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국에서의 발라드 장르에 대한 문서.2. 특징
(K)발라드는 1980년대 후반 태동한 이후부터 한국 가요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장르로서 2000년대까지 최절정기를 달렸고, 오늘날에도 아이돌 댄스 음악 등과 더불어 여전히 주류 대중음악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발라드'라는 용어가 오래 애용되는건 여러 장르와 결합되기 쉬운 용이성 덕분도 있어보이는데, 예를 들어 ' 가요 발라드'(이른바 팝발라드, 가요가 영어론 k-pop이기 때문에 팝발라드를 번역하면 가요 발라드가 적절하다.
한국에서 발라드란 말은 장르 구분이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들에겐, 아이돌이나 힙합 댄스곡 등과 대비되어 잔잔한 곡들을 통틀어 일컫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다만 좀 더 세분화시켜 보면 일단은 정통파격인 '가요 발라드(팝발라드, k-pop ballad)'를 줄여 칭하는 준말로 봐도 큰 무리는 없다. 다른 장르와 결합시엔 상기되어있듯 앞에 뭘 붙이는 경향이 있다. 애초에 '팝' 자체가 대중음악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3. 역사
3.1. 1980년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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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 (1987) |
이문세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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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섭 ' 너에게로 또 다시' (1989) |
신승훈 ' 미소 속에 비친 그대' (1990) |
198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 대중음악계는 발라드가 장르처럼 자리잡기보다는 대개 포크, 트로트, 신중현 사단을 위시한 록 사운드가 가요계의 대세였고, 그중에서 그나마 발라드와 접점을 찾자면 포크풍[2], 트로트풍[3], 록풍을[4] 차용한 서정적이고 애절한 분위기를 부르는 형식이 일종의 발라드 프로토타입 역할을 대신해오곤 했다. 그러나 이들은 보다 기타나[5] 신디사이저 음향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6], 멜로디 구성에서도 뽕짝의 느낌이 적잖이 들어 현대적인 발라드와는 형식상 거리가 있었다.
한국에서 정석적인 '발라드'라는 장르는 대개 유재하로 하여금 시작되었다는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전에도 조용필과 김현식 등이 포크송 및 R&B 형식으로 서정적인 노래를 발표해왔지만[7], 트로트 형식의 뽕끼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던 한계가 있었던 반면, 유재하가 1987년 발표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클래식과 오케스트라 선율, 단조 대신 장조 코드 선호, 브릿지라는 곡 형식을 도입하며 한국의 현대식 발라드를 처음 구축했다고 평가받는다. 해당 앨범은 발매 직후부터 신드롬급 판매고를 올리진 않았지만, 점점 재평가되면서 1997년엔 도합 150만 장 가까이 팔렸고[8], 뭣보다 그에 영향을 받은 많은 가수들이 이후 한국 대중음악 주류 장르 자체를 바꿔놓게 된다.
또 다른 발라드의 대부라면 이문세 & 이영훈 듀오를 꼽을 수 있다.[9] 이들은 포크송과 블루스[10]의 영향을 받은 서정적인 음악을 구사했는데, 단적으로 이문세 3집과 이문세 4집을 교차해서 듣자면 한국 발라드의 태동 과정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같은 이문세, 이영훈 콤비가 제작한 앨범임에도 1년 여를 주기로 3집에 만연하던 뽕끼가 4집에 들어 클래식 작법이 가미되어 세련되어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앨범 단위로 세련된 작법을 알뜰하게 채워 넣어 팝송 부럽지 않은 콤팩트한 트랙 행렬을 보여준 이런 구성은 한국 발라드의 상업적 가능성을 거의 최초로 증명해 내었다.
이후 1980년대 후반, 가수 변진섭이 '발라드 왕자'라는 애칭으로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발라드'라는 명칭이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고 대중화되는데[11] 공을 세웠고, 그 이후 발라드라는 장르는 한국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이승철[12], 이승환[13], 조정현 등의 인기를 끄는 발라더들이 점점 나오는 와중 90년 데뷔한 신승훈은 국민가수급 신드롬으로 그것도 장기간 군림하며 발라드의 황제라는 애칭을 얻게 된다.
