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1-20 11:40:19

미하일 아센 1세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b4436, #ab4436 20%, #ab4436 80%, #ab4436); color: #fce774;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ce774> 제1제국
<rowcolor=#fce774> 둘로 왕조
아스파루흐 테르벨 코르메시 세바르
<rowcolor=#fce774> 혼란기
코르미소쉬 비네흐 텔레츠 사빈
우모르 토크투 파간 텔레리그
<rowcolor=#fce774> 크룸 왕조
카르담 크룸 오무르타그 말라미르
프레시안 1세 보리스 1세 블라디미르 시메온 1세
<rowcolor=#fce774> 크룸 왕조 코미토풀리 왕조
페터르 1세 보리스 2세 로만 사무일
<rowcolor=#fce774> 코미토풀리 왕조
가브릴 라도미르 이반 블라디슬라프 프레시안 2세
<rowcolor=#fce774> 동로마 지배기
페터르 2세 페터르 3세
<rowcolor=#fce774> 제2제국
<rowcolor=#fce774> 아센 왕조
페터르 4세 이반 아센 1세 칼로얀 보릴
이반 아센 2세 칼리만 아센 1세 미하일 아센 1세 칼리만 아센 2세
미초 아센 콘스탄틴 아센 1세 미하일 아센 2세 이반 아센 3세
<rowcolor=#fce774> 비왕조 테르테르 왕조 비왕조
이바일로 게오르기 테르테르 1세 스밀레츠 이반 2세
<rowcolor=#fce774> 비왕조 테르테르 왕조 시슈만 왕조
차카 토도르 스베토슬라프 게오르기 테르테르 2세 미하일 아센 3세
<rowcolor=#fce774> 시슈만 왕조
이반 스테판 이반 알렉산더르 이반 시슈만 이반 스라치미르
콘스탄틴 아센 2세
}}}
불가리아 공국 · 불가리아 차르국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 불가리아 공화국
}}}}}} ||

이름 마히일 아센 1세
(영어: Michael Asen I, 불가리아어: Михаѝл Асен I)
출생 1238년
사망 1256년
직위 불가리아 제2제국 차르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불가리아 제2제국 7대 차르.

2. 생애

1238년 이반 아센 2세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2대 데스포티스이자 테살로니키 제국 초대 황제 테오도로스 콤니노스 두카스의 딸 이리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246년 8월 또는 9월 칼리만 아센 1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8살의 나이로 차르가 되었다. 어머니 이리니와 불가리아 총대주교 페터르가 그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1246년 니케아 제국 황제 요안니스 3세는 소년 차르의 집권으로 혼란스러운 불가리아를 전격 침공하여, 벨버즈드, 멜니크, 스코페, 세레스, 필리레프, 테살피나 등 여러 도시를 공략했다.

1247년, 불가리아는 영토의 약 1/3을 내주며, 라틴 제국을 상대로 군사 작전을 펼치는 니케아 제국을 지원해야 하는 조건으로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헝가리 역시 공세를 개시하여 베오그라드 등 여러 지역을 공략했고, 항거리 왕 벨러 4세는 자신의 칭호에 "불가리아의 왕"을 추가하였다. 또한 이피로스 통치자 미하일 2세 콤니노스 두카스도 불가리아를 공격해 마케도니아 서부를 점령했다.

1254년 이리니 황후는 섭정 직을 잃었고, 페터르만 섭정으로 남았다. 1254년 11월 3일 요안니스 3세가 사망하자, 그해 12월 불가리아는 니케아 제국에 대한 반격을 개시했다. 그들은 스타니마카, 페루시티사, 크리힘, 체피나 페르페레크 요새를 탈환했다. 새 황제 테오도로스 2세는 주력군을 소아시아에서 발칸 반도로 파견하여 불가리아군을 물리치고 로도프 산맥의 요새 대부분을 탈환했다. 1255년 말, 헝가리 왕 벨러 4세의 손녀 안나 아르파드와 헝가리의 봉신인 로스티슬라프 미하일로비치 대공의 딸인 안나 로스티슬라브나와 결혼하였고, 앞으로는 헝가리의 군대를 지원받기로 하였다.

1256년 봄, 미하일 아센 1세는 헝가리의 지원에 힘입어 니케아 제국을 공격하여 트라키아를 약탈했지만, 곧 테오도로스에게 격파되었다. 그해 6월 장인 로스티슬라프에게 불가리아와 니케아의 화해를 중재해줄 것을 요청했다. 테오도로스 2세는 미하일이 불가리아가 일전에 잃었던 영토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을 때에야 평화 협약에 서명하겠다고 하였다. 로스티슬라프는 이에 동의하였고, 양국은 마리차 강의 상류를 국경으로 정했다. 귀족들은 이 결정에 격노하였고, 칼리만 아센 2세는 터르노보 근교에서 사냥하던 미하일 아센 1세를 습격해 살해하고 황위를 찬탈했다. 그러나 미초 아센 콘스탄틴 아센 1세가 이에 불복하여 각자의 지배지에서 차르를 칭하면서, 불가리아는 세 차르간의 내전 시대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