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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08:07:38

레인 스테일리

<colbgcolor=#50bcdf><colcolor=#ffffff> 레인 스테일리
Layne Staley
파일:IMG_0168.jpg
본명 레인 토마스 스테일리
Layne Thomas Staley[1][2]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67년 8월 22일
미국 워싱턴주 벨뷰
사망 2002년 4월 5일 (향년 34세)
신장 185cm
직업 가수, 싱어송라이터
가족 아버지 필립 스테일리
새아버지 짐 엘머
어머니 낸시 맥칼럼
형제자매 4명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고등학교 시절2.3. 앨리스 인 체인스의 시작, 그리고 전성기2.4. 헤로인 중독2.5. 1997년 ~ 2002년2.6. 사망
3. 사후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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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앨리스 인 체인스의 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

2. 생애

2.1. 어린 시절

파일:layne staley young.jpg
어린 시절의 레인 스테일리
앨리스 인 체인스의 보컬 레인 스테일리는 아버지 Phil Staley(필 스테일리), 어머니 Nancy McCallum(낸시 맥칼럼) 사이에서 태어났다. 레인의 부모님은 레인이 7살일 때 이혼을 하였으며, 후에 어머니와 새아버지 Jim Elmer(짐 엘머)와 같이 살게 된다.

세 살 때 벨뷰에 있는 리듬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트럼프, 코넷, 드럼과 같은 악기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 나이일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어했다. 실제로 9살 때, Dr. Seuss의 All About Me라는 책에 자신은 가수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당시 그가 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소방관, 경찰이 되고 싶어하듯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생각했다고 한다.

2.2. 고등학교 시절

10대 시절에, 레인은 여러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레인은 본래 보컬리스트가 되고 싶어했고 이런 레인의 모습을 본 밴드메이트가 "네 노래 실력으로 무슨 보컬리스트를 한다고" 하며 비웃자 레인은 열이 받아서 그 길로 드럼 연주를 때려치고 마이크를 구입하여 본격적으로 노래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레인은 1984년, Sleze라는 학교 밴드에서 보컬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는 글램 메탈, 그리고 헤어메탈이 유행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시절 레인의 모습을 보면 머틀리 크루 스타일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3] 후에 Sleze는 Alice N' Chains로 이름을 바꾸었다.
Sleze 활동 당시의 영상
저예산 영화 'Father's Rock' 출현 영상[4]

2.3. 앨리스 인 체인스의 시작, 그리고 전성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앨리스 인 체인스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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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 스테일리와 제리 캔트렐은 레인이 일하고 있던 리허설 스튜디오 뮤직 뱅크의 파티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 때 집에서 쫓겨나 갈 곳이 없다는 제리의 말을 들은 레인은 그에게 동거를 제안했고 두 사람은 1년 넘게 레인의 집에서 깉이 살았다. 두 사람이 같이 동거를 하고 있을 때 레인이 보컬로 있던 Alice N' Chains는 해체되고, 제리는 새 밴드를 만들기 위해 밴드 멤버를 모집한 결과 드러머 션 키니, 베이시스트 마이크 스타와 함께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이후 레인은 어느 한 훵크 (Funk) 밴드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밴드에는 기타리스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레인은 제리 캔트렐에게 사이드맨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 물었고 제리는 자기 밴드에 레인이 보컬리스트로서 함께 한다는 조건으로 합의한다. 레인이 있던 Funk 밴드가 결국 끝을 보게 된 후 레인은 제리의 밴드에 풀타임으로 합세하여 공연을 다니게 된다. 이 때에는 Diamond Lie 등등 여러 이름(Monikers)을 쓰다 결국에 예전 Sleze에서 장난삼아 오갔던 Alice In Chains라는 명칭이 선택된다.
'''Bleed The Freak - Live at the Moore Theatre'''
'''Junkhead - Live at the Singles Party, 1992'''
'''Mad Season - River of Deceit (Live at the Moore Theatre)'''

2.4. 헤로인 중독

앨리스 인 체인스가 한창 잘 나가고 있던 시기인 1991년, 레인은 헤로인에 손을 대고 만다.[5] 레인의 마약 중독은 그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원인이 된다. 원래 위트있는 성격과 활발한 무대 매너를 가지고 있던 레인 스테일리는 헤로인을 하기 시작한 후 과묵해지고 무대에서도 그저 가만히 서서 노래하게 되었다. 마약 중독과 관해서는 앨리스 인 체인스 곡들의 가사에서 잘 드러나 있다. 예를 들어 Junkhead와 같은 곡.

