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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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摩震

1. 개요2. 역사3. 대중매체에서의 마진4.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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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사 후삼국시대의 국가. 궁예가 904년에 고려( 후고구려)에서 바꾼 국호이다. 마하진단(摩詞震旦)의 줄임명이라 해석하기도 하며[1] 다른 학설로는 삼한 마한 진한, 즉 후백제 신라를 병합하겠다는 뜻으로 지었다고도 한다.

2. 역사

궁예는 901년 건국한 후고구려를 904년 마진이라는 국명으로 개칭하며 연호 무태라 했다가, 911년에 나라 이름을 다시 태봉(泰封)으로 고쳤다. 즉 마진이란 이름은 궁예 정권이 중간에 7년 정도 잠깐 사용한 이름. 고려에서 마진으로 나라 이름을 바꾼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중 고구려에 한정된 고려 국호 대신 삼한을 더 넓게 포괄할 수 있는 의미를 찾아 바꾸었다거나, 나라를 세우는 초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지속적인 왕권강화에 방해가 되는 고구려계 패서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고구려색이 옅은 이름으로 바꾸었다는 설이 있다.

궁예는 고구려 유민 의식을 원활한 통치를 위해 이용했지만 궁예 자체는 기록상 엄연히 신라 왕족 혈통을 가진 인물이었고, 토착 호족 출신인 왕건마냥 고구려 유민 의식에 강하게 귀속된 인물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행해진 옛 고구려와 직접적인 연고가 없는[2] 지리적으로 철원으로의 천도도 그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구려색 빼기 작업은 고구려 유민 의식을 갖고 있던 패서 호족의 불만을 샀고, 궁예와 태봉이 그들에 의해 멸망하는 왕건의 역성혁명 고려의 건국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의 마진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나레이션이 '대동방국을 뜻한다' 라고 못박았으나 실제론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4. 같이보기


[1] 마하(摩詞)는 산스크리트어로 크다는 뜻이며 진단(震旦)은 Cinitana를 옮긴 말로 동방을 뜻하는 말이니 조합된 뜻은 대동방국이라고 하나, 궁예가 이런 크고 아름다운 의미에서 마진이라 했는지는 불명. 여담으로 삼국유사에 따르면, 진단(震旦)은 발해의 초기 국명이기도 했다. 궁예가 자신의 세력권 바로 위에 존재하던 발해를 의식하고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는 불명이다. [2] 고구려가 과거 전성기에는 철원 지역도 차지하긴 했지만, 그 때도 지리적으로 고구려의 핵심 영역인 압록강~ 대동강 유역에서 거리가 한참 멀었고 그나마도 6세기에 신라가 차지한다. 즉 삼국이 돌아가면서 차지한 변경지역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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