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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08:10:36

사마의(삼국지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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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 이전
(시즌 7 29화)
조조군 당시
(시즌 8 33화)
파일:쓰마이 시즌 9 12화.png 파일:빈 세로 이미지.svg
조조의 한중 침략 당시
(시즌 9 12화)
쓰마이
1. 개요2. 캐릭터성3. 작중 행적
3.1. 시즌 7: 적벽대전3.2. 시즌 8: 입촉3.3. 시즌 9: 삼국지3.4. 시즌 11: 이릉대전3.5. 시즌 12: 출사표와 오장원의 별3.6. 외전: 남겨진 사람들
4. 기타

1. 개요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의 등장인물 사마의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2. 캐릭터성

광대뼈가 살짝 도드라진 마른 얼굴과 이마를 드러낸 검은 장발, 실눈의 스마일 페이스가 특징이다. 머리 색이 검은 것만 제외하면 수경선생과 비슷한 인상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 의외로 눈을 떴을 때 인상이 꽤 순한듯 하면서도 졸린 눈매가 되면 간사한 면모가 살짝 보이기도 한다. 이전까지는 잘 드러나지 않았으나, 시즌 12에서 자세히 드러난 눈동자는 윤회안을 연상케 한다.

또 키가 상당히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인데, 정사에서 기록된 친형 사마랑의 일화를 통해서 그 역시 큰 체구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해서 장신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1]

3. 작중 행적

3.1. 시즌 7: 적벽대전

시즌 7 29화에서 조조의 언급으로 첫 등장했다. 7년 전, 순욱의 추천으로 영입을 시도했으나 당시 류마티스 관절염[2]을 핑계로 출사하지 않았다고 한다.[3][4] 이를 마음에 두고 있던 조조가 순욱에게 끌고 오라고 하며 이번에도 싫다고 하면 감옥에 가두라고까지 한다.

30화에서 순욱의 스카웃 전화를 받는다.[5]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는지 순욱에게는 '부족한 인재를 두 번이나 찾아주어서 감사하다, 승상을 심을 다해 모시겠다'고 대답했지만 정작 아내인 장춘화에게는 채팅으로 " 조모씨가 화나서 이번에는 도망 못 가겠다"며 한탄을 했다. 장춘화 역시 " 내시 손자 주제에 보는 눈은 있다"며 뒷담을 했다.

3.2. 시즌 8: 입촉

시즌 8 13화부터 본격적인 등장이 예고 되었으며, 사원증의 사진으로 얼굴이 첫 공개 되었다. 조조의 집무실에서 마침내 으로 복귀한 조조를 만나는데, 이때 밝혀진 바로는 입사한 이래 음료 심부름[6]과 복사용지 및 탕비실 커피 세팅, 컵라면 세팅, 복사기 수리 등의 잡무를 하고 있었다. 정사에서 그의 첫 관직이 마굿간에서 말을 돌보는 일 등이었던 것을 현대적으로 치환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본 조조는 나랏일하라고 데려왔더니 누가 이런 짬처리나 하랬냐며 황당해하지만 사마의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고 일전의 입사제의를 거부한 일을 용서받고 싶다며 무릎꿇고 싹싹 빈다.[7] 조조는 말없이 자리를 뜨면서도 찝찝한 느낌에 일단 사마의의 벼슬을 높여주고 하는 짓을 더 지켜보기로 한다.

한편 사마의는 아들인 조비와는 친분을 쌓았는데 조조와의 면담 이후 조비에게 무서웠다고 하소연하자, 조비가 도와주겠다며 나선다. 사실 오히려 동생들에게 가려져 힘없는 후계자인 조비에게 명문가 출신 사마의가 필요한 입장이었고 이를 알면서도 은혜를 베푸는 척 말하는 조비에게 어이없어하면서 두 부자를 두고 간사한 독사라고 독백한 뒤, '순욱 선생님! 조씨들 몸에는 뱀독이 흐르나 봅니다...'라고 평하면서도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서 뱀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8].

이후 존경했던 순욱이 한 황실의 신하로써 조조와 대립한 끝에 끝내 버림받고 자살하자, 충격을 많이 받은 듯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순욱의 시신이 실려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9] 거기다 조조가 순욱의 토사구팽을 숨기고자 병환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하며 시호를 '경후'(敬侯)[10]로 내리자, 논어의 구절을 읊으며 그 속뜻에 '어버이는 주군이고 자식은 신하나 다름없으니 싫어도 고분고분 따랐어야지'라는 뜻이 담긴 걸 간파하고서 조조가 죽은 순욱을 끝까지 모욕했다는 생각에 원통함의 눈물을 흘린다.

