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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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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00000><colcolor=#ffcc00> 모기업 관련 정보 | 모기업 라쿠텐 | |
일본시리즈 우승 ★ |
2013 | |
리그 우승 | 2013 | |
클라이맥스 시리즈 | 2009 · 2013 · 2017 · 2019 · 2021 | |
시즌별 요약 | 2013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2 · 2023 · 2024 | |
현역 선수 경력 | 다나카 마사히로/선수 경력 · 아사무라 히데토/선수 경력 | |
경기장 | 1군 라쿠텐모바일파크 미야기 · 2군 라쿠텐 이글스 이즈미 연습장 · 리후시중앙공원야구장 | |
지방 홈구장
코마치 스타디움(
아키타현) ·
이와테 모리오카 볼파크(
이와테현) ·
야마가타 야구장(
야마가타현) · 하루카유메 구장( 아오모리현) · 요크 카이세이잔 스타디움, 후쿠시마현영 아즈마 구장( 후쿠시마현) |
||
홈 중계 채널 | (1~4 유동적 편성) | |
주요 인물 | 구단주 미키타니 히로시· 감독 미키 하지메 · 선수회장 타나카 카즈키 · 주장 노리모토 타카히로(투수) · 아사무라 히데토(야수) | |
구단 상세 정보 |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오릭스-라쿠텐 분배 드래프트 | |
틀 문서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 선수 |
역대 감독 |
영구 결번 |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 라쿠텐 산하 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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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과거 선수 일람.볼드체는 창단 멤버다.
2.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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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영구 결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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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No.10 | No.77 |
<rowcolor=#ffcc00> 팬 | 호시노 센이치 |
라쿠텐의 첫 우승을 이끈 호시노 센이치 前 감독의 사망을 추모하기 위해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감독으로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지만 아직 영구 결번 선수는 없다.
3. 투수
- 케빈 호지스 (2005)
- 게리 레스 (2005)
- 카네다 마사히코 (2005 - 2006)
-
요시다 토요히코 (2005 - 2007)
투수로서, 그리고 난카이 시절 1군경기 출장 경험이 있는 마지막 난카이 호크스 출신의 현역 선수.[1] 긴테쓰 소속으로 마지막으로 세이브를 거둔 투수이기도 하다. 40대의 나이로 창단 초기 몇 년간 암울했던 투수진에서 왼손 중간계투로 활약했다. - 후쿠모리 카즈오 (2005 - 2007, 2009 - 2010)
- 오구라 히사시 (2005 - 2008)
-
이치바 야스히로 (2005 - 2009)
라쿠텐의 창단 첫 1라운더. 메이지대학 시절부터 주목받던 투수였으나, 스카우트 경쟁으로 인해 여러 구단이 뒷돈을 댔다는 탬퍼링 파문 때문에 그동안 뒷돈을 줬던 구단들이 전부 등을 돌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뻔 했다. 실제로 교진, 한신, 요코하마, 히로시마가 뒷돈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거인은 6백만 엔, 요코하마는 60만 엔, 한신은 25만 엔, 히로시마는 2천 엔[2]을 영양비 명목으로 준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탬퍼링 문제에서 자유로운 라쿠텐이 화제몰이를 겸하여 과감하게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하여 소란스럽게 데뷔했으나 2009년 시즌 도중 야쿠르트로 트레이드. 결국 통산 91경기 16승 33패의 초라한 성적만 남기고 프로를 떠나서 지금은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 아사이 히데키 (2005 - 2010)
