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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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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세화여자중학교
폐교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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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표)
한글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한자 泰光女子商業高等學校
로마자 Taekwang Girls' Commercial High School
개교 1988년 3월 1일[1]
폐교 2004년 2월 25일
교훈 깨끗한 몸가짐과 고운 마음씨를 지닌 슬기로운 여성이 되자.
유형 산업체 부설학교
성별 여자고등학교
운영형태 사립
학교법인 태광산업[2]
주소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강로513번길 48 ( 구서동)

1. 소개2. 역사
2.1.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개교 반대 사건
3. 시설4. 특전5. 학생수의 감소6. 석연찮은 폐교7. 의외의 반전?8. 의의9. 여담

1. 소개

파일:eqTz30C.jpg
폐교 직전인 2001년경의 학교 전경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있었던 고등학교이다. 1988년에 설립된 학교로 근처의 남산고등학교, 지산고등학교 부산예술고등학교와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학교지만, 이쪽은 특이하게도 산업체 부설학교로 설립되었으며 구서동 태광산업 공장의 부설 고등학교였다. 태광그룹에서 설립한 학교로, 믿기지 않겠지만 무려 강남 8학군의 유명 고등학교인 세화여자고등학교 세화고등학교와 같은 재단이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산업체 부설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공장 근처가 아닌 구서동 고급 주거지역에 위치하였으며 당대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개교했는데 같은 재단의 세화여자중학교와 거의 비슷한 시설이다. 그러나 이정도의 입지조건과 시설을 갖춘 학교가 있는이 아닌 있었던 이라고 설명되는 이유는....

2. 역사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는 일주(一洲) 이임용 선생에 의하여 학생들이 배움의 혜택을 동등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목적으로 개교가 추진되었으며, 1984년 5월 31일에 설립 계획 승인을 받아서 원래는 세화고등학교보다도 2년 먼저인 1985년에 개교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인하여, 그로부터 3년후인 1987년 12월 31일에 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개교직전인 1988년 2월 1일에 초대 성복룡 교장이 취임하면서 1988년 3월 1일에 개교 하였으며 1988년 3월 6일에 개교식 및 제1회 입학식을 거행하였다. 1993년에는 금정구의 고등학교 최초로 기숙사를 완공하였으며 1990년대 중반에는 금정구의 고등학교 최초로 천연잔디 운동장을 조성하였다.

이후 1997년 3월 1일에는 제2대 백수동 교장[3]이 취임하였으며, 2000년 3월 2일에는 제3대 윤남열 교장이 취임하였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럭저럭 운영은 되고 있었으나, 1996년 11월 2일에 설립자인 일주 이임용 초대 이사장이 작고하면서 핑크빛이었던 이 학교의 운명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이임용 초대 이사장이 사망하고 5년이 지난, 2001년 12월 7일에 갑자기 폐교선언을 하였고 결국 2004년 2월 14일에 마지막인 14회 졸업식으로 3개학급 111명[4]의 졸업생을 배출하는것과 동시에 폐교 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이는 금정구 최초의 폐교 사례가 되었다.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존재했던 16년간 총 6,211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2.1.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개교 반대 사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 학교도 개교 이전에는 상당히 반대가 극심한 학교중에 하나였다. 아마도 금정구 소재 학교 중에서 개교 반대 운동이 처음으로 있었던 학교였다고 한다. 이 학교가 설립계획 승인에서 설립인가 까지 3년이 걸린 이유는 부산지역의 비인가 고등학교들인 새마을학교들의 격렬한 반대로 인하여 무려(...) 3년이나 지연되었다고 한다. 3년이나 지연되었을 정도면 얼마나 반대가 극심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당시 새마을학교도 산업체 부설학교 처럼 근로청소년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운영되었지만 이쪽은 산업체에서 운영되던 학교가 아니고 산업체의 위탁을 받아서 운영되던 학교였는데 이런 학교들은 정식 학력인증이 되기 이전이라 수료증만 주는 수준에 불과했고, 시설도 가건물 수준으로 매우 열악했다.

