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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30 14:17:26

말레리안

Mahlerian

1. 개요2. 탄생 배경3. 말레리안의 길4. 말레리안의 업적(?)5. 유명한 말레리안들
5.1. 음악인5.2. 비음악인5.3. 애매한 인물들

1. 개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열렬한 팬을 말한다. 작곡가 이름을 보존한 표기인 말러리안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부른다.[1]

클래식 음악 계에서는 바그네리안, 브루크네리안과 함께 가장 막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팬덤이다. 다만 그냥 극성팬 수준으로 평가받는 바그네리안과 특별한 이미지는 없는 브루크네리안과는 달리, 클래식 커뮤니티(특히 클래식 갤러리)에서는 허세 중의 허세로 까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말러가 과거에 난해한 음악으로 평가받다가 비교적 근래에 재조명을 받다보니 아무래도 스스로 있어 보인다는 생각, 즉 허세를 가지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듯하다.

이러한 허세를 부리는 말레리안은 비단 국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전 국회의원 홍정욱의 자서전 '7막 7장'에 소개되어 있는 허세 룸메이트의 사례처럼 미국에서도 우리보다 30년가량 앞서 갑작스레 말러 붐이 일면서 말러를 들으면 있어보인다는 이미지와 그로 인한 허세가 생겨난 듯하다. 이와 비슷하게 지휘자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역시 말레리안을 만난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자신이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 3번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는 한 관객이 이런 곡은 단 하나밖에 없을 것이라 말했을 때 '눈물을 흘릴 만한 곡은 말러 이외에도 많으며 진짜 말러만이 그런 곡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정신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2. 탄생 배경

말러는 생전에는 지휘자로 최고의 명성을 얻었지만, 작곡가로서의 그는 안톤 브루크너처럼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다. 자신의 곡이 초연에서 대대적으로 성공한 적은 교향곡 3번과 8번 정도밖에 없었으며[2], 생전에 그와 친했던 브루노 발터 오토 클렘페러 등의 지휘자들에 의해 간간이 연주될 뿐이었다.[3] 그나마도 나치의 유대인 탄압 정책과 금지곡 지정에 의해 유럽에서는 사실상 씨가 끊겼다.

물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나 조지 셀 등 다양한 지휘자들이 말러를 연주하기도 했지만 푸르트벵글러의 경우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같은 가곡들을 주로 지휘했고,[4] 조지 셀은 간간이 교향곡도 지휘하기는 했지만 이는 그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실력 테스트(?)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랬던 그의 음악이 주목받게 되는 것은 1960년대, 레너드 번스타인에 의해서이다.[5] 미국 최고의 지휘자로 주목받는 그가 말러의 교향곡 전집을 녹음하고, 그가 주최하는 청소년 음악회에서까지 말러의 음악을 소개하면서 말러 음악의 부흥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번스타인의 말러 교향곡 전집은 최초의 전집 녹음도 아니었고, 같은 시기에 모리스 아브라바넬,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라파엘 쿠벨릭에 의해서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번스타인의 파급력이 컸던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 1960년대 미국, 유럽에서는 히피문화와 같이 정신적 공허함을 채우고자 하는 바람이 일었고, 철학적인 소재의 말러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1999년부터 2003년 사이에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국내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여 크게 주목받았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말레리안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잠시 주춤하던 말러 붐은 2010-11년 탄생 150주년, 사망 100주년이 겹치면서 다시 한번 크게 폭발한다. 전세계적으로 말러의 음악을 연주하였고, 한국에서도 서울시립교향악단, 제주도립교향악단, KBS 교향악단에서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였다.

3. 말레리안의 길

일단 기본은 교향곡 전곡 감상. 게다가 말러의 교향곡들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 요하네스 브람스 등 다른 작곡가들의 교향곡에 비교해 긴 편이라[6] 참 멀고도 험한 길이다. 어쨌든 교향곡 1-9번과 대지의 노래(그리고 경우에 따라 미완성 10번까지), 이어서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를 비롯한 연가곡을 또 전곡 감상해야 말레리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4. 말레리안의 업적(?)