3.3. 시즌 9: 삼국지

시즌 9부터 조비와 조식의 후계자 경쟁이 본격화되자 조비의 과외선생으로써 조비의 편에서 조언한다. 조조가 조비와 조식에게 중요한 문서 파일이 저장된 USB를 가져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면서 둘을 시험하는데, 조식이 이들을 막던 문지기를 죽여 조비를 제치고 달려나가 먼저 성공하자 당황한 조비에게 전화를 걸어 왜 가만 있었냐며 채근한다. 사마의는 시험에 담긴 조조의 뜻[11]을 정확히 간파하면서 이번 일은 곧 조조를 얕본 셈이라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절박해진 조비는 순욱의 죽음 이후로 건강을 해쳐가면서까지 무리하던 순유의 병문안을 가서 인증샷을 찍고[12]는 이를 이용해 자신은 조식과 달리 부하들을 걱정하는 참된 차기 후계자라는 언론 플레이를 시전하려고 했지만, 도리어 이 일로 조씨 일가에 크게 실망한 순유가 울화병이 도져 죽어 버리면서 더 단단히 찍혀버리고, 허울만 좋은 오관중랑장 및 부승상 직만 받은 채 그동안 휘하에 두고 있던 참모진들마저 조식에게 빼앗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마의 역시 조조의 비서관으로써 한중 공방전에 참전하게 되었기에 이후 전쟁을 준비하면서 조비의 불안정한 상황을 보도하는 기사를 보고 착잡해하는데, 이때 조조가 갑자기 "자식은 있냐"는 질문을 한다. 사마의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의심을 하면서도 일단은 사실대로 어린 아들들이 둘 있으며[13], 서로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다른 집과는 달리 짝꿍처럼 사이가 좋은 아이들이고, 자신은 그저 행복하고 안전하길 바란다는 말로 대답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직후 뒤에 나타난 하후 형제의 기세에 사마의는 흠칫하는데, 산을 하산하며 조조가 "무식한 백성들은 날 자식들끼리 죽고 죽이게 만드는 비정한 애비라고 욕하지만, 하후 형제같은 영웅들을 손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부리려면 내 후계자는 당연히 최고여야 하고 난 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치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자, 사마의는 고독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떠올리며 조조를 향해 '당신은 제 자식들을 항아리 속에 집어 넣고 당신을 닮은 끔찍한 괴물을 만들려는 거냐"고 독백하고 이런 조조를 장로가 어떻게 이길 수 있겠냐며 우려를 표한다.

그러나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하후연이 안개낀 날 길을 잃고 헤메다가 장로의 본거지를 찾아내는 공적[14]을 세우면서 조조는 한중을 손쉽게 차지하는데 성공하고, 마침 한중에 머무르고 있었던 마초의 동료 방덕까지 영입한다. 하지만 조조가 장로에게 "살려주는 대신 충성심을 증명해보라"고 압박하면서 장로가 자신의 위신이 실추될 것을 감안하고 교도들을 살리기 위해 정말로 마초의 아들 마추를 살해하자, 사마의는 조조의 진짜 목적이 유비가 장로가 손을 잡음으로써 촉의 머리와도 같은 한중을 차지하게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었음을 눈치채지만, 그렇다고 해도 교도들의 목숨을 걸고 협박해 결국 어린아이를 죽이게 한데다 장로의 위신까지 떨어뜨린 것을 두고 끔찍한 괴물이 다름 없다며 속으로 조조를 비난한다. 그러나 경악할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 조조가 조정대신들의 추천으로 위왕(魏王)의 자리에 올랐음을 선포하며 순욱을 들먹이자 핏발이 설 정도로 충혈된 눈으로 표정이 굳고 만다.