하지만 태광산업이 만든 산업체 부설학교인 태광여상은 초중등교육법이 적용되는 엄연한 고등학교로 학력이 인정되어 상급학교인 대학교 진학도 가능했고(이 점을 특히 강조했다) 태광산업 재단은 이미 서울 8학군에서 명문 중고등학교들을 성공적으로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니 학교 경영 노하우에서도 넘사벽 수준인데다가 일주 이임용 선생은 당시 부산 고등학교 통틀어 최고 시설을 갖추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시설 면에서도 게임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54학급에 총 정원도 3천명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니 한마디로 핵폭탄급이자 블랙홀이었다. 당시 이 학교의 설립에 반발했던 부산의 수많은 새마을 학교들은 1986년 이후로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학교가 되면서 학력인정이 되기는 했지만 이 학교가 개교한 이후에 근로 청소년 학생들을 싹쓸이 수준으로 모조리 빼앗기면서 상당수 문을 닫게 되었는데, 1990년에 동래구 사직동 소재 항도여상이 문을 닫았고, 그 이후로도 성지여상(금정구 금사동), 진명여상(사상구 모라동), 송월여상(동래구 사직동), 근화여상(해운대구 재송동), 금정여상(금정구 회동동)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유독 같은 권역인 동래구/금정구 권역의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학교 폐교 사례가 많은 것을 보면 이 학교가 개교하면서 후폭풍이 얼마나 컸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 개금동의 태화고무 산업체부설학교인 태화여자상업고등학교도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개교하면서 근로 청소년들을 다 쓸어가버리는 바람에 극심한 지원자 미달을 겪다가 1994년에 폐교되었다.

그래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자면 이 학교가 개교한 이후에도 어찌어찌하여 폐교되지 않고 남아있던 부산시내의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학교들을 계속 자극하게 되어 매너리즘에서 탈피하여 체질개선을 서두르게 하면서 본의 아니게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학교 중에서 아시아 유일 경호고등학교인 부산경호고등학교, 전국 최초 미용고등학교, 전국 최초 골프고등학교[5]가 부산에 등장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작 태광여상은 잘나가다가 자폭

3. 시설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는 최고 시설로 만들라는 일주 이임용 이사장의 지시로 전국의 산업체 부설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부산시 고등학교 전체를 통틀어봐도 당대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는데, 산업체 부설학교로써는 유래가 없는 수준으로 태광산업 측에서도 이 점을 매우 강조하였다. 1988년도에 완공된 학교 건물 치고는 외벽의 일부를 벽돌재질로 마감하고, 지붕까지도 올리는 등 비슷한 시기에 신축된 금정구의 다른 학교 건물들과 비교하면 외부 장식이 상당히 화려했다. 재단이 재단이다보니 부산지역 토종 사학재단이 1990년대 중반에서야 선보일법한 학교 건물 디자인을 이미 1980년대에 선보인 것이었다. 학교 건물만 보면 1988년이 아닌 1995년에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 그 외에도 당시로써는 그리 많이 보급되지 않은 최신 기술이던 PVC 창호(럭키 하이샤시)를 적용하기도 하는 등 고급 자재들이 많이 활용되었다. 학교용지가 4,215평(13,932㎡)으로 산업체 부설 학교 중에서는 매우 넓은 면적을 자랑하여 어지간한 일반계 고등학교 뺨치는 수준이었고, 푸른 천연잔디로 덮인 운동장은 2,000평(6,612㎡) 지상 5층의 학교 건물은 1,807평(5,973㎡)이었다. 그외에도 기숙사 까지 갖추고 있었다.

학교 건물 본관의 경우 산업체 부설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계 고등학교와 동일한 시설이었는데 30개의 일반 교실을 갖추고, 산업체 부설학교로써는 드물게 특별실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것으로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재단이 일반고로 개교한 서울 세화고등학교와 외관만 다를뿐이지 건물 설계의 상당수와 외장 일부 및, 내장재를 공유한 쌍둥이 건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6] [7]
구분 실수 구분 실수 구분 실수
보통교실 30 양호실 1 미술실 1
어학실 1 상담실 1 과학실 1
시청각실 2 문서실무실 2 교장실 1
전산실 4 정보처리실 1 교무실 1
도서실 3 가사실 1 행정실 1
방송실 1 음악실 1 자료실 1

