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수아레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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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39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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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 ||||
42대, 51대, 55대 |
루이스 수아레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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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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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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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 1964 · 196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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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Ballond'or | ||
수상 오마르 시보리 |
2위 루이스 수아레스 |
3위 조니 헤인즈 |
1964 Ballond'or | ||
수상 데니스 로 |
2위 루이스 수아레스 |
3위 아만시오 아마로 |
1965 Ballond'or | ||
수상 에우제비우 |
2위 자친토 파케티 |
3위 루이스 수아레스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 |
1964 | }}} |
스페인의 前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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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루이스 수아레스 Luis Suáre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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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본명 |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Luis Suárez Miramont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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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5년 5월 2일 | |
스페인 갈라시아주 라코루냐 | ||
사망 | 2023년 7월 9일 (향년 88세) | |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밀라노 | ||
최종 국적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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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격 | 키 175cm | |
직업 |
축구 선수 (
미드필더[1]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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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53~1954) 에스파냐 인두스트리알 (1954~1955) FC 바르셀로나 (1955~1961) 인테르나치오날레 (1961~1970) UC 삼프도리아 (1970~1973) |
감독 |
인테르나치오날레 (1975) UC 삼프도리아 (1975) SPAL 1907 (1975~1976) 칼초 코모 (1977~1978)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78~1979) 스페인 U-21 대표팀 (1980~1989) 스페인 대표팀 (1988~1991) 인테르나치오날레 (1992) 알바세테 발롬피에 (1994) 인테르나치오날레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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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32경기 14골 ( 스페인 / 1957~1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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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전 축구인.선수 시절 바르사와 인테르에서 긴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유로 첫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스페인 태생 선수 중에서는 최초의 발롱도르 수상자이다.[2]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갈리시아 지방에서 태어나 1953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데뷔했다. 데뷔 전부터 엄청난 유망주로 여겨졌던 선수였고 데포르티보는 수아레스를 중심으로 팀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1년만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첫 시즌은 주로 바르셀로나의 2군이었던 에스파냐 인터스트리알에서 뛰었고, 1955년부터는 1군 선수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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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바르셀로나 소속 당시(25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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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라는 별명에 걸맞은 완벽한 롱패스와 122경기 61골[3]을 뽑아낼 정도의 득점력을 보여 주면서 당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페렌츠 푸스카스로 대표되는 저승사자 군단 시절 레알 마드리드에 맞서 1959년 더블, 1960년 라리가와 인터-시티 페어스컵을 거머쥐면서 1960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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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인테르 소속 당시(28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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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국가대표 경력
1957년부터 1972년까지 32경기 14골을 기록했다. 메이저 대회로는 1962년 칠레 월드컵,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4,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했다.1962년 칠레 월드컵에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 호세 산타마리아 등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을 귀화시키면서 참가했으나 조 최하위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4에서는 아만시오 아마로와 함께 팀을 이끌며 헝가리와 소련을 연파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수아레스는 이 대회에서 베스트 XI에 이름을 올렸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도 참가했으나 여기서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에는 인테르, 삼프도리아, 칼리아리 칼초,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스페인 대표팀 등에서 감독을 맡았으며, 2014년까지도 인테르의 스카우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스페인 대표팀 감독 시절 한국에게 1-3 패배라는 악몽을 안겨주기도 했다.[6]4. 사망
2023년 7월 9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 FC 바르셀로나
- 라리가: 1958-59, 1959-60
- 코파 델 레이: 1956-57, 1958-59
- 인터-시티 페어스컵: 1958, 1960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4
5.1.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1960
-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토너먼트의 팀: 1964
-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63, 1964, 1965
- FUWO 유럽 올해의 팀: 1965
- 골든풋: 2008
- 마르카 레전드: 2016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DM 19위)
- IFFHS 올타임 스페인 드림팀: 2022
5.2. 감독
5.2.1. 대회 기록
- 스페인 U-21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21 챔피언십: 1986
5.3. 수훈
- 왕립 스포츠 공로장 금메달[7]: 2001
6. 평가
루이스 수아레스는 현역 시절 라슬로 쿠발라, 에스타니슬라오 바소라 등과 함께 일명 '친코 코파스'라 불린 바르셀로나의 전성기에 주축 맴버였으며, 이탈리아로 떠나서는 라 그란데 인테르의 주축 맴버로 활약한 선수로 두 팀의 황금기에 주축 선수로 활약한 스페인의 역대급 미드필더이다. 또한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4 우승을 이끌며 대회 베스트 XI에 선정되기도 했다.개인적으로는 1960년에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포디움에 무려 4차례나 들었고 유효표도 8차례나 받았다.[8]
이런 커리어와 기록들이 알려주듯이 그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사비 에르난데스와 더불어 스페인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7. 여담
- 최근의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동명이인인 우루과이의 루이스 수아레스가 잘 알려져있지만, 전문가들과 축구 역사 매니아들은 이 선수를 먼저 떠올리며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 순위표에서도 자주 보인다.
