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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체 부설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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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産業體 附設學校


이 영상에 나오는 산업체 부설 학교는 대한민국 최초의 산업체 부설학교인 한일합섬의 마산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現 한일여고)와, 충남방적의 청운여자고등학교(1994년 폐교)다.

1. 개요2. 역사
2.1. 쇠락
3. 특징4. 관련 법령5. 기타6. 산업체 부설학교였던 학교7. 폐교된 산업체 부설학교

1. 개요

중학교 고등학교의 한 형태로, 말 그대로 산업체( 공장)에 부설된 중·고등학교다. 오늘날에는 법령상의 설립 근거는 남아있으나 2016년을 끝으로 모두 사라진 상태여서 사문화되어 있다.

2. 역사

1970~80년대까지는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한 데다가 먹고 살기도 힘들던 시절이라, 집안에서 아들, 특히 장남은 어떻게든 해서 고등학교, 형편이 되면 대학교까지 졸업시키려 했지만 국민학교 중학교만 졸업하자마자 인근의 방적 공장으로 보내거나 버스 안내양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랬기 때문에 1000명 이상의 상용 근로자를 가지고 있는 몇몇 산업체들은 그러한 어린 근로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공장내에 주/야간 학교를 설립하여 배움의 기회와 중·고등학교 학력을 주게 되었으며, 이직률이 높은 섬유업계에 있어서는 근로자들의 이직률을 낮추어서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 당시에는 다른 학교에서는 수업료와 육성회비 납입을 가지고 학교와 학부모간 실랑이가 일어나거나, 학생들이 수업료와 육성회비를 못낸다는 이유로 교사한테 차별, 혹은 체벌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자퇴하는 일이 많았는데, 산업체 부설학교는 적어도 육성회비를 따로 내야될 일은 없었기에 가난한 가정에서는 돈도 벌면서 학비 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1974년 경상남도 마산시[1] 한일합섬에 방문해서 현장을 살피던 박정희 대통령은 한 여공에게 소원을 물었는데 그 대답이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거였고 당장 박정희의 지시로 야간학교가 개설되었고 행정명령을 내려 야간학교의 학력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일합섬 부설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와 충청남도 천안의 충남방적 부설 충남방적실업학교(이후 청운여자고등학교로 개명, 1994년 폐교)가 개교한 것이 첫 시작이다. #

1976년에는 다른 사립학교와 달리 산업체 부설학교는 학교법인 없이도 설립이 가능하게끔 특례를 주면서, 수많은 산업체들이 산업체 부설학교를 쉽게 설립할 수 있게 되어 산업체 부설학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2] 게다가 정부에서는 부설학교를 운영하는 산업체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각종 세금을 감면하는 세제 혜택을 주기도 했으니 산업체 입장에도 일석이조가 되면서 산업체 부설학교들의 설립이 더욱 활발해졌다. 1970~80년대에 걸쳐 수많은 산업체 부설 학교들이 세워졌고, 정점을 찍은 1981년에는 143개(고등학교 90개, 중학교 53개) 6만2224명 규모에 달했다.

2.1. 쇠락

하지만 1980년대 중후반 들어 대한민국의 생활 수준은 눈에 띌 정도로 크게 향상되었고,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으로 가는 경우도 크게 줄어들어서 여학생들의 일반계 중학교나 일반계 고등학교의 진학률이 이전에 비하면 크게 높아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분위기를 틈타서 이 시기에 일반계 여자고등학교들이 대거 설립되다 보니 산업체 부설학교들 입장에서는 학생 모집에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삶의 질 향상으로 3D 업종을 꺼리게 되면서 생산직에 대한 선호도 조차도 하락하게 되었다. 연간 3천시간 노동이 기본이었던 다른 직장에 비해 노동시간은 짧았지만, 수업시간이 저녁-밤 시간때 잡혀있었기때문에 짬을 낼 틈이 없었고, 이 때문에 고단함이 더해져서 암만 돈을 벌 수 있다 해도 메리트가 없어진것이다. 산업체 부설학교들은 정규학교와 동등한 학력이 인정되어서 대학교 진학도 할 수 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대학정원이 학생수에 비해 턱 없이 적어, 1/3에 달하는 학생들만 대학교에 진학할수 있었기 때문에, 인문계 학생들도 대학교에 진학하기 쉽지 않아, 재수, 삼수생이 넘쳐났는데, 수업시간과 일수가 정규학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던 산업체 부설학교에서 이미 고된 노동으로 피로에 찌든 여학생들이 대학까지 가기란 더더욱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미 노동운동이 치열해 인건비가 상승한 데다, 공장 자동화로 노동집약적 산업은 하향세를 걷게 됨과 동시에, 중국산, 동남아시아산 저가 섬유들의 공세로 대한민국의 섬유산업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주로 섬유 업계 위주로 설립된 산업체 부설학교들은 직격탄을 맞아버렸다. 그 외에도 국내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생산 기지를 아예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옮기는 업체들도 많았으며, 생산기지가 해외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폐교된 산업체 부설학교들도 다수 존재하였다.

