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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망 전투 (시즌 7 29화)[1] |
1. 개요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에 등장하는 제갈량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2. 캐릭터 묘사
2.1. 외모
더티 블론드와 남보라색에 가까운 벽안의 외모가 특징. 13살 때는 어리다 보니 그냥 귀여운 아이 정도였는데, 19살이 되어 재등장하자 정사 인증 미남의 포텐이 폭발했다. 키가 매우 크고[2][3] 용모가 무척 수려하며[4][5] 의외로 풍채도 제법 좋은 편.[6]2.2. 성격
어렸을 때는 차분하고 조숙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낭야중학교 반 학생들의 질문에 '시험지를 채점한다고 결과가 변하는 건 아니다. 푸는 방법을 알고 실수를 하지 않으면 답은 맞을 수밖에 없다. 정확한 지도가 있으면 출발하기 전에 도착지를 알 수 있는 것과 같다'라고 대답하는 철학적이고 심오한그러나, 시즌 6 시점에서 19살의 청년이 되어 재등장했을 때는 총명하면서도 맑고 평온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세상과 사람들을 싫어하는 염세적인 모습으로 돌변해 버렸다. 이는 서주 대학살 생존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자신의 고향을 무자비하게 유린하고 사람들을 끔찍하게 학살한 조조가 그 응분의 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며 하늘을 원망하는 마음을 품게 된 것. '하늘이 조조를 살려두는 것은 설마 그런 짓을 했는데도 아직 그를 아끼기 때문이냐, 그렇다면 조조를 증오하는 내가 나쁜 것이냐'며 세상을 원망해 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친우 방통은 그를 '참 외로운 녀석'이라 평했고, 선배 서서는 이런 상태의 그를 '아무리 설득하려 해봤자 그의 강철같은 똥고집만 더더욱 단단하게 만들 뿐'이라고 반 체념했으며, 스승 사마휘도 그의 눈빛을 보고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눈'이라며 안타까워했다.[7]
이러한 염세적인 성격 때문에 어린 시절의 은인이었던 유비마저 난세에 편승해 제 잇속을 차리려는 악한으로 보았던 시절이 있었으나 그의 진면목을 알고 난 후에는 진심으로 따르고 있으며, 인간적인 모습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연의에서 진법 관련 에피소드가 많았던 걸 반영하여 진법 덕후 속성이 붙었는데 서서, 방통과 진법을 소재로 조별과제를 하고 있을 때 팔문금쇄진의 모형을 보며 귀엽다며 좋아했다.
정사의 제갈량은 연의처럼 군사적 책략의 달인이 아닌 행정의 달인이기 때문에 행정과 관련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고위급 자제들이면 당연히 볼 줄 아는 장부를 유비는 전혀 볼 줄 모르는 것을 보고 왜 여태껏 유비가 그 오랜 세월을 힘들어했는지 간파할 정도.
삼고초려 당시 유비의 도발에 대노하고 유기의 고서 자랑에 홍조까지 보이면서 설레어하기도 하며, 유기의 작전에 넘어가 그의 집에 올라가던 중 엘리베이터가 끊어지니 당황하거나, 조조의 손아귀 안에 들어가느니 죽을 각오로 유비를 따라가겠다는 형주 백성들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겹쳐보고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유비를 걸고 넘어지는 주유의 도발에 울컥해 격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기존 연의 등의 매체에서 다뤄진 제갈량의 모습과는 다르게 신삼국의 제갈량처럼 천재 책사로서의 모습과 함께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모습도 보인다.