이들이 올린 판매량은 거의 수백만 장 단위였는데, 이는 종전 잘해야 수십만 장을 호가하던 판매고에서[14] 큰 발전을 이뤄낸 거라 가히 비약이라 할 수 있었다. 수백만 장의 판매고는 당대 해외 팝송의 한국 내 판매량과 견줄 만한 수치인데, 이를 토대로 한국 가요의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아 한국 가요사 전체를 통틀어도 중요한 분기점이 되어주었다.
3.2. 1990~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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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B ' 텅 빈 거리에서' (1990) |
신승훈 ' 보이지 않는 사랑' (1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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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람회 ' 기억의 습작' (1994) |
더 클래식 ' 마법의 성'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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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 ' 아름다운 이별' (1995) |
이승환 ' 천일동안'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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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 ' 그때 또 다시' (1997) |
토이 ' 여전히 아름다운지'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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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모 ' 아시나요' (2000) |
이소라 ' 제발'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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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아이즈 ' 벌써 일년' (2001) |
왁스 ' 화장을 고치고'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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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 꿈에' (2002) |
김범수 ' 보고 싶다'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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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현 ' 체념' (2003) |
이수영 ' 덩그러니'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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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경 ' 거리에서' (2006) |
백지영 ' 잊지 말아요' (2009) |
1990년대 들어 팝발라드는 가요계에 완전한 대세로 자리 잡게 되어 수많은 뮤지션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신승훈, 이승철, 이승환, 김민우, 전람회의 김동률, 더 클래식의 김광진, 토이와 015B 사단[15], 임창정, 조성모[16], 김범수 등의 가수들이 활약하며 발라드는 한국 대중음악의 메인스트림으로 우뚝 서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록발라드라는 장르도 하나의 트렌드로 형성되는데, 발라드와 락 등 여러 분야를 실험해보던 이승환을 비롯해 김경호, 김종서, YB, 박완규, 서문탁, K2, 김민종, 김정민, 플라워, 야다, 얀, 마야, 엠씨더맥스[17], 더 크로스, 버즈 등으로 대표되는 전성기를 누렸다.
한편, 동아기획은 90년대까지 활약을 이어나가며 김현철, 빛과 소금 등은 재즈적 감성을 더했고 한국 특유의 K- 시티 팝 감성을 선보여내기도 했다. 사족으로 시티 팝 항목에도 있지만 본산지였던 일본의 영향보단, 김현철 본인이 (일본문화 수입금지라는 당대 정책 등으로) 시티 팝이란 트렌드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언급도 한 점을 봐서는 한국만의 독자적인 흐름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오늘날 와서 아귀가 비슷한 시티 팝으로 편의상 분류되는 현상에 가까울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부턴 여성 발라더 시장도 생겼는데, 이소라, 양파, 박정현, 왁스, 이수영 등이 대표적이었고, 이후 거미, 백지영 등으로 연결되었다.[18] 또 오리엔탈 발라드는 이수영이 유행시킨 장르였다. 피리, 해금 등 동양풍 악기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등장하는게 특징 중 하나. 1999년 이승환의 ' 당부'를 시초로, 2000년대 이수영의 곡들이나 이선희의 곡 ' 인연' 등이 대표적이다. 그 특성상 사극 OST 등에도 꽤 활용된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록발라드 천하에서 벗어나 R&B 형식이 보다 진하게 가미된 이른바 R&B발라드 형식도 유행하기 시작했다.[19] 이시기 이를 유행시킨 팀 중 하나는 브라운 아이즈로 2001년 당시 이들이 발매한 Brown Eyes 앨범은 수십만 장의 판매고를 달성한다. 물론 이는 1세대 발라더들의 백만 단위에 비하면 적은 수치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음악 시장의 주요 루트가 음반 시장에서 음원 시장으로 점점 넘어가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꽤 고무적인 기록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점차 강하게 발전하여 기교와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적 요소를 진하게 넣은 이른바 미디엄 템포 발라드가 2000년대 유행으로 찾아왔고, 이런 류 음악을 부르는 바이브, 박효신, 더 원, 먼데이키즈, SG워너비, 씨야, 포맨 등의 가수들이 당시 주로 사용했던 창법이 대중들에게 소몰이창법이란 이름으로 명명되기도 했다.[20] 물론 항목에도 있듯 오늘날 와선 비판도 받는 창법이나, 하여튼 이때 인기는 당대 또다른 주류였던 아이돌 시장의 밥그릇도 상당 부분 강탈해갈 정도로 시대를 풍미하던 트렌드로 자리잡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자극적인 장르 혼합 발라드에 지쳐 성시경[21], 김동률, 이기찬 등 정통파 발라더들이 선호되면서[22] 2000년대 명맥을 지켜내기도 했다. 그리고 아래 비판처럼 신파, 자극적인 요소만 강조하던 소몰이창법식 양산형 발라드는 대중들의 호응을 장기간 이끌어내진 못했고[23], 결국 이러한 반동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2000년대 후반 이후 대중가요계의 중심은 후크송으로 대표되는 댄스 아이돌 그룹들이 차지하게 된다.
