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일본사 (1983~1984) まんが日本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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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a3c,#dddddd {{{#!wiki style="margin: 0px -11px" {{{#!folding 작품 정보 ▼ |
장르 | 역사 | |
각본 | 타시로 준지(田代淳二) | ||
치프 디렉터 | 콘도 에이스케(近藤英輔) | ||
캐릭터 디자인 | 야타베 유지(谷田部雄次) | ||
미술 감독 | 후루야 아키라(古谷彰) 외 다수 | ||
촬영 감독 | 카네코 히토시(金子仁) | ||
편집 | 오카야스 하지메(岡安肇) | ||
녹음 감독 | 야마자키 히로시(山崎宏) | ||
음악 | 사토 켄(佐藤健) | ||
제작 협력 | 쇼가쿠칸 | ||
제작 | 츠치다 프로덕션 | ||
방영 기간 | 1983. 04. 03. ~ 1984. 04. 08. | ||
방송국 | 닛폰 테레비 / (일) 10:30 | ||
편당 러닝타임 | 24분 | ||
화수 | 52화 | ||
시청 등급 | 정보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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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3년 4월 3일부터 1984년 4월 8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에 닛폰 테레비에서 총 52편이 방영되었던 어린이용 역사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츠치다 프로덕션.2. 특징
일본 역사를 사건 중심으로 다루었으며, 조몬 시대부터 메이지 유신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센고쿠 시대의 경우는 역사순서를 완전히 따르지 않고 오다 노부나가 시기에는 여러 창작물처럼 다케다 신겐 VS 우에스기 겐신을 먼저 다루고 오다 노부나가를 다룬다.
한국사와의 관계는 정말 드물게 다루는데 제일 사이가 가까웠다던 백제 및 고대 삼국 간의 관계는 언급을 안하고 넘어가지만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이나 임진왜란부터 언급을 한다.
관련 게시글(히스토리 채널 캡처본) 39화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시작한 임진왜란 묘사의 경우 임진왜란에 대해 중립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일본에서 만든 애니인만큼 일본의 관점이 아주 없진 않다. 대표적으로 중간에 나레이션으로 "당시 이씨왕조의 정치 실패로 조선 백성들은 궁핍한 삶을 살고 있었고 일본군이 조선에 왔을때 조선 백성들은 처음엔 일본군을 해방군으로 여겼다가 나중에 침략자로 여겨 저항하게 되었다."[2]라고 설명하는데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은 목릉성세라 불릴 정도로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였으며, 조선 백성들이 처음에 왜군을 해방군으로 여겼다면 임진왜란 초반 부산진 전투와 동래성 전투 당시 왜군에게 기왓장까지 던지며 끝까지 저항하였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왜군에게 붙은 순왜들이 없진 않았으니 아주 틀린말은 아니라는 옹호론도 있지만, 임진왜란 초반 부산진 전투,동래성 전투부터 격렬히 저항한 조선백성들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왜군을 해방군으로 여겼다 주장하는건 엄연한 역사왜곡이다.[3][4] 여담으로 여기서도 조선군은 포졸복 차림으로 나오고 강화 회담에 참여한 명나라의 심유경은 조선의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있다.[5] 그래도 마지막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영정이 나오며 동시에 나레이션으로 "조국을 지켜낸 영웅으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고 나온다.
