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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3:38

김회성/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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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2. 프로 시절
2.1. 한화 이글스
2.1.1. 2009 시즌2.1.2. 2010 시즌2.1.3. 2011 시즌2.1.4. 경찰 야구단 시절2.1.5. 2014 시즌2.1.6. 2015 시즌2.1.7. 2016 시즌2.1.8. 2017 시즌2.1.9. 2018 시즌2.1.10. 2019 시즌2.1.11. 2020 시즌

1. 아마추어 시절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자라면서 대전신흥초등학교 - 한밭중학교[1]을 졸업하고 공주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속초상업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고, 속초상고에서 또 다시 청주시 세광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는 등 이리저리 옮겨 다녔으며, 그 과정에서 유급까지 했다. 세광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지명을 받지 못해 경성대학교에 입학했다.[2]

경성대학교에 들어가서도 1, 2학년 당시 이렇다 할 성적도 내지 못하고, 그나마 몇 번 주어진 타석에서도 거의 안타를 치지 못하면서 쩌리로 남았으나, 3학년에 올라가면서 파워 포텐셜이 폭발, 1년동안 7개의 홈런을 치면서 단국대학교 나지완(11개)에 이어 대학리그 홈런 2위를 차지했다. 특히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준결승에서 3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면서 파워를 과시해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 때 경성대학교에서 함께한 선수 중 한 명이 한동민이다. 다만 경성대 시절 커리어 하이였던 3학년때도 타율은 .256으로 컨택과 선구안에 분명한 약점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4학년 때 타율이 .188로 다시 떨어지고, 당연히 홈런도 2개로 감소하면서 그저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고교와 대학 소속으로 뛴 아마추어 경기의 통산 성적은 다음 표와 같다.
아마추어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공주고 출전 기록 없음
2002 속초상고 유급[3]
2003 세광고 3 9 .222 2 2 0 0 2 1 0 0 .444 .222
2004 7 21 .238 5 1 0 0 5 3 0 2 .286 .304
2005 경성대 14 15 .133 2 0 0 0 2 1 0 0 .133 .133
2006 8 12 .167 2 1 0 0 2 0 0 0 .250 .167
2007 25 86 .256 22 5 0 7 20 13 2 19 .558 .387
2008 19 64 .188 12 4 1 2 8 12 1 17 .375 .358

정리하자면 통산 고교-대학 성적은 76경기 207타수 45안타 타율 .217 9홈런 39타점 3도루 38볼넷.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청권 팜이 흉작인 이 해에 크게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는 없었다. 천안북일고의 에이스인 고원준 제주특별자치도 출신의 전학생이었기에 애초에 한화의 1차 지명 대상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4][5] 사실 김회성도 공주고-속초상고-세광고로 전학을 2번이나 경험했고 유급 이력까지 있던 선수이다. 이 때문에 한화 구단 측에서 KBO에 유권 해석을 요청했고, KBO에서 1차 지명이 가능하다고 해석해서 최종적으로 1차 지명했다. 고원준이 지명 안되고 김회성이 지명됐던 차이점은 고원준은 제주제일중에서 중3 때 전학을 왔고, 김회성은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자라 온 연고지 출신 선수이기에 그렇다. 게다가 김회성이 입학한 공주고나 마지막으로 전학한 세광고 한화 이글스 관리 하의 충청 지역 연고의 고등학교다 보니 태클을 걸 일이 없었다.

공주고 에이스인 조득주가 언론에 언급되기도 했으나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진은 고려하고 있지 않았고, 소문에 따르면 단국대학교에서 4학년 당시 4할을 친 외야수 이종환[6]과 김회성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회성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고,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종환의 입장에서는 불운하게도 이미 1년 전에 박상규를 지명하면서 외야수 상위 지명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무엇보다 팀의 주전 3루수인 이범호 FA를 앞두고 있던 기한이 1년밖에 남아 있지 않았으며 팀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3루수도 없었다. 결국 스카우터들은 김회성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이종환은 2차 지명에서도 안 뽑았다.