-
와타나베 코우키 (2005 - 2010)
라쿠텐의 창단 첫 2라운더로 다나카 마사히로 이전에 라쿠텐의 첫 18번을 단 좌완투수. 중간계투로 주로 뛰었지만 허리 디스크로 인해 활약이 짧았다. - 야마무라 히로키 (2005 - 2011)
-
아리메 카네히사 (2005 - 2012)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간 좌완투수. 특이사항으로 2006년 8월 25일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경기에서 12이닝 완투 188구 17탈삼진이라는 21세기스럽지 않은 등판 기록을 남긴 바 있다(...)노무라 카츠야도 옛날 사람...2008년에는 리그 최다 66경기 등판. -
고야마 신이치로 (2005 - 2015)
창단 첫 완봉승을 기록한 투수. 이후 중간계투로서 오랜 기간 활동했다. - 라이언 글린 (2006)
- 나가이 사토시 (2007 - 2015)
- 야부 케이이치 (2010)
- 오카모토 신야 (2011)
-
김병현 (2011)
2011년에 입단하나 1군 등판은 단 한 경기도 없었다. 2012년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며 한국으로 복귀했다. - 켈빈 히메네스 (2011 - 2012)
-
미마 마나부 (2011 - 2019)
2013 일본시리즈 MVP.진짜 MVP는 미마에게만 2승을 헌납한 스기우치 토시야라는 후문이 있다.2019년 시즌을 끝으로 FA로 롯데에 갔다. - 사이토 다카시 (2013 - 2015)
-
케니 레이 (2013, 2015 - 2016)
2008년 시즌 중 다윈 쿠비얀의 대체선수로 SK 와이번스에서 5경기 뛰고 1승 2패 6.64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광속 방출된 케니 레이가 맞다. - 록 반 밀 (2014)
- 트래비스 블랙클리 (2014)
- 브라이언 팔켄보그 (2014)
-
레다메스 리즈 (2016)
한국 야구팬들이 알고 있는 전 LG 소속의 그 선수가 맞다. 한국에서도 고질적인 문제였던 제구력 난조에 한국시절보다 떨어진 스피드로 선발도 실패, 불펜도 실패하며 1, 2군을 왕복하다가 결국 1년만에 방출되었다. -
김무영 (2016)
한국 선수로서는 드물게 일본으로 야구 유학을 떠나, 2008년에 일본프로야구에 드래프트되어 뛰기 시작했다. 2015년까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중간계투로서 괜찮게 활약을 했으나 소속팀의 두터운 선수층과 2015년 어깨부상으로 1경기도 뛰지 못하고 방출. 테스트를 거쳐서 라쿠텐에 입단했으나 2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하고 다시 방출된 뒤 31세의 한창 나이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 제이크 브리검 (2016)
-
안라쿠 토모히로 (2015~2023)
고시엔 혹사의 아이콘. 일본판 한기주라고 할 수 있다. 에히메 현의 사이비(済美) 고등학교 시절 고시엔 본선에서 시속 150km를 넘는 강속구를 뿌리며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연투에 연투를 거듭하면서 구위가 떨어져 가는데도 처절하게 마운드에서 버티는 모습 때문에 일본 야구계 안팎에서 혹사논란이 재점화되었다. 다르빗슈 유 등 메이저리거나 쿠와타 마스미같은 일부 고교야구 OB들은 이 선수를 예로 들며 혹사를 방지,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투구수 제한, 엔트리 확대 및 선수들 부상 방지에 대한 관심 등 개선책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여러 원로 OB와 현 일본 프로야구 감독 및 해설가들은 "그 정도도 못 버티나?" , "선수로써는 실격이군" 등의 구태의연한 주장만 반복했다. 2014년 드래프트 때 라쿠텐이 1순위로 지명했지만 혹사 후유증으로 신인 시즌은 거의 재활로 보냈고, 시즌 막판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 선발로 데뷔해서 프로 첫 승을 따냈다. 