2.3. 문제점
다만 인간적인 모습과 동시에 염세적인 모습의 폐해도 갈수록 드러나고 있는데, 자신의 주군인 유비와 형제인 관우, 장비의 관계를 너무 가벼이 여겨 곤란한 상황을 자꾸 만들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 관계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좀 있는 편. 그 성깔 나쁜데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법정이 오히려 유비를 더 잘 달랠 정도이니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한해서는 상당히 취약하게 묘사된다.[8][9]이릉 대전에는 한층 더 심각해져서, 장비 앞에서 관우를 비하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장비마저 허무하게 암살당해서 미쳐가는 유비에게 신하의 죽음은 나중에 슬퍼하면 된다는 정신나간 수준의 발언까지 한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해도 10년도 아닌 30년을 함께 해온 의형제 2명이 죽었는데 그들을 신하라고 치부하는것은 그 눈치 없는 양송이나 예형도 한수 물릴 정도의 판단인데, 이 때문에 말그대로 꼭지가 돌아버린 유비는 제갈량의 멱살을 붙잡고 "너 때문에 아우들이 죽었다" 라고 폭언한다. 아무리 당장의 낭중 수비가 중요하더라도 장비를 단순한 신하 중 한명으로 칭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유비 역시도 낭중의 수비까지는 듣다가 제갈량이 신하라고 얘기하자 분노하여 그를 붙잡았듯이 유비의 분노 포인트는 자신의 의형제들에 대한 격하에 가까운 대우였다. 제갈량은 어찌되었든 유비군의 2인자격 인물인데 관우가 미방을 제대로 대하지 못한것에는 그렇게 비난하고도 정작 자신도 군주인 유비에 대해서 전혀 제대로 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10] 결국 이로 인해 유비를 컨트롤하긴 커녕 오히려 점점 감정적으로 피폐해져가던 유비가 완전히 흑화해 돌이킬 수 없는, 제갈량 본인이 그토록 막고자 했던 선택을 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만다.
이 점은 시즌 12에 이르러서야 사마의를 통해 지적되는데, 바로 날 때부터 너무 천재였던지라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으로 두고 판단하며 행동하기 때문. 그런 만큼 자신이 기대하는 인재들의 능력은 잘 알아보지만 일반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 못하고 그들의 심리를 공감하기 어려워한다. 유비도 제갈량의 이런 단점을 알고 있었기에 수저를 예시로 들어 '그릇이 작은 사람도 천하를 차지했다는 흉내는 낼 수 있다'며 사람 보는 눈을 키울 것을 조언했으나, 제갈량이 뒤늦게 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중요 거점인 가정을 허무하게 빼앗겨버린 상황이었다.
3. 작중 행적
자세한 내용은 제갈량(삼국지톡)/작중 행적 문서 참고하십시오.4. 인물 관계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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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 손잡이에 본체는 흰색인
손풍기를 들고 있는데[11] 제갈량의 상징물인 '백우선'을 훌륭하게 현대화했다는 호평을 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썼던 이 손풍기는 시즌 5에서 낭야중학교 탈출 직전에 파손되었는데, '시즌 6: 관도대전' 76화 말미와 77화에서는 그 때 파손됐던 손풍기를 수리해서 쓰고 있었다.
대체 그 위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챙겼지당시 분실했던 안경은 형태가 명확히 달라(그 때는 네모난 뿔테안경, 지금은 얇은 테의 동그란 안경) 새로 맞춘 게 분명하다. 여하튼 이 손풍기는 본작 내에서 연두색이 유비 진영의 상징색으로 쓰이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미래에 대한 복선 역할도 착실히 한 물건이다.
- 사실 안경을 벗으면 시야가 왜곡될 정도로 심하게 눈이 나쁘다. 아예 만화에서는 대놓고 3자 눈으로 표현했을 정도. 삼고초려 당시 제갈량이 이 인연으로 유비를 알아보고 유비의 책사가 되는 전개를 많은 독자들이 기대했었으나 제갈량은 서주 대학살 당시 유비에게 구원받았을 때 안경이 깨져 있던지라 유비를 못 알아봤고, 결국 유비의 최후의 순간에서야 그 사실을 짐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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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들 가운덴 제갈량은
서주 대학살의 피해자가 아닌데 삼톡 스토리 작가 무핑이 조조 까려고 제갈량에게 일부러 이런 설정 넣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제갈량 일가가 서주 대학살의 피해자라는 설명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제갈근의 기록이나 역사책에 기록된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검증된 사실 이며 이를 바탕으로
진순신의
소설 제갈공명, 코에이의
삼국지 공명전,[12] 홍콩의 만화
화봉요원 등 이전의 삼국지 기반매체에서도 제갈량이 서주 대학살의 피해자라는 설정들이 표현됐었다.
