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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8:04

마틸다 II/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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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틸다 II의 실전 기록을 정리한 문서.

2. 제2차 세계 대전

2.1. 프랑스 침공

파일:vg8H9UH.jpg
프랑스 전선에서 격파된 영국 원정군 소속 마틸다 II Mk. II 네임드 차량 "고트"
프랑스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마틸다 II는 동시기 프랑스군의 중보병전차 르노 B1과 마찬가지로 당시 독일 국방군의 주력이던 3호 전차 4호 전차의 주포탄을 강력한 전면 장갑으로 막아내면서 독일군 전차대를 유린하며 독일군 장병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이후 프랑스가 항복하면서 영국군이 덩케르크 철수작전으로 몸만 빠져나오는데 급급한 와중에 많은 양의 A9/A10 순항전차, 마틸다 1, 2 보병전차들과 브렌건 캐리어 같은 장갑차량들을 두고갈 수 밖에 없었기에 영국군의 전력 상황이 악화됐다.

2.1.1. 아라스 전차전

파일:Matilda_named_Creenock_T6909.jpg
아라스 전차전 당시의 영국 원정군 소속 마틸다 II 초도생산분 네임드 차량 "그리녹"
아라스 전차전 당시, 영국군 산하 2개 전차연대 소속으로 다수의 마틸다 II가 동원되어 독일군을 상대로 분전하였으나, 독일군의 8,8cm 대공포에 의해 다수가 격파되고, 공군 Ju 87 공세에 의해 전체 기갑전력 중 2/3을 손실하는 피해를 입고 퇴각하게 되었다.

2.2. 몰타 항공전

파일:Matilda_II_at_Malta.png
몰타 항공전 당시 격추된 항공기를 견인하는 영국 육군 소속 마틸다 II Mk. III
몰타 항공전 당시 상륙 작전 방어를 위해 배치된 마틸다 II 4대가 격추된 항공기의 견인차량으로 동원되었다.

2.3. 북아프리카 전역

파일:matilda-17.jpg
북아프리카 전역 당시의 영국 육군 소속 마틸다 II Mk. III
북아프리카 전역 당시 매우 많은 개체가 영국군 소속으로 투입되어 전투를 치렀으나, 독일 국방군의 강력한 기갑전력에 의해 전역 후반이 되면 다수의 차량이 2선으로 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왕국군 및 초기의 독일 국방군 상대로 파죽지세로 몰아붙여가며 엄청난 전과를 내었으며 보병전차라는 구식 교리의 한계에도 매우 분전하였다는 것이 현재의 중론이다.

북아프리카 전역 이후 후속 전차인 밸런타인 전차로 대체되면서 2선급 전력으로 변경되었다.
북아프리카 전선 당시의 독일 국방군 소속 Pz.Kpfw. Mk II 748(e)
이 시기 독일 국방군도 북아프리카 전역에 차출된 인도 제국군이나, 토브룩을 점령할 때 얻은 마틸다를 다수 노획하여 사용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2.3.1. 나침반 작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tildaII.jpg
나침반 작전 당시 이탈리아 왕국군기를 탈취한 영국 육군 소속 마틸다 II Mk. III 네임드 차량 "글레노어"[1]
1940년, 이탈리아 왕국군이 리비아에서 이집트를 침공하자 영국군은 일단 국경에서 퇴각했으나,[2] 이탈리아군은 부족한 보급 수송 역량 때문에 곧 진격이 정체되었고, 이에 중동 사령관 웨이벌은 오코너를 야전 지휘관으로 삼아 이탈리아 왕국군을 몰아내는 "나침반 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여기서 1개 대대분의 마틸다 II 전차들이 선봉에 섰는데, 당시 이탈리아군의 포탄을 모조리 막아내면서 대활약, 이집트에서 쫓아내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리비아에서도 몰아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22량의 손실이 발생했는데 그중 단 한 대만이 전투 중 손실이었고 나머지는 비전투 손실이었다.

2.3.2. 토브룩 전투

파일:Tobruk_British_Matilda_II_November_18th_1941.jpg
제1차 토브룩 전투 당시의 영국 육군 소속 마틸다 II Mk. III
토브룩 전투 당시, 영국군 측에서 다수를 사용했다.

당시 엄청난 장갑으로 인해 초반에는 독일군을 상당히 고전시켰으나, 이전 마틸다와의 전훈으로 인해 8,8cm 대공포를 가져온 독일군에 의해 다수의 마틸다가 격파당하고 노획되는 참패를 당했다.

2.3.3. 배틀액스 작전

파일:battleaxe_matilda_Tank.jpg
배틀액스 작전 당시 유기된 영국 육군 소속 마틸다 II Mk. III
이탈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파견된 에르빈 롬멜과 아프리카 군단의 공세에 영국군은 이탈리아로부터 빼앗은 리비아 전역을 거의 상실하고 이집트로 물러났으며, 롬멜 휘하의 아프리카 군단과 이탈리아군은 토브룩을 포위한다.