그 순간 조조의 말이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조조가 절벽길에서 떨어질 뻔하는 사고가 벌어지는데, 사마의는 그 순간 조조를 붙잡아 안음으로써 조조를 살린다. 하지만 조조가 그 보복으로 길을 안내하던 한중의 백성을 효수해버리자, 마음 같아서는 조조를 그냥 밀어버리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가족들에게 화가 미칠 것이 뻔한데다 남은 조조의 자식들이 조조의 뒤를 이을 것을 감안해 참는다.
다가갈 수조차 없는 거대한 적을 이기는 방법은!
아무리 달려봤자 하늘로부터 도망칠 수 없듯,
나 또한 당신에게 사로잡힌 몸!
그러니 따르리라.
그리하여 훗날... 이 사마의가 너의 심장을 움켜쥐는 그 때!
해와 달이 다시 빛나리라...[15]

또한 아내 장춘화가 당부한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하늘이므로 오로지 하늘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논어의 구절을 떠올리며 지금 천하에서 가장 큰 것은 뛰어난 영웅들로 불린 여포, 원소를 전부 죽였던 조조의 힘임을 실감하며, 자신을 비롯해 사마씨 일족 모두가 조조의 사람이 된 상황에 일단 조조를 법칙으로 삼아 힘을 기른 후[16], 조조가 남긴 세력이 약화되는 그 순간 자신이 무너뜨림으로써 천하를 바로 잡을 것을 다짐한다.

이에 사마의는 당장 유비를 치자고 제안하지만, 뜻밖에도 조조가 지금 당장 유비를 조질 필요가 있냐며 제안을 무시하자, 상대도 안 될 유비를 지금 치면 무조건 이길텐데 왜 다잡은 기회를 차버리시는 거냐며 항변한다. 하지만 곧 조조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바로 철회하고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했고, 조조는 배부를 때 숟가락을 놔야하는 법이라며 한중을 얻은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는 말로 사마의의 제안을 거부한다.

이후 경기· 위황의 난을 진압한 조조가 허도의 관리들과 그 가족들을 모두 죽이려고 작정하고 그들을 한 데에 불러모았을 때, 사마의는 보다 못해 나서서 조조에게 그들을 살려줄 것을 청한다. 이미 사마의가 자신과 동류라는 것을 알았던 조조는 이런 사마의의 행동에 놀라서 '너는 나 이해해야지 인마! 나 만큼 하늘 안 믿는 놈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마의는 조조의 사람들은 이미 조조를 따라 업으로 이주한 지 오래라서 허도는 개발이 중단되어 피폐한 도시[17]가 되어있었기에 허도 사람들을 불러모아 깃발 아래에 세워놓은 것이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한나라 백성들인 허도 사람들의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한나라의 망국이라고 생각해서 막으려 했기에 학살극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는 나를 저버리지 못한다!
젊을적에... 대왕께서 하신 말씀이라지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살이 붙었는데, 원래는...
내가 버리면 버렸지, 당신들天下人은 나 못 버려! 날 배신하지 마![18]
사정은 모르오나 많이 두려우셨던 모양입니다.
대왕께서 그토록 평범한 바람을 입에 담으시다니?
모두를 대왕의 사람으로 만들면 배신당할 일이 없습니다.
"조조"가 난세와 싸운 영웅인건 온 세상이 압니다. 이 사마의가 압니다!
부디 천하인天下人을.. 저희 모두를...
저버리지 마소서...

이런 무의미한 학살극을 막으려고 사마의는 조조의 그 유명한 말인 '내가 천하인을 버릴지언정, 천하인이 나를 버리게 하지 않겠다'라는 말까지 인용해가며 조조의 마음을 돌리려 했으나, 이미 허도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기로 결심한 조조는 사마의의 간청을 무시하고 학살극을 벌인다.[19] 이 때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어린아이의 시신을 안고 있고[20], 급기야 나중에는 멘탈이 붕괴한 모습으로 흰 눈동자만 남은 표정으로 묘사되기까지 한다.

이 일로 사마의는 조조의 눈 밖에 나 조비의 태자 즉위식에도 참석 못하는 등 박한 신세가 되나, 오히려 조비가 아들 조예까지 시샘하며 태자직이 위태롭고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하소연하자 자신에게 큰 선물이라 여기며 늙은 조조 마음에 들기는 단단한 바위에 씨앗 심기나 마찬가지지만 멍청한 조비라면 쥐고 흔들 수 있겠다고 생각해 자신만 믿으라며 조비를 격려해준다. 그리고 조조와 맞붙게 될 유비와 제갈량을 향해 당신들에겐 악감정은 없지만 천하인을 위해, 역적 조조가 천하를 차지하고 자신이 다시 그 천하를 빼앗아 피 흘리지 않고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조조의 제물이 되어 달라며 독백하는 것으로 시즌을 마무리 한다.