4. 특전

산업체 부설학교인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는 태광산업의 청소년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였기에 청소년 근로자들을 모집하였다. 이들은 경제적 문제로 정규 학교로 진학하기 어려운 사정의 학생들이었고 태광여상은 이러한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전형방법은 서류전형 및 면접이었으며 당연히 입학금, 수업료, 기숙사비, 통학버스비 같은 비용들은 모두 무료였고 교과서와 교복도 무상으로 제공하였다. 청소년 근로자들의 월 급여는 75만원 (폐교직전인 2001년 기준), 상여금은 연 780% 지급이었다. 수업시간은 주/야간 2부제로 4시간이었으며, 근로시간은 3교대 8시간 근무였다. 졸업후에도 태광산업이나 흥국생명 직원으로 계속 근무하고 싶으면 최우선적으로 특별채용 했다고 하며,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학생들은 대학교로 진학할 수 있게 하였다.

5. 학생수의 감소

대한민국의 생활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시기인 1988년에 개교하여 산업체 부설학교로써는 매우 늦게 개교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 최대의 산업체 부설 학교에다가 산업체 부설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고등학교를 아득히 뛰어넘는 최고수준의 시설과 공기맑고 쾌적한 최상의 교육환경, 빵빵한 태광그룹 재단을 갖춘 학교라서 모기업의 자금지원도 많았던 만큼 초기에는 충원률이 좋아서 한때는 54학급에 2,975명 규모의 학생수를 자랑했다. 당시 일대의 근로청소년들을 그냥 싹쓸이 해버렸으며 개교 극초기인 1980년대 후반에 산업체 부설학교 중에서 마산의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와 함께 입결도 높은 편이었다.[8] 그러나 산업체 부설학교의 쇠퇴기에 개교한 태광여상은 곧바로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불과 4년후인 1994년에는 학생수가 1,888명으로 1,000명 이상이 감소하였다. 결국 1997년에는 전성기 시절의 절반 수준인 1,407명으로 감소하였고 1998년에는 1,329명이었다.

폐교 선언 시점인 2001년 연말에는 총 정원은 1,2학년 정원만 외부로 알려져 있다보니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학년이 167명 2학년이 197명이었기에 3학년 까지 포함하면 총 정원은 500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부산 교육사(1998-2007)에 의하면 800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광산업 측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24학급 1,440명을 총 정원으로 희망하였는데, 그에 비하면 3분의 1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2000년대 초반 당시 생활 수준의 발달로 정규 고등학교 진학률이 매우 높은 시대상을 생각하면 그 시절까지 1,440명 총 정원을 희망하는것은 꽤나 무리한 수준이었고, 현실적으로 생각했을시 일반계 고등학교도 아니고 거의 쇠락한 산업체 부설학교인걸 감안하면 그 정도의 정원은 당장 폐교를 걱정할 학생수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6. 석연찮은 폐교

1990년대~2000년대 초반 당시 부산시의 고등학교 중에서는 매우 좋은 시설과 그 무렵에 교육1번지로 불리던 4학군 구서동 주거지역 한복판[9]이라는 우수한 입지조건을 갖춘 학교였기에 정규 고등학교로 전환하면 명문 학교로 재탄생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던 학교로 여겨졌으나 끝까지 정규 고등학교로 전환을 하지 않고 있다가 2001년 12월 7일에 갑작스럽게 폐교 선언을 하였다.[10] 사실 이 학교가 폐교선언 하기 직전 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은 이 학교가 폐교된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않았고, 그 이전에 같은 금정구의 재정 문제가 심각한 다른 사립 고등학교가 폐교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을뿐[11] 이 학교가 폐교될것이라는것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으나, 재단에서는 이 멀쩡한 학교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는것을 갑작스럽게 결정해버렸다. 재단(모기업)에서 밝힌 폐교 사유는 모기업의 재정난[12] 및 지원자수 급감으로 인한 구조조정 차원이었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폐교선언 당시에 학생수가 최하 500명은 넘었기에 금정구에서 가장 학생수가 적은 고등학교라고 할 수는 없었고 이로 인하여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학생수가 감소한 이유도 산업체 부설학교 형태로 근로자 학생만을 모집하였고 일반 학생을 모집하지는 않았기에 결국은 학생 모집 방법의 문제였지 학교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었고 이 문제는 정규 고등학교로 전환하여 근로자 학생이 아닌 일반학생에게도 문호를 열어주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 심지어 고의로 태광여상에 지원한 학생을 탈락시켜서 지원자수를 조작하였다는 증언까지 있었다.
더군다나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 있는 같은 재단의 형제학교인 세화여자고등학교 세화고등학교를 동시에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전환을 신청한 사실을 봤을때 재단이 재정난에 처해있다는 사유도 설득력을 얻기는 힘들다. [13]

