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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뤼사이-사파이 왕국 4대 군주 Ῥοιμητάλκης | 로메탈케스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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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로메탈케스 1세 |
그리스어 | Ῥοιμητάλκης | |
영어 | Rhoemetalces I | |
생몰 년도 | 미상 ~ 12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31년 또는 기원전 15년 ~ 서기 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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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드뤼사이-사파이 왕국 4대 군주.2. 생애
오드뤼사이-사파이 왕국 3대 군주 코티스 2세의 장남이다. 그에 대한 문헌 기록은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 관한 플루타르코스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편에 섰지만 나중에는 옥타비아누스에게 귀순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를 "트라키아인의 왕"이라고 기술했다. 기원전 31년 또는 기원전 15년에 코티스 2세가 사망한 뒤 사파이 왕국의 새 왕이 되었다. 그는 아스티족의 왕 코티스의 딸과 결혼했으며, 기원전 18년경 레스쿠포리스가 아스티족의 새 왕이 되었을 때 수호자 또는 섭정을 맡았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마케도니아 총독 마르쿠스 롤리우스가 "코티스의 아들들의 삼촌이자 수호자인" 그를 도와 부족들의 반란을 진압했다고 한다.기원전 15년,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사제 볼로제스의 지도 하에 베시 부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레스쿠포리스가 반란을 진압하는 걸 도왔으나 패배를 면치 못했다. 레스쿠포리스는 전사했고,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체르소네소스로 도주했다. 기원전 12년, 로마 제국의 장군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의 도움으로 사파이 왕국의 권력을 회복했으며 지도자가 사라진 아스티족 역시 자기가 맡았다. 이후 아우구스투스로부터 로마 시민권을 받아 '가이우스 율리우스 로메탈케스'로 개명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스트라테고스를 임명해 각지로 보내서 세금을 징수하게 했으며, 공유지를 점진적으로 몰수하여 왕실의 토지로 삼았다. 또한 메데스와 게타이 족을 상대로 한 로마군의 원정을 지원한 대가로 그들의 영역 일부를 받아내면서, 왕국의 영역은 트라키아 중부와 동부로 확장되었다.
서기 6년 일리리아 대반란이 일어나자, 그는 군대를 이끌고 티베리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합류한 뒤 반란 진압에 한 몫 했다. 로마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가 트라키아 내륙 전역에서 지배권을 행사하는 걸 허용했다. 서기 12년에 사망했고,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지시에 따라 왕국의 영역은 그의 아들 코티스 3세와 그의 형제 레스쿠포리스 2세에게 분할 상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