그리고 실제 역사상에서도 자치통감에서는 조조가 서주를 돌아다니면서 학살짓을 벌인 곳 중 하나로 당당히 제갈량의 고향 서주 낭야가 나오며 친형 제갈근도 상소문에 전란을 피해 피난을 갔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등 제갈량 일가가 서주대학살의 피해자라는 기록은 상당히 근거가 있다. 그리고 서주에서 멀쩡히 살던 가문이 갑자기 형주로 단체 이주했다는 기록도 나오는데, 교통과 이사 시스템이 발전한 현대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려면 적지 않은 준비나 계기가 필요한데 후한말인 그 시절에 가족 대부분이 옮겨갔다는 건 서주 대학살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피난갔다는 이야기다[13]
- 키가 8척의 장신이었다는 걸 반영해서인지 19세 청년으로 재등장한 시점에서는 스승인 사마휘보다 키가 크게 나왔다. 그리고 삼고초려 끝에 그를 처음 본 유비가 한 생각도 "키가 커서 장비나 조운에 뒤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14]
- 정사 및 연의와 마찬가지로 삼고초려 당시 이미 유부남이라는 설정이다. 정작 아내 황부인과는 같이 지내고 있지 않았는데 연의 판본에 따라서 제갈량은 제갈균하고만 같이 지내다가 유비와 만났고, 아내는 현재까지는 언급만 되고 있다.[15] 하지만 삼국지 외전에서 드디어 첫 등장했다.
- 적벽대전 에피소드 이후 파티피플 공명 드립이 종종 보인다.
- 별명 '와룡(臥龍)'에 걸맞게 비유되는 동물은 노란 갈기에 푸른 뿔을 가진 백룡. 재밌게도 훗날 북벌 과정에서 맞붙게 되는 사마의는 회색 갈기와 회색 뿔의 흑룡으로 비유된다.
- 후반부로 갈수록 삼국지톡 피해자가 되어가는 중. 날림 처리된 출사표라던가 금쇄진이 뚫린다던가...결국 최후에는 제갈량의 원 업적, 북벌을 진행했으나 국가재정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업적까지 폄하당하기 까지 한다. 독자들 사이에선 연희무쌍이나 일기당천의 여자 제갈량보다 못하다는 비판과 함께 삼국지톡 자체가 쇼킹 핑크!만도 못하다는 반응까지 있을 정도로
6.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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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군 입사 당시 (시즌 7 24화) |
유표 병문안 당시 (시즌 7 25화) |
강동 호족들과 토론을 벌일 때 (시즌 7 47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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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시즌 7 65화) |
주유의 장례식장 (시즌 8 24화) |
공안 사찰에서 돌아온 뒤 (시즌 8 25화) |
[1]
머리 위 고깔모자를 제외하면 유비 진영에 입사한 이후로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기본으로 유지하는 복장이다.
[2]
정사에 의하면 제갈량의 키는 훤칠한 8척이었다 한다. 1척은 전한 기준 약 23cm, 후한 기준 약 23.7cm로, 8척이라 하면 약 184~190cm에 육박하는 장신이다. 물론 그 시대에 사람을 세워 놓고 자로 재진 않았으니 키가 정확히 184cm였던 건 아니고, 어딜 가나 키 크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훤칠한 장신이었다고 보면 된다.
[3]
정사에 언급된 등장 인물들의 키는 유비 7척5촌, 관우/장비는 언급없음(연의에선 관우 9척, 장비 8척), 조운 8척, 제갈량 8척, 조조는 언급없음(연의에선 7척), 유표 8척, 허저 8척, 태사자 7척7촌, 여포는 기록 없고(연의에선 10척), 기록이 남아있는 인물들 중 최장신은 8척3촌인 정욱, 그 다음으론 8척2촌인 노식이다. 연의와 달리 9척,10척대의 인물은 없다. 이를 보면 제갈량이 동시대 인물들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신장을 지녔다는 걸 알 수 있다.
[4]
이 또한 고증. 재미있게도 위촉오 창립자들의 오른팔 포지션인
순욱,
제갈량,
주유 모두 미남이란 기록이 남아있다.
[5]
텃밭에서 제갈량과 농사를 짓던 노부부가 제갈량의 훤칠한 키에 얼굴을 붉혔고, 같이 수업을 듣던 수경스쿨의 학생들이 제갈량이 쓰고 있던 농사용 두건모를 벗자 남녀 불문하고 전부 얼굴을 붉히며 놀랐다.
[6]
일단 문관이기도 하고 말년에 병사한 만큼, 대중적으로는 어쩐지 병약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늦둥이 아들을 얻을 정도였으니 꽤 건강하고 튼튼했을 가능성이 높다. 젊은 시절 직접 농사를 지었으니 그 때 다져진 체력과 생활형 근육(?)으로 말년을 버텼을 것이다. 50대 중반의 과로사는 몸이 약해 못 버티고 일찍 죽은 게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과로를 아득바득 끈질기게 10년 넘게 버텨낸 결과물이다. 정말로 허약한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나가떨어져서 장사 치르고도 남았다.
