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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edouin아라비아반도 및 중동 지역에서 씨족 사회를 형성하며 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인. 전 세계적으로 2000만 명이 산다.
모카신과 비슷하게 하필 민족명이 人을 연상시키는 인으로 끝나기 때문에 베두+인으로 흔히 착각되곤 하지만 베두인 자체가 한 단어다. '베두인족'으로 쓸 때도 있으나 어감이 이상해서인지 '베두인인'이라고는 쓰이지 않는다.
2. 상세
아랍어로는 '사막의 거주민'이라는 의미의 '바다위(بدوي, badawiyy)'나 '바다위윤(복수)(بدويون, badawiyyūn)'이라고 부른다. 베두인(Bedouin)이라는 어휘도 아랍어 '바다위윤'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주민족인 아랍인과의 동족의식은 없다. 원래 아랍인은 아랍어를 모국어로 쓰고 이슬람을 믿는 자를 총칭하기 때문에 유전적 관계와는 관계가 없지만 베두인들은 강한 부족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과 다른 씨족, 부족, 민족에 대해 차등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정주민 아랍인들도 베두인들과의 동족의식은 없는데 사실 중세 아랍어에서 아랍(عرب)은 현대 아랍 내셔널리즘이 대두되기 전까진 베두인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따라서 아라비아반도에서는 베두인들을 عرب이라고 칭하는 고전 아랍어 전통에 따른 민족구분을 쓰는 사람이 많으며 현재도 아라비아반도의 아랍인들은 자신이 아랍인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아랍 내셔널리즘은 북아프리카와 레반트 지역에 영향을 준 이념인데 공화국 이념이 섞여 있어 정작 아라비아반도의 부족제 왕정들에게는 체제 위협으로 받아들여져 불경하게 바라보며 아라비아반도의 민중들에게조차 부족주의의 개념이 강하게 살아 있어 아라비아반도 밖의 아랍인들을 아라비아 반도인도 아닌 이집트 시리아 잡것들이 아라비아반도인을 사칭한다고 고깝게 보는 시선이 있기 때문에 아라비아반도인 중 상당수는 아랍인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베두인은 아랍인들 중 유목민, 특히 아라비아 사막에서 유목하는 씨족들을 일컫는다. 즉, 유목생활하는 아랍인이라고 보면 된다. 이 사람들은 아직도 유목 생활을 하며 씨족사회를 형성 중이다. 사막의 유목민이라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게 바로 이들이다.
아라비아반도는 국가 성립 시기가 매우 늦고 동로마 제국과 사산 왕조 사이의 일종의 완충지대로써 국가가 없는 시기가 매우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베두인의 씨족사회끼리 서로 전쟁이나 거래를 하곤 했다. 간혹 어떤 씨족이 강성하게 되어 짧게나마 왕국이나 제국을 세우는 일은 있었지만 모두 무너져 버렸다. 그렇게 이슬람 탄생 전까지 씨족사회가 변함없이 지속되다가 이슬람의 성립과 함께 하나의 나라 아래 뭉치게 되고 베두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강해졌다.
쿠란에서는 부정적으로 언급되지만 이슬람을 수용한 베두인은 긍정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쿠란의 장(章)인 앗 타우바의 98절 참고.