그 때문에 산업체 부설 학교들은 자연적으로 쇠퇴하게 되었고, 1989년에 접어들면서 산업체 부설 학교의 수는 43개 (고등학교 40개, 중학교 3개)에 4만2063명 규모로 급감하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산업체 부설학교들은 폐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상당수가 학교법인이 없이 파격적일 정도로 쉬운 조건으로 설립된 학교라서 대다수가 일반 정규학교로 전환할 여건을 만족하기 어려운다가 당연히 시설도 일반 정규학교에 비하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05년에 폐교된 충일여자고등학교만 하더라도 폐교 이전부터 여기가 과연 학교가 맞는지 궁금할 정도로 전체적인 시설이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 외 군산 경암여자상업고등학교만 해도 같은 계열이었던 일반계 고등학교인 군산제일고등학교와 비교했을시 같은 시기인 1977년에 건물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설의 수준 차이나 완성도가 하늘과 땅 수준의 차이였다. # 같은 재단의 세화여자중학교와 거의 동일한 시설을 갖추었던 특이 사례인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를 제외한 다른 산업체 부설학교들 역시도 같은 재단 산하로 있었던 정규 고등학교와 비교하면 같은 재단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학교로써의 시설이 너무나도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입지 조건 조차도 당연히 대다수가 산업단지에 소재한 공장 부지 내에 있다보니 일반학교로 어찌어찌 전환한다고 해도 학부모, 학생들이 꺼리고 주변 교육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어서 제대로 운영되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폐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고 폐교 이후에는 대부분 공장 시설의 일부로 활용되었다. 멀쩡히 있던 일반 정규학교들이 주변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교육환경의 악화로 결국 이전하거나 폐교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을 정도이니, 그러한 입지조건의 산업체 부설 학교들이 일반학교로 전환될 리가 만무했다. 일부는 공장 재개발 등으로 인해 철거되어 흔적조차 안 남은 경우도 있다. 그 외에도 공장이 파산하면서(특히 외환위기때) 운영주체가 없어지는 바람에 같이 폐교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공장 부지가 주거 지역으로 전환되어 옆에 아파트가 들어서거나, 원래 주거 지역과 인접하였거나 다른 주거 지역으로 이전하는 등 극히 운 좋은 일부만 살아남은 상태다.[3]

결국 1995년에는 27개, 1997년에는 20개(중학교 1개, 고등학교 19개) 7968명 규모로 급감하더니 급기야 2000년대 초반이 되면서 전국에 10곳 미만이 남게 되었고 인원도 급감하여 2004년 부산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양산 태창정보고등학교, 용인 인경고등학교가 폐교, 2005년 대전 충일여자고등학교가 폐교(마지막 졸업식 인원이 20~24명), 2006년 청주 양백상업고등학교가 폐교되면서 남아있던 산업체 고등학교들의 대다수가 사라져버렸고, 그 이후에는 부산에 오직 단 1곳, 시온식품과학고등학교만이 소규모로 남아 있다가, 건물 신축과정에서 그린벨트를 무단으로 침범한 이유로 2014년에 신입생 모집 정지 조치를 당하고, 2016년 설립 인가가 취소되어 공식 폐교되면서[4] 이후 산업체 부설학교는 공식적으로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 기능은 사실상 특성화고등학교 마이스터고등학교가 계승하고 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산업체 부설학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곳의 어린 근로자들이 지난 1970~1980년대에 산업화의 역군으로 활약하면서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잊지 말아야 할 의의가 있다. 물론 각종 사학비리와 노동착취도 판을 치기는 했지만