이런 팀의 선택에 팀의 핵심인 주전 3루수를 잡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논란을 사게 되었고, 이후 이범호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다가 실패하여 귀국한 후 한화로 돌아오지 않고 KIA로 이적하면서 이러한 우려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동시에 한화의 3루는 답이 안 나오게 된다. 1차 지명자로는 성적이 모자라는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따로 1차 지명자가 될 만한 성적을 낸 다른 선수도 없었기에 사람들이 금방 수긍했다.

결국 1차 지명이 확정되고, 계약금 1억 원을 받으면서 프로에 입문하게 된다.

2. 프로 시절

2.1. 한화 이글스

2008년 대학리그 일정을 끝내자마자 한화에 합류했는데, 합류하자마자 연습경기때 손등에 공을 맞아서 손가락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으면서 순탄치 않은 프로생활의 시작을 알렸다.

2.1.1. 2009 시즌

스프링캠프 당시 투수의 공에 손목을 맞아서 며칠간 훈련을 못하기도 했다. 이후 올라오는 뉴스기사들에 꾸준히 부상에 관해서 언급되는 것을 보면 09, 10시즌 내내 잔부상에 많이 시달린것 같다.

2009 시즌 중 이범호가 부상당하면서 1군에 콜업되었으나, 지옥같은 3루 수비28타수 4안타 타율 0.143이라는 극악한 성적을 보여주며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2군으로 돌아갔다.

2.1.2. 2010 시즌

1년 만에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팀에서 그에게 보내는 기대치를 알 수 있게 만들었고(...) 주전 유격수였던 송광민이 3루수로 전향, 아시안게임 참가를 위해 푸쉬를 받으면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으나, 3루수를 보던 송광민영장을 받아 시즌 도중에 현역으로 군입대라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급히 콜업되어 기회를 부여받게 된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올리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비가 너무 지옥이었고(...), 타격도 부진해 17타수 무안타라는 기록을 남기고 내려가야 했다. 원래 컨택과 선구안이 좋지 않았던 타자였는데 이 당시에는 심지어 부상까지 있어서 방법이 없었다.

이후 한화는 이여상 오선진, 전현태 등의 유망주를 동원해서 3루수 구멍을 막아보려 했지만 모조리 실패하고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던 손지환을 영입해서 간신히 시즌을 마치게 된다.

2.1.3. 2011 시즌

이 해에도 어깨부상을 입으면서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지 못했다(...). 시즌초에는 이여상 오선진이 3루에서 먼저 두각을 드러내는 바람에 두 사람의 경쟁에 밀려 1군에 콜업되지 못했으나, 오선진 정재훈의 공에 손등을 맞아 사실상 시즌 아웃되면서 내야 백업으로 본격적으로 기회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화 팬들은 지옥같은 수비와 끔찍한 타격을 보기 시작했다.

마당히 백업이 없던 한화의 내야진 여건상 어쩔 수 없이 1군에서 꾸준히 1, 3루의 백업으로 선발 및 교체로 간간히 출장했으나 정말 많은 사람들의 복장을 뒤집어놓는 한해를 보내게 됐다. 이해 주전 3루수였던 이여상은 3루수로 꾸준히 출장하면서도 강습타구에 적응하지 못해서 3루 라인선상에 오는 타구는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유격수인 이대수와 3루수인 이여상이 모두 수비 범위가 좁아서 3-유간의 타구는 거의 안타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김회성의 수비는 이여상의 수비보다도 더 심각해서 사람들의 뒷목을 잡았다. 타격? 타격의 경우에는 일단 맞추면 2루타 이상은 보장하는 장타력을 보여줬다. 물론 그게 공을 방망이에 맞췄을 경우라는게 문제지만.