결국 멀쩡한 고등학교를 폐교하려 하는데다가, 재단이자 모기업인 태광산업이 2000년 11월 8일에 노조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단체협약을 체결한지 겨우 1년 지났을 무렵에 구조조정 차원으로 태광여상 까지 폐교하려고 하는것에 대해서 말이 정말 많았고 학교의 구성원들인 교사와 재학생들은 한일합섬의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나 태화방직의 태화여자상업고등학교 처럼 산업체 부설학교에서 정규 학교( 일반계 고등학교 혹은 특성화고등학교)로 전환하여 폐교 대신에 학교의 존치를 요구 했다. 당연히 동문들도 태광여상의 폐교를 극구 반대했고 대다수의 교직원들은 폐교를 저지하기 위해 추운 겨울날에 철야농성을 벌이기도 했지만 재단이 재단이다보니 그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들은체 만체 하였다. 게다가 재단 측에서도 폐교선언을 하면서도 폐교를 하겠다 폐교를 하지 않겠다 식으로 횡설수설 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구성원들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방심시키려던 의도로 추정된다. 학교 구성원 뿐만 아니라 금정구민들과 인근 학부모들 사이에서 시설도 좋고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멀쩡한 학교가 폐교될 처지에 놓인 웃지못할 상황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결국 2004년 2월 14일에 마지막 졸업식을 끝으로 소리소문없이 폐교되면서 금정구에서는 처음으로 폐교된 학교이자 현재까지는 부산에서 마지막으로 폐교된 고등학교로 남게 되었다. 불행중 다행인것인지 폐교당시 26명의 교직원들의 경우는 규정에 의하여 주변의 공립학교로 특별채용[14] 되었다고 하지만, 부산의 고등학교 중에서도 도시지역에 위치하고 운동장을 포함한 학교 시설을 모두 갖춘 고등학교가 폐교된 사례는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유일하다.[15]
부산에서 가장 재정능력이 좋았던 사학재단 중에 하나였던 태광그룹 일주학원은 결국 이렇게 부산에서 철수하고 말았고, 폐교 이후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크고 아름다운 시설과 부지는 태광인력개발원으로 쓰이고 있는데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폐교된 이후로 태광그룹이나 일주학원에서는 연혁에서 이 학교를 완전히 삭제하였으며 이 학교를 설립했었다는 사실 조차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걸로 봐서 완전히 흑역사로 취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09년 10~11월 흥국생명 사보에서는 태광그룹 산하에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도 있었다고 살짝 언급되지만, 그 이후로는 공개적으로 언급된 적이 없다.

구.태광여상 자리엔 현재는 태광인력개발원 건물로 쓰이고 있어서 , 재개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정적으로 2015년 이후부터 학교 총량제가 도입되는 바람에 기존에 있는 고등학교를 폐교 시키지 않는 이상 고등학교를 설립하는게 불가능한데, 총량제 때문에 공립학교 인가도 안나오는 판국에 사립학교 인가를 내줄 가능성이 한없이 낮아보이므로 현재로써는 다른 사립 고등학교의 TO를 인수해서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건물로 이전 시키는 우회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 이상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재개교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