3. 특징

교과시간의 배당은 정규 중·고등학교의 3분의 1 정도 감축하여 운영되었으나 수업연한은 정규 중, 고등학교와 같으며, 이들 학교는 학력인정 학교 형태인 각종학교가 아닌 일반적인 중·고등학교와 같은 각급학교로 분류되었으며, 학력 인정도 정규 중·고등학교와 동등하게 인정되었다.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은 실업계열과 인문계열로 나누어졌다. 주로 고등학교 위주로 설립되었지만, 일부는 중학교 과정도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고, 산업체 부설 중학교의 대부분이 산업체 부설 고등학교와 같이 병설되어 운영되었으며, 많게는 한 학교당 정원이 수천명에 달할 정도인데다가 당시에 높은 경쟁률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좋은 면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설립하기가 너무 쉽다 보니 무자격 교사들이 근무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노동 조건과 법령이 느슨했던 당시의 상황을 이용해 여공들의 임금을 체불하거나 떼어먹는 수단으로 학교라는 시스템을 악용하는 막장 기업도 꽤 있었다. 사실 비리 사학들 행태 보면 이런 일이 없던 게 더 이상하지만 심지어 학생들이 미성년자인 건 염두에 두지도 않고 초과 근무까지 시키는 정신 나간 사례도 심심치 않게 있었을 정도였으며, 수업료 전액을 학교가 부담하기에 퇴직 시 학교에서도 퇴학되므로 이직은 꿈도 못 꿨다. 이로 인해 1987년 충남방적 대전공장 파업 때 예덕실고 학생들이 상당수 참여해 산업체부설학교 문제를 사회에 알렸으나, 파업을 지원했던 정신적 지주 남광균 교사(1959~2001)가 학교측에 의해 해직된 후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됐다. 1988년 3월에는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남광균 교사 복직, 처우개선,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3일간 치열하게 농성했다. ( 연합뉴스, 노동자역사 한내 자료 참고.)

일반 학교에서도 이러한 학생들을 위해 야간반을 만드는 경우가 있었다. 사실 산업체 부설학교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일반 학교 야간반과 거의 유사한 교육과정과 학력을 인정하는 학교를 산업체에 부설하여 만든 것이 산업체 부설학교인 셈이다. 물론 이런 일반 학교 야간반에 재학중인 학생들의 경우는 학교와 별개로 근무하는 업체를 알아서 선택할 수 있었고 이직이 자유로웠으나 산업체 부설학교가 대거 등장한 1980년대 이후로는 대다수가 중소기업이나 가내수공업 수준의 공장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이직이 자유롭다는거 빼면 오히려 근무여건이 굉장히 열악한 문제점이 많았다.[5] 일반 학교에 개설된 야간반도 산업체 부설학교가 등장할 무렵에 일부를 제외하고 상당수가 산업체 특별학급으로 개편되었다. 기존의 야간반과의 차이점은 산업체와의 연계성이 좀 더 강화되었다는 점. 이러한 야간반도 지금은 대부분 폐지되었다.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6] 강원특별자치도, 전라남도에는 산업체 부설학교가 없었다.

4. 관련 법령

초ㆍ중등교육법
제52조(근로청소년을 위한 특별학급 등) ① 산업체에 근무하는 청소년이 중학교·고등학교 과정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산업체에 인접한 중학교·고등학교에 야간수업을 주로 하는 특별학급을 둘 수 있다.
② 하나의 산업체에 근무하는 청소년 중에서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입학을 희망하는 인원이 매년 2학급 이상을 편성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그 산업체는 희망하는 청소년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이하 "산업체 부설 중·고등학교"라 한다)를 설립·경영할 수 있다.
③ 둘 이상의 산업체에 근무하는 청소년 중에서 입학을 희망하는 인원이 매년 2학급 이상을 편성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제2항에도 불구하고 그 둘 이상의 산업체가 공동으로 하나의 산업체 부설 중·고등학교를 설립·경영할 수 있다.
④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특별학급 및 산업체 부설 중·고등학교의 설립 기준과 입학방법 등에 필요한 사항은 시·도의 조례로 정한다.
⑤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특별학급 또는 산업체 부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을 고용하는 산업체의 경영자는 시·도의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교육비의 일부를 부담하여야 한다.
⑥ 지방자치단체는 시·도의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특별학급 또는 산업체 부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교육비 중 일부를 부담할 수 있다.

