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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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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천룡팔부》와 《사조삼부곡 시리즈》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함. [B] 《설산비호외전 시리즈》와 《서검은구록》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함. [C] 《벽혈검》과 《녹정기》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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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콩의 작가 김용의 3부작 무협 소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일컫는 명칭. 1986년에 고려원에서 판권 없이 ' 영웅문(英雄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하였고, 한국이 베른 협약에 가입한 2000년대에는 김영사가 정식 라이센스 번역판을 출간하였다.2. 국내 출간
2.1. 고려원 판
고려원에서는 1986년 사조삼부곡(射鵰三部曲)을 영웅문(英雄門) 3부작으로 제목을 바꿔서 출간했다.[1] 사조영웅전은 '소설 영웅문 제1부 몽고의 별', 신조협려는 '소설 영웅문 제2부 영웅의 별', 의천도룡기는 '소설 영웅문 제3부 중원의 별'이라는 제목으로 각 6권씩, 총 18권이다. 사조영웅전은 초기에 '제1부 몽고의 별'이라는 부제없이 '소설 영웅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했다.역자는 당시 단국대학교 중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던 성의제(成宜濟)로, 김일강(金一江)이라는 필명으로 번역하였다( 출처).[2]
영웅문 발매즈음 고려원은 신문, 잡지, 심지어 텔레비전까지 매일 책광고를 쏟아붓는 대한민국 출판 역사상 초유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으며, 마침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이 300만부가 넘게 팔리며 무려 120주 동안 베스트셀러 랭킹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면서 고려원을 일약 대한민국 최고의 출판사로 끌어올린다. 이런 상황에서 영웅문은 처음엔 정비석 소설에 끼워 팔기로 시작했다.[3] 말하자면 '고려원 대하소설 손자병법 삼국지 영웅문'이란 식으로 광고를 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무협지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영웅문을 구입했다가, 작품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그 결과 영웅문은 800만부(1999년 기준)[4]가 팔리는 대박을 거두며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무협 소설로 기록된다. 당연히 이후 대접이 확 바뀌어서 영웅문만 따로 떼어내어 광고하고 말미에 왕도려의 청강만리를 끼워 팔게 된다(...).
대한민국 무협 역사로 봤을 때 이 시기는 번역 무협은 완전히 죽었고, 창작 무협조차 암흑기로 접어들던 시점이었는데 음지의 마니아 문화 무협지가 당당히 양지로 나오면서 한동안 각종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랭킹을 김용 작품들이 점령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만 당시 시대가 시대인지라 정식 판권 계약을 한 것은 아니었으며, 1997년 고려원이 폐업하면서 고려원판 영웅문도 자연스럽게 절판되었다. 2004년 고려원북스에서 고려원에서 출판한 도서에 대한 판권을 모두 인수했고, 1996년 베른협약에 우리나라가 가입하기 이전에 출간된 책은 저작권법에 소급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고려원북스에서 이전 고려원에서 출간된 영웅문 시리즈를 출간하는데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번역 자체는 김영사 판보다 우수하나 원문에 실린 중국 경관 묘사나 한시 등 스토리 진행과 상관 없는 부분들을 많이 잘라낸 누락본이다.
특이하게도 첫번째 사조영웅전은 신문연재본인 구판을 저본으로 하고, 신조협려와 의천도룡기는 중국, 홍콩, 대만 등에서 널리 간행되어 해외에 많이 퍼진 신판(삼련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2.2. 김영사 판
2000년대에 들어 김영사가 정식으로 판권 계약을 맺고 2년 간격으로 사조삼부곡 작품을 번역해 출간했다. 사조영웅전이 2003년, 신조협려가 2005년, 의천도룡기가 2007년에 각각 출간되었다.그러나 김영사에서 새로 나온 책은 번역가가 임화백[5]으로 교체된 의천도룡기를 제외하면 번역의 질이 영웅문보다 오히려 떨어지고, 편집과 교정도 부실하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평이 좋지 않다. 그래서 누락본임에도 중고 시장에서는 옛날에 나온 고려원판 영웅문이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김용은 절필후 수정판과 신수판으로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개정을 했고, 고려원판은 구판으로 불리는 최초의 신문연재판(사조영웅전)과 1차 개정판인 삼련판(신조협려, 의천도룡기), 김영사판은 신수판을 기준으로 번역했다.[6] 그래서 고려원판을 전에 읽은 독자들과 새로 입문한 독자들간에 변경된 설정과 스토리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
3. 등장인물
4. 관련 문서
[1]
3부작 모두가 1986년 1월~12월에 걸쳐 출간되었다.
[2]
성의제는 사조영웅전을 역시 김일강이란 필명으로 1975년부터 주간스포츠에 총 278회에 걸쳐 번역 연재한 바 있다. 당시 제목은 '중원의 용쟁호투'.
출처 다만 이때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 걸로 보인다. 한편 2020년 출간된 『번역가 K가 사는 법』 16쪽에서 번역가 김택규는 영웅문 3부작에 대해 "김일강이라는 역자명이 표지에 박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가공의 이름이었고 사실은 당시 서울시내 중문과 대학원생들이 집단 번역을 했다. 그리고 그 원고를 당시 고려원 편집자들이 대폭 윤문, 편집을 해서 출판했다"라고 주장하였다. 역자 김일강의 신상이 알려지지 않아 영웅문 출간 후 여러
낭설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3]
일부 지방에는 영웅문 1권을 공짜로 배송해주기도 했다
[4]
출처: 한기호 (2011년), 『베스트셀러 30년』,
교보문고, 76쪽과 122쪽.
ISBN 978-89-94464-84-8. 원 출처는 1999년
중앙일보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소장 한기호)가 공동 선정한 「20세기 베스트셀러 20」으로 보인다. 앞서 인용한 『베스트셀러 30년』 122쪽에도 전재돼 있어 순위와 판매부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영웅문은 당시 기준 1130만부가 팔린
이문열의
삼국지에 이어 800만부로 2위를 차지했다.
#
[5]
소오강호의 최고의 판본으로 인정받고 있는 '아!만리성'의 번역가로 김용선생의 여러 작품을 번역했으며,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의천도룡기(1986년 민음사의 '대평원')를 번역한 적이 있음.
[6]
단, 사조영웅전은 수정판을 저본으로 번역하다 신수판이 나오면서 신수판 내용을 반영하며 번역한, 어정쩡한 역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