3.3. 201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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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 녹턴' (2010) |
이승철 '그 사람'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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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신 ' 야생화' (2014) |
M.C The Max ' 어디에도'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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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 ' 좋니' (2017) |
아이유 ' 밤편지'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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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킴 ' 너를 만나' (2018) |
거미 ' 기억해줘요 내 모든 날과 그때를'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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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뮤지션 '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2019) |
박재정 ' 헤어지자 말해요' (2023) |
상술한 후크송을 위시한 아이돌이 가요계를 탈환하자 발라드 시장은 전성기 시절 독보적인 위세에선 내려왔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가듯 차트 상위권에선 여전히 발라드가 건재한 존재감을 보였다. 기존 세대들의 활약은 물론 아이유, 디셈버, 베베미뇽, 허각, 에일리, 한동근, 정승환, 폴킴, 버나드박 등의 신예들 또한 2010년대를 풍기했다. 아이돌의 경우도 발라드에 발을 걸치는 경우가 많아 소녀시대의 태연 등 발라드 활동을 겸하며 차트를 호령한 경우도 상당수 있었고, 2AM, 비투비[24], 다비치[25] 등 아예 발라드를 주력으로 내세우는 그룹도 등장했을 정도였다. 보아의 Only One처럼 댄스발라드 형식의 곡도 있었다.
하지만 전성기 때처럼 발라드 형식상의 큰 변혁은 찾기 어려워졌고[26][27] 기존 닦아놓은 터를 답습하는데 그치고 있는 생태계로 돌입한 시기이기도 하다. 더 이상 쥐어짤 것이 없는 발라드는 2010년대 이후론 스펙트럼을 넓히기엔 한계를 맞이했고 아래 비판처럼 사랑 타령, 이별을 울부짖는 등 진부한 그림만 그리고 있는 형국이며 이는 대중의 귀를 질리게 만들고 있단 비판도 나온다. 물론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한정된 스펙트럼 안에서 높은 완성도로 만들지 않으면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기에 사재기 따위가 아닌 한 대중픽을 받은 곡들은 마냥 양산형이라고 깎아내릴 수는 없는 작품들도 많긴 하다.
90~2000년대 데뷔한 임창정, 박효신, 나얼, 이수 등의 가수들이 2010년대 차트를 여전히 점령하는 모습 또한 보였는데, 이들의 뛰어난 역량도 있지만 달리 말하면 세대교체가 지지부진할 정도로 좋은 신예가 좀처럼 등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된다. 2020년대 들어선 이들도 예전만큼 히트하진 못하고 있고. 그래도 정통 발라드의 계보는 폴킴, 규현, 정승환, 버나드박, 박재정 등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또한 2017년 윤종신의 좋니처럼 방송 홍보를 통한 역주행송이 그해 최고 유행곡 중 하나가 될만큼 대박을 치기도 했다.
한편, 활로 개척을 모색하는 관계자들은 발라드 특성상 사랑 얘기가 많은 드라마 OST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점을 이용해[28] 이쪽으로 영향력을 넓혀나가기 시작해서, 드라마 OST를 통해 발라드 가수들의 음원 시장에서의 선전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린과 백지영 등이 이 분야의 대가로 활약했다.