제53조(취학 의무 및 방해 행위의 금지) ① 산업체의 경영자는 그 산업체에 근무하는 청소년이 제52조에 따른 특별학급 또는 산업체 부설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기를 원하면 그 청소년을 입학시켜야 한다.
② 산업체의 경영자는 그가 고용하는 청소년이 제52조에 따른 특별학급 또는 산업체 부설 중·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경우에는 그 학생의 등교와 수업에 지장을 주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5. 기타

대다수의 오래전 폐교된 학교가 그렇듯 네이버나 구글, 다음 등의 사이트에는 정보가 거의 나오지 않는 학교들이 많다. 과거의 네임드 학교나, 2000년대 초반에 폐교된 학교가 아니면 안 나온다. 찾아봐야 아이러브스쿨의 동문학교 홈페이지나 다음 카페, 네이버 지식인에서 학교 이름이 들어간 글을 간간히 찾을 수는 있다.

1921년~ 1999년까지의 뉴스 다시보기를 제공하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는 간간히 나온다. 산업체 부설학교 신설·개교 등의 보도자료부터, 전성기 시절 여공들 학생들 인터뷰나 운동부 시합, 경기 기사 같은 뉴스도 있고, 1990년대 초반 인기가 급감하면서 사양길에 들어가 1990년대 후반 존폐 위기를 맞아 상당수의 학교가 폐교되기까지의 뉴스가 검색된다. 언론사의 이전 DB를 활용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6. 산업체 부설학교였던 학교

