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암비오릭스 (Ambiorix)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직위 | 에브로네스족의 부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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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갈리아 북동부의 벨가이인 계통 에브로네스족의 부족장이었다. 로마군의 14군단을 궤멸시킨 암비오릭스의 난의 주동자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을 단행한 이래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인물이었다.2. 행적
기원전 57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벨가이인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현재의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영역까지 공략했다. 그 후 카이사르는 이 일대에 군단을 숙영시켜서 반란을 일으킬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군단병들은 주민들로부터 대량의 식량을 공출했는데, 기원전 54년에는 가뭄으로 수확량이 미진했으나 예년과 같은 양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이에 여러 부족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자, 카이사르는 이를 감지하고 퀸투스 티투리우스 사비누스와 루키우스 아우룬쿨레이우스 코타에게 제14군단과 다른 군단의 5개 대대를 맡아 카르누테스족의 영역에서 숙영하도록 했다.벨가이인의 영역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잡은 에브로네스족의 부족장 암비오릭스는 로마인들을 몰아내기로 마음먹고, 병사들을 보내 나무를 베던 로마군 병사들을 습격하여 여러 명을 살해했다. 이후 사비누스의 14군단 진영으로 쳐들어갔지만, 로마군이 결사적으로 항전해 격퇴되었다. 그러자 그는 로마군을 유인하기로 하고, 사절을 보내 화해를 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로마군을 공격한 건 내 의사와 관계없이 부족민들이 벌인 일이다. 갈리아 전체가 이미 들고 일어날 예정이며, 게르만족의 대부대가 라인(레누스) 강을 건너 2일 뒤에 숙영지를 대대적으로 공격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로마를 지지하므로 이를 귀뜸해주는 것이니, 게르만족이 이르기 전에 이 지역에서 철수하라. 그대들이 내가 다스리는 영역을 통과할 때 안전을 보장하겠다."
카이사르의 《
갈리아 전기》에 따르면, 코타는 이를 믿지 않고 요새화된 진영을 방어하면서 카이사르가 구원하기를 기다리자고 주장했지만, 사비누스는 암비오릭스의 조언을 따르자고 했다고 한다. 결국 더 높은 직위에 있었던 사비누스의 의견이 관철되었고, 로마군 14군단은 숙영지를 떠나 숲길로 행군하다가 암비오릭스가 이끄는 에브로네스족의 습격을 받았다. 로마군은 필사적으로 항전했으나 포위망을 풀 가망이 없고 병사들이 점점 죽어나가자, 사비누스는 암비오릭스에게 통지를 보내 자신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암비오릭스가 회담하러 오라고 하자, 사비누스는 이에 따르려고 했다. 코타는 얼굴에 돌을 맞아 중상을 입은 몸이었지만
"적에게 목숨을 구걸하느니 끝까지 싸우다가 죽자"
고 강력하게 권했다. 그러나 사비누스는 이를 뿌리치고 회담하러 갔다가 기습 공격을 받아 부관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코타는 그대로 남아 로마군을 지휘하다가 에브로네스족의 맹공격으로 전사했다. 이리하여 제14군단과 5개 대대가 전멸했다.이 성공에 고무된 벨가이 제부족들이 대거 반란에 가담하자, 암비오릭스는 여세를 몰아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휘하의 또다른 로마군이 주둔한 네르비족의 영역으로 쳐들어갔다. 키케로와 로마군이 결사적으로 항전하자, 그는 이번에도 사비누스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하며 철수하면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권했다. 그러나 키케로는 이를 믿지 않고 카이사르가 지원하러 올 때까지 끝까지 항전했다. 카이사르는 뒤늦게 구원 요청을 받고 달려왔고, 벨가이인들은 카이사르를 물리치기 위해 포위를 풀고 그쪽으로 이동했다. 수적으로 압도적인 열세였던 카이사르는 그의 군대에게 혼란스럽고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도록 명령했다. 그걸 본 벨가이인들은 그들을 우습게 보고 로마군 진영에 지나치게 가깝게 접근했다가 갑작스런 반격에 놀라 붕괴되었다.
그 후 카이사르는 벨가이인, 특히 반란을 주동한 에브로네스족을 철저히 학살했고, 반란의 수괴인 암비오릭스를 잡으려고 했으나 그가 라인 강을 건너 게르만족이 우글거리는 숲속 깊숙이 숨어버리는 바람에 잡지 못했다. 에브로네스족은 카이사르의 철저한 복수로 인해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었고, 이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암비오릭스가 어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다만 이후 베르킨게토릭스의 대규모 저항때도 언급이 없었던 것을 보면 세력을 모두 잃었으니 이를 우습게 여긴 게르만족에게 잡혀 죽었거나, 숲에 숨어있었다가 맹수에게 당했거나, 아니면 참패와 이후 벌어진 부족 학살에 대한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인한 화병으로 죽었다거나 하는 등의 방식으로 패배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죽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완전히 힘을 잃었으니 눈치를 보며 조용히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1830년 벨기에 혁명으로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벨기에인들은 로마 공화국에 항전했던 암비오릭스를 국가적인 영웅으로 삼고 오늘날까지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