발라드와는 별개로 사이드에 가까운 흐름이지만, 90년대 중후반 홍대 인디 음악씬에서 시작된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모던 록 조류는 꾸준히 인디 음악 신의 대들보로서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다 2010년대 중후반 들어 발라드의 어법을 접목시킨 모던 록풍
허나 순풍도 잠시, 2018~2019년 음원 사재기 파동에서 이런 류나 기타 가수들 상당수가 의심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당시 가요계에 큰 후폭풍을 불러왔으며 이 때문에 발라드 업계가 한동안 침체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것이 알고싶다(#1197)에 제보된 바로는 음원조작꾼들이 노리기 쉬운 타깃이어서 더 그렇게 되었다고. 물론 이에 대해 의심받은 당시 몇몇 소속사 측은 아이돌 팬덤 시대에 비아이돌계 가수가 살아남기 위한 홍보의 일환으로 이런저런 곳에 SNS 홍보 의뢰를 맡겼을 뿐 사재기는 의뢰한 적도 인지한 적도 없다는 입장이 많았으니 참고하자.[30]
한편, 2020년대에도 발라드는 한국 음원 시장의 주류 장르 중 하나지만, 시상식 대상을 휩쓸던 최전성기만큼의 인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물론 그럼에도 주류 장르긴 해서, K팝 아이돌 특히 걸그룹 노래가 강세인 2020년대 초중반 음원차트에서[31] 거대 팬덤층 없이 최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는 드문 기타 장르긴 하다. 또 발라드류가 원래 강세였던 노래방이나 OST 차트에선 여전히 최강자다. 이러다보니 다른 장르 가수나 심지어 배우, 희극인들도 발라드를 부르는 경우가 제법 있는 편이다.
일각에선, 사랑 타령만 하는 발라드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고[32] 2010년대 들어선 상술한 것처럼 음원 조작꾼들의 주된 희생양이 되기도 했음에도 한국 가요계에서 발라드의 수요가 꾸준히 있는 이유는, TV 연속극이나 일부 영화 등에서 계속 남아있는 신파극의 잔향과 더불어 한국인 특유 한의 정서 때문 아니냐는 이야기가 반 농담처럼 돌아다니기도 한다.[33]
한편 이별을 키워드로 한 발라드의 경우 ' 술'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덕분에 술을 소재로 한 이별 발라드 곡들을 아예 술과 발라드를 합친 '술라드'라는 장르로 부르기도 한다. 2019년 이후로 나온 신생 키워드로 2020년대 들어 어느정도 대중화되어 실제로 가수가 이를 장르명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34] 해당 장르는 대체적으로 클라이맥스에 고음을 내지르기 위한 편곡이 들어간다는 공통점도 있다. 물론 이런 과도한 이별 노래와는 대치되게 마크툽 등 고백하는 발라드를 만드는 가수들도 많다.
4. 양산형 발라드
1990년대 이후 발라드가 주류 장르 중 하나로 꾸준히 자리잡고 있다보니, 이런 인기에 편승해 질 낮은 양산형 작품들이 반복 재생산 되면서 이별, 슬픔과 같은 매번 형식적인 소재만을 사용해 공장마냥 쏟아져 나오는 발라드들이 한국 대중가요의 질적 후퇴를 가져오고 있다고 상당수 평론가들은 지적한다. 브런치.사실 이런 지적은 한국이나 발라드 장르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중 문화 장르에서 통용될 수 있는 지적이기도 하다. 당장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지적했던 내용으로, 계몽의 변증법에서는 재즈를 예시로 들어 대중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새로운 형식이 탄생한 뒤 그것이 인기를 얻으면 그에 편승한 모방자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게 되고, 오리지널의 작품에서 아주 조그만 부분만을 바꾼 뒤 새로운 상품으로 내놓게 되는데,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대중 문화는 질적으로 하락을 겪게 되고 대중들은 수준 저하에 질리게 된다는 것.
일부 발라드 팬들은 종종 현대음악의 장르 중 하나인 발라드를 클래식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말마따나 발라드는 클래식 요소도 어느정도 함유하고 있는건 사실이다. 문제는 현대음악과 결합된 방향으로 나아가던 최전성기와 달리, 이후부턴 점점 반대로 가는 혹은 정체되는 양상도 보여 신인가수의 새 노래가 나와도 과거의 명곡보다 오히려 못하다는 혹평을 듣는 경우가 늘고, 결국 기존 팬덤만을 위한 음악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 외에도 반복되는 가사 레퍼토리( 사랑, 이별, 술[35]), 고착화된 창법 역시 발라드 장르를 올드하게 만들고 있는데, 이는 새로운 시도보다는 과거의 성공 방식과 이른바 머니코드, 뻔한 래퍼토리에 안주하려는 제작 환경도 지적된다.[36] 발라드 리스너들의 고령화와도 아예 무관하진 않을듯.