3. 특징
원래는 부족 제도의 특성에서 오는 분열성이 심하고 그 중심에는 씨족 간 다툼이 그치지 않아 좀처럼 뭉치지 못하는 민족이었다. 오죽하면 이슬람의 위대함이란 베두인들을 한 지도자 아래 결집시켜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라고 할 정도다. 척박한 지역에 살고 있으므로 인구밀도가 낮고 사막지역을 관통해 이동했기 때문에 지리에 대한 독점적 지식이 있었다. 덕분에 무역업에 종사할 수 있었고 무역업에 종사하는 다른 대상들에게 길잡이 통행세를 걷거나 호위병 용병업을 하기도 했다. 베두인족의 영역을 지나가는데 베두인족 호위병을 쓰지 않으면 베두인족에게 습격당해 죽기 쉽고 대우가 좋지 않거나 호위하는 물건가격이 매우 높으면 호위하라고 고용한 자들이 산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신용받는 사람들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사막을 나와 농경지역으로 와서 살인과 약탈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정주민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이런 사건이 발생할 시 술탄이 보낸 군대에 의해 주기적으로 무차별한 학살을 당하기도 하며 만성적인 차별과 탄압의 대상도 되었다. 그래서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유목민족으로서 성격이 맹렬하고 싸움에 있어선 무자비했기 때문에 초기 이슬람의 세력 전파에 중추적인 군사적 역할을 수행했다. 초기 이슬람의 세력 전파 후 군영 도시의 주요 구성원들 누가 찾아와서 의탁하더라도 하루에 차 혹은 술을 한 잔씩 주며[1] 3일은 무조건 보호해주는 규칙이 존재한다.
국가 이전의 부족 사회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인이나 개성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며 씨족, 가족 등 혈연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직도 많은 베두인들이 과거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씨족 개개인의 모독을 씨족 전체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의 연장선상에서 요르단,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은 자신의 조상이 베두인이라는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며 베두인의 후손들은 확실히 가족 소개를 들어보면 적어도 자기 6~7대 조부 이름까지는 줄줄이 외운다.[2]
유목민이지만 모두 유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부터 상인이 되어 중개무역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도시나 마을로 가서 정착하여 농사짓고 장사를 하여 정주민족들과 어울려 살기도 했으며 어업에도 종사하여 어부로 사는 베두인들도 있다. 현재는 이촌향도 현상에 따라 베두인들의 생활도 많이 바뀐 터라 대부분이 도시와 마을로 이주하여 생활한다. 진짜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들은 전체 인구에서 고작 5%에 불과하며 반유목 생활하는[3] 베두인들조차 10%에 불과하다. 특히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사막화로 유목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터라 더는 유목 생활에만 전념할 수 없다.
요즘은 요르단 국왕이 도시에서 무료로 물을 나눠줘서 유목생활을 하더라도 도시는 반드시 들려서 물을 보충한다는 듯 한다고 한다. 당연히 물만 받지는 않고 도시 이곳 저곳을 관광하고 와서 유목생활에 현탐이 와 버린 경우도 많아 반유목생활이나 도시생활 인구가 많아진다.
관습적으로 족장과 족장의 후계자는 칼을 차고 다니는데 장검이 아닌 실생활에 용도가 많은 화려하게 장식된 단검으로 잡아먹을 짐승의 숨통을 고통없이 단숨에 끊을 때 사용한다.
4. 현재
이스라엘조차도 이들이 꽤 많이 사는 시나이 지역을 지배할 때 이들에게 막대한 지원과 혜택을 부여하면서( 팔레스타인인에 견주면!) 너무나도 얌전하게 대했다. 사실 이스라엘로서도 어쩔 수 없었는데 가뜩이나 신생 국가라서 인구가 적은데 본토의 3배에 달하는 넓이를 가진 시나이 지역에서 추정으로만 해도 100~200만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인구와 맞먹고[4]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이라 남자마다 전사로 자라는 전투 민족 시나이 베두인들을 막 대하다 게릴라전을 당하면 본토에 있는 군대를 더 많이 동원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다. 게다가 사막 기후이면서 사람 살 만한 도시가 정말 적어서 군 및 민간인 거주지로서도 어려움이 많은 터에 이들을 적으로 돌리면... 그래서 이들에게 아예 거의 자치령처럼 치안까지 맡기고 돈이나 생필품까지 줘 가면서 최대한 갈등을 피했다.[5] 그리고 이스라엘이 결국 여길 포기하고 이집트에게 돌려주면서 이집트에겐 골칫거리가 되어 버렸다.