이 지옥같은 수비 중에서도 6월 7일 LG 트윈스와의 경기가 백미였는데, 정원석의 컨디션 난조로 대타로 1루수에 기용되었는데 이병규의 평범한 1루수 앞 땅볼을 잡고 제 자리에서 공을 던지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병살이 될 타구를 무사 1, 2루로 만들어줬고, 결국 이 에러로 인해서 그때까지 점수를 내주지 않고 있던 안승민 2점을 내주면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 날 한화 내야진은 극도로 1루쪽으로 공이 가지 않게 주의했는데, 심지어 2사 1루 상황에서 2루수 앞 땅볼을 잡은 한상훈이 던지면 쉽게 잡을 수 있는 1루쪽으로 공을 던지지 않고 이미 주자가 거의 들어와 박빙인 2루에 던지고, 희생번트 타구를 잡은 투수가 1루가 아니라 2루 선행주자 아웃을 시도한다거나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자신의 주 포지션이 아니라지만 기본적으로 전 포지션이 가능한 내야수가, 내야수비 중 가장 쉽다는 1루수에서 이 어처구니 없는 수비실책을 저지르는 것에 당시 경기를 보던 사람들은 일제히 경악. 시즌 초, 역시 수비 문제로 2군으로 내려간 김강과 함께 신나게 까였다.

이러한 끔찍한 실력에 디시인사이드의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감독이나 투코들의 문제점을 하나씩 선정한 '2011 한화 이글스 최악의 조합'에서 김회성 그 자체가 최악으로 선정되었다.

그래도 꾸준히 기용되자 조금씩 성적이 향상되기 시작, 가뭄에 콩나듯 안타를 치기 시작하더니 8월 13일 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에서 8:3으로 뒤지던 9회말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김창훈을 상대로 좌월 솔로 홈런을 치며 프로 데뷔 후 72타수만에 첫 홈런을 기록했고, 8월 25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청주 구장 경기에서 이여상 대신에 3루수에 선발 출장하여 데뷔 후 무실점이던 용병 저스틴 저마노에게 3점 홈런을 뽑아내는 거포 본능을 뽐냈으나 투수진이 무너지는 바람에 묻혔다. 하지만 파울 타구를 끝까지 따라가며 슬라이딩 캐치까지 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면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2.1.4. 경찰 야구단 시절

2011 시즌이 끝난 후 상무와 경찰청에 지원했고 상무에 1차 합격, 이후 경찰청에 최종 합격했다.[7]

2012년 2할 후반대의 타율과 홈런 18개로 남부, 북부리그 전체를 통틀어서 2군 홈런왕을 기록. 2013년에는 타율은 괜찮은데 허벅지 부상 때문에 장타가 확 줄어서 시즌 중반까지 홈런이 거의 없다가 후반기에 좀 쳐서 최종성적 84경기 0.315, 0.423, 0.483에 홈런 7개를 기록.

경찰 야구단에 있던 2년 간의 기록은 분명히 2군을 대표하는 타자로 좋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전역 이후 긁어 볼 만한 로또로 생각되면서 일말의 기대를 가지게 됐다. 다만 이미 프로 1년차였던 2009년부터 2군에서의 성적은 좋았고, 삼진의 개수가 볼넷 개수의 2배에 육박한다는걸 보면 1군에서 먹힐 수준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에 여지가 있는 편. 게다가 프로 입단 후 건강하게 1년을 보낸 시즌이 군대에서 보낸 2012 시즌이 유일하다는 점도 불안요소이다. 또 입대 이전에 1군에서 적응을 못했던 탓이었던지 기초적인 플레이에도 실수를 했던 수비가 나아졌을지도 두고봐야한다.

어쨌든 일단 전역해서 1군에서 뛰어 봐야 알 수 있을것이다. 2011년 너무 삽질을 했고, 어느덧 나이다 30대를 바라보는 나이라 유망주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처지라 사람들이 기대와 관심을 안 줬는데, 의외로 프로 입단 이후 100타석도 기용되지 않은, 한번도 제대로 긁어보지 않은 로또에 가깝다.

일단 현장의 기대는 큰편인데 경찰청에서는 공격과 수비 양쪽에서 좋아졌다고 자평하고 있다고 하며, 소속팀인 한화 코칭 스태프쪽에서도 2012년 주전 3루수였으며 2013년에는 부진으로 내야 백업을 맡았던 오선진, 2군에서 차기 주전 유격수로 키우면서 긴급상황시 내야 백업으로 올라오던 하주석까지 전부 몰아서 상무에 보냈는데 김회성에 대한 기대치도 이러한 과감한 군 입대 결정에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2.1.5. 2014 시즌

정규시즌 들면서 일단 주전 3루수로 기용되고 있다. 다만 타선이 많이 좋아진 편이라 주로 7번에 배치되고 있다.