실제로 2010년대 후반부터 음원 사이트를 점령한 발라드 대다수는 애도와 슬픔으로 점철된 절규성 노래가 많다. 노래의 주제나 창법뿐만 아니라, 코드 진행이나 악기 구성, 곡의 전개적인 구조 등에 있어서도 200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유행했던 양산형 발라드 노래들과 거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는 곡들이 많다. 세월이 지남에 따른 음향적인 부분의 발전 외엔 10~15년 전에 유행했던 구식 발라드를 그대로 가져온 거나 다름없기에 듣는 이에 따라 촌스럽고 오글거리기만 한 노래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다. 그에 더해 해당 노래들은 다수가 (물론 실제 사재기가 있는지 여부와 별개로)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고 있어서 한국 음악씬의 질적 후퇴를 해당 아티스트들 스스로 가져온 것이라 많은 리스너들에게 더욱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질질 짜고 흐느끼며 슬픈 감정을 대중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절규성 발라드 세태 때문에 부르는 가수가 혹시 짝사랑에 미친 우울증 환자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으며, 듣는 사람들도 우울해진다고 할 지경. 리스너야 안 들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길거리의 가게들뿐만 아니라 밝고 신나는 분위기가 필수인 놀이공원 등 여행지, 심지어 술집에서도 양산형 발라드는 주야장천 틀기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기도 한다. 사실 전반적인 곡 분위기가 잔잔하거나 애절한 편이다 보니, 야구를 비롯한 여러 스포츠의 응원가로 쓰기에도 상당히 난감한 장르기도 하다.[37]
힙스터 갤러리로 유명한 포스트락 갤러리에서 싫어하는 장르이다. 일명 김발(김치 발라드)이라고 부르며 심심하면 까인다.[38]
이런 노래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대중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이돌이나 일부 열성적인 팬덤이 있는 가수들을 제외하면 결국 대중성으로 경쟁해야 하고, 대중적인 노래일수록 음원 사이트에서 높은 순위에 오르는 데에 유리하므로, 인기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장 대중적인 장르 중 하나에 속하는 양산형 발라드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대중성이 높은 장르라 하더라도, 그만큼 개성적이고 높은 완성도로 만들지 않으면 인지도 있는 가수라도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마냥 양산형이라고 깎아내릴 수는 없는 작품들도 많긴 하다.
초반에는 담담하게 부르는 척하다가 구렴이 끝나기 직전 절제 없이 지르는 고음과 이에 보답하듯 일관되게 과격하고도 영혼 없이 떨기만 한 감정 전달, 가사만 바꾼 채 똑같은 음을 반복하는 2절[39], 후렴부는 반음(=한키)만 올려 또 똑같은 멜로디가 반복되고 하이라이트에서 고음을 한껏 지르고 폭주하는 것은 색다를 게 없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한국 발라드의 특징 중 하나이다. 또한 십중팔구 가사에 "제발 돌아와~", "못 해줘서 미안해" 따위의 술에 취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판에 박힌 이별 가사를 남발해댄다. 또한 그 주제를 감각적으로 표현해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것마저도 못 할 만큼 문장력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부르는 가수가 슬프고 울적한 감정을 애절하게 호소하는 거야 자유지만 여기에 사재기를 통해서 음원 사이트에 차트인을 강제하고 대중에게 자기만 아는 슬픈 감정을 강요하면 문제가 된다.
한국의 발라드 음악 상당수는 획일적인 특징을 가진다. 이런 추세를 비꼬는 용어가 ' 양산형 발라드'라고 한다. 양산화 현상이 매우 심해 최근엔 발라드 앞부분만 들으면 뒷부분이 예측 가능하고 고음이 있다는 것도 예측할 수 있다. 양산형 발라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곡의 전개가 비슷비슷하다. 양산형 발라드의 상당수가 들을 때마다 어디서 들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표절이라고 해도 할 말 없는 수준이다. 거기다 곡을 부르는 가수의 보컬 스타일까지 비슷한 경우가 잦다.