7. 의외의 반전?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는 2004년에 최종 폐교되었지만, 2015년 현재도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바로 뒤쪽의 구서동 산4-8 지번의 소유자를 조사하면 학교법인 일주학원이 소유자로 나온다. # 잘 안알려진 사실이지만 일주학원은 원래는 서울특별시 세화여자고등학교 세화여자중학교 보다는 부산광역시 대학교를 먼저 설립하려고 계획을 하면서 1960년대 후반에 당시 태광산업 본사 맞은편인 금정구 구서동의 부지를 매입했지만 교육부는 물론인데다가 특히 부산광역시 조차도 끝까지 일주학원에 대해 비협조적이어서 일주학원은 숙원사업이던 대학교 인가를 끝내 받아내지 못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60년대 군사정권 시대 상황에 지역 사학 대학에 대한 인식이 반체제 투쟁의 온산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에 굳이 부산지역 대학정원을 늘릴만큼 입학수요가 높지 않아서 교육부가 허가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다. 박정희 정권 하에 처남인 이기택 민주당 총재에 대한 정치적 보복 차원 혹은 견제 차원이었다는 설도 있었다. 사실 부산지역에 부산대(1946), 동아대(1946) 등 오랜 대학재단이 존재해 1960년대 당시 입학수요가 크게 초과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결국 대학교 설립을 포기하고 1975년에 태광산업 본사도 서울로 이전하게 되면서 계획을 급선회하여 설립한 학교가 서울특별시 세화여자고등학교와 세화여자중학교이며, 대학교를 설립하려다 실패하면서 장기간 방치되던 구서동 부지의 일부가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로 활용된 것이라고 한다. 즉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부지는 일주학원이 가장 먼저 구입했던 학교부지로 지금의 세화 3개교 부지(1977년 구입) 보다도 먼저 구입했고, 이쪽이 당초에는 일주학원의 분가가 아닌 본가로 만들려고 했다고 일주재단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대학교 설립 움직임은 대학설립 준칙이 완화되어 사학 바람이 불었던 1990년대 들어 태광그룹 내부에서 다시금 논의되었는데, 부산지역이 아닌 서울지역에 '세화여자대학교'를 건립하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학교 창립자가 교육에 관심이 높았다는 방증이다.

8. 의의

2020년 기준으로 최종적으로 폐교된지도 16년이나 지난 학교였지만, 이 학교의 의의는 산업체 부설학교이면서도 당대 최고 수준의 고급스러운 시설과, 구서동 부촌 한복판의 공기좋고 조용하고 쾌적한 최상의 교육환경, 재정이 넉넉하고 노하우가 많은 명문 모기업 재단의 지원, 상당히 고급스러운 교복을 갖춘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고급스러웠던 산업체 부설학교였다는 것이며, 설립자인 일주 이임용 회장(이사장)은 근로청소년들에게 일반적인 사립고등학교를 능가하는 수준(강남 8학군 학교와 동급 시설)의 최고급 학교에 다닐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당시 일주 이임용 회장은 가난으로 정규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태광산업 공장으로 올 수 밖에 없었던 설움을 안고 있는 근로청소년들에게 학교는 그들의 집과도 같은 곳이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마라고 명령하였다고.. 특히 재단이 재단이다보니 산업체 부설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교직원들을 부산지역 사립고등학교 치고는 투명하게 뽑았기에 실력이 좋은 편에 속하였다. 물론 산업체 부설학교의 쇠퇴기에 개교한 최후의 산업체 부설학교중에 하나였던 만큼 이 고급스러운 산업체 부설학교가 다른 산업체 부설학교에 영향을 줄 일은 영영 없었으나, 대다수의 산업체 부설학교들이 소위말하는 가건물 수준의 시설에다가 공장지대 한복판에 있는 열악한 교육환경으로 실상은 기업들의 생색내기나 저가 인력수급원에 불과했다는것을 생각하면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는 국내 산업체 부설학교중에서는 한일합섬의 마산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 태화방직의 경주 태화여자상업고등학교(현 효청보건고등학교)와 더불어 몇 안되는 제대로 된 산업체 부설학교였다고 할 수 있었다.