4월 2일 대전 삼성전에서 배영수를 상대로 시즌 마수걸이 홈런이자, 경찰 야구단에서 복귀한 후 첫 홈런을 터뜨렸다. 이 홈런은 송광민이 동점 3점 홈런을 치고 나서 바로 친 백투백 홈런이다. 이후 팀의 타선이 터지면서 한화는 어제의 거짓말같았던 역전패를 만회하는 승리를 거뒀다. 이날 호수비도 보여주며 자신을 어필했다.

4월 8일 NC와의 원정 경기에서 7회 상대선발 찰리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터뜨린 데 이어 8회에는 만루 찬스에서 깔끔한 2타점 적시타를 기록, 3타점 맹타를 휘둘렀다.

이틀 후인 10일에는 에릭 해커를 상대로 3호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수비, 타격 전부 입대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말했던 긁어보지 않은 로또가 터졌다고 봐도 되는 수준.

이후 활약에 힘입어 5번 타자로 배치되었으나 부진, 6번 타순으로 변경되었고, 4월 15일 KIA전 임준혁을 상대로 깨끗한 좌중간 솔로 홈런을 뽑아내었다. 4호 홈런.

현재 꾸준히 괜찮은 수비를 보여주었고 팀내 최대 홈런 기록자이나, 득병 기질이 심해서[8] 19일 LG전에서 7회 1사 1, 3루 상황에서 김회성 대신 김태완이 대타로 들어서는 등[9] 확실한 믿음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일단 주자시에 타율을 끌어올려야 전체적인 타율도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22일 코칭스태프에서는 김회성의 허리가 조금 문제가 있는 상태이며, 그 때문에 풀 시즌 선발은 힘들것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당분간 송광민과 계속 교체 출장할 예정. 홈런 페이스만 끌어올려주면 이범호 이후 계속 갈증에 시달린 3루수 거포의 등장이였지만 안타깝게 되었다.

24일 두산과의 홈 경기에서는 6회 2사 만루 상황에서 대타로 투입되어 약간 행운이 깃든 2타점 적시타를 쳐냈다. 게다가 8회에도 적시타를 치면서 대타로 출전하여 2안타 3타점을 올리는 고효율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5월 7일 LG와의 원정경기에서 2회에 시즌 5호 홈런을 터뜨렸다. 잠실에서 밀어쳐서 담장을 넘긴 홈런이기에 더 특기할만한 사항.

5월 9일 KIA와의 홈 경기에서 12회의 연장 끝에 1경기 5삼진을 기록하였다. 이는 1985년 해태 김무종의 기록을 30년만에 만들어낸 한 경기 최다 삼진 타이 기록이다.

5월 27일 NC와의 홈경기에서 송광민이 거하게 실책을 저질러 비자책 5점을 이동걸에게 선사한 5회부터 투입, 4타수 3안타로 시즌 첫 3안타 경기를 선보였다. 3안타 중 2개가 2루타로 장타력은 확실히 보장받는 모습이다. 물론 팀은 18점을 내주며 맥없이 패배했다.

6월 26일 롯데전에서 적시타를 치고 담 증세가 오면서 경기 초반에 교체되었다. 결국 안되겠다 싶었는지 28일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임익준이 등록되었다.
시즌 후에는 김성근 감독과 함께 마무리 훈련을 했고, 거기서 1,000개 이상 펑고를 잡아 냈다고 한다. 김성근 감독에게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지는 등 성실하고 좋은 자세를 보여주어 김성근 감독이 오히려 놀랐다더라.[10]

김성근 감독은 “김회성 같은 아이는 처음이다. 내가 여기 온 지 3일 만에 나에게 질문을 했다. 전에 있던 SK에서는 선수가 처음으로 나에게 질문을 하는 데 2년이 걸렸다”며 “도화지에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아이다. 이 백지 같은 아이에게 무슨 색깔을 그려줘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김회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했다. 타고난 하드웨어와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하며 꽤 공들이는 듯 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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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훈련 당시 어두워진 야구장에서 혼자 남아 훈련 중 쉬는 모습.