위에서도 말했듯이 말레리안의 역사는 듣보잡 시절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왔기 때문에 더욱 눈물겹다. 그래서 이들의 덕질 역시 다른 클래식 빠들의 그것 이상인데, 오디오 장비는 기본이요, 실황 공연 한번을 위해 산넘고 물건너가는 일도 간간히 있다.[7] 거기다가 전도를 위해 클래식 커뮤니티에 말러 홍보글을 올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후술할 길버트 카플란처럼 자기가 직접 오케스트라까지 빌려가며 지휘, 연주하는 사례도 있다!

5. 유명한 말레리안들[8]

5.1. 음악인

5.2. 비음악인


위의 인물들 가운데 클림트, 토머스 만은 말러의 부인 알마 말러와도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5.3. 애매한 인물들



[1] 사실 '브루크너-브루크네리안', '바그너-바그네리안'처럼 독일어 접미사 '-ian'의 발음을 반영한 '말레리안'이 옳은 표기이다. # 그러나 실제 국내에서는 '말러리안'이라는 표기를 훨씬 많이 쓴다. [2] 교향곡 2번은 초연 당시에 대중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평론가들에게는 혹평을 들었다. 참고로 3번은 전곡 초연 전에 부분적으로 연주되었을 당시에는 평가가 나빴다고 한다. [3] 물론 2차 대전 전에도 말러 교향곡은 전곡 음반이 (그것도 SP 시절에!) 4종이나 나왔고 심지어 일본에서도 연주, 녹음될 정도로 나름대로의 인지도는 있었다. 그래서 말러가 대중들에게 잊혀졌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는 19세기 초까지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처럼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았지만 대중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4] 사실 젊었을 적에는 1~4번 교향곡을 연주한 기록이 남아있지만, 녹음도 남아있지 않을 뿐더러 푸르트벵글러는 교향곡 작곡가로서 말러는 그다지 좋은 평가는 내리지 않았다.(공교롭게도 푸르트벵글러도 말러처럼 자신을 '지휘도 하는 작곡가'로 여긴 것은 물론, 생전에는 지휘자로서만 유명했고 작곡가로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다. 실제로 푸르트벵글러는 피아노 협주곡 1곡과 3곡의 교향곡을 작곡한 수준급의 작곡가이기도 했다.) [5] 마침 1960년대의 시작인 1960년은 말러가 태어난 1860년으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였고, 그 다음 해인 1961년은 말러의 사망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번스타인도 말러와 같은 유대인이었다. [6] 가장 짧은 1번이 50분, 가장 긴 3번은 무려 100분이 넘어간다. [7] 2010년에 광주광역시에서 교향곡 2번을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차타고 2-3시간 걸려 도착한 사례도 있었다. [8] 가나다 순으로 정렬. [9] 오해하지 말자면 '유명 작곡가' 중 처음으로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깬 사람이라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커녕 말러 이전에도 루이 슈포어와 요아힘 라프처럼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깬 교향곡 작곡가는 분명히 존재했다. [10] 번스타인은 말러가 죽은지 7년 후인 1918년에 태어났다. [11] 다만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지는 않았고 일부만을 레퍼토리로 삼았다. 일례로 미완성작인 10번은 그렇다 쳐도(애당초 발터는 10번 교향곡의 완성에 크게 반대했던 사람이다.), 3번과 6~8번은 녹음하지 않았다. [12] 반대로 말러 역시 클림트의 팬이기도 했다고 전한다. [13] 실제로 클렘페러는 노년기인 60년대에 레너드 번스타인 등에 의해 촉발된 말러 열풍을 목도했는데, 사람들이 그전에 무시되던 말러가 갑작스레 열풍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며 사람들이 말러를 잘 알게 된 점을 반가워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말러의 모든 교향곡을 빨아대는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14] Gilbert Kaplan, 1941~2016, 미국의 금융인 겸 경제잡지 출판자 [15] 그가 1991년에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을 따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공개 지휘한 곡은 말러 2번 교향곡 뿐이었다. [16] 하지만 극중에서 이 캐릭터의 대접은 그리 좋지 않다. 후원하고 있는 전문 지휘자인 주인공에게 가르침을 구걸하고 마지막엔 대체 지휘자로 공연하다가 화난 주인공에게 얻어터지는 역으로 나온다. 그리 진지한 지휘자는 아니었다지만, 음악에 애정은 있는 사람을 너무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이 많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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