3.4. 시즌 11: 이릉대전

조조가 투병하는 동안 두문불출하다가, 조조가 사망하자 본격적으로 조비의 측근으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조조가 죽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하후돈 허저에게 자신이 이미 조조의 사후 대책을 세우고 행동에 들어갔다고 언급한다.[21]

그리고 조조의 유언 녹음을 듣고는 "이게 뭐냐?! 온통 나, 나, 나... 이딴게 왕의 유언이라고? ...사과했어야지. 당신이 피로 물들인 이 천하에 변명이라도 했어야지! 끝까지 뻔뻔하군, 조조!" 라고 깐다. 그런데 정작 자신도 만만찮은 악인으로 역사에 남는다. 해당 장면 추천수 1위 베댓 왈 "라고 후일 정적의 삼족을 주멸하고, 요서와 요동에 해골탑을 쌓았으며, 그 아들대에 이르러선 천자를 백주대낮에 인육곶(人肉串)으로 만든 후 그 칼노릇을 한 자들, 역시 삼족을 씨말린, 그러한 자가 말하고 있다." 라고 깐다.

그래도 조비가 왕이 된 후, 군말없이 조비의 비위를 맞춰주며 곁을 지키고 있었으나...

3.5. 시즌 12: 출사표와 오장원의 별

왕위에 오른 후 조비가 건강이 나빠진 듯한 기미를 보이더니 끝내 39세에 죽어 버리면서 유폐당했던 그의 아들 조예가 왕이 되자, 조비 곁에서 국정을 관리하는 동안 황실에 전부 측근들로 채워 놓았던 것을 주시하며 경계하던 조진에 의해 이 사실을 조예에게 들키먼서 제갈량의 북벌을 막을 최전방으로 배치된다. 이에 대해 이제 19살이 되어 아버지를 따라온 아들 사마사가 제갈량이 본격적으로 북벌을 실행하려는 상황에 조예에 의해 좌천되어 제대로 된 지원도 못 받은 상태로 제갈량을 상대하게 된 상횡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들을 다 죽이자고 제안하나, 사마의는 이를 오히려 기회삼아 자신의 두각을 더욱 더 드러낼 것이라며 사마사를 짐시 혼낸 후, 사령관이 된 이상 사람들을 더욱 더 잘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하지만 그 당부가 무색하게 하후무가 촉군에 생포되었다가 복귀할 때, 제갈량에게 속아 강유가 배반한 줄로 오인하고 내쳐버리면서 귀중한 전력을 제갈량에게 빼앗기고 만다. 참고로 이때 제갈량은 조자룡을 분장시켜서 강유로 오인받게 했는데, 가발 염색을 거꾸로 했는데도 하후무는 그걸 속았던 것. 당연히 사마의와 사마사는 믿지 않았으나, 황가인 조씨와 가까운 친인척인 하후씨 일족이란 이유 때문에 사마의는 강유를 아까워하면서도 하후무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유를 내쳐야 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조예가 직접 전장으로 찾아와 국정파트너 선정에 신중할 수 밖에 없었음을 사과하며, 조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마의를 표기대장군으로 임명함으로서 조씨 & 하후씨까지 좌지우지할 전권을 전부 위임하고 제갈량을 막아달라고 부탁한다. 조예의 갑작스런 태세전환에 사마의는 어쩌면 조예야말로 제 할아비 조조보다 더한 능구렁이일지도 모르겠다고 식은땀을 흘리며, 애초에 조예가 자신에게 전권을 위임한 것이 자신을 감시할 목적이었음을 눈치챈다.

하지만 제갈량이 수도를 향해 진격해오는 현 상황에서 당장 내부의 적을 막는 것이 급선무인 상황이었는데, 그는 바로 과거 유비를 배신하고 위나라로 이적해와 관우를 죽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맹달. 안 그래도 신성에 군량이 바닥났기에 제갈량이 조운의 별동대를 내세우고 신성으로 빠져서 맹달을 다시 포섭한다면 꼼짝없이 수도를 빼앗길 판이었던 것. 예상대로 맹달은 다시 촉으로 귀순하고 싶다며 제갈량에게 접선하고 있었고, 증거를 찾아낸 사마의는 바로 맹달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방심케 한 후, 8일 만에 신성으로 쳐들어가 그대로 맹달을 숙청해 버린다. 심지어 그의 수급에 불을 붙여 쳐드는 모습을 라이브 방송으로 생중계함으로서 제갈량을 제대로 도발한다.