2.1.6.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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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심각한 삽질로 욕을 바가지로 먹었으나, 이후 나름대로 쏠쏠한 장타를 선보이며 마크 레이놀즈 마냥 공갈포라도 날린다며 칭찬받았다.

2.1.7. 2016 시즌

어깨부상 재활로 인해 전반기를 뛰지 못하고, 후반기에 대타로 간간히 나서는 중.

9월 11일 대전 SK전에서 2:5로 뒤지고 있는 4회말 2사 만루상황에서 대타로 출전, 투수 켈리를 상대로 센터 담장을 넘기는 역전 만루포를 쏘아올렸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시즌이 끝났다. 자랑이던 장타율도 확 줄었고. 물론 표본이 적어 비교하긴 뭐하지만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건 사실이다.

2.1.8. 2017 시즌

시범경기에서 그야말로 죽을 쑤며 '야구 그만두고 치킨집 개업하라'는 소리를 듣는 지경이 되었다.

8일 이동훈과 이동걸이 말소된 자리에 양성우와 함께 콜업되었고 당일 KIA전에서 4타수 무안타로 부진해 타율이 1할 7푼 2리까지 하락한 윌린 로사리오와 교체되어 1루 수비를 소화했다.

4월 19일 LG전에서 61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운 김태균 대신 1루수로 투입되었는데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환상의 수비로 날려버리며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한다. 정우람의 훌륭한 표정관리가 인상적인 순간(...). 덕분에 10구에서 끝날게 16구로 늘어났다.

4월 20일 이후 한동안 경기 출장이 없었다. 송광민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지명타자로만 나오게 되자 대신 3루 수비를 맡으며 5월 2일부터는 다시 선발출장하는 중.

5월 11일 김태균이 장시환과의 치열한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 나가자 대주자로 투입되었다.[11] 득점하지는 못하고 이후 3루 수비를 소화했다.

이후 답없는 선구안으로 선발출장의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31일 로사리오가 포수로 출장하고 김태균이 지명타자로 나선 덕에 1루수로 선발 출장해 밀어내기 타점 하나를 올렸다.

6월 12일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8월 13일 대타로 나와 안타를 쳐냈다.

이후로도 주전들이 줄줄히 부상당한 상황에서 나름 활약하고 있다. 매경기 멀티히트까진 아니더라도 두번의 홈런을 기록 중.

9월 23일 삼성전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에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경기에서 타격감이 좋았던 송광민을 거르고 쳐낸 끝내기 안타여서 의미있는 안타가 되었다.

2.1.9. 2018 시즌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으나 2월 9일 기사를 통해 허벅지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올라오면서 벌써부터 유리몸의 기운을 풍기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심각한 부상은 아니라고 한다.

4월 14일 올해 처음으로 1군에 콜업됐다.

콜업되자 마자 대타로 들어선 첫 타석에 쐐기 3점홈런을 쳤다.

18일 2타점 적시타와 적절한 호수비를 보여주었으나 9회초 2사 2,3루 기회에서 루킹 삼진을 당해 아쉬움을 주었다.

26일 KIA전에서 2타수 1안타 1볼넷 1삼진으로 애매했다. 다만 상대가 8회까지 무실점이었던 양현종이었고, 제대로 안타친 사람은 많이 없었다. 경기 중반 대주자 이동훈과 교체되었다.

5월 1일 LG전에서 이성열의 대수비로 1루수비를 봤고 1타수 무안타를 기록, 타율이 2할 5푼까지 떨어졌다.

5월 11일 NC전 오랜만에 1루수로 선발출장하였고, 이성열과 경기 후반 교체되었다.

5월 12일 포지션 중복 문제로 결국 말소됐다. 대신 올라온 선수는 원혁재.

6월 5일, 오선진이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여주며 전날 말소됐고, 대신 1, 3루 백업을 위해 콜업됐다.

6월 6일 송광민의 진짜 대타로 투입되어 바뀐 투수 최성훈을 상대로 1타점 안타를 치고 홈런으로 1득점까지 올렸다.

한동안 대수비 혹은 선발로 하위타선에 들어섰으나 이렇다 할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고, 6월 17일 1군