2012년 시나이 반도 지역 베두인과 이집트와 충돌이 더더욱 심해져서 중국인들을 납치하여 수감된 동료 석방을 요구하는가 했더니 2012년 2월에는 한국인 관광객 3명이 베두인들에게 납치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29시간 만에 석방되었는데 납치에 대한 걸 사과도 하고 먹을 것도 잘 주는 등 대우는 꽤 좋았다고 한다.[6] 외국인 납치를 자주 벌이긴 하지만 이들을 학대하지 않고 모두 무사히 석방시키기에 탈레반과 역시 차원이 다름을 보여주었다. 그러다보니 서구권에서도 베두인들을 테러집단으로 정하지 않는다.
요르단에서는 베두인들이 국가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7] 인구는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에게 쫓겨나 이주해온 팔레스타인인이 더 많지만 원래 요르단은 건국 자체가 베두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요르단 정계는 베두인이 많으며 베두인 족장들은 요르단에서 고위직을 지내는 많기 때문에 국왕과 왕실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다. 베두인으로 이루어진 요르단군은 아랍권의 최정예 군대라고 한다. 이스라엘군에도 베두인들로 구성된 경보병 특수부대가 4차 중동전쟁 때까지 있었고 해당 부대의 지휘관(당연히 베두인)이 2차와 3차 중동전에서의 공훈으로 이스라엘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적도 있을 정도지만[8] 현재는 폐지되고 없다. 그래도 베두인 병사의 지원 복무는 계속되고 있어서[9] 수백 명 단위의 베두인들이 이스라엘군에서 복무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군에는 베두인들로 구성된 Bedouin Desert Recon Battalion 부대가 있다. 물론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배신자 취급을 당하지만. 이스라엘 외에도 팔레스타인인으로 사는 베두인들도 있다. 시리아에도 베두인이 62만명 정도 살고 있다. 최근에는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자 시리아의 베두인들도 주변 국가인 요르단, 레바논, 튀르키예로 피난가고 있다.
하지만 이럼에도 베두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심한 차별을 받는다. 기 들릴의 굿모닝 예루살렘을 봐도 가자 지구에서 유태인 정착촌에서 탄압받아서 먼 길을 돌아가야 하고 귀중한 재산인 당나귀를 그냥 사살당해도 하소연도 못 하며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도 유태인 아이들에게 온갖 구타와 학대를 당해 학교도 못가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베두인이 나온다. 더구나 베두인들은 대부분 가난에 시달리며 이스라엘의 빈곤층으로 살아간다. 게다가 극우 유대인들은 이들도 팔레스타인, 아랍인, 흑인들과 동급의 야만인으로 간주해 그들한테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베두인 거주지를 파괴하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면서 반이스라엘 감정이 폭발했다. 2013년에는 베두인 주민 수천명이 거주지 파괴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여 놀란 이스라엘 정부가 이를 달래려고 베두인 강제이주 계획을 취소한다고 발표할 정도였지만 다시 베두인 거주지를 파괴하고 그들을 강제이주시키며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나서면서 베두인들의 불만도 폭발할 지경에 다다랐다.[10] 그래서 팔레스타인인들과 한편이 되어 그들의 무장단체에 들어가 이스라엘 타도에 앞장선 사람들이 많다.
전통적으로 현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땅이 된 지방의 베두인들은 확연하게 다른 사회경제적 생활상 때문에 종교, 민족 불문하고 도시민들과 관계가 썩 좋지 않았고 도시에 살며 아랍어 쓰던 수니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 일부가 현대 팔레스타인인으로 정체성을 키우는 역사적 과정과 무관했다. 따라서 네게브 사막과 레반트 베두인들에게 전통적으론 팔레스타인 문제는 남의 문제였고 처음에는 이스라엘 당국과 관계도 딱히 그리 나쁘지는 않아 이스라엘 군에서 정예부대로 전공도 많이 쌓으면서 무슬림 시오니스트들도 꽤 많이 배출하고 그럭저럭 이스라엘 사회에 잘 융합되는 편이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갈수록 이스라엘 사회 전반이 하레딤의 성장이 대표하듯 본격적인 종교민족적 폐쇄적 민족주의 성향이 더 강해지고[11] 특히 안그래도 좁은 땅에서 자꾸 이런 저런 땅 이용 문제로 이스라엘 당국과 마찰이 심해지면서 갈수록 팔레스타인 정체성에 합류하고 이스라엘 당국과 등돌리는 베두인들이 많아지고 있어 이스라엘에서도 골치썩이는 문제다.