이 과정에서 시간을 번 영국군은 200여대의 마틸다 II를 서부사막에 급파, " 배틀액스 작전"을 통해 독일군을 몰아내려 하나, 8,8cm FlaK 3호 전차, 4호 전차 등을 연계한 롬멜의 작전에 말려들어 참패하였다.

여기서 총 12량의 마틸다가 독일군에게 노획되어 사용되었다.

2.3.4. 십자군 작전

파일:matilda-1.jpg
십자군 작전 당시의 영국 육군 소속 마틸다 II Mk. III 네임드 차량 "팬텀" T6968번차
토브룩의 독일군을 약화 및 독일/이탈리아 군을 몰아내기 위해 개시한 십자군 작전 당시 다수의 차량이 동원되어 사용되었다.

2.3.5. 엘 알라메인 전투

파일:Matilda-Scorpion.jpg
엘 알라메인 전투 당시의 영국 육군 소속 마틸다 스콜피온
제1차,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 모두 독일군, 영국군 양 측에서 대량이 사용되었는데, 이 시기 공병전차 개조형인 마틸다 스콜피온이 최초로 실전을 치르며 독일군이 조성한 지뢰밭을 돌파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독일 국방군의 경우, 직전 토브룩을 점령하며 노획한 다수의 마틸다 II를 동원하였는데, 이는 영국군을 혼란에 빠지게 하여 어느정도 분전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같은 독일 국방군 측에서도 마틸다가 돌아다니는 것에 깜짝 놀라 대전차반이 출동해 같은 독일 국방군 소속의 마틸다를 사격하는 일이 잦았기에 식별용 철십자를 덕지덕지 부착하고 다닌다는 것을 영국군이 간파하여 초기 이후로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투는 결국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으며, 패주하는 독일 국방군은 이 느린 전차를 가져갈 여유가 도저히 없었기에 대량을 유기하고 가버려 영국군이 다시 탈환하여 쓰게 되었다.

2.4. 독소전쟁

파일:Chetyrem_Geroyev_Matilda_Mk.IV.png
독소전쟁 당시 소련 육군 제202전차여단 산하 제182분리전차대대 소속 MK-II 네임드 차량 "체티렘 게로예프"[3]
독소전쟁 시기, 소련에도 공여되어 "МК-II"라는 제식명으로 운용되었다.

하지만 소련에 공여될 시기에는 OQF 2파운더 포의 화력이 슬슬 부족해질 시기여서 소련 측에서도 영국과 상담을 했고, 영국 측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2파운더 전차포 대신, 3인치 곡사포를 장착한 CS형을 일부 보내주었는데, 해당 차량들은 독일군의 벙커나 경장갑 차량을 상대로 활약할 수 있었다.

설원에서의 스커트 및 기동성의 문제점이 있었지만, 소련군의 전차 전력 다수가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거의 유실된 1942년에 들어온 마틸다는 소련제 전차들과 차원이 다른 신뢰성에다 KV-1 못지 않은 방어력 등으로 밸런타인 전차과 함께 일선 병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독소전쟁 당시의 마틸다 전차 에이스로는 소련 육군 제15근위전차여단 소속 전차장 "나우모프 콘드라티 1세"가 있으며, 그는 도합 11량의 전차와 4개의 대전차포를 격파한 전과를 기록하였다.

다른 마틸다 에이스로는 M4A2 에이스로 잘 알려진 드미트리 로자가 있는데, 그는 제2차 스몰렌스크 전투 당시 마틸다에 탑승한 채로 전차 3대를 격파하는 활약을 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 6호 전차 티거에 피격당해 전차가 완전 파괴되어 후방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소련 육군 소속 MK-II 운용 영상
상단의 영상에서 독소전쟁 시기 소련에서 운용하였던 마틸다를 볼 수 있다.

2.4.1. 모스크바 공방전

파일:Moskow_Matilda.jpg
모스크바 공방전 당시의 겨울 위장 도색 도포 소련 육군 소속 MK-II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사용되었던 마틸다가 소련 땅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바로 모스크바 공방전 당시였다.

이 시기 전차 전력의 부족으로 소련은 각국에 손을 빌려 영국으로부터 마틸다 전차와 밸런타인 전차를, 미국으로부터 스튜어트 전차를 공여받아 사용했는데, 이 당시 밸런타인 전차와 더불어 높은 보병지원 능력과 견고한 장갑으로 적들과 전투를 치르기 적합하다고 소련 군부에서 판단하여 공여받을 차량 중 하나로 낙점하게 되었다.

2.4.2.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

파일:matilda_15.jpg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 당시의 소련 육군 소속 MK-II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 당시 MK-III과 함께 다수가 투입되어 독일군과 전투를 치른 기록이 남아있다.