7. 폐교된 산업체 부설학교



[1]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2] 산업체 부설학교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학력 인정 학교 중에는 각종학교( 고등기술학교 포함)가 가장 설립하기 쉬웠는데, 산업체 부설학교는 당시 학력 인정이 되지 않던 공민학교보다도 설립하기 쉬웠다고 한다. [3] 그 외에 대전에 있었던 혜천여자중·고등학교의 경우는 학교 자체는 폐교되었으나 학교 건물은 이후에 같은 재단이 설립한 동방여자중학교와 한동안 같이 쓰다가 폐교 이후에는 동방여자중학교가 단독으로 물려받아서 사용하고 있다. [4] 다만 비인가 대안학교의 형태로 운영 중이며, 당연히 학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5] 그래도 산업체 부설학교가 있는 기업들은 아래의 목록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당시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지역을 대표하는 규모가 큰 중견기업이나 대기업들이 많아서 근무여건이나 체계가 어느정도 갖추어져 있는 반면, 일반 학교 야간반 학생들은 거의 중소기업을 택해야 했는데, 2020년대 대한민국의 중소기업도 근무환경이나 조건이 열악한 곳이 굉장히 많은데, 지금보다도 노동법이 미진했던 1980~1990년대라면 더더욱 열악했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내수공업 수준의 중소기업 공장들은 1990년대 까지 건물의 지하실을 공장으로 쓰는 경우도 많았었다. [6] 울산광역시의 경우는 산업체 부설학교는 없었으나, 북구에 바로 인접한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의 태화방직에서 운영하던 태화여자상업고등학교(현 효청보건고등학교)가 실질적으로 울산광역시의 산업체 부설학교 수요를 담당하였다. 이후 태화방직은 1997년에 부도가 나면서 폐업하였으나 학교는 살아남았고, 지금도 효청보건고등학교에는 울산광역시에서 오는 학생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7] 1974년에 개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체 부설학교중에 하나다. [8] 한일합섬이 건립했던 학교가 많이 남아 있는데, 여기는 아예 한효학원이라는 정식 학교법인까지 설립하고 교육사업에도 공을 많이 들였기 때문에 전혀 부실한 상태가 아니었고, 시설이나 입지 조건도 좋아서 일반학교 전환도 큰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시설 면에서는 당시의 다른 일반 고등학교들을 아득히 뛰어 넘었던 수준이었고 21세기 기준으로 봐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자세한 것은 한일합섬 문서 참고. [9] 원래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의 지금의 한일타운 대림아파트 자리에 있었으나 공장이 폐쇄되고 일반 특성화고등학교로 전환되면서 1995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0] 당초에는 산업체 부설 학교로 설립되었으나 외동읍에 고등학교가 없었기에 다른 산업체 부설학교보다 한참 앞서서 일반 학교로 전환한 케이스지만, # 사실은 산업체 부설고등학교를 운영하다가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같은 시설에 추가로 일반 종합고등학교도 동시에 운영하였다. 1996년 회사가 폐업하면서 산업체 부설고등학교를 폐지하고 일반 종합고등학교로 완전 전환하였다. 산업체 부설학교이기는 했지만 시설 면에서는 일반 사립고등학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건 물론이고 한일여실 만큼은 아니지만 이쪽 역시도 동시기에 설립된 다른 일반 사립고등학교를 상회하는 수준의 시설이었다. [11] 산업체 부설학교에서 학력인정 고등학교 및 남녀공학으로 전환한 유일한 사례이며 공장지대에 있던 산업체 부설학교 중에서도 전환하여 현존한 유일한 사례다. [12] 그 자리에는 현재 타임 스퀘어가 들어섰다. [13] 본래 주소는 문래동 3가 54였으나 폐교 이후 잠시동안 문래동 3가 45가 되었다가 해당 부지에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다시 지번이 변경되었다. 방림여자상업고등학교로 설립되었다가 1990년대 개칭. 2000년 방림 영등포공장 폐쇄로 폐교 후에도 건물은 노숙인 쉼터인 '자유의 집'으로 사용되다가 2003년 주택건설업체에 매각되어 철거. # 현재 금호 어울림 아파트가 들어섰다. 폐교 직후의 모습 [14] 1988년 김포공장 폐쇄로 대전공장으로 이전하였다가 회사 부실화로 1997년경 대전에서 폐교. [15] 지금의 풍납현대아파트 자리이다. 1989년 회사가 안산으로 이전하면서 폐교되었다. [16] 1984년 개교 당초에는 공장 사옥을 사용하였다. 