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078><colcolor=#fff> 일드프랑스 레지옹 의회 의장 발레리 페크레스 Valérie Pécresse[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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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7년 7월 14일 ([age(1967-07-14)]세) |
일드프랑스 오드센 뇌이쉬르센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재임기간 | 제10대 고등교육연구부 장관 |
2007년 5월 18일 ~ 2011년 6월 29일 | |
제25대 정부 대변인 | |
2011년 6월 29일 ~ 2012년 5월 10일 | |
제27대 예산, 공공 회계 및 국가개혁부 장관 | |
2011년 6월 29일 ~ 2012년 5월 10일 | |
제5대 일드프랑스 레지옹 의회 의장 | |
2015년 12월 18일 ~ 현직 | |
신체 | 171cm |
학력 |
파리 고등상업학교 국립행정학교 |
배우자 | 제롬 페크레스 ( 1994년 결혼) |
자녀 | 3명 |
종교 | 가톨릭 ( 세속주의)[2] |
직업 | 관료, 정치인 |
정당 | | |
의원 선수 | 3 (하원[3]) |
의원 대수 | 12대, 13대, 14대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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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공화당 소속의 정치인.2015년부터 현재까지 일드프랑스 광역의회 의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바 있다.
2. 생애
1967년 태어났다. 어릴때에는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자크 시라크와 마찬가지로 열렬한 공산주의자였으며 러시아어도 배웠고 대학생때는 운동권에 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ENA에 진학하면서 성향이 보수화되었고 이후 파리 정치 연구소에서 헌법을 가르쳤다.정계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7년 자크 시라크의 선거 캠프에 참여하면서이다. 2002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서 이블린의 하원의원으로 출마하여 약 65%의 득표를 받으면서 당선되었다. 2002년 11월부터 대중운동연합( 공화당의 전신)의 사무처장을 맡았고 2004년에는 일드프랑스 레지옹 의회의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 의해 고등교육연구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2007년 대학 자치에 대한 법률을 내놓았으며 이 법은 일부 학생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2009년 교수와 연구원의 지위를 개혁하는 법률을 통과시켰을때도 큰 반대에 직면하였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교육을 지지하면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는 교육 제도를 도입한 것은 호평을 받았다.
201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사르코지가 재선에 실패한 이후 2015년 프랑스 레지옹 선거에서 일드프랑스 레지옹의 의회 의장[4]에 도전하였고 성공하였다. 이후 2021년 프랑스 레지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였다.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는 알랭 쥐페 보르도 시장을 지지하였다. 2017년 7월부터는 프랑스 공화당의 극우화에 반대하며 로랑 보키에의 노선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공화당이 대패하자, 그는 공화당의 우경화를 비판하며 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2021년 복당하였다.
2.1.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2021년 7월 22일, 프랑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준비가 되었다며 차기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당내에서 가장 큰 경쟁자는 이미 오랜 기간 당의 선두 주자로 인식되오던 그자비에 베르트랑 오드프랑스 레지옹 의회 의장이었다. 경선 2개월 전 여론조사만 해도 베르트랑 의장이 1위, 페크레스 의장이 2위를 차지해 중도우파 후보간 결선 투표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졌지만, 강경 우파의 지지를 받은 에리크 시오티 후보가 대선 후보 경선 1차 투표에서 깜짝 1위를 차지하고, 페크레스가 25% 득표로 2위를 차지했다.
결국 시오티 후보를 제외한 당 내 모든 후보가 페크레스를 지지했고, 결선 투표에서 페크레스는 61%를 득표해 39% 득표에 그친 시오티를 누르고 당의 공식 대선 후보가 되었다. 프랑스 중도우파 정당[5]에서 여성 정치인이 대선 후보로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상승세를 타면서 마린 르펜과 에릭 제무르를 제치고 지지율 2위로 올라섰으며 가상 결선 투표 지지율에서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오차범위 내로 붙거나 심지어 역전하는 여론조사가 나오기도 했으나, 2022년 2월 최악의 연설을 하고 만다. 연설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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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설은 프랑스인들의 밈이 되었다. |
대선 1차 투표 결과 4.78%의 득표율로 5위를 기록하면서 사회당의 이달고와 함께 하위권으로 선거를 마감했다.
3. 정치 성향
전형적인 보수 정치인으로, 중도우파 성향이다.사회적으로는 보수적으로, 2013년 동성혼에 반대 의사를 표했으며 반대 집회에도 참석하였다. 프랑스 민족주의자이기도 하며,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당시 프랑스만의 애국법이 필요하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에는 비교적 호의적인 TERF 성향이며, 모든 종류의 성차별과 부적절한 발언에 반대하고 있다. 또한 이민 자체에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호주나 뉴질랜드의 이민 정책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공화주의와 세속주의적 가치를 표방하며 프랑스어를 잘 하는 사람들에 한정하여 이민자를 받아들이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이다. 그는 자신의 경제적 성향을 앙겔라 메르켈의 2/3, 마거릿 대처의 1/3이라고 한 적이 있으며, 따라서 부분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65세 정년제도, 실업수당 감축, 주 35시간 노동제 반대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환경주의자라고 표방하는 녹색 보수주의자이다.
외교적으로는 유럽통합주의자로, 영국의 브렉시트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한 적이 있으며 이후로도 영국에 대하여 강경한 노선을 보여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유럽연합의 권한 확대에 긍정적이지만 국내법보다 유럽연합의 법이 앞서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종교적으로는 세속주의를 지지하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근본주의자들 모두에게 비판적으로 자신 스스로도 가톨릭 신자이면서 동시에 세속주의자로 종교의 정치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는 그녀가 10~20대에 공산당 활동에 참여하였던 경력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강경우파에는 비판적이다. 2018년 공화당 당수 선거에서 로랑 보키에를 비판하였으며 보수의 이념은 유지하되 프랑스만의 진보적 가치를 표방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4. 소속 정당
<rowcolor=#fff> 소속 | 기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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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 2002 | 정계 입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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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 2015 | 창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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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 2019 | 창당 |
2017 - | 독자 창당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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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 2021 | 노선 차이로 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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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 | 복당 |
5. 선거 이력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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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칼로레아를 만 16세에 응시했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비상했다고 한다.
- ENA 졸업 후 즉시 국참사원(Conseil d'État)에 입부했다.[6] 입부 후 1년만에 메트르데레케트[7](maître des requêtes)으로 승진하며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