2020년 11월 3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베두인 마을을 강제철거하자 국제사회가 비판에 나섰다. #
5. 기타
- 베두인들은 추적의 달인으로 발자국만 보고도 남자가 걸어갔는지, 여자가 걸어갔는지, 임산부가 걸어갔는지 알 수 있다고 하기 때문에 사막에 거주하는 토착 베두인들은 걸음걸이가 불규칙적이다. 과거에 베두인들은 신발을 신지 않거나 샌들을 신었는데 발을 끌거나 걸음걸이를 불규칙적으로 만들어서[12] 모래바닥에 찍힌 발자국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게 만드는 식이다. 이는 베두인을 모티브로 한 듄의 프레멘이 모래벌레를 피하기 위해 걷는 방식과도 흡사하다.
- 베두인들은 가무로도 유명하다. 사막의 밤은 특히 컴컴하기 때문에 베두인들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서 잠이 들 때까지 대화하는 것을 즐겼는데 특히 부족의 시인들은 우드나 레밥을 연주하면서 시를 읊었다. 이들의 시는 주로 전쟁과 사랑을 노래한 것이 많으며 베두인들의 시는 꾸란의 운율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사막에서 만나는 손님에 친절하고 관대하다. 아들을 죽인 살인자라도 손님이면 지극정성으로 대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 2015년 4월 전국연합학력평가 고3 세계지리 2번 문제에 베두인에 대한 지문이 나왔다. 문제에 따르면 베두인은 통념과 달리 검은색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하며 검은색의 통풍 잘 되는 옷을 입으면 옷 안에서 데워진 공기가 위로 빠져나가고 외부 공기가 유입되면서 땀을 증발시켜 시원하게 해 준다고 한다. 근데 정작 이 문서 맨 위의 짤방에서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온 것으로 보아 케바케인 듯하다. 참고로 문제 자체는 쉬웠는데 '지도에서 관련 있는 지역 찾기' 문제였다. 그러니까 아라비아 찾으면 정답이다.
6. 매체에서
6.1. 소설
6.1.1. 듄
SF 소설 듄의 프레멘족의 모티브가 되었다.6.2. 영화
6.2.1. 아라비아의 로렌스
이 부족을 소재로 잘 다루었다.6.2.2. 히달고
배우 비고 모텐슨이 출연한 영화 히달고에서 아랍의 승마경주와 함께 베두인들도 같이 다루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출현했던 오마 샤리프도 베두인 족장으로 분한다. 그런데 영화 전반에 오리엔탈리즘 정서가 깔려서 이 베두인들은 흑인 노예를 부리는 야만인으로 묘사되고 베두인 족장은 서방권 사람들을 이교도라며 튕기는데 몰래 와일드 히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서푼 소설 매니아로 나온다. SAA 실물을 보고는 표정이 확 밝아지기까지 한다...그래도 영화가 통째로 편파적인 시선으로 치우친 건 아니어서[13] 악역과 조력자들 모두 백인과 아라비아 현지인을 가리지 않고 고루 등장하며 결말에서 베두인 족장은 주인공에게 푸대접한 걸 사과하며 악수를 청한다.
6.3. 만화 및 애니메이션
6.3.1. 마장기신
등장하는 아하마드 하무디는 베두인 출신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였는데 위험한 설정이라 리메이크판에서는 삭제되었다.6.4. 게임
6.4.1. 문명 시리즈
6.4.2. 오버워치 2
오버워치 2 의 겐지 스킨 중에 베두인 스킨이 있다.6.4.3. 도미네이션즈
자세한 내용은 베두인 돌격대(도미네이션즈) 문서 참고하십시오.고용 가능한 용병 중 하나로 베두인 돌격대가 등장한다.
