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비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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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비 10대 국왕 Remismund | 레미스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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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레미스문트 |
라틴어 | Remismund | |
생몰 년도 | 미상 ~ 469년 이후 | |
재위 기간 | 464년 ~ 469년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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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에비 왕국 10대 국왕.2. 행적
세비야의 이시도르에 따르면, 말드라스 왕의 아들이라고 한다. 말드라스 왕이 암살자에게 피살당한 뒤, 프루마르와 리치문트 간의 왕위 다툼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464년경 두 사람 모두 거의 동시에 사망한 뒤 그가 왕위에 올랐다.[1] 6세기의 동로마 역사가 요르다네스는 수에비인들이 서고트 왕국의 군주 테오도리크 2세에게 레미스문트를 왕으로 세우는 걸 허락해달라고 요청해 허락받았다고 서술했다.반면, 당대 역사가 히다티우스는 레치아르 왕의 죽음과 아이울프 왕의 권력 장악 시도가 실패한 후 군주제가 몇년간 존재하지 않고 군사 지휘관들이 왕을 자칭하며 서로 싸우다가 레미스문트가 수에비인들에 의해 단독 군주로 세워진 뒤에야 분쟁이 종식되었다고 기술했다. 학계에서는 당시에 프루마르 왕에 의해 생포되어 수에비족과 함께 산 적도 있던 히다티우스의 기록이 진실에 근접할 거라고 본다.
세비야의 이시도르에 따르면, 그는 테오도리크 2세에게 사절을 보내 동맹을 청하자, 테오도리크 2세는 고트족 귀족의 여인을 보내 아내로 삼게 하고 우수한 품질의 무기를 보내줬다고 한다. 466년 테오도리크 2세를 시해하고 왕위에 오른 에우리크가 그에게 사절을 보내 자신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하자 즉시 받아들였다. 468년 루시타니아를 침공하여 코임브라를 점령하고 철저하게 약탈했으며, 일부 집과 성벽 일부를 파괴했다. 마을 주민들은 모조리 포로로 잡히거나 도망쳤고, 도시는 버려졌다.
469년, 레미스문트는 히스파니아-로마인 루시디우스의 배신 덕분에 리스본 시를 점령했다. 이후 에우리크가 수에비 왕국으로 쳐들어가 약탈을 자행하자, 루시디우스를 안테미우스 황제에게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469년 이후 히다티우스의 연대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기에, 레미스문트의 이후 통치가 어땠으며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다. 그 후 수에비 왕국은 558년 또는 559년에 아리아미르 왕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할 때까지 90여년간 '기록의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1]
일각에서는 그가 리치문트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다수의 학자들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