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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9 18:26:45

대집성

大集成
? ~ 1236년 5월 17일

1. 개요2. 생애3. 일화4. 대중매체5. 관련 문서

1. 개요

고려 시대의 무장. 태집성(太集成)이라고도 불렸다. 고려에 귀부한 옛 발해 왕족의 후손으로 협계 대씨의 시조다.[1]

2. 생애

고려 고종 때 낭장(郞將)을 지내고 1218년에 차장군(借將軍), 1228년에 대장군(大將軍) 겸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를 지내기도 했다. 후에 정승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는 수사공(守司空)까지 올랐다고 한다.

조상인 대조영 고구려부흥운동을 일으켜 발해를 세운 지대한 역할을 했다. 또 다른 조상인 대도수 제1차 여요전쟁 때 승전보를 울리며 서희의 외교에 보이지 않는 공을 세웠으며 제2차 여요전쟁 때는 패배하긴 했으나 고군분투하며 잘 싸웠다.

그러나 대집성은 무신정권 당시 아첨하고 무능한 전형적인 소인배였다. < 고려사>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게 되면 인맥을 믿고 날뛰다 자기 말 안 들으면 일단 없애고 보는 전형적인 간신배.

다만, < 고려사>에선 최우가 그 막장성을 가볍게 뛰어넘은 탓에 대집성이 병풍 처리된 감이 있고 간신 열전에 실리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최우를 미화시키는데 일조한 박훤[2]이 오히려 간신 열전에 오른 덕택에 대집성이 묻힌 것이다. 안북성 전투 때의 일이나 이후 일을 보면 사실 열전에 올리기엔 민망할 지경이긴 한데, 어쨌든 간신 열전과 폐행 열전에 올리지 않은 건 그래도 최우와 달리 나가서 몽골 군대와 싸웠다는 것이 덕택이고, 안북성 전투를 두고 대집성 능력 탓만 하기엔 몽골군이 원체 강하기도 했으며, 박훤이 최우를 미화하는데 신나게 열을 올린 것과 달리 대집성은 그래도 그런 짓까진 하지 않았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간신 축에도 낄 정도는 아니었던 셈.

음험성도 그닥이었고 아부를 시전하긴 했지만 눈치도 없었고, 최씨 정권에 갈굼만 당하고 이후 유배 크리까지 먹었으니 굳이 찾자면 폐행 정도에 어울리는 인물이다. 반대로 박훤, 송길유, 김준은 되려 최씨 정권을 연장시켰고, 김준도 붕괴시킴과 동시에 최씨 정권을 연장시켰기에 그들의 장기 집권을 간접적으로 도왔다. 사실 이들도 대집성처럼 눈치도 없고 겁쟁이로 전락하는 순간 최씨 정권의 수명은 길어봐야 최우로 끝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뒤 수사공(守司空)으로 있다가 1236년 5월 17일 사망했다.

3. 일화

4. 대중매체

5. 관련 문서



[1] 족보에서는 대도수의 6대손이라고 한다. [2] 본관은 공주 박씨이며 초명은 박문수(朴文秀). 최우의 가신이 된 이후 사관(史官)이 되었던 그는 최우를 미화시킨 책을 편찬해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후 최항과 관련된 발언을 하다 미움을 사 흑산도로 유배를 갔고 이후 최우가 다시 올라오라 명하자 당시 박훤을 증오하고 보기만 해도 찢어죽이고 싶어하는 최항이 자객을 보내 그를 무참하게 죽였다. [3] 앞에 借(빌릴 차)가 붙는 건 지금으로 따지면 비정규직 자리다. 윗사람이 그냥 포상용(떡밥)으로 던져주는 상징적인 직책. 직책명부터가 "장군이라는 직책을 잠깐 빌려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자기가 이끌수 있는 병력이 없는 것도 당연하지만 우둔하고 눈치없는 이 멍청이는 그걸 몰랐던 거다. [4] 江陰縣, 현재의 황해북도 금천군 [5] 성 밖에서 야전을 벌여야 한다고 했고 결국 고려군이 성 밖으로 나갔으나, 대패했다. [6] 갓 과부가 된 대집성의 딸이 예쁘다는 말을 들은 최우가 그 딸을 데려다가 후처로 삼았다. 당시 대집성은 후군(後軍)의 지휘관으로 있으면서 비록 전투에서 패배하는 일이 있더라도 최우(빽)를 믿고 전혀 겁을 내지 않았다. - 《 고려사》 최이 열전. [7] 원나라로부터 고려에 파견된 다루가치 [8] 비록 본인들의 안위를 위해서 마음대로 처리한 것이지만, 원칙적으로 이 자리는 고려의 최고집정자인 최우가 정3품 이상의 고위직인 재상들을 불러다가 국가의 중대사를 의논한 것이였다. 그런데 야별초지휘{혹은 夜別抄指諭}라는 직은 指諭라는 명칭에서 보다시피 가장 높아봐야 정5품 중랑장급 정도이고, 야별초라는 부대는 최우가 자신의 사적인 경비를 위해서 조직한 군사조직이었다.(물론 경찰업무도 담당하였다.) 특별한 대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이상 함부로 이야기해도 될 위치가 아니었다. [9] 제1차 여몽전쟁에서 대패한 뒤 최우에게 항상 무시당한다. [10] 실제 대집성은 위에 연도에도 나오지만, 최우보다 13년 전에 먼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