1992년 Dirt 앨범은 크게 히트하여 밴드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앨범에 수록된 곡들에 나타나있는 레인의 마약 중독에 대한 가사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언론들은 커트 코베인이나 레인 스테일리가 헤로인에 깊게 중독되어 죽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연신 쏟아내었고 레인은 이에 대해 인터뷰에서 "내가 헤로인을 한다는 것이 알려진 후 언론들이 나에 대해 보도한 것은 언제나 마약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옳지 못하다. 언론이 정말로 다루어야 할 것은 예술에 대한 내 열정과 재능이다."라며 대놓고 불만을 품기도 했다. 1994년에 커트 코베인이 헤로인 중독으로 고통받다가 샷건으로 자살한 이후, 레인은 한동안 두려움에 헤로인을 하지 않았으나 이내 다시 시작하고 만다.[6]

1994년 EP Jar of Files 발매 이후 헤로인 중독으로 인한 부작용이 레인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레인의 치료를 위해 밴드는 투어 활동을 진행하지 않는다.

레인의 건강 상태가 얼마나 악화되었냐면, 치아가 빠지기 시작하고, 점점 앙상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1996년 4월에 진행된 MTV Unplugged 공연 영상을 보면 그의 지친 모습이 엿보인다.[7]
MTV Unplugged - Down in a Hole

1996년 10월 29일, 레인의 전 약혼자이자 연인이었던 Demri Parrott이 헤로인 중독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사망하자 레인은 큰 충격을 받고[8], 앨리스 인 체인스 활동을 사실상 중단한다.[9]

2.5. 1997년 ~ 2002년

1997년 4월, 레인은 워싱턴 대학교 대학가에 위치한 콘도를 구매하고 거의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 시기, 팬들 사이에서는 레인의 건강이상설과 관련한 소문들이 퍼지고 있었다. 몸의 일부가 괴사하고, 섭취 능력을 다 잃었다는 소문. 제리는 한 인터뷰에서 레인과 자주 만나고 있다고 소문을 일축시킨다.

1998년 10월에 레인은 Music Bank 앨범의 Get Born Again과 Died를 녹음하기 위해 나타났는데, 2집의 프로듀서, 스튜디오 엔지니어, 그리고 매니저가 회상하기를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치아가 없었으며, 다리에 위축이 발생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레인이 마지막으로 한 녹음은 The Faculty라는 영화 OST를 위해 커버한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링크.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레인은 더욱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깊은 우울증에 빠진다.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레인은 이 시기 자신이 좋아하는 비디오 게임을 사러 갈 때와 가족들을 만나러 갈 때와 같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고, 집 안에서 게임과 예술 활동(그림 등)을 주로 하며 지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레인은 치아를 잃었고,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피부도 점점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몇 주 동안 레인에게서 소식을 못 듣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레인은 재활원을 권유하는 주변인들과 거리를 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과 친구들은 레인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편지와 자동 응답 메세지로 그에게 연락을 취하거나 안부를 전했다. 레인도 가족들이 걱정하는 걸 알았는지 무조건 콘도에 틀어박혀 있지는 않고 가족들에게 만큼은 가끔이라도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2001년의 추수감사절과 2002년 발렌타인데이 쯤에 조카가 생겼을 때도 가족들을 방문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낸시 맥칼럼(레인의 어머니)이 마지막으로 목격한 레인의 모습이 되었다.

2.6. 사망

2002년 4월 19일, 레인의 회계사는 매니저였던 수잔 실버에게 전화하여 레인이 2주 넘게 자신의 은행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가지 않았다고 알린다. 수잔은 이 사실을 레인의 어머니인 낸시에게 전화를 했고 레인의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를 한 뒤 남편 짐 엘머와 함께 레인의 콘도를 찾아간다. 결국, 레인 스테일리는 쇼파에 누워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레인의 시체는 부패가 진행 중인 상태였으며, 사망 당시 185cm에 39키로 밖에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레인은 코카인 헤로인의 혼합물인 스피드볼로 인해 4월 5일[10], 즉 발견되기 2주 전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2년 당시 사망 보도 영상
그는 더운 여름날 멋진 정장을 차려 입고 화난 천사처럼 노래를 불렀다
톰 모렐로