3. 회차 목록
<rowcolor=#373a3c,#dddddd> 회차 | 제목 | 총 콘티 | 연출 | 작화감독 | 미술감독 | 방영일 |
1 |
일본의 탄생 ―원시시대의 생활― 日本の誕生 ~原始時代の生活~ |
콘도 에이스케 (近藤英輔)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4.3 |
2 |
환상의
야마타이국 ― 여왕 히미코― 幻の邪馬台国 ~女王卑弥呼~ |
1983.4.10 | ||||
3 |
야마토 조정의 성립 ― 고분과 오키미들― 大和朝廷の成立 ~古墳と大王たち~ |
후쿠다 키요무 (福田皖) |
1983.4.17 | |||
4 |
쇼토쿠 태자의 이상 ― 중국 문화와 불교의 전래― 聖徳太子の理想 ~中国文化と仏教の伝来~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1983.4.24 | |||
5 |
다이카 개신 ― 나카노오에 황자와 후지와라노 카마타리― 大化の改新 ~中大兄皇子と藤原鎌足~ |
야스미 테츠오 (八角哲夫) |
1983.5.1 | |||
6 |
진신의 난 ― 새로운 국가의 탄생― 壬申の乱 ~新しい国家の誕生~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카네무라 카츠요시 (金村勝義) |
1983.5.8 | ||
7 |
대불 개안 ― 불교 문화와 나라 시대― 大仏開眼 ~仏教文化と奈良時代~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5.15 | ||
8 |
간진 화상의 일본 방문 ― 견당사와 중국 문화― 鑑真和上の来日 ~遣唐使と中国文化~ |
코이즈미 켄조 (小泉謙三) |
요코타 카즈요시 (横田和善) |
카네무라 카츠요시 (金村勝義)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
1983.5.22 | |
9 |
도쿄의 야심 ― 귀족과 승려의 암투― 道鏡の野心 ~貴族と僧侶の争い~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5.29 | |
10 |
간무 천황과
헤이안쿄 ―사카노가미 타무라 마로의 에미시 정벌― 桓武天皇と平安京 ~坂上田村麻呂の蝦夷平定~ |
후쿠다 키요무 (福田皖)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사이토 하츠에 (斉藤初枝) |
1983.6.5 | ||
11 |
셋칸 정치의 시작 ―불타는 오텐몬― 摂関政治のはじまり ~燃える応天門~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6.12 | ||
12 |
후지와라씨의 독재정치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원령― 藤原氏の独裁政治 ~菅原道真の怨霊~ |
후쿠다 키요무 (福田皖) |
카네무라 카츠요시 (金村勝義)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
1983.6.19 | ||
13 |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난 ―떠오르는 지방의 호족― 平将門の乱 ~立ち上がる地方の豪族~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카와시마 아키라 (川島明)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사이토 하츠에 (斉藤初枝) |
1983.6.26 | |
14 |
꽃피는 왕조문화 ― 세이 쇼나곤과 무라사키 시키부― 花ひらく王朝文化 ~清少納言と紫式部~ |
코이즈미 켄조 (小泉謙三) |
코이즈미 켄조 (小泉謙三)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7.3 | |
15 |
무사의 분노 ― 장원과 후지와라씨의 쇠퇴― 武士のおこり ~荘園と藤原氏の衰え~ |
야스미 테츠오 (八角哲夫)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7.10 | |
16 |
호겐·
헤이지의 난 ― 귀족과 무사의 대립― 保元・平治の乱 ~貴族と武士の争い~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요코타 카즈요시 (横田和善) |
코이즈미 켄조 (小泉謙三) |
카네무라 카츠요시 (金村勝義)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
1983.7.17 |
17 |
번영하는
헤이시 ― 고시라카와 천황과 타이라노 키요모리― 栄える平氏 ~後白河法皇と平清盛~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카와시마 아키라 (川島明)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7.24 |
18 |
겐지의 거병 ―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동부의 무사들― 源氏の旗あげ ~源頼朝と東国武士~ |
후쿠다 키요무 (福田皖) |
요코타 카즈요시 (横田和善)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사이토 하츠에 (斉藤初枝) |
1983.7.31 |
19 |
겐페이 전쟁 ― 요시츠네의 분전과 헤이시 멸망― 源平の合戦 ~義経の奮戦と平氏滅亡~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8.7 | |
20 |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 무가정권과 봉건제도― 鎌倉幕府の成立 ~武家政治と封建制度~ |
코이즈미 켄조 (小泉謙三) |
카네무라 카츠요시 (金村勝義)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
1983.8.14 | ||
21 |
겐지의 멸망 ― 호죠 마사코와 죠큐의 난― 源氏の滅亡 ~北条政子と承久の乱~ |
야스미 테츠오 (八角哲夫)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8.21 | |
22 |