- 단순 전개 뿐만 아니라 사용되는 악기 및 편곡들도 거의 미디로 대충 찍어내듯 만드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도입부에서 발라드 특유의 요정이라도 등장할 것 같은 차임음은 대표적인 클리셰 중 하나. 드럼과 같은 악기에서 나오는 리듬도 곡마다 차별점을 찾기 힘들다.
- 이를 비꼬기 위해 양산형 발라드 여러 개를 리믹스한 영상도 존재한다.
- 후렴구는 높은 확률로 반음(=한키)만 올려 똑같이 반복한다.
- 최근 들어 옛날 명곡들을 리메이크하는 트렌드가 생겼지만 대다수의 곡들의 편곡도 양산형과의 차이가 없어 특색이 없을 만큼 획일적이고 그만큼 클리셰 범벅인지라, 리스너들에게 불쾌함을 주기도 한다.
- 고음병의 영향인지 많은 발라드 곡들이 중간에 시작되는 고음 부분이 존재한다. 처음엔 잔잔하게 시작하다가 중간부터 점점 소리를 키우더니 절정 부분에 고음을 지른다. 고음 부분이 끝나면 다시 잔잔해지며 슬픈 목소리로 속삭이듯 부르며 마무리를 짓는 것이 양산형 발라드의 주된 클리셰다.
- 사실, <야생화>처럼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발라드 곡들도 이와 같은 형식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한국 대중의 취향에 맞기 때문에 나타난 형식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하며, 따라서 이 자체만으로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사와 음이 부조화하거나, 흐름에 완급 조절이 결여되어있다거나 등.
- 가사 내용 전반이 연애와 관련된 것, 특히 사랑 타령 + 이별 타령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며 주제의식도 모호하다.[40] 다른 장르도 문제지만 특히 이 분야는 사랑 타령에 관련된 건 없는 게 없다. 특히 이별 내용은 지겹게 우려먹기로 유명하며, 가사 내용도 식상하기 그지없다.
[1]
사족으로 영미권에선 발라드풍 노래를 '센티멘탈 발라드'라고도 종종 부른다고 한다.
[2]
김정호,
송창식,
김수철,
해바라기,
시인과 촌장 등.
[3]
심수봉,
조용필 등.
[4]
소프트 록식의
파워 팝 성격의 발라드를 선보인
다섯손가락과 프로토타입
록발라드 비슷한 분위기를 갖췄던
부활 등.
[5]
포크는 어쿠스틱 기타, 록은 전자 기타.
[6]
1986년 발표된 부활의 '
희야'나 '
비와 당신의 이야기', 김현식 3집의 '
비처럼 음악처럼' 같은 노래가 그렇다. 그나마 이런 노래들은 록풍 특성상 당대 다른 노래들에 비하면 뽕끼가 확연히 줄었다는 점에서(당시 녹음을 들어보면 아예 없는건 아니다), 당대 록 장르가 그나마 다른 장르에 비하면 팝의 영향을 받아 음악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도를 제법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
사족으로 유재하는 조용필과 김현식 사단에서도 몇개월 정도 악기 연주로 같이 활동한 인연이 있었다. 조용필은 사적으로 크게 아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유재하가 만든 '사랑하기 때문에'를 준 바 있으며, 김현식과는 사적으로도 친해서 '가리워진 길'을 준 바 있다. 다만 다른 곡들까지 줬는데 김현식이 1곡만 뽑자 삐져서 밴드를 탈퇴한다.
[8]
출처.