1988년에 안산으로 이전하여 별도의 건물을 완공하여 대기여자상업고등학교가 되었다가 1998년 회사 부도로 안산에서 폐교됨. [17] 건물은 현존하고 있으며 2014년 10월까지는 오스템 임플란트 연구소로 쓰였다가, 2017년 기준 다른 기업체가 들어와서 쓰고 있다. [18] 한일합섬과는 별개이며 신흥종교 천부교 계열이다. [19] 다만 일반 특성화고처럼 똑같이 학생모집을 하고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산업체 부설학교였으나 신축건물이 무단으로 그린벨트를 침범한 이유(지적편집도로 확인 가능)로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었다가 2016년경에 학교 설립인가가 취소되면서 현재는 공식적으로는 폐교된 상태이나, 비인가 대안학교 형태로 운영중이다. # 서류상으로는 대한민국 최후의 산업체 부설학교였고 2016년에 폐교 되었지만, 운영 주체가 지금도 이래저래 말이 많은 곳이고, 서류상으로 폐교이기는 해도 폐교 과정이 지저분했던 만큼 폐교 관련해서 제대로 된 기사가 별로 없다. [20] 존속하던 당시에는 부천 시온고등학교와 같은 학교법인에 소속되어 있었다. 1988년에 개교한 마지막 산업체부설학교 3개교 중에서 학교법인으로 재산을 출연한 유일한 학교였다. 나머지 2개교인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와 신의고등학교는 재단 산하로 학교법인(일주학원, 신일학원)이 있었으나 학교법인 소속이 아닌 공장 소속으로 재산을 등록해놨다. [21] 산업체 부설학교 중에서는 1988년에 개교하여 거의 마지막에 개교했고 드물게 학교법인까지 갖추고 있었던 이례적인 사례. (다만 학교 자체는 학교법인 일주학원 소속이 아닌 태광산업 소속으로 재산을 출연했었다. 학교 시설 자체를 학교법인 일주학원으로 다시 출연한다면 일반계 고등학교 전환이 가능했었다.) 더군다나 위치도 공업지대가 아닌 고급 주거지역에 있었다. 광역시 소재 산업체 부설고등학교중에서는 일반계 고교로 전환도 가능했던 유일무이한 학교였지만 그딴거 없이 그냥 폐교당했다. 현재는 모기업에서 인력개발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22] 1996년에 양산으로 이전하였다가 2004년에 폐교. 현재는 그 자리에 부곡대우아파트가 들어섰다. [23] 부산광역시 소재 고등학교 중에서 가장 단명한 학교로 1984년에 개교하여 1994년에 모기업의 신발사업 철수로 폐교되었다. 폐교 이후에 학교 부지와 시설은 아파트 건설업체에 팔리면서 대동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4] 1993년에 동원여자상업고등학교에 합병되었으며 이후 학교 건물은 기업체 사옥으로 사용중. [25] 1996년 제일모직 대구공장이 구미공장과 통합되어 이전하면서 폐교. 현재 대구삼성창조경제단지에 포함됨 [26] 대구내에서 폐교직전까지 인문계 여학교처럼 '대구이현여고'란 교명을 가진 유일한 학교였다. [27] 본래 주소는 서구 중리동 507-19였으나 이현여자고등학교 폐교 및 갑을방적 공장이 폐쇄된 이후로 이현여자고등학고 건물은 가운데를 허물고 도로를 냈다. 이 과정에서 건물이 2개로 쪼개지면서 해당 건물이 있는 지번도 2개로 나뉘게 되었다. 2개로 나누어진 이현여자고등학교 건물은 현재도 업체 사옥으로 활용되고 있다. [28] 본래 주소는 북구 검단동 777-1 이었으나, 모기업인 갑을그룹의 경영악화로 갑을방적 공장이 폐쇄된 이후로 지번이 여러개로 쪼개졌다. 다만 폐교된 자산여자상업고등학교 건물의 경우도 현재도 기업체 사옥으로 활용되고 있는 중. [29] 한일합섬이 만든 산업체 부설 학교중에서 이곳만 일반학교로 전환하지 못하고 폐교되었다. 한효학원 산하 학교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았던데가, 공장지대 한복판에 있었던 입지 조건과 협소한 시설 때문이었을듯. 폐교이후 건물은 기업체 사옥으로 사용중이다. 수원의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 처럼 학교 자체를 이전해서 존치시킨다고 해도 대구광역시의 경우는 경쟁력이 있는 지역 명문 사학들이 많은 만큼 이들과의 경쟁에서 부대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폐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30] 1981년 개교 당시에는 대전 본사 사옥을 사용하였다. 1989년 충남 연기(현 세종시)로 이전하였다가 1997년 회사 부도로 폐교. [31] 1980년 서울 방화동에서 개교하여 1988년 김포공장 폐쇄로 대전으로 이전하였다. 일찍부터 회사가 부실화되어 정상적인 가동을 못하다보니 대전 사람들조차도 이 학교의 존재를 잘 모를 정도로 인지도가 없었다. 경영악화로 학생 모집이 잘 되지 않고 학교 재정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파행 운영되다가 1997년경 소리소문없이 폐교. 공장은 철거되었지만 학교로 쓰이던 건물은 리모델링되어 지금도 물류센터 사무실로 쓰이는 중. [32] 현재는 건물만 방치된 상태로 남아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스케일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충남방적 부지와 해당 폐교를 같이 인수한 부영에서는 아직까지 별다른 계획이 없다. 아파트단지를 건설할 생각은 있었는데 바로 옆이 대전교도소라 교도소 내부가 보여서 개발이 불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충일여고가 있는 동네의 위치와 인근 다른 동네의 모습을 보면 보면 이미 옛날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상가와 학교가 생겼어야할 동네로 보이는데 현재까지도 공터로 놔두고 있다. [33] 신성학원(현 동방학원)이라는 정식 학교법인도 존재했지만 모기업이 1992년 부도 처리되면서 함께 폐교. 