이미 고교 때 보여준 불같은 강속구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구속이 시속 140km 초중반은 찍는 관계로 변화된 조건에 맞춰서 투구스타일의 변경을 진행중이다. 구단 입장에서는 고시엔에서 어느정도 화제몰이를 한 스타성이 있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로테이션의 3, 4선발을 맡아줄 쓸만한 선발투수로 목표를 바꿔서 육성을 하는 중.이름은 안락(정말로 성이 安楽이다.)한데 인생역정은 별로 안락하지 않다.2020년에는 불펜으로 전향해서 2023년까지는 나름대로 불펜으로 잘 뛰었으나, 2023 시즌 후인 11월 25일, 후배 선수들에게 성희롱[3], 금품 갈취, 갑질[4], 폭언, 폭행 등의 행위가 폭로되었다. 이에 라쿠텐 측은 안라쿠를 집에 근신 처분 조치하고 조사에 들어갔으며, 결국 전력외통고를 하며 부상은 극복해냈지만 사생활 문제로 인해 프로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후에는 선수의 징계여부에 관대한 편인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의 디아블로스 로호스 델 멕시코로 이적하여 ERA 1점대의 철벽 불펜으로 뛰고 있다. 2024년 올스타전에 뽑힐 정도. 사실상 일본에서 더 이상 뛸 수 없어서 중남미에서 뛰게 됐고, 중남미에서는 주전급으로 활약하고 있는 오토사카 토모의 테크를 타는 중이다.[5] 이후 2024년 멕시칸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헹가래 투수가 되었다. 메이저리그 진출감으로 평가받던 선수도 아니라 앞으로도 멕시코에서 쭉 뛸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4. 포수
- 나카무라 다케시 (2005)
-
노무라 카츠노리 (2005 - 2006)
노무라 카츠야 감독의 아들로, 아버지가 감독을 맡던 야쿠르트 스왈로즈, 한신 타이거즈,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아버지 지휘 하에 선수생활을 한 묘한 커리어를 갖고 있다. 물론 아버지만큼의 대선수는 못 되었고 선수생활 내내 백업포수를 전전했다. 수비력은 그럭저럭 프로 수준이지만 타격이 안 되고 어깨가 약했는데, 지바 롯데와의 은퇴 경기에서 한 경기 6개의 도루 허용(...)이란 진기록을 세웠다.은퇴빵이후 여러 구단에서 배터리 코치를 맡았다. - 후지이 아키히토 (2005 - 2010)
-
시마 모토히로 (2006 - 2019)
라쿠텐을 대표하는 야수 프랜차이즈 스타라 할 수 있는 포수. 노무라 카츠야 감독의 지도 하에 국대급 수비형 포수로 성장했던 선수로 암울했던 팀 빌딩 단계, 09년의 첫 A클래스, 도호쿠 대지진과 그를 딛고 차지한 2013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포함한 시기를 모두 경험했던, 골든이글스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부상으로 출전기회가 줄어들며 2019년 시즌 종료 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다. -
이시미네 타다시 (2008 ~ 2018)
비록 많은 활약은 하지 않았지만 1루수/백업포수이자 대타요원으로 임팩트있는 장면을 몇 남겨 라쿠텐팬들에겐 기억이 남는선수다. 한국으로 따지면 한화 이글스에서 대타요원으로 활약했던 이양기 같은 선수. -
카와모토 료헤이 (2016)
김무영이랑 같이 입단해서 같이 방출.
5. 내야수
-
오시마 코이치 (2005)
팀 역사상 최초의 끝내기 안타를 친 선수. 스즈키 이치로, 다구치 소등과 함께 오릭스 전성기의 주축 선수였으나 노쇠화로 인해 토사구팽당하고 분배 드래프트에서 라쿠텐으로 오게 되었다. 참고로 전성기를 누린 팀은 오릭스였지만 데뷔팀이 긴테쓰라서 긴테쓰, 오릭스에서 둘 다 뛴 라쿠텐 소속 선수란 진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
요시오카 유지 (2005 - 2008)
2001년 긴테쓰 우승 당시의 주전 6번타자. 팀 해체 후 라쿠텐으로 가 첫 해엔 나름 쏠쏠한 활약을 해줬지만[6] 이후 부진으로 2008년을 끝으로 프로야구 인생의 막을 내린다. -
야마사키 타케시 (2005 - 2011)
팀 최초의 홈런, 타점 타이틀 홀더. 오릭스 시절에 퇴물취급 받고 팽당하다시피 해서 라쿠텐으로 왔는데 노무라 감독 밑에서 기적적으로 회춘하여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3번째 양대리그 홈런왕[7] 타이틀 수상자가 되었다. -
타카스 요스케 (2005 - 2013)