- 우루과이의 수아레스가 핵이빨이나 다이빙 등의 더티 플레이로 비난받을 당시에는 자신과 엮지 말아달라며 불쾌함을 나타냈지만 수지가 바르셀로나 이적한 후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기행도 줄어들자 이 양반 또한 수아레스를 위대한 스트라이커로 인정하며 추켜세워줬다.
- 수소 페르난데스가 제노아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기 전까지 스페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세리에 A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바 있다.[9] 50여년만에 동향 출신이 해트트릭을 기록하자 수아레스는 그에게 축하한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 전성기를 보낸 팀인 바르셀로나에 관련하여 단도직입적으로 인터뷰하는 경우가 많다. 그 예를 들자면 2021-22 시즌에 임대로 합류한 뤽 더용이 최악의 모습을 보이자 "어떤 머저리새끼가 더용을 추천한 건지 모르겠다" 라고 말한다거나[10], 2021년 발롱도르를 놓고 경합하던 리오넬 메시[11]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중 레반도프스키를 지지하며 "레반도프스키에게 발롱도르를 주지 않는다면 나의 트로피를 기꺼이 그에게 줄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12]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5인을 선정했는데, 1960년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2위에 이름을 올렸다.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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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2]
이전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스페인 국적으로 발롱도르를 2회 수상했으므로 스페인 '태생'으로 한정해야 최초이다. 2024년 이전까지는 유일한 인물이었으나,
로드리가 두번째로 수상하게 되는 영예를 안았다.
[3]
정확히 2경기당 1골, 경기당 0.5골이다.
[4]
페렌츠 푸스카스가 수상하는 게 타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5]
아랫줄 가운데
[6]
3골을 모두
미첼 한 명이 넣었으며, 대회 베스트 골 톱5에 선정된
황보관의 시속 114km 프리킥 골(일명 캐논슛)이 나온 경기이기도 하다.
[7]
Medalla de Oro de la Real Orden del Mérito Deportivo
[8]
1958년 14위, 1959년 4위, 1960년 1위, 1961년 2위, 1962년 15위, 1963년 8위, 1964년 2위, 1965년 3위.
[9]
상대는 수소와 같이 제노아. 1963년 3월 10일자 경기였다. 팀은 6-0 승리.
[10]
다만 후반기 들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11]
이 인터뷰를 한 시기인 2021년 하반기에는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한 뒤였다.
[12]
발롱도르 수상 예측은 리오넬 메시가 우세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메시가 발롱도르 수상을 하게 되었다.
분류
- 1935년 출생
- 2023년 사망
- 라코루냐주 출신 인물
- 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은퇴, 이적
- FC 바르셀로나/은퇴, 이적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
- UC 삼프도리아/은퇴, 이적
- 스페인의 남자 축구 감독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역대 감독
- UC 삼프도리아/역대 감독
- SPAL/역대 감독
- 코모 1907/역대 감독
- 칼리아리 칼초/역대 감독
-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역대 감독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알바세테 발롬피에/역대 감독
- 스페인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62 FIFA 월드컵 칠레 참가 선수
-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참가 선수
- 스페인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
-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4 참가 선수
- 발롱도르 수상자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감독
- 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선수
- 1953년 데뷔
- 1973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