이후 가정을 노리고 출전을 준비하는데, 제갈량이 가정 방어를 위해 지휘관으로 임명했다는 마속이 고지에서 공격하는 게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산에다가 진을 치는 망발을 저지르자 얼굴에 핏발이 설 정도로 한심해한다. 당연히 대책없이 산에다가 진을 쳤으니 마속이 이끄는 촉군은 사마의의 위군이 산 아래에서 보급로와 수로를 끊어버리자 제 힘을 내보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궤멸되었고, 사마의는 병법을 암기로 외웠냐며 병사들은 장기말과 게임 유닛이 아니라고 디스한다. 그리고 자신이 여태껏 경계했던 제갈량에 대해 너무 천재라서 일반인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약점임을 알아차린다.

그렇게 가정을 차지한 후, 이대로 촉군의 패잔병들을 처리하려 했으나, 제갈량이 성문을 열어놓고 성루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천재인만큼 어떤 계책을 꼬아놨을지 몰라 그대로 후퇴하고 만다. 결국 이 일이 빌미잡혀 군권을 박탈당하고 파직된다.[22][23]

하지만 2년 뒤, 집에서 뒹굴며 아들들과 TV를 보던 와중에 조예로부터 다시 대장군직을 부여받고 기산 전투에 참전하게 되었다.

왕랑이 제갈량과의 설전 끝에 패드립을 듣고 사망하는 바람에 다시금 제갈량과 싸우게 되었지만 철벽전을 구사하며 싸우지 않고, 제갈량이 보낸 장신구를 낀 사진을 올리는 등 묵묵하게 대처중.

3.6. 외전: 남겨진 사람들

제갈량 사후 그에 대해 평가하며 그가 남긴 유산들을 싸그리 챙겨 돌아가지만 어째선지 건강이 악화된 채로 사마사가 끌어주는 휠체어에 타고서 낙양에 입성한다. 이 시기 조예도 젊은 나이에 중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고, 고통과 광기에 몸부리치던 조예는 어디서 들였는지 모를 양자 조방을 후계자로 세우고서 사마의에게 보필을 부탁한다.

하지만 병에 걸렸던 모습은 영락해가는 조위 왕조를 속이기 위한 위장이었다. 궁궐을 나서자마자 담요를 벗어던지고 일어난 사마의는 그동안 차곡차곡 포섭해 놓았던 군사들에게 조위의 붉은색 군복을 벗어던지고, 검은색 군복을 입게 함으로서 서진(進)의 건국을 발표하며 고평릉 사변을 준비한다. 이때 고평릉사변을 준비하며 새시대에는 모두가 도리를 따를것이며 깨끗하고 풍요와 희망이 넘치는시대를 자신이 만들것이고 자신은 조조보다 백배천배 나은 인간이라 독백하며 극에서 퇴장한다.[24]