9. 여담


[1] 부산광역시 교육연표 참고 [2] 일주학원과 같은 태광그룹 계열이기는 하였고 교복도 세화여고 구 교복과 거의 똑같았으며, 교표 역시도 일주학원의 양식을 따른 원형의 교포를 사용했었으며, 건축양식, 시설 및 일부 교원 인사도 일주학원을 따랐으나, 태광그룹이 폐교이후에 학교 부지와 시설을 직접 회수하기 위함인지 사실은 일주학원 학교 법인에 등록하지 않고 학교법인이 아니더라도 산업체 부설학교를 설립할수 있었기에 태광산업 산하로 등록했다고 한다. [3] 1985년 3월~1989년 3월 제4대 세화여중 교장, 1989년 3월~1993년 3월 제5대 세화여고 교장, 1993년 3월~1997년 3월 제2대 세화고 교장을 지내다가 같은 재단의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전보되었다. [4] 폐교가 결정되면서 상당수 학생들이 도중에 빠져나갔다. [5] 다만 부산골프고등학교는 2021년 폐교되었다. [6] 이후 서울 세화고등학교는 같은 재단의 세화여자중학교와 건물을 서로 바꾸게 되었고, 2000년대 후반 이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전환하게 된다. [7] 이런 면에서 보면 개교 당초에는 설립자인 일주 이임용 이사장의 확고한 의중 덕분에 다른 산업체 부설학교에서는 만연했던 적서차별이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겠다. [8] 1980년대 후반 기준으로 태광여상을 지원했다가 떨어져서 다른 산업체 부설학교나, 일반 정규고등학교 2부 야간학급이나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로 밀려나는 경우도 많았다고. [9] 태광여상 바로 밑에 구서초등학교가 있었는데, 구서초등학교 바로 밑에는 2000년대 초중반에 금정구에서 가장 강성했던 학원인 서전학원이 있었다. 하지만 서전학원 역시도 2012년 경에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처럼 폐업한 상태. 부산 4학군(동래 학군)은 해운대 지역이 급부상한 이후로 2학군(해운대 학군)에 밀리면서 예전만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2015년 현재 부산시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학군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10] 일설에 따르면 브니엘여자고등학교 평준화 일반고 전환(1999년 평준화 전환) TO가 원래는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평준화 일반고로 전환될 경우 배정될 TO였다는 카더라가 있다. 실제로 학교 시설 규모나 입지조건만 봐도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시설이나 입지조건이 전형적인 일반계 고등학교에 더 가까울 정도이기도 하고... [11] 실제로 금정구청의 관련 회의록에 해당 학교의 폐교 관련 루머(...)가 기록되어 있었다. [12] 특히 이 학교가 폐교되던 시기는 외환위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13] 의외의 사실이지만 설립자인 일주 이임용이 작고하기 이전 까지만 해도 태광그룹 재단 내에서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대우는 산업체 부설 학교이기는 해도 세화여자고등학교나 세화고등학교와 비교해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교복의 경우도 같은 재단의 명문학교인 세화여자고등학교 교복과 거의 비슷했고, 아들의 운동회에도 잘 참석하지 않았던 일주 이임용 이사장은 생전에 태광여상 운동회에는 아무리 바빠도 매년 참석한데다가, 태광여상의 입학식과 졸업식때도 일주 이임용 이사장은 모두 참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주 이임용 이사장이 1996년 11월에 위암으로 작고한 이후로는 태광여상이 천덕꾸러기로 방치되다가 조용히 폐교되는 신세가 되었지만, 육영사업에 대한 의중이 확고했던 일주 이임용 이사장이 계속 살아있었어도 한일합섬의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 처럼 어떻게든 살렸으면 살렸지 폐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14] 물론 이 학교의 교사들은 산업체 부설학교 임에도 불구하고 실력은 꽤나 좋았었다고 한다. 심지어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본가에서 내려온 교사도 있었다고 하니.... [15] 부산에서 1980년에 폐교된 일반계 고등학교 북부산고등학교의 경우는 시설 미비로 인하여 폐교 되었으며, 1993년에 폐교된 산업체 부설학교인 삼화여상은 운영주체가 도산하여 폐교하였지만 운동장이 없는 등 정규학교 전환을 만족하지 못하였기에 운영주체가 도산하지 않았어도 정규학교 전환이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1994년에 운영주체의 사업 철수로 폐교된 산업체 부설학교인 태화여상의 경우도 2층짜리 가건물 수준의 시설로 삼화여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고등학교로써의 시설도 모두 갖추고 운영주체가 멀쩡히 살아있데도 폐교된 고등학교는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유일하다. [16] 폐교된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재개교를 원하는 목소리가 완전히 허황된것도 아닌게,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시설과 부지를 이용하여 건물의 증축 없이 일반계 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국제고등학교로 재개교를 한다면 최대 850~860명(외고나 국제고는 750명 이하) 규모로 재개교가 가능하며, 증축을 한다면 일반계 고등학교로 재개교할시 1000명 이상 규모로 재개교도 가능하다. 2015년 현재 금정구의 일반적인 고등학교 정원이 많아봤자 800명 내외인것을 생각하면 시설이나 부지 면적 문제는 없다고 봐야 한다.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 설립․운영 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