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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24 12:21:31

루키우스 아우룬쿨레이우스 코타

루키우스 아우룬쿨레이우스 코타
라틴어: Lucius Aurunculeius Cotta
생몰년도 미상 ~ 기원전 54년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갈리아 에브로네스족의 영토
지위 평민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미상
참전 갈리아 전쟁
직업 로마 공화국 장교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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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의 군인. 갈리아 전쟁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부관으로서 활동했으나 암비오릭스의 난에 휘말려 전사했다.

2. 생애

그에 대한 기록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55년 퀸투스 티투리우스 사비누스 휘하 장교로서 반란을 일으킨 메나피족에 대한 징벌 원정에 참여했다. 기원전 54년 11월 사비누스와 함께 14군단과 다른 군단의 5개 대대를 맡아 카르누테스족의 영역에서 겨울 숙영에 들어갔다. 이때 에브로네스 족장 암비오릭스가 숙영지로 쳐들어오자 격퇴했다.

암비오릭스는 사절을 보내 화해를 청하면서, 로마군을 공격한 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부족민들이 벌인 일이고, 갈리아 전체가 이미 들고 일어날 예정이며 게르만족 대부대가 라인강을 건너 이틀 뒤 숙영지를 대대로 공격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로마를 지지하므로 이를 귀띔해주는 것이니, 게르만족이 이르기 전에 이 지역에서 철수하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로마군이 자신이 다스리는 영역을 통과할 때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갈리아 전기에 따르면, 코타는 요새화된 진영을 방어하고 카이사르가 구원하기를 기다리자고 주장했지만, 사비누스는 암비오릭스의 조언을 따르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결국 더 높은 직위에 있던 그의 의견이 관철되었고, 로마군은 숙영지를 떠나 숲길로 행군하다가 암비오릭스가 이끄는 갈리아군의 습격을 받았다. 사비누스가 허둥지둥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반면, 적이 기습할 거라 예측했던 코타는 부대에게 짐을 버리고 원진을 짜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코타의 지시가 실수였다고 지적했다. 짐을 버리면 부대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적의 기세가 올라갈 뿐이며, 적이 공격하지 않으면 원진은 소용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갈리아인들은 로마인들을 공격하지 않은 채 원진을 에워쌌다. 그들은 돌격했다가 퇴각하는 식으로 적을 흔들어놓은 뒤, 원진이 흐트러질 때 그곳에 투창과 돌멩이를 투척했다. 이런 식으로 전투가 이어지자, 로마군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급기야 그 역시 얼굴에 돌멩이를 맞아 중상을 입었다.

사비누스는 포위망을 풀 가망이 없고 병사들이 점점 죽어나가자, 그는 암비오릭스에게 통역을 보내 자신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암비오릭스가 회담하러 오라고 하자, 그는 이에 따르려 했다. 코타는 얼굴에 돌을 맞아 중상을 입은 몸이었지만 "적에게 목숨을 구걸하느니 끝까지 싸우다 죽자"고 강하게 권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이를 뿌리치고 회담하러 갔다가 기습공격을 받아 부관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코타는 그대로 남아 로마군을 지휘하다가 갈리아군의 맹공격으로 전사했다. 이리하여 제14군단과 5개 대대는 전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