[9]
발라드의 시조라 불리는
사랑하기 때문에보다도
이문세 4집이 간발의 차이로 먼저 발매되어 유재하와 더불어 공동 시조격 작품으로 추앙받고 있다. 참고로 1985년 발매한 이문세 3집도 시발점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유재하 곡 외 몇 곡 정도를 제외하면 4집과 비교시 뽕끼 차이가 상당해서 보통은 4,5집을 더 높게 쳐준다. 유재하 역시 1985년 이문세 3집에 이미 '그대와 영원히'라는 곡을 준 바 있고(사실 1983년 1집에도 '그대 내 품에'를 준 바 있다), 사실 4집과 비교해도 들어보면 현대 발라드는 유재하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는걸 알 수 있다. 이문세-이영훈은 이런 스타일의 곡들이 상업적으로도 대성공(1987년 골든디스크 음반 대상)을 거둘 수 있다는 단초를 제공했다는데서 그 업적을 더 평가받는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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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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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진 발라드 느낌의 곡을 그냥 비트로트계 음악 혹은 일반 가요, 이문세식 음악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변진섭은 아직은 뽕과 팝을 넘나드는 하이브리드스런 발라드 느낌이 있었다. 이는 창법도 한 이유지만, 유재하식 발라드가 유행시킨 장조(메이저) 코드 대신 '너에게로 또 다시' 같은 단조(마이너) 코드 노래를 변진섭이 많이 불렀기 때문도 있다. 변진섭의 장조 코드 대표곡으로는 '그대 내게 다시'가 있다. 참고로 단조 코드라고 무조건 촌스러운건 아니고, 신승훈의 '
보이지 않는 사랑'이나 '
사랑해도 헤어질수 있다면' 등처럼 어떻게 편곡하느냐 차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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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는 록밴드 부활 출신의 락커였지만, 애초에 부활 자체가 록발라드 비슷한 감성의 음악을 주로 하던 팀이기도 했고, 이승철 본인도 음색이나 음역대가 발라드에 더 어울렸기에 솔로 데뷔 때부턴 발라더로 전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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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출연도 없이 1집
B.C 603을 100만장 이상 팔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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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자 등이 기록한 최고 기록이 40만 장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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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에선
김연우, 후자에선
윤종신 등의 발라드 거물을 발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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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판매량으로만 봤을시 신승훈의 뒤를 잇는 팝발라드의 정통 후계자라 할만했다. 다만 소속사와의 갈등과 성대 손상 등으로 신승훈만큼 롱런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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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맥은 밴드 음악을 하긴 했지만, 전형적인 록발라드보단 록발라드와 팝발라드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스런 지점에 위치한 밴드였다. 음색적으로 봐도 그렇고, 엠씨더맥스 음악들도 보면 반주에 클래식 비중이 많다. 그래서 오히려 록발라드 쇠퇴 이후에도 롱런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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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상 상당수는 R&B 가수와 섞이는 분위기도 있었다. 록과도 결합해서 서문탁, 마야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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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90년대에도
김건모나
솔리드,
유영진 등이
R&B 자체는 국내에 소개하고 있었으나, 김건모는 점점
레게(핑계)나
디스코
하우스(잘못된 만남) 쪽으로 빠졌다가 2000년대 들어서
소울이나 R&B로 방향을 다시 틀었고, 나머진 발라드화되지 못해서인지 인력풀의 한계인지 어쨌든 반짝 인기나 틈새 시장 공략 수준에 머물러있었다. 결국 솔리드는 활동 중단하고 유영진은 아이돌 프로듀서로 아예 전향한다. 한편, 여성쪽으로 가면 상기되어있듯 R&B 발라드를 시도한 케이스가 제법 있었다. 위엔 안적혀있지만
에코나
박화요비 등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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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브라운아이즈는 소몰이창법을 하지 않았다. 미디어 템포 발라드가 유행하는 가운데 소몰이창법을 시도한 박효신과 특히 SG워너비가 성공하면서 너도나도 따라하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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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모 등 1990~2000년대 초 가수들의 압도적인 앨범 판매량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바통을 어느정도 이어받아 2000년대 초중반(특히 초반)까지도 수십만장의 앨범 판매량을 거뒀다. 허나 이후부턴 음원 시장의 성장 등으로 국내 음반 시장이 급격히 쇠락하면서 정통파 발라더 중엔 예전만큼의 압도적인 앨범 판매량은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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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가수 출신이지만 발라더로 변신한
김종국의