몽골의 침공 ―국난과 호죠 토키무네― 蒙古襲来 ~国難と北条時宗~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카와시마 아키라 (川島明)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
1983.9.4 |
23 |
가마쿠라 막부의 붕괴 ― 고케닌의 불만과 확산되는 내란― 鎌倉幕府の崩壊 ~御家人の不満と広がる内乱~ |
후쿠다 키요무 (福田皖)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9.11 |
24 |
겐무 신정 ― 고다이고 천황의 이상― 建武の新政 ~後醍醐天皇の理想~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
1983.9.18 | |
25 |
남조와 북조의 대립 ― 아시카가 타카우지 막부를 세우다― 南朝と北朝の対立 ~足利尊氏幕府を開く~ |
야스미 테츠오 (八角哲夫)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코이즈미 켄조 (小泉謙三)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9.25 |
26 |
남북조의 통일 ― 무로마치 막부의 기반을 굳히다― 南北朝の統一 ~室町幕府の基礎固まる~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
1983.10.2 |
27 |
무로마치 막부의 번영 ― 아시카가 요시미츠와 키타야마 문화― 室町幕府の繁栄 ~足利義満と北山文化~ |
코하나와 타메오 (小華和為雄)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10.9 | |
28 |
흔들리는
무로마치 막부 ―쇼쵸의 도 잇키― ゆれる室町幕府 ~正長の土一揆~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카와시마 아키라 (川島明) |
카네무라 카츠요시 (金村勝義)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
1983.10.16 |
29 |
오닌의 난 ― 내란과 하극상― 応仁の乱 ~内乱と下剋上~ |
후쿠다 키요무 (福田皖)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오카세코 노부히로 (岡迫亘弘)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10.23 |
30 |
봉기하는 민중 ―히가시야마 문화의 광요― 立ち上がる民衆 ~東山文化の輝き~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사이토 하츠에 (斉藤初枝) |
1983.10.30 |
31 |
센고쿠 시대의 개막 ― 호죠 소운과 모리 모토나리― 戦国時代の幕開け ~北条早雲と毛利元就~ |
야스미 테츠오 (八角哲夫)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코이즈미 켄조 (小泉謙三)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11.6 |
32 |
조총의 전래 ― 그리스도교와 서양 기술― 鉄砲の伝来 ~キリスト教と西洋技術~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카네무라 카츠요시 (金村勝義)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
1983.11.13 |
33 |
전국의
군웅 ― 타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켄신― 戦国の群雄 ~武田信玄と上杉謙信~ |
코하나와 타메오 (小華和為雄)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카와시마 아키라 (川島明)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11.20 |
34 |
오케하자마 전투 ― 오다 노부나가와 키노시타 토키치로― 桶狭間の戦い ~織田信長と木下藤吉郎~ |
후쿠다 키요무 (福田皖)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
1983.11.27 |
35 |
혁명아
오다 노부나가 ― 잇코잇키와 히에이잔 방화― 革命児 織田信長 ~一向一揆と比叡山の焼き討ち~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12.4 | |
36 |
혼노지의 변 ―
영웅의 최후― 本能寺の変 ~英雄の最期~ |
후쿠다 키요무 (福田皖)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카네무라 카츠요시 (金村勝義)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
1983.12.11 | |
37 |
천하통일로의 길 ―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天下統一への道 ~豊臣秀吉と徳川家康~ |
코하나와 타메오 (小華和為雄)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3.12.18 | |
38 |
히데요시 드디어 천하를 얻다 ― 봉건제도의 확립― 秀吉ついに天下を取る ~封建制度の確立~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코이즈미 켄조 (小泉謙三)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사이토 하츠에 (斉藤初枝) |
1983.12.25 |
39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 ― 조선 출병과 아즈치 모모야마 문화― 豊臣秀吉の野望 ~朝鮮出兵と安土桃山の文化~ |
야스미 테츠오 (八角哲夫)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카와시마 아키라 (川島明)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4.1.8 |
40 |