분배 드래프트로 킨테츠에서 온 센터 내야수로 팀 초창기의 주전 2루수. 오릭스와 킨테츠의 많고 많은 센터 내야 자원들[8] 중에서도 가장 낮은 평가를 받고 라쿠텐으로 귀양왔지만, 정교한 타격과 의외의 클러치 능력으로 창단 후 수 년간 주전 2루수-테이블 세터 역할을 맡았다. -
오키하라 요시노리 (2005 - 2008)
원년 시즌 도중에 한신으로부터 트레이드 되었기에 원년 멤버임에도 창단 멤버가 아닌 선수이다. 아래의 쿠사노처럼 28세라는 늦은 나이에 사회인야구로부터 드래프트된 늦깎이 선수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선발된 뒤 그 해 드래프트에서 6순위로 한신에[9] 지명되었지만 후지모토 아츠시, 이마오카 마코토, 세키모토 켄타로, 나중에 입단한 토리타니 타카시 등과의 내야 경쟁에서 밀려 라쿠텐으로 보내졌다. 라쿠텐 입단 시점에 이미 30대를 넘긴 나이였기에 긴 활약은 못 했으나 아무튼 첫 해에는 3할을 치는 활약으로 주전 유격수로 뛰며 눈물나는 전력을 지탱했다. 세이부의 니시구치 후미야의 퍼펙트 게임을 깨는 10회초 선두타자 안타를 친 선수이다. -
쿠사노 다이스케 (2006 - 2012)
노무라 감독에게 천재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3할을 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물론 비아냥이다. 즉 하는 거 보면 전혀 3할을 칠 기본기는 안 돼 있는데 성적은 3할이 나오니 기가 찰 노릇이라는 뜻.[10] 사실 29세[11]라는 늦은 나이까지 사회인야구에서 뛰다가 최하위에 가깝게 프로지명을 받았고[12][13] , 뒤늦게 포텐이 터진 선수라는 점에서 대단한 노력파라고 볼 수 있다.노망주하지만 2011년부터 기량이 눈에 띄게 저하되어 2012년에 구단으로부터 방출통보를 받고 그대로 현역에서 은퇴. -
호세 페르난데스 (2006 - 2008, 2012)
2006년에 3루수 부문 베스트나인 상을 획득해 팀 최초의 타이틀 홀더가 되었다. -
마스다 신타로 (2006 ~ 2018)
코너 내외야를 맡은 유틸리티맨으로, 2013년 주전으로 좋은 활약을 하면서 라쿠텐을 일본시리즈로 이끄는데 큰 기여를 했다. - 우치무라 켄스케 (2008 - 2012)
- 코사카 마코토 (2009 - 2010)
- 나카무라 노리히로 (2009 - 2010)
- 이와무라 아키노리 (2011 - 2012)
- 마쓰이 가즈오 (2011 - 2017)
- 케이시 맥게히 (2013)
- 케빈 유킬리스 (2014)
-
잭 루츠 (2014)
에반스에 앞서 두산으로 왔으나 역시 부진으로 중도퇴출 당했다. -
닉 에반스 (2014)
두산 베어스의 그 닉 에반스 맞다. 그러나 도호쿠 라쿠텐에서는 흑역사 용병. 후반기에 대체 용병으로 들어와놓고 꼴랑 1군 5경기 출장에 타율 1할 1푼 1리를 기록했다. -
고토 미츠타카 (2014 - 2016)
일본프로야구 최후의 오릭스 블루웨이브 출신 선수. 오릭스 버팔로즈의 주전 2루수로 오랫동안 활약했으나 기량 저하로 텟페이와 트레이드되어 라쿠텐으로 오게 되었다. 얇은 선수층의 라쿠텐에서 백업 내야수와 왼손 대타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2016년 방출당하면서 선수생활을 마감했고, 이후 오릭스 블루웨이브 출신 현역 선수는 다른 리그의 스즈키 이치로와 구대성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 윌리 모 페냐 (2015)
-
젤러스 휠러 (2015 - 2020)
라쿠텐의 중심타선과 코너 내외야 한 자리를 5시즌간 굳건히 지켜온 우타 거포 용병. 특이한 인상과 유쾌한 성격, 일본 적응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 등이 부각된 호감형 선수였으나 적지 않은 나이, 외국인 선수 기용범위로 인한 출장기회의 문제를 들며 2020시즌 개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좌완 구원투수 이케다 슌과 트레이드되었다. 이케다가 라쿠텐에서 미미한 활약만 하고 있지만 휠러는 요미우리에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가 현재까지는 이시이 GM이 완전히 참패한 트레이드로 여겨진다. -
자펫 아마도르 (2016 - 2018)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중량 선수 기록을 갖고 있는 멕시코 출신의 우타 거포 용병. 당연히 수비도 불가능해 거의 지명타자를 봤다. 말이 필요 없는 파워에 비해 정확도와 선구안이 문제였으나 2018년 시즌 도중 갑자기 맹타를 휘두르며 드디어 각성...인가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지약물에 걸리며 퇴출되었다.
