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비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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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비 17대 국왕 Miro | 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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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미로 |
라틴어 | Miro | |
생몰 년도 | 미상 ~ 583년 | |
재위 기간 | 570년 ~ 5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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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에비 왕국 17대 국왕.2. 행적
연대기 작가 비클라의 요한은 570년에 테오데미르가 죽고 미로 왕이 뒤를 이었다고 기술했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가 어땠는지, 미로가 왕이 되기 이전에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는 기술하지 않았다. 572년, 미로는 칸타브리아에 거주하는 바스크 부족인 루스콘 족과 전쟁을 벌였다. 이는 왕국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행보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강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서고트 왕국을 자극했다.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서고트 왕국의 영역으로 삼겠다는 야망에 불탔던 리우비길드는 서고트 왕국에게 매년 공물을 바쳤던 루스콘 족을 공격한 점을 빌미삼아 수에비 왕국을 공략할 준비에 착수했다.바클라의 요한에 따르면, 리우비길드는 573년 사바리아에 진군하여 사프 부족의 영역을 황폐화시켰다고 한다. 사바리아는 자모라와 살라망카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이곳을 점령한 의도는 수에비 왕국을 공략할 전초기지 마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리우비길드는 아들 헤르메네길드와 레카레드 1세에게 점령지를 임의로 다스리게 했다. 574년, 리우비길드는 칸타브리아로 진군하여 저항하는 이들을 모조리 분쇄하고 수에비 왕국을 더욱 압박했다. 576년, 리우비길드는 수에비 왕국의 본토인 갈리시아로 쳐들어가 약탈과 파괴를 자행했다. 미로 왕이 사절을 보내 서고트 왕국을 주군으로 섬기며 매년 공물을 바칠 테니 평화 협약을 맺자고 청하자, 리우비길드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철수했다.
이렇듯 서고트 왕국의 공세가 갈수록 강성해지자, 미로는 이에 대응하고자 내부 단결을 꾀했다. 572년 제2차 브라가 공의회를 소집하여 가톨릭 조직 체계를 재정비했으며, 브라가 대주교이자 갈리시아의 대주교인 두미오의 마르틴과 친밀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마르틴은 미로의 조언자들에게 왕에게 더욱 훌륭한 조언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저서를 읽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580년 부르군트의 왕 군트람에게 사절을 보내 서고트 왕국을 견제해달라고 요청하려 했으나, 도중에 리우비길드의 동맹인 프랑크-네우스트리아의 왕 힐데베르트 2세의 군대에 사로잡혀 파리에 억류되었다가 1년 후에야 풀려났다. 한편 리우비길드는 579년경 아들 헤르메네길드와 프랑크-아우스트라시아의 왕 시게베르 1세의 딸 인군타의 결혼을 주선해, 프랑크 왕국과의 우호 관계를 돈독히하고자 했다.
580년, 헤르메네길드가 아내 인군타의 설득을 받아들여 "이단인 아리우스파로부터 가톨릭을 수호하겠다"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켰다. 투르의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미로는 583년 헤르메네길드의 반란을 지원하고자 세비야로 진군했다. 그러나 도중에 리우비길드의 군대에 포위되었고, 자신의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서고트 왕에게 충성을 서약해야 했고, 조국으로 귀환했다가 며칠 만에 세비야 인근의 나쁜 물과 건강에 해로운 기후의 여파로 심각한 질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한다. 세비야의 이시도르와 비클라의 요한에 따르면, 미로가 리우비길드 왕과 손을 잡고 헤르메네길드를 공격했다가 세비야 인근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수에비 왕국이 가톨릭을 따른 점, 고트족에 반감이 강했던 점 등을 근거로 그레고리우스의 기록이 사실에 근접할 거라고 본다. 사후 아들 에보리크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