4. 기타



[1] 사마랑이 12살 때 경서 시험을 치러 동자랑이 되었는데, 어찌나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는지 사람들이 절대 12살이 아니라 생각하고 심문을 했을 정도였다. 이에 사마랑은 친가, 외가 집안 내력이 원래 체격이 크다고 해명했고 시험 감독관은 그를 남다르게 여겼다고. 실제로 사마랑-사마의 형제의 조부 사마준(司馬雋)도 체구가 컸다고 하니, 같은 피를 이어받은 형제인 사마의 역시 체구가 컸을 것으로 충분히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다. 실제로도 후일 오호십육국시대 동진의 명장이자 권신인 환온이 풍채가 좋고 눈이 부리부리하며 수염이 고슴도치털처럼 무성해 당대 사람들로부터 "사마선왕(사마의)과 손중모(손권)와 닮았다"라는 평을 들었는데, 이를 통해 사마의의 외모가 우락부락한 남성적인 스타일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으며, 긴 머리의 미소년으로 유명했던 조예가 좋아했던 외모의 소유자가 바로 사마의였던 것을 보면 그 역시 큰 체구의 소유자였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2] 사마의가 일종의 관절 질환이라 할 수 있는 비(痺)병으로 거동이 불편하다며 조조에게 출사를 거절한 것을 각색한 것. [3] 당시 조조는 "23살이 무슨 류마티스냐?"고 어이없어했지만, 사실 류마티스 관절염의 호발 연령대는 20~40대라 23살에 류마티스가 그렇게 황당한 핑계거리는 아니다. [4] 순욱이 사마의를 추천한 것은 고증이지만, 이게 아예 재야 인사인 사마의를 처음 천거하여 조조 세력에 등용하게 한 건지 이미 조조 세력에 임관한 상태이던 사마의를 중용하라고 권한 건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무튼 순욱이 사마의를 중용하도록 조조에게 추천한 것은 사실이라, 삼톡에선 등용의 계기로 설정한 듯. [5] 이 때 요즘 세상에서 롱런하려면 파워보다 유연성이 중요하다고 하며 요가를 하고 있는데, 낭고의 상의 신체적 특성과 차후 정치적 행보를 반영한 대사인 듯. [6] 조조 진영 장수들과 참모들의 음료 취향을 꼼꼼하게 조사해서 단톡방에 올려놓았다... [7] 이때 조조가 잠깐 움찔하는 묘사가 있는데 이 순간에 사마의의 눈빛을 보고 의심을 품는 복선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8] 해당 장면에서 조씨 일가는 푸른 눈의 청회색 독사로, 사마의는 흑룡으로 비유되는데, 백룡으로 비유되는 제갈량과 대비한 설정이라는 추측이 다수다. [9] 이 컷에서 순욱이 유언으로 "조조는 역적이다!"라고 독백한 나레이션이 서술되어 있는데 마치 순욱이 사마의에게 말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10] 사실 이 시호는 한참 이후인 265년에 순욱에게 태위를 추증할 때 같이 내려진 시호라 조조가 생전에 직접 추증한 시호는 아니다. [11] 하늘 아래 조조의 앞길을 막을 사람은 없으니 자신의 허락을 받은 이상 하지 못할 일은 없다 [12] 이때 순유의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다짜고짜 찍었다.사진빨이 제대로 안나왔다고 짜증내는 건 덤이다. [13] 마침 사마의의 핸드폰 그립톡에도 아내 장춘화의 임산부 시절 사진이 박혀 있었는데, 적벽 대전 시점에서 만삭의 임산부였던 장춘화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이미 사마사와 사마소를 낳은 상황이었다.(실제로 사마사는 208년생, 사마소는 211년생) [14] 사실 그 이전에 공격하려다가 안개 때문에 장로의 부대에 의해 깨지면서 다가서지도 못한 상태였다. 이 때 사마의는 조조 뒤에서 우산이나 받치는... [15] 이 독백이 나온 회차의 베댓이 중국이 분열돼서 고구려가 빛나게 되었다는게 압권. 실제로 서진은 얼마 안 가 팔왕의 난 영가의 난으로 무너지고 오호십육국시대 남북조시대가 오면서 중국은 역대급 혼란기를 겪는다. 여담으로 이 틈을 타 고구려는 미천왕이 낙랑군과 대방군을 복속시킨 후, 소수림왕의 율령제 개혁 및 광개토대왕, 장수왕의 최전성기 치세를 거치며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성장한다. [16] 이때 자신이 존경했으나 조조와 반목한 끝에 조조에게 버려지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순욱을 떠올린다. [17] 여담으로 현재 중국에서 허창은 허난성 쉬창시란, 도시의 수준을 그나마 유지하는 반면 업은 구권역 대부분이 황하 강바닥이 되어 버리고 남은 구역은 허베이성 한단시 린장현 업진촌라는 일개 리로 몰락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히 몰락해버린 조조의 근거지와 달리 유비의 근거지이자 촉한의 수도인 성도는 현재 중국 GDP 10대 도시에 드는 대도시이며 촉한의 유적지가 많이 보존된 관광지로서 크게 발전되고 있다는 것에서 대조적이다. [18]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게 하지 않겠다"는 조조의 그 유명한 명언을 인용한 것인데, 천하(天下)라는 말은 세상을 뜻하는 천하가 아니라 배송지의 주석에 따르면 천하인(天下人)이라고 한다. 