6. 외야수
-
이이다 테츠야 (2005 - 2006)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90년대 황금기를 대표하는 주축 리드 오프 중견수였던 선수. 90년대 후반 이후 기량 하락으로 마나카 미츠루 등에게 주전자리에서 밀리면서 결국 야쿠르트를 떠났고, 라쿠텐에서 말년을 보냈다. - 사타케 마나부 (2005 - 2006)
-
세키카와 코이치 (2005 - 200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소속으로서는 최초로 공식전 타석에 들어선 타자. 원래는 한신 타이거스 소속으로서 포수로 뛰다가 1990년대 중반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고, 1997년 시즌 종료 후 주니치로 트레이드[14]되었다. 1999년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의 '한국인 삼총사'와 함께 주니치 드래곤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이후 기량이 쇠하여 라쿠텐으로 무상 이적했다. 이후 2년의 암울한 시기동안 나름대로 리드오프의 역할을 맡았다. -
이소베 코이치 (2005 - 2009)
킨테츠의 마지막 선수회장으로 후루타 아츠야와 함께 합병 반대운동의 선봉에 섰다. 라쿠텐에서도 초창기의 중심타자로 활약했고, 은퇴한 뒤에도 개국공신으로 인정받아 2016년까지 라쿠텐에서 코치 직을 수행했다. -
카와구치 켄시 (2005 - 2010)
2001년 킨테츠 우승 당시 7번 지명타자로 활약했다. 라쿠텐에서도 출장 기회는 적었지만 백업 등으로 꾸준히 뛰었다. -
히라이시 요스케 (2005 - 2011)
라쿠텐 창단 첫 드래프트에서 7순위로 지명되었다. 전설의 0-26 완패 당시 9번 타자 중견수로 데뷔전을 치렀다. 현역시절에는 주로 백업 외야수로 1, 2군을 오갔고 2011년 시즌 후 전력외 통보를 받고 은퇴. 그 후에는 팀에 남아 코칭스탭으로 활동하다 2018년 나시다 마사타카 감독이 시즌 도중 사임하면서 감독 대행으로서 팀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이른바 마쓰자카 세대 최초의 감독으로서 주목을 받았으며 창단 이후 최초의 팀의 선수 출신 감독이다. -
마키다 아키히사 (2005 - 2016)
팀 최후의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선수이자 라쿠텐 최후의[15] 원년 멤버. 강견의 툴가이 외야수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타격의 성장이 더뎌 끝내 주전 자리는 차지하지 못하고 외야 대수비, 대타를 중심으로 활약했다. 위의 고토 미츠타카와 같은 해 방출당하며 팀에서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현역 선수는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16] 은퇴 후에는 라쿠텐의 유소년 팀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
릭 쇼트 (2006 - 2009)
2008년 퍼시픽리그 타격왕. 2003년 치바 롯데에서 뛰었던 적 있는 유틸리티맨으로, 일본에 처음 발을 딛은 시점에 이미 마이너리거 생활만 11년차이던 그야말로 잡초같은 야구인생을 보낸 선수였다. 롯데를 나온 뒤 2005년 워싱턴 내셔널즈에서 14년의 프로 생활만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아 적시타를 친 것과, 그 다음해 AAA에서 4할 타율에 도전한 것으로 소소하게 이슈가 되기도 했으며 라쿠텐에서 선수생활을 은퇴했다. 참고로 일본에서 유격수를 쇼트라고 하다 보니[17] 올스타전에서 유격수로 투표를 받기도 했으나 정작 유격수는 전혀 못 봤다(…). - 텟페이 (2006 - 2013)
- 앤드류 존스 (2013 - 2014)
-
히지리사와 료 (2008 - 2018)
2011시즌 54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을 차지했다. - 카를로스 페게로 (2016 - 2018)
-
자바리 블래시 (2019 - 2020)
2018년 최고의 AAAA 리거였던 선수. 타격폼이 굉장히 특이해서[18] 라쿠텐 팬들도 타격폼을 따라하면서 낄낄대는 장면도 있는데 엄청난 파워와 선구안을 보여주면서 타율은 2할대 중후반으로 그냥 그렇지만 30홈런을 넘기고 OPS는 9할대로 폭격하며 4번 지명타자/우익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2020년 시즌에는 초반 부진하며 새로 들어온 스테판 로메로에게 완전히 밀려 2군으로 내려갔다. 20시즌 종료후 재계약을 하지않으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1]
난카이 출신 마지막 야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은퇴한
오미치 노리요시. 2010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다만 오미치는 난카이 시절엔 1군경기 출장 경험이 없다. 이 둘은 요시다가 은퇴한 해인 2007년 6월 9일 난카이 출신 선수끼리의
마지막 투타 맞대결을 가지기도 했다.
