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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30 23:50:42

로메이넨 인 네덜란트

로메이넨 인 네덜란트
Romeinen in Nederland

로마의 속주
파일:Romeinen in Nederland.png
로메이넨 인 네데를란트 영역
존속 기간 기원전 22년~475년
위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독일
중심 도시 콜로니아,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
국가원수 황제
정부수반 총독
언어 라틴어
민족 라틴족, 프랑크족, 프리시족
멸망 이후 프랑크 왕국

1. 개요2. 역사
2.1. 로마 제국의 진출2.2. 로마 제국의 통치2.3. 게르만족의 침입
3. 하위 속주와 지역들4.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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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메이넨 인 네덜란트( 네덜란드어: Romeinen in Nederland)는 저지대 국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을 말한다.

2. 역사

2.1. 로마 제국의 진출

로마인들이 저지대 지역으로 진출하기 전까지 이 지역은 볼모지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저지대 지역에는 이미 메나피(Menapii), 에부로네스(Eburones), 프리시(Frisii), 바타비(Batavi)[1], 트레베리(Treveri)[2] 등 여러 게르만계 종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기원전 51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저지대 지역 정복사업을 벌였고, 에부로네스의 족장 암비오릭스(Ambiorix)는 거센 저항을 벌였으나 로마군에게 패배하였다. 로마군은 이 이민족으로부터 승리한 이후 약탈과 살육으로 에부로네스인들을 절멸시켰다. 에부로네스인들은 사라졌지만, 이후에도 많은 이민족들이 저지대에 정착하였다. 그중 일부 부족들은 로마 제국과 제휴하여 로마 제국의 북방 국경선 방어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57년, 북갈리아를 정복하고 남부 네덜란드(오늘날 벨기에) 지역으로 진군하였다. 카이사르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도 지속적인 저지대 정복사업을 벌였다. 당시 로마 장군이었던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Nero Claudius Drusus)[3]는 바타비아(Batavia)를 게르만족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고, 페흐턴 지역에 운하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이 운하는 네덜란드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수로 공사였다.

농업과 목축업으로 생계를 해결하던 저지대인들은 로마의 진출 이후 상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유목민적 성격을 가졌던 저지대 종족들 사이에 로마인들이 진출하면서 큰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다.

기원전 12년, 드루수스는 프리시 지방을 정복하는 데 성공하였고, 프리시인들에게 유화 정책을 펼쳐 그들의 환심을 샀다. 그는 기원전 9년 엘베 강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나 낙마하여 사망하고 만다.

2.2. 로마 제국의 통치

로마 제국은 제국 내 속주들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각 지역의 토착 지배 세력들에게 자치권을 나눠주었다. 저지대 지역 역시 이렇게 토착 세력들이 로마 내에서 권력을 얻고 행정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충성의 댓가로 이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였다. 로마 시민권이 모든 자유인에게 부여된 것은 3세기 때에 일이었으므로 1세기 당시에는 엄청난 특권이었다. 또한 로마 제국은 토착민들의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종교와 로마의 종교가 혼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책들로 말미암아 저지대인들은 로마인들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동반자로 보고 로마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저지대인들은 급속도로 로마에 동화되었다.

그러나 때때로 저지대 지역에서도 로마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28년 프리시인들이 로마의 세금 인상 정책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 47년 간나스쿠스 라고 알려진 카네네페타이 족 지도자의 지휘아래 프리시족과 카우키족이 갈리아 벨기카의 해안을 침공 했으나 네로 황제 시기의 명장 코르불로 로마 사령관이 이들을 모두 격퇴 하였다. 68년 네로 황제 자살 후 벌어진 로마 제위 계승 분쟁에는 저지대의 바타브(Bataven)가 연루되기도 하였다. 바타브의 수장 가이우스 율리우스 키빌리스(Gaius Julius Civilis)는 군인 황제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와의 권력 투쟁에서 실각하자, 바타비아 반란을 일으켰다. 키빌리스는 한때 갈리아 제국을 건국하고 약탈과 대량학살을 벌이며 장악하는 등 승승장구 했으나, 이내 내분과 로마군의 반격으로 와해되었다.

2.3. 게르만족의 침입

2세기 후반부터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의 내부로 침입하였다. 저지대 지역은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각지에 요새가 건설되었다. 로마의 황제들은 게르만족의 위협으로부터 제국의 안정을 사수하기 위해 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군대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로마의 동맹으로써 대우를 받았다.

뒤이어 게르만족의 일파인 작센족과 프랑크족이 로마 제국 내로 침입하자, 로마는 제국을 경영할 힘을 상실하고 말았다. 특히 프랑크족은 340년 로마 제국과 협정을 체결하여 오늘날 카트베이크(Katwijk), 네이메헌(Nijmegen)에 이르는 지역 방위를 맡게 되었다. 395년에는 로마 제국이 서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으로 완전히 나뉘어졌다.

4-5세기 동안 서로마 제국은 고트 족, 반달 족 등 이민족으로부터 이탈리아 본토를 사수하기 위해 북서 유럽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군을 철군시키기 시작했다. 406년 로마 군대가 철군하고 주인이 없어진 지역들을 새로이 들어온 이민족들이 차지하면서 로마 제국의 저지대 지역 지배는 사실상 끝이 났다.

3. 하위 속주와 지역들

4. 참고 문헌


[1] 바타비아(Batavia)의 어원이 되는 게르만족 일파. 바타비아는 네덜란드의 옛 지역명이다. 스위스를 로마 시대 때 그 곳에서 살았던 헬베티(Helveti)족에서 따와 헬베티아(Helvetia)라고 하는 것과 용법이 같다. [2] 이 종족에서 이름을 딴 도시가 우우구스타의 트레베리, 즉,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Augusta Treverorum)이고 이는 현재 독일 트리어(Trier)이다. [3]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동생이다. 또한 아우구스투스 양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