세키가하라 전투 ― 이에야스와 이시다 미츠나리의 대결― 関ヶ原の合戦 ~家康と石田三成の対決~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카네무라 카츠요시 (金村勝義)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
1984.1.15 |
41 |
이에야스
에도 막부를 세우다 ― 오사카 여름의 진과 토요토미씨 멸망― 家康江戸幕府を開く ~大坂夏の陣と豊臣氏滅亡~ |
후쿠다 키요무 (福田皖)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카와시마 아키라 (川島明)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4.1.22 |
42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치 ― 막부 260년의 기반을 굳히다~ 徳川家康の政治 ~幕府二百六十年の基礎固まる~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사이토 하츠에 (斉藤初枝) |
1984.1.29 |
43 |
크리스천 탄압 ― 쇄국과 시마바라의 난― キリシタンの弾圧 ~鎖国と島原の乱~ |
오타 키요시 (太田清)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코이즈미 켄조 (小泉謙三)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4.2.5 |
44 |
사농공상 ― 신분제도의 확립과 겐로쿠 문화― 士農工商 ~身分制度の確立と元禄文化~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오미야 히사에 (大宮久江) |
1984.2.12 |
45 |
요동치는
봉건제도 ― 교호의 개혁의 확립과 타누마 시대― ゆらぐ封建制度 ~享保の改革と田沼時代~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카와시마 아키라 (川島明)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4.2.19 | |
46 |
에도
조닌문화의 개화 ― 란가쿠와 국학― 江戸町人文化の開花 ~蘭学と国学~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사이토 하츠에 (斉藤初枝) |
1984.2.26 | |
47 |
정체되는
막부 ― 북방탐험과 오시오 헤이하치로의 난― ゆきづまる幕府 ~北方探検と大塩平八郎の乱~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4.3.4 | |
48 |
흑선 오다 ― 이이 나오스케와 안세이의 대옥사― 黒船来たる ~井伊直弼と安政の大獄~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코이즈미 켄조 (小泉謙三)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오미야 히사에 (大宮久江) |
1984.3.11 |
49 |
존황양이 ― 막부 말기의 지사들― 尊王攘夷 ~幕末の志士たち~ |
오타 키요시 (太田清)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4.3.18 |
50 |
양이에서
막부 토벌로 ― 사쓰마 연합과 사카모토 료마― 攘夷から倒幕へ ~薩長連合と坂本龍馬~ |
야자와 노리오 (矢沢則夫)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노다테 세이이치 (野館誠一)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사이토 하츠에 (斉藤初枝) |
1984.3.25 |
51 |
에도 막부의 붕괴 ― 대정봉환과 보신전쟁― 江戸幕府の崩壊 ~大政奉還と戊辰戦争~ |
후쿠모토 키요시 (福本潔) |
야타베 유지 (谷田部雄次) |
후루야 아키라 (古谷彰) |
1984.4.1 | |
52 |
메이지 유신 ― 신정부의 출발― 明治維新 ~新政府の出発~ |
오카모토 타츠야 (岡本達也) |
카와시마 아키라 (川島明) |
반노 마사요시 (番野雅好) 오미야 히사에 (大宮久江) |
1984.4.8 |
[1]
비유컨대, 한국의 아동용 역사 교양 애니메이션에서 고고학과 사료비평에 기반하여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필터링하여,
단군왕검 ·
동명성왕 ·
박혁거세를 과감히 생략한 셈이다.
[2]
당시 일본은
센고쿠 시대,
텐쇼 시대의
군웅할거
난세로써 일본에서 포로 생활을 한
강항의
간양록에는 당시
일본인들마저 조선은 진실로 낙국(樂國)이고 일본은 진실로 더러운 나라였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을정도였는지라 "이씨왕조의 정치실패로 조선백성들은 궁핍한 삶을 살았고 그래서 초반에 일본군을 해방군으로 여겼다."는건 상당히 과장된 언급이다.
[3]
물론 이 작품이 나온 80년대 일본은 지금 일본에 비해 일본내
반한 및
혐한감정이 없다시피했는지라 악의적인 역사왜곡이라기보다는 자료수집의 한계라고 봐야겠지만 이 작품이 나오고 20여년 뒤 발견된
동래성 전투 당시 왜군에게 저항하다 학살당한 조선백성들의 유골을 생각해보면 초반에 조선 백성이 왜군을 해방군으로 여겼다는 나레이션의 언급은 현대 한국인 입장에서는 왜군의 손에 살해당한 조선백성들에 대한 고인모독으로 여겨질수밖에 없는지라 국내 여러 커뮤니티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관련 게시글.
[4]
비슷하게 일본 작품 내에 임진왜란이 언급되는 작품으로
고우 ~공주들의 전국~에서 묘사된 임진왜란의 경우 이와 달리 일본 입장에서 침공군 일본군 및 조선백성들이 왜군을 해방군으로 여기는 묘사는 전혀 없고 오히려 멋대로 농작물을 가져간 왜군들을 도둑놈이라고 비난하며 반항하는 장면도 있다.
[5]
다만 실제 명나라 시기 남성 복식은 조선시대 남성 복식과 매우 유사하여 언뜻보면 구분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