한 남자도 인기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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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쪽에선 이후 등장하는 이른바 술라드의 원조격으로 소몰이창법류를 꼽기도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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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첨부터 발라드로 간건 아니고, 부침을 겪다 발라드돌 노선으로 인기를 얻고 그쪽으로 방향을 잡은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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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댄스풍 노래도 하긴 했지만, 아이돌은 아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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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 지향 아이돌 그룹이었던
2AM이 댄스와 발라드를 융합하는 시도도 했지만
춤신춤왕이란 밈만 낳으면서 무리수라는 평을 들었고,
비투비의 경우 보컬이 되니 발라드돌로 인기를 끈 케이스긴 하나
랩 비중도 상당할 뿐더러, 본인들도 인정했듯 아이돌치곤
댄스를 잘 못한다. 그래도 잔잔한 분위기에 맞춰 가사에 맞는 안무는 느낌있게 추니 댄스랩발라드라고 볼 수 있을지도..? 진짜 제대로 댄스발라드를 보여준건
보아가 2012년
Only One으로 컴백했을 때였는데, 인기나 평도 괜찮았으나 이후에는 이런 곡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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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아이유의
밤편지 등 21세기 포크발라드 형식의 곡도 가능성은 보여줬지만 확실히 주류화되진 못하고 간간히 나오는 수준. 사족으로 이문세 곡들도 통기타 사운드 등은 없지만 몇곡은 포크&팝발라드 느낌이 나기도 한다. 한편 20세기 모던포크하면 오늘날 가장 유명한 편인 김광석도 4집 이전 1,2집 시절엔
너에게나
사랑이라는 이유로 등 발라드풍 곡들을 본인만의 포크 창법으로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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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발라드 전성기에 드라마타이즈 MV들이 유행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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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록 업계 자체가 차분한 곡부터 꽤 신나는 곡까지 스펙트럼이 제법 넓다보니 록밴드계에서 록발라드의 입지를 어느정도 대체한 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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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와 무관한 가수들이
음모론에 희생당한 측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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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한때 인기를 끈 랩, 힙합 노래들도 차트에선 예전만큼의 힘은 못 쓰고 있다. (이후 힙합이나 록 등은 행사나 페스티벌쪽으로 많이 빠진 감도 있다.) 이정도면 장기적인 지속성은 아이돌 장르와 함께 투탑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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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역설적이게도 가장 세대 구분없이 호불호 안타는 장르 중 하나가 발라드기도 하다. 힙합이나 아이돌 음악은 청년층 위주고, 트로트는 노년층이 소비하는 현실에서 그나마 포크송마저 음원 성적은 발라드에 밀린지 오래니 어찌보면 당연한 소리. 록도 하드록 쪽은 불모지 수준이 된지 오래고, 재즈나 클래식은 애초에 매니아 영역이었으며, R&B도 사실 한국에선 R&B 발라드화 되어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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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드립은 일제강점기의 한국학자인 야나기에 의해 촉발된 전형적인 문화결정론에 입각된 썰이다. 자세한 것은
한(감정)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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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상인
황인욱은 정작 술라드를 내세움에도 술을 즐겨 마시진 않는다고 한다. 먹는 건 잘 먹는데 잘 안 한다고.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가수 준비로 언제든 노래해야 한다며 술을 잘 안 먹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35]
2019년 이후 '술라드'라는 신조어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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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사실 아이돌 업계 더 나아가 거의 모든 음악 장르들도 지적받던 사항이긴 하다. 여기서 더 발전할 수 있냐의 문제. 아이돌 업계는 이를 글로벌 작업가들과의 협업 등으로 개선한 반면, 다른 장르는 그럴만한 자본도 의지도 없다보니 지지부진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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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2023년 유재하 모교인 한양대에서 유재하가 만든
가리워진 길을 편곡해 공식 응원가로 채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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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유재하나
김동률같은 그들 기준 오리지널 가수들은 여기서도 클래식이라고 호평을 받는다. 한편으론 근본 발라드라고 부르면서 도대체 술라드, 양산형 발라드와 느낌이 다른 이유가 뭔가 명확한 기준을 나누는게 가능한가 술라드라고 무조건 나쁜건가 등으로 나름 진지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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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브릿지 구간을 도입해서 일정 변화를 주는 경우도 많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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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야생화 등 사랑 노래가 아닌 발라드도 없는 건 아니지만 가사가 약간 중의적인 편이라 사랑 노래로 해석할 만한 여지가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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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로
황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