2010년 Celebrity Rehab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전 베이시스트였던 마이크 스타와 레인의 어머니인 낸시 맥칼럼이 나와 사망 당시에 관하여 인터뷰를 하였다. 마이크 스타는 레인이 살아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었고 레인이 사망하기 전날 함께 시간을 보냈다. 레인은 당시 상태가 매우 안 좋았고, 마이크는 레인이 자신을 브라질 Dirt 투어 당시 자신을 구해줬던 것처럼[11] 911에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만, 레인이 911을 부르면 절교하겠다고 논쟁을 벌인다. 결국 마이크 스타는 벤조디아제핀에 취한 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고, 레인은 "이런 식으로 날 떠나지 마."[12]라고 했다고 한다. 마이크는 이에 대해서 후회를 하며 눈물을 흘렸고, 낸시는 마이크의 잘못이 아니라며 "레인은 널 용서했을꺼야. 레인이 이렇게 말했겠지. 이봐, 내가 이 짓을 했어. 네가 아니고."[13]라며 그를 위로하였다. 이후, 마이크 스타도 2011년 3월 8일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3. 사후

레인 스테일리는 이후 화장되었으며, 레인이 기르던 고양이인 Sadie는 제리가 데려가 2010년에 Sadie가 세상을 뜰 때까지 키웠다.

낸시 맥칼럼과 짐 엘머는 시애틀의 건강 서비스 클리닉과 협력하여 다른 마약 중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돕기 위해 레인의 이름을 딴 기념 기금을 만들었고, 2019년 8월 22일, 시애틀 시장이 레인이 시애틀 음악에 공헌한 것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일인 8월 22일을 레인 스테일리의 날로 지정하였다. 매년 이 날에는 시애틀에서 레인 스테일리 추모 공연이 진행된다. 정보는 여기서 확인 가능하다.

4. 여담



[1] 원래 미들네임은 Rutherford(루더포드) 였으나, 루더포드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여 자신이 좋아하던 머틀리 크루의 토미 리의 본명을 따라 미들네임을 토마스로 바꿨다고 한다. [2] 새아버지의 성을 따서 레인 엘머라고 불리기도 했다. [3] 실제로 레인은 머틀리 크루의 팬이었다. [4] 밴드 보컬이 바로 레인이다. [5] 헤로인을 어떤 경로로 접하게 됐는지는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어린 나이에 그를 떠난 친아버지가 아들이 유명해진 후 찾아와서 마약을 권했다던가, 그의 여자친구였던 Demri가 권했다던가 하는 루머들이 많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으니 섣불리 믿지 말 것. [6] 헤로인은 금단 증상이 무척 괴로워서 끊는다 해도 정신적, 신체적으로도 매우 힘들다고 한다. 결국 쾌락에 의해서가 아닌 살기 위해서 강제로 하게 되는 것이다. [7] 공연 당시 레인은 헤로인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제리 캔트렐도 식중독에 걸린 상태라 몸이 좋지 않았는데, 이러한 난제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훌륭하게 해냈다는 것이 놀라운 점. [8] 1집인 Facelift의 라이너 노트에 그녀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고, 매드 시즌의 Above 앨범에 그려져 있는 여자가 바로 Demri다. 1988년에 레인은 Demri가 일하던 음반 가게에서 그녀를 처음 만나 그 해 봄이나 여름 쯤에 사귀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2년에 두 사람은 약혼을 하였으나, Dirt의 성공 이후 레인과 Demri가 모종의 이후로 멀어지면서 약혼이 깨졌다. 이후 그녀는 마약으로 인한 심장 질환에 시달렸고, 결국 이로 인해 1996년 10월 29일에 사망하게 된다. 사망 사실을 알게 된 레인은 매우 심각한 모습이었고, 그의 친구들은 레인이 자살 기도를 할까봐 그를 감시했다고 한다. [9] 그의 마지막 공연은 1996년 7월 3일의 캔자스 시티 공연으로, 영상 속 레인은 약에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링크 [10] 너바나 커트 코베인의 사망일과 동일하다. [11] 당시 앨리스 인 체인스 맴버들과 커트 코베인이 같이 코카인을 했는데, 마이크 스타가 과다 복용으로 인해 정신을 잃었고 레인이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마이크를 구해줬다. 이때의 여파로 레인의 목소리가 다른 라이브와 달리 브라질 공연에서 많이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12] 원문: "Not like this, don't leave me like this." [13] 원문: "Layne would forgive you. He'd say, 'Hey, I did this. Not you.'" [14] 많이 닮았다고 보기엔 어려운데다, 창법 면에서는 차이가 많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