[2]
청춘 18 티켓 하루치에도 못 미치는 푼돈이다. 그 덕분에 다른 3구단과는 달리 히로시마는 구단 경영진이 별 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뒤집어서 말하면 히로시마가 짠돌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3]
하체를 노출시키고 중요 부위에 양말을 씌웠다고 한다.
[4]
식사 제안을 하고 거절하면 야간에 7~8번씩 전화를 걸었다고 함
[5]
다른 점은 오토사카는 사생활이 좋지 않았으나 방출당할 정도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고 그냥 못해서 방출당한 것이다.
[6]
당시 팀 내 타율 1위를 기록했는데, 그의 타율 .282는 라쿠텐의 창단 첫 시즌 승률 .281보다 높았다.
[7]
나머지 두명은
오치아이 히로미츠(롯데, 주니치)와
터피 로즈(긴테쓰, 요미우리)이다.
[8]
합병 버팔로즈는 오릭스에서 시오자키 마코토, 고토 미츠타카, 히라노 케이이치 / 킨테츠에서 아베 마사히로, 미즈구치 에이지의 주전 내야진을 싸그리 데려갔는데, 당연히 출전시간 분배와 기용의 문제가 생겼고 안면 부상 등으로 인해 한신으로 내보낸 히라노가 커리어 하이 때는 3할 5푼도 치며 포텐을 터트리는 꼴을 지켜보게 된다.
[9]
같은 드래프트에서
아카호시 노리히로가 같은 사회인 출신의 올림픽 대표팀 멤버로 한신에 4순위로 지명된다.
[10]
사실 규정타석 3할은 2009년 한 번이지만 2007년~2010년까지 4년 가까이 꾸준히 주전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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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나이로 30세에 드래프트에 지명되어 31살에 데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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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8라운드. 이 때문에 지명 직후에는 이 나이에 8라운드 지명은 프로에 가봤자 미래가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단 거부도 생각했었다고. 그러나 선배와의 상담 끝에 입단. 그리고 드래프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당시 드래프트는 대졸/사회인야구 출신과 고졸 출신을 따로 드래프트 했기 때문에 8라운더라고 하지만 고졸 드래프터 3명까지 합치면 사실상 11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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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더 웃긴 사실은 쿠사노는 당시 라쿠텐 드래프터 중 최하위도 아니었고, 한국 나이 30세에 지명됐다고 해도 최고령도 아니었다(...)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9라운더가 이 해 라쿠텐의 최하위 지명이었고, 이 9라운더 야마자키 타카히로도 한국 나이로 30세에 쿠사노보다 생일이 두 달 빨라서 이 선수가 최고령(...) 그러나 야마자키는 쿠사노와 다르게 4년 동안 22경기에 나와 타율 .207에 1홈런을 기록하고 방출당해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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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카와 코이치 &
쿠지 테루요시 ↔
타이호 야스아키 &
야노 아키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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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시점에서 마키다가 은퇴하면서 야구계 전체를 봐도 라쿠텐 원년 멤버는 이와쿠마 딱 한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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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전체에서는
사카구치 토모타카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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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업 소개는 쇼트라고 하지만 기록지는 놀 유(
遊) 자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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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유킬리스랑
훌리오 프랑코를 섞어놨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배배 꼬인 스탠스에 배트를 길게 잡고 투수를 향해 뻗는 듯한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