하지만 같이 붙어있었던 형제학교이자 정규학교인 동방여자고등학교나 동방여자중학교는 지금도 현존하고 있다. 폐교 이후 혜천여자고등학교의 교사는 현존하는 형제학교인 동방여자중학교가 단독으로 사용중. 서류상으로는 폐교된 학교지만 학교 자체의 하드웨어는 현재도 학교로써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 이후에 동방여자고등학교는 가수원동으로 이전하였고,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면서 혜천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꿀뻔한 적도 있었으나 학교법인이 분리되면서 그냥 동방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꿨다. [34] 청보식품 청보 핀토스 야구단의 모회사. [35] 폐교 이후 공장과 함께 철거되어 현재는 금강 엑슬루 타워가 들어서있다. [36] 원래는 서울에 있었던 한강실업고등학교가 이전한 것인데, 믿기지 않겠지만 제주도의 유명 사립고등학교인 대기고등학교와 같은 재단이다. # 이쪽도 산업체 부설학교이면서도 공장지대에서 약간 벗어난 그럭저럭 괜찮은 입지조건이라 폐교 이후에 해당부지에 공립 외국어고등학교를 신설하려 했으나 # 계획이 백지화 되면서 서울성락교회가 매입하여 서울성락교회 안산 청소년수련원이 되었다. [37] 1978년 대성모방 시절에 설립되었으나 1987년 회사가 충남방적에 합병된 뒤에도 학교는 계속 운영되었다. 1999년 충남방적의 모직사업 포기로 오산공장과 운명을 같이하였으며 현재는 그 자리에 원동이편한세상 아파트가 들어섰다. [38] 서울 신일중학교, 신일고등학교, 서울사이버대학교와 같은 계열이었다. 신일학원 소속 학교들과 설립자와 재단은 같으나 다만 신일학원 소속으로 재산을 출연하지는 않고 학교 부지와 시설은 대한모방 소유로 해놓는 바람에 역시 회사가 최종 부도처리되면서 함께 폐교된 케이스. 폐교 이후 건물은 기업체 사옥으로 사용중이다. [39] 1998년 경영악화와 땅값 상승으로 공장이 충북 음성으로 축소, 이전하면서 폐교되었다. [40] 본래는 부산시 금정구 부곡2동에 있었으나 1996년에 양산으로 이전하였으며, 베트남으로 생산기지 이전이 추진되면서 2004년에 폐교되었다. [41] 제일합섬( 새한)에서 해당 학교를 폐교하는 대신에 경산에 새로 일반 중고등학교를 만들여주려고 하였고 새한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결실을 볼 뻔 했으나 회사가 워크아웃 되면서 한동안 폐건물이 되어버렸다가, 이후에 경북교육청에 기부채납하여 공립 경산과학고등학교로 개교하였다. [42] 이곳 역시 정식 학교법인(경암학원)까지 갖춘 케이스로, 군산제일중고등학교와 같은 재단이었다. 1991년에 재학생수의 급감으로 폐교하였다. [43] 경기도 부천의 정명여자상업고등학교(현 경기경영고등학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학교였으며, 평택의 신한중, 고등학교와 같은 계열이었다. [44] 현 유니드 군산공장. OCI 계열사로 MDF판을 생산하는 업체였다. [45] 현재의 군산시 해신동 주민센터 자리이다. [46] 충청남도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운영되던 산업체 부설학교. 2002년 소재지에 아산신도시 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공장이 천안시 수신면으로 이전하면서 폐교되었다. [47] 신례원초등학교 맞은편에 있었다. 2001년 충남방적 예산공장 폐쇄로 함께 폐교되고 얼마 안가 건물도 철거되었다. 이후 장기간 나대지로 방치되다가 2017년에 예산신례원동신실리안아파트가 해당 부지에 들어서게 되었다. [48] 천안 북일고 바로 옆에 있었다.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와 함께 1974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체 부설 학교로 만들어졌고, 1977년 이전에 설립된 산업체 부설 학교라서 혜전학원이라는 정식 학교법인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4년에 충남방적 천안공장 폐쇄와 동시에 폐교되었고 공장과 같이 철거되었다. 이후 학교 부지는 장기간 나대지로 방치되다가 2017년에 e편한세상두정3차 아파트가 들어사게 되었다. 해당 학교법인은 폐교 직후 홍성군 청운대학교를 만들었다. [49] 대전에 있었다가 1989년 이전. 폐교 후에 건물은 현존하고 있으나 후에 금하방직 공장이 한국GM( 쉐보레) 물류센터가 되면서 그냥 방치중으로 보인다. 어차피 공장 한복판에 있다보니... 대신 운동장은 야구연습장으로 쓰이는듯. # [50] 개교 당시 대농부설여자중학교였다가 대농부설여자실업고등학교와 양백여자상업고등학교를 거쳐 2001년부터 남녀공학으로 전환. 1997년 대농그룹이 부도처리된 이후에도 어찌어찌하여 폐교되지 않고 남았으나 결국 2006년에 폐교되었고 건물도 대농지구 재개발로 철거되었다. 대신에 그 자리에 솔밭초등학교가 신설되었으며, 학교 앞에 교적비가 남아있다. 미도파 배구단을 운영했던 대농그룹 산하 학교여서인지 여자 배구부를 운영했으며 미도파 배구단이 효성 배구단에 흡수된 뒤에도 한동안 계속 운영했다가 해체되었다.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에서 뛰고 있는 정대영이 마지막 현역 선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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