6.4.4. 언차티드 시리즈
3편에서 네이선 드레이크를 도와주는 조력자이자 족장인 살림과 부하들이 베두인으로 비중있게 나온다.
[1]
첫잔은 손님을 위한 잔, 두번째 잔은 손님의 명예로운 칼을 위한 잔, 세번째 잔은
손님을 기분 좋게 하는 잔
[2]
아랍인들 이름만 보더라도 ~가문의 ~의 아들인 ••식으로 씨족과 혈통이 강조된다.
[3]
도시와 농촌에 가서 돈 벌고 베두인 마을에 와서 유목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4]
이스라엘 땅의 베두인은 95개 부족, 11만 명이었다.
[5]
물론 그렇다고 모든 베두인들이 호의적인 것은 아니라서 이스라엘의 지배를 거부하는 베두인 부족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싸우다 당해내지 못하여 4천 명이 요르단과 이집트로 피난가서 정착하게 된다.
[6]
위에서도 나오 듯 강제손님이 누가됐든 일단 대접하고 본다는 전통이 적용된 듯 하다.
[7]
본래 요르단은 이슬람 이전부터 고대 아랍인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이미 기원전부터
아랍어가 사용되던 지역이다. 현재도 요르단 베두인들이 쓰는 아랍어는 팔레스타인이나 레반트 쪽 아랍어 방언보다는
사우디아라비아 내륙의 나지드 방언과 흡사하다.
[8]
사실 유대인 편에 서서 싸운 베두인은 이스라엘 건국 이전부터 있었다.
시오니즘 무장단체였던 하가나와 동맹관계인 베두인 무장단체(팔 하이브)가 있었으며 이들은 1936년부터 1948년 이스라엘 독립 때까지 하가나와 손을 잡고 유대인 정착촌을 공격하는 아랍 민족주의자들과 싸웠고 독립 이후에는 이스라엘군에 자진 편입했다. "쿠란에서도 유대인은 무슬림의 형제라고 하지 않았는가?"라는 게 그들이 이스라엘군에 편입한 이유였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에선 베두인도 차별받는 상황이니...
[9]
이스라엘군에는 지원자에 한해서 아랍인 장병(1명 뿐이지만 장군도 배출했다!)이 1,500명 정도 복무하고 있다. 지원 자격은 1948년 독립전쟁 이후 이스라엘에 정착한 팔레스타인인, 베두인, 드루즈인, 체르케스인으로, 종교 제한은 없다. 이 중 절반 이상은 드루즈인과 체르케스인이고 팔레스타인인 지원자는 다수가 기독교도다. 하지만 정작 드루즈인과 체르케스인, 기독교도 차별을 받고 있는 판국이라...
[10]
특히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는 것과 비슷하게 생계수단도 주지 않으면서 강제 이주를 시키다 보니 베두인들 입장에선 반발과 분노가 클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강제이주를 당한 베두인 마을들의 경우 마땅한 생계수단이 없어 이스라엘에서 빈민촌으로 전락했다.
[11]
심심하면 자꾸 언급되는 사실이지만
키부츠가 상징하듯 원래 초기 이스라엘 건국 주도 계층은 유럽발 백인 다수에 경제 사회 내치 정책에선 사회주의 성향이 강했던 세속주의 좌파 아슈케나짐이었다. 이게 1967년 유럽발 세속주의, 사회주의하곤 영 불편하고 사회경제적 출세 가능성에서도 영 불리한 미즈라힘 중동계 유대인들을 대거 흡수하고 동시에 계속된 전시 상황에 이스라엘 사회 전체가 우경화되면서 막상 건국을 주도한 이스라엘 노동당은 크네셋에서 한자릿수에 노는 현대의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12]
중간에 몇 걸음은 뒤로 걷기도 한다.
[13]
영화 초반부에 미국 역사의 오점인
운디드니 학살과
아메리카 원주민을 향한 차별도 비중있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