이는 남들, 세상 사람들이라는 일상적인 뜻으로도 풀이가 가능한 뜻인데, 여기서는 이렇게 사용된 것이다. [19] 이는 삼국 사마의가 같은 사건에서 조조의 의중을 파악하고 흰 깃발에 서서 살아남은 것과는 극히 대조적인 묘사이다. [20] 사마의의 장남 사마사와 차남 사마소가 각각 208, 211년생으로 이 사건 당시(218년)에는 10세, 7세였다. 여기서 사마의가 시신을 안고 있는 아이도 외관상 사마사보다는 조금 어리고 사마소와 비슷한 또래였을 것으로 보인다. [21] 이때 기존의 마른 모습에 비해 상당히 몸집이 커졌는데, 한 베댓은 이를 '난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연성을 키우던 과거와는 달리 사마의에게도 나름의 욕망이 생겼기에 힘을 키우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추측하였다. [22] 삼톡의 여몽이 노숙의 죽음에 분노를 못이겨 기어이 관우를 죽였다가 손권에게 팽당해 최후를 맞는 행적은 드라마 삼국의 여몽과 일치하는데 이번편은 대군사 사마의에서 나온 조예가 제갈량에게 낚시당해 갈굼당하는 장면과 유사하다.(조예:사마의 그대가 제갈량에게 속아 15만 대군을 이끌고 수천명의 군세에 겁먹고 퇴각했다는 것은 수백년동안 미담으로 내려오겠지) 문제는 연의의 내용 남정 정벌후 마속이 사마의를 실각 시키는 반간계를 썼는데 삼톡은 제갈량에게 한번 피아노 낚시 당한 후 재추격을 하려고 했는데 마속의 반간계에 걸려수서 조진에게 붙잡혀 압송당해 막타를 못쳤다 식으로 묘사시켰다. [23] 무핑이야 삼톡컨셉으로 묘사시켰지만 심각한 역사 왜곡이다. 정사 1차 북벌에서는 사마의는 참전하지 않았으며 사마의 참전은 연의다. 적어도 드라마 대군사 사마의에서는 조예가 사마의가 막타를 못쳐 까자 입이 천개라도 할말이 없다는 듯이 송구스러워 했다. 삼톡은 그저 사마씨 일족은 우수하지만 무능한 조씨의 방해로 죽일수 있는 제갈량을 못죽였다식으로 묘사해서 문제 [24] 그러나 이런 독백과 달리 사마의의 은 중국사에서도 정통성이란 측면에서 가장 취약했던 왕조였고 이후에 나올 사건들로 인해 중국사 최악의 암흑시대가 개막된 탓에 중국본토에서도 사마의는 그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편이다. 게다가 전술했듯이 이 여파로 고구려가 득을 크게 보고 흑역사 취급 당한 서진과 다르게 고구려는 지금도 빛나는 역사로 자리잡다 못해 한국의 영어 이름 Korea로 기록된 것은 덤.또한 자신이 조조보다 낫다는 독백도 웃기는게 이후에 나올 사마의의 행적도 협천자 이후의 조조 시즌2나 다름없는 모습이라서 이후의 이런 상황들을 아는 독자들은 거의 박장대소와 같은 비웃음이나 어이상실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25] 진삼 시리즈의 제갈량 사마의는 유사한 무기, 유사한 기술 시스템에 색깔만 흑백으로 반대되는 게 많아서 백우선/흑우선, 밝은 색 레이저/어두운 색 레이저 등으로 대비를 이룬다. 특히 4편까지의 구작 시리즈에서 이런 경향이 아주 강했다. [26] 사마의가 조씨 정권에 의해 견제를 받은 것은 조예 사후 조상 일파에 의해서 견제를 받았을 때 정도 뿐으로, 조조 사후 조비와 조예 대에는 황제를 모시며 위나라에서 철저하게 출세 가도를 달렸던 인물이다. [27] 오히려 이 작품의 사마의는 유비와 제갈량에게는 처음에는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다는 말을 하였다. [28] 특히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라는 짤방으로 유명한 중국 드라마 삼국 사마의. 실제로 담당배우였던 니다훙(예대홍)이 같은 드라마에서 조조의 배우였던 천젠빈(진건빈)보다 10살이나 많았다. 게다가 이 드라마에서는 후한 멸망 당시 고작 9세였던 사마소조차 이미 성인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29] 실제로 후한 멸망 당시 사마사는 13세, 사마소는 10세에 불과했으므로 이들은 삼국지톡에서처럼 어린애 모습부터 나오는 게 맞지, 조조 생전 시점에 성인의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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