[7]
이들 3인의 평가는 시즌 6 : 관도대전의 78화에 나온 것으로 당시
서주 대학살을 자료로 설명하려던 스승 앞에서 빡치고 나가려던 걸 막던 중에 나온 것이다.
[8]
이러한 것이 잘 드러난 부분이 형주 공방전 부분인데, 일단 정사나 연의의 내용은 차치하고 삼톡에서는 형주 공방전 발발 및 패배를 관우 개인의 잘못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설령 제갈량이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30년을 넘게 지내온 유비 삼형제의 관계를 고려했을때 충분히 돌려말하거나 다른 사유를 들법한데도 꿋꿋이 관우의 잘못이고 실책이라고 유비와 장비 앞에서 계속 얘기한다. 유비가 직접 군을 일으키려하자 이 상황이 된 것은 관우 탓이니 민심을 다스려야 한다는 둥 유비 속을 벅벅 긁는 말만 하고 오히려 법정이 나서서 유비를 달래며 제갈량보고 멍청하게 매를 번다고 얘기할 정도. 이후 관우가 결국 죽은 뒤에도 관우를 말리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는 마량 옆에서 지 성질 못이기고 뿌린대로 거둔거라 얘기하다 장비에게 멱살 잡히는 등 처세면에서 고점을 줄 수 없는 언행을 벌이고 있다.
[9]
더군다나 엄밀히 따지면 제갈량도 절대 이 상황에서 면피할 수 없는 역할이다. 관우의 성질이나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그를 구원하거나 조정하기는 커녕 계속 방치했으며 애초에 지원가려는 것을 막은 것도 본인이다. 형주가 그렇게 중요하고 유비의 앞길을 위해 필요하면 오에 서신을 보내서 중단을 요청하든, 아니면 즉시 군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든 뭘 하거나 해야할텐데 사실상 유비군의 2인자 위치이면서 기도 메타 하듯이 관우가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어떻게든 버티길 바라기만 했다. 실제 형주 공방전에서는 촉도 관우의 위기를 인지하고 어느정도 군사적 행동을 했으나 오에 의해 막히거나 했다는 것이 중론이라 차라리 이해가 가는데 삼톡에서는 그런 행동들은 제갈량이 나서서 막아놓고 그러다 결국 중과부적으로 관우가 패하자 자기 멋대로한 관우 탓이라고 떠넘긴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제갈량의 이러한 행동이 합리적으로 적용되려면 형주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 조금 더 소극적으로 행동했다는 개연성이 있어야하는데 삼톡에서는 상황은 상황대로 이해하고 미축의 행동으로 미방의 배신까지 알면서도 끝까지 관우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제갈량의 언행이 염세적이고 대국적인 그림을 위해 한다고 보기에는 너무 치졸해 보일정도.
[10]
법정도 너무 왕으로 대했다고 충고했다.
[11]
머리를 쓰면 열이 나고 더워서 들고 다니는 거라고.
[12]
심지어 어린 시절의 제갈량과 유비가 서주에서 인연이 있었다는 설정도 공명전에서 먼저 나온 설정이다. 공명전 프롤로그를 보면 서주대학살 때 조조를 피해 어린 제갈량이 형 제갈근 아우 제갈균과 함께 피난가다가 서주를 구원하러 가는 유비 삼형제를 보고 그에게 감명받고 형주에서 황승언과 황씨를 만나는 걸로 시작한다.
[13]
즉 다른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역사상의 이런 근거를 가지고 제갈량과 서주대학살이 관련이 있다는 설정을 넣은 셈인데 한국 삼국지계에서는 해당 해석이 비교적 늦게 나온 편이다.
[14]
실제로 제갈량은 정사, 장비는 연의, 조운은 조운 별전에서 모두 키가 8척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15]
유비가 유표의 문병을 갔을 때 일부러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자신을 인턴이라 소개했는데, 이는 장인 황승언의 아내인 장모 채씨의 친자매이자 자신의 아내의 이모인 채씨 부인이 자신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와서 얼굴을 아는 사이라, 서로 마주치면 곤란해질 것을 우려해 일부러 그런 것이다. 실제로 먼 사이도 아니고, 채모는 처 황부인의 삼촌이며 채씨 부인은 이모였을 정도로 아내랑 촌수가 3촌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가까운 친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