2.4.3. 스탈린그라드 전투

파일:Battle_of_velikiye_luki_MK-II.jpg
벨리키예루키 전투 직후 전복된 소련 육군 제3충격군 소속 MK-II
스탈린그라드 공방전과 동시기에 벌어졌던 벨리키예루키 전투 당시 제3충격군 소속으로 마틸다 전차가 투입되었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이 결국 벨리키예루키 방면의 철도를 방어해냄에 성공함으로써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를 측면에서 포위할 계획이 완전히 와해되었으며, 결국 항복을 택하게 되었다.

2.4.4. 바그라티온 작전

파일:external/wio.ru/matilda.jpg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우크라이나 전선의 소련 육군 제68군 산하 제5기계화군단 소속 MK-II "40번차"
1944년 6월 1일, 바그라티온 작전이 진행되기 약 20일 전, 소련에서 사용 가능한 262량의 마틸다들 중 201량이 수리 공장에 있었고 1선에는 48대만이 있었다.

해당 전차들은 일선에서는 사용하기 부적합하다는 판단 하에 후방으로 돌려진 상태였지만, 보병을 지원하는데에는 나름 유용하다는 판단 하에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투입되기로 소련 군부에서 결정하였다.

작전 개시 후인 7월 1일, 총 4량의 마틸다가 우크라이나 전선에 참전하여 전투를 치렀으며, 동월 4일에는 추가로 5량의 마틸다들이 제7근위기병사단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제87분리전차연대에 배치되어 사용되었으며, 이 두 연대 모두 르보프-산도르미에츠 작전 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크라이나를 탈환하는데 공을 세웠다.

2.5. 태평양 전쟁

2.5.1. 부건빌 전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tilda_II_Tarakan_%28089970%29.jpg
타라칸 작전 당시의 호주 육군 제2/9기갑연대 소속 마틸다 II Mk. IV CS "14번차"
태평양 전쟁 당시, 1942년 호주군은 영국으로부터 다수의 마틸다 전차를 공여받아 사용했다.

호주군 소속의 마틸다가 전장에 투입된 것은 1943년, 부건빌 전역이었으며, 대전 초기, 독일군을 패닉에 몰아넣은 KV-1를 능가하는 78mm 전면 장갑의 견고함 덕분에 마틸다 전차를 매우 애지중지했다.

또한, 보병전차 특유의 느린 전진속도와 2파운더 주포의 빈약한 화력도 일본군 전차 상대로는 오히려 과잉관통을 일으키지 않아 효과적이었고, 보병전차 특유의 무겁고 둔중한 무게와 작은 덩치가 시너지를 일으켜서 정글로 이뤄진 전장 환경에도 잘 맞았다.

당연히 치로 하고 같은 성능적으로 열세한 일본군의 전차간 싸움에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했다.

부건빌 전역 중, 마틸다 전차의 대표적인 활약상으로는 1943년 12월 2일의 벌어진 전투가 있다.

당시, 해당 마틸다 전차가 진격 도중 매복중이던 일본군 37mm 대전차포에 피격당하여 궤도가 끊어졌는데, 이 틈을 타 20명의 일본군이 마틸다와 가까운 도랑에서 수류탄과 대전차지뢰를 계속해서 투척하였다.

기동력이 상실된 마틸다는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주포와 기관총을 계속 쉬지 않고 사격하여 보병들을 무찔렀는데, 일본군의 75mm 곡사포가 해당 단차에 포격을 하여 전면 궤도 아이들러와 서스펜션을 손상시키고 말았다.

마틸다의 전차병들은 계속해서 분전하였지만, 결국 모든 탄약이 소진되어 버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가 소강상태로 접어들며 승무원들은 포탑 해치를 전부 잠그고 탱크 아래의 탈출 해치를 통해 인근에 있던 아군과 합류 할 수 있었다.

해당 단차는 전투 중 무려 50발이나 직격당하고도 다음 날 야전 수리를 마친 후 일본군을 비웃듯이 후퇴하였고, 12월 4일에 다시 작전에 투입되어 잔존 일본군을 격퇴하였다고 한다.

부건빌 전역 중, 적시적소에 투입된 마틸다는 일본군을 상대로 매우 활약하였으며, 일본군으로부터 부건빌 및 도서지역을 탈환하는데 매우 큰 공을 세웠다.


[1] 언뜻 보기엔 이탈리아 육군이 영국 전차를 노획해 끌고 가는 사진으로 보이지만, 사진의 이탈리아 국기는 거꾸로 달려 있다. 방패의 뾰족한 부분(바닥)이 위를 향하고 있고 색이 연한 부분(빨간색)이 왼쪽에 온다. 이탈리아군이 자국 국기를 거꾸로 달고 다닐 리 없기에 구별할 수 있다. [2] 당시 이집트의 전황이 위험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을 질문을 받은 당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경의 대답은 "퇴각이라고요? 천만에요. 이건 그저 적군을 싹 쓸어버릴 밑준비에 불과합니다." [3] 해당 사진 최우측에 있는 사람이 훗날 KV-1으로 전차 에이스에 오른 안드레이 포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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