983년에 숭실고에 입학한 오석태 동문으로 그의 부모님은 서울대학교 법학과 진학을 원했으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시티은행 이코노미스트 재직중으로 알려졌다.
[기준]
2023년 9월 7일
[기준]
[3]
비슷한 사례로
이화여자대학교와
이화여자고등학교도 같은 재단이었으나, 대학교는 학교법인
이화학당으로, 고등학교는 학교법인 이화학원으로 분리되었다.
[4]
보통 서울 지역 중학교를 다니다가 본교로 배정된 후
고양시로 이주한 학생들.
[5]
숭의여학교와
평양장로회신학교의 설립자
[6]
2020년 2월 국가보훈처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그가 교장으로 있던 무렵 일제의 신사참배압박이 거세졌고, 1938년 신사참배거부로 학교가 폐교되었다.
[7]
숭실중고등학교에서는 이 날을 "폐교기념일"로 지정하고, 기념예배와 축제를 열기도 한다.
[8]
숭실고등학교가 옮겨간 이후 이 자리에는 정일학원이 들어섰다가 폐원한 이후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 외국인학교가 들어섰다. 현재도 이 건물은 리모델링되어 '해방타워'라는 주상복합 건물로 남아있다.
[9]
이전에는 9월 초에 진행했으나, 2022년부로 3년째 12월에 진행하고 있다.
[10]
1학기에는 1학년 축구, 2학년 농구로 진행하며 2학기 땐 바꿔서 진행된다. 3학년은 진행하지 않는다.
[11]
현재 보수 공사가 진행중이다.
[12]
일부 기독교 재단 학교에서 존재하는 채플제도와 유사하다.
[13]
맨 왼쪽 문은 토요일에도 가끔씩 열려있다.
[14]
예전에는 도서관이었다. 반면 축구부 숙소는 학교 옆의 산속에 있는 가건물이었다. 예전에 축구부 숙소였던 자리에는 현재
서신초등학교가 들어섰다.
[15]
단, 공산주의자라는 뜻은 아니다. 김일성도 회고록에서 "자신과 사상은 다르지만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밝혔고, 심지어 저 분의 아들이자 역시 독립운동가인 손원일이 대한민국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제5대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저 시기는 가족중 한 명이라도 공산주의와 연관이 있다면 참모총장은 고사하고, 군장교도 될 수 없었던 시기이다.
[16]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17]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작곡한 사람.
[18]
자퇴했으며, 2년 후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본교 출신은 아니다.
[19]
2011년
우리 결혼했어요 촬영을 위해
강소라와 함께 모교를 방문하였다.
[20]
2009년 축제. 그때 당시 아이유는 막 1집 앨범을 내고 활동하던 시기였다.
[21]
축제에 온 직후
불후의 명곡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22]
축제에 온 이후 강민경이 절륜의 가창력과 미모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23]
심지어 학교건물도 일반고등학교 치고는 엄청나게 넓다.
[24]
성경에 나오는, 예수가 사형장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간 길이다.
[25]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안쪽에 따로 경사로가 마련되어 있다.
[26]
이전까지 방학식 당일을 제외하고 10년도 더 넘게 수업을 일찍 끝낸 날이 없다고 한다. 2016년 8월 22일 개학식 날 교실의 몇몇 에어컨이 고장나 단축수업을 하였다.
[27]
현재도 남은 묘지가 있다.
[28]
다만 이 전설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듯 하다. 2000년 이전에 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그런 전설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아니라 2000년대 이후 누군가의 창작이라는
[29]
다른 썰에 의하면
내시,
궁녀들을 묻은 곳이라고도 한다. 일명 고택골이라 불리는 곳인데, '골로 간다'라는 말의 '골'이 바로 이 곳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네이버에 고택골을 검색하면 이 동네에 있었다고 나온다.
[30]
물론 미신이니 믿거나 말거나다. 2010년 이후 이 산이 재정비되면서 등산로와 공원이 많이 생겨서 산속에서 길을 잃을 일은 거의 없다. 주민들의 산책로로 많이 이용된다.
[31]
길이 막혀있지는 않다. 낮은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숭실고등학교 건물 뒤쪽 자율학습관 및 축구부 숙소로 연결된다. 정말로 가까운 길은 중학교 건물 바로 뒤쪽의 마을에서 가는 길이다. 직선 거리로 50미터도 안 된다. 이렇게 간다면 훨씬 가깝고 쉽게 등교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담이 막혀있다.
[32]
거리도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 정문까지와의 거리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