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및 제1차 세계 대전의 러시아 해군 함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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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95년의 순양함
1.1. 개요
류리크는 러시아 제국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동형함은 없다. 함명은 키예프 공국의 첫 시조인 류리크 공에서 기인한 것이다. 1890년 5월 19일에 발트 공창에서 기공해 1892년 10월 22일 진수 후 1895년 10월 16일에 완공되어 블라디보스톡 순양함대에 편입된 후 통상파괴전에 주로 투입되었다. 1904년 8월 14일 울산 앞바다에서 같은 장갑순양함으로 편성된 일본해군 제2함대와 교전하여 격침당했다(울산 해전).1.2. 제원
전장 | 126m |
전폭 | 20m |
흘수 | 7.9m |
기준배수량 | 11,960t |
최대출력 | 13,250hp |
최대속력 | 18kt |
항속력 | 10kt로 6,700해리 |
무장 |
20.3cm 단장포 4기, 15.2cm 단장포 16기, 12cm 단장포 6기, 47mm 단장포 6기, 37mm 단장포 10기, 63.5mm 육상포 2기, 38.1cm 수상어뢰발사관 단장 6기 |
탑재기 수 | 없음 |
승원 | 741명 |
동형함 | 없음 |
1.3. 상세
류리크의 선체형상은 함수아래 충각을 가졌으며 범주용의 마스트 3개와 중앙에 연돌 2개를 가진 당시 일반적인 장갑함의 형태였다. 특징이라면 기존 장갑함보다 선체를 약간 더 연장하여 건현이 높은 평갑판형 선체를 채용하였다. 본급의 주포는 라이플 포인 35구경 1892년형 203mm 포였다. 이것은 단장포가로 현측포곽배치로 4기를 탑재했다. 부포로는 45구경 1892년형 152mm 포를 채용했는데 단장포가로 현측포곽배치로 16기를 탑재했다. 그 외에 12cm 단장포 6기와 근접전투용의 43구경 호치키스 47mm 포를 단장포가에 6기, 20구경 37mm 단장포를 단장포가에 10기를 탑재했다.육상공격용으로 파라노프스키 20구경 63.5mm 상륙포를 단장포가로 각현 1기씩 2기를 배치했으며 대함공격용으로 38.1cm 수상 어뢰발사관을 단장으로 6기를 탑재했다.
본급은 방어면에서 이전보다 더욱 강화되어 선체측면은 203mm~305mm의 두터운 철판으로 보호되었고 포곽부도 305mm, 사령탑도 152mm의 장갑을 덧씌웠다.
출처:헤인사<러시아/소련해군 순양함사>
2. 1909년의 순양함
2.1. 상세
러시아는 러일전쟁시 태평양 연합함대의 보충을 위해 함선보충 계획을 세웠었는데 계획도중 러시아가 패배하면서 러시아 함대는 특히 순양함 부대가 큰 타격을 입었었다.전후 러시아의 국내산업 위축과 더불어 해군재건 계획에 차질을 빚자 러시아 해군당국은 영국 빅커스 암스트롱 사에 신조함 발주를 주문하였는데, 여기엔 전후 러시아 국내산업 재건을 위해 외국자본 투자자 모집에 열을 올린 러시아 당국과 러시아 산업계 진출을노리던 빅커스사의 적극적인 로비도 한몫 했다.
이에 신형 순양함은 1905년 8월 9일 빅커스 암스트롱 사의 조선소에서 기공해 1906년 11월 4일 진수 후 1909년 7월에 완공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류리크였다. 하지만 건조도중 노출된 강도문제와 무장불균형으로 인해 몇 번의 재설계 및 보수공사를 거쳐야 했다. 기본적인 선체형상은 함수가 거의 직각인 클립퍼 보우형의 함수에 충각이 부착된 긴 선수루형 선체를 채용해 원양에서의 능파성을 개선했다.
전방 함수갑판 위에 주무장인 빅커스 사의 50구경 10인치 포를 연장포탑에 수납해 1기를 배치하고, 그 배후에 사령탑을 기부로 한 박스형 함교와 전방 마스트가 세워졌으며, 간격을 두고 균등하게 연돌 3개가 세워졌는데 연돌 주변엔 함재정을 비치하였다. 후방갑판엔 후방함교와 후방마스트 배후에 다시 50구경 10인치 연장포가 배치되었으며, 중간포로 역시 50구경의 8인치 포를 양현 전후 1기씩 총8문을 탑재했다.
그리고 수뢰정 대책용으로 12cm 단장포 20문을 탑재하였고 47mm 단장포 2문과 40mm 단장고각포 1문도 탑재했다.여기에 영국제 맥심 중기관총 2정과 기뢰 500발도 실었으며 대함공격용으로는 45.7cm 수중 어뢰발사관을 2문 장비했다. 쓰시마 해전의 교훈에 근거하여 방어장갑은 개선되어 2열의 장갑판을 거의 현측 전체에 부착해 수상부분을 방어했다.
장갑두께는 최대 152mm로 같은 시기의 영국 순양함을 능가했는데 특히 어뢰방어가 강화되어 수중격벽은 외판에서 3.4m의 위치에 설계되었고 함내 배수펌프도 증설되었다. 그리고 현측격실은 수로관을 통해 반대쪽 격실로 이어지게 만들어 원활한 배수시스템을 갖추게 해 불침성능을 높였다. 탄약고에도 당시 선진적인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었다.
동력기관은 증기식 4기통 3단 팽창식 레시프로 기관 2기로 석탄 및 중유혼합 수관보일러 28기를 탑재했는데 전체적으로 볼때는 함은 우수했지만 낮은 속력은 발목을 잡았다. 류리크는 약 21노트의 속력이 나왔는데 이는 드레드노트급 전함과의 협동운동은 어려웠으며 수직방향의 방어가 주포구경에 비해 충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류리크는 건조당시 러시아 함대에서는 가장 근대적인 순양함이었다. 류리크는 취역 후 발트함대에서 활동했는데 제1차 세계 대전시 북해와 발트 해협에서 초계와 기뢰부설 임무에 종사하였다.
1915년 2월 1일에 안개속에서 좌초사고를 일으킨 류리크는 크론슈타트로 예인되어 수리를 받기도 했다. 그 후 흑해에서 감시활동에 종사하던 류리크는 대전말기 일어난 러시아 혁명 당시 혁명군 손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1918년에 노농적군해군에 소속되었다.
그 후 북해와 북극해의 탐사임무 등에 이용된 류리크는 1924년 11월 1일에 퇴역 후 해체가 결정되었는데 철거시 주포와 중간포는 러시아의 요새와 열차포에 제공되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무장해체 후 연습함으로 이용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는 철회되어 류리크는 결국 해체되었는데 제공된 8인치 화포는 전후인 1950년대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2.2. 제원
이전 함급 | 바얀급 |
다음 함급 |
|
전장 | 161.24m |
전폭 | 22.86m |
흘수 | 8.74m |
기준배수량 | 16,933t |
만재배수량 | 17,880t |
최대출력 | 20,580hp |
최대속력 | 21.4kn |
항속력 | 10kt로 4,000해리 |
무장 |
25.4cm 연장포 2기, 20.3cm 연장포 4기, 12cm 단장포 20문, 47mm 단장포 4문, 40mm 단장고각포 1문, 7.62mm 맥심중기관총 2정, 45.7cm 수중어뢰발사관 2문, 기뢰 500발 |
탑재기 수 | 없음 |
승원 | 943명 |
동형함 |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