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02년 ~ 기원전 43년)
1. 소개
Quintus Tullius Cicero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고대 로마의 인물.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남동생으로 갈리아 전쟁 당시 율리우스 카이사르 휘하에서 군단장으로 참전했다.
2. 생애
퀸투스는 형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도움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아테네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기원전 70년에 키케로의 절친한 친구인 티투스 폼포니우스 아티쿠스의 동생 폼포니아와 결혼했는데 불행하게도 둘 사이의 불화가 끊이질 않았고 키케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혼했다.기원전 66년 안찰관, 기원전 62년에 법무관이 되어 쿠르수스 호노룸의 단계를 밟아나갔다. 기원전 61년부터는 전직 법무관으로 아시아 속주에서 복무했고 기원전 54년부터 기원전 52년까지 키케로의 소개로 율리우스 카이사르 휘하에 군단장으로 배속되어 갈리아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제2차 브리타니아 원정에 참여했고 특히 에부로네스 족장 암비오릭스의 난으로 네르비족에게 포위되었을 때 병에 걸린 상태에서 카이사르의 구원군이 올때까지 숙영지를 지키며 용감하게 싸워 무공을 세웠다.
카이사르의 내전이 발발하자 그는
그의 아들이 삼두정파에 붙잡혔을때 아들은 모진 고문 속에서도 아버지의 은신처를 밝히지 않았으나 결국 퀸투스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살해당했다.[1]
3. 여담
- 그가 형을 위해 쓴 선거 지침서인 '선거에서 이기는 법'은 고전적인 선거 교본으로 남아있으며,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다.
- 형 키케로의 책 《예언에 관하여》(De Divinatione)은 키케로 형제가 예언술 일반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는 것이 내용이다.이 책에서 퀸투스는 예언을 믿는 입장이고 마르쿠스는 예언을 믿지 않는 입장이다.
[1]
플루타르크에 의하면 이때 이들을 밀고한 노예는 안토니우스의 허락을 받은 폼포니아가 잡아다가 살을 베어서 구워낸 것을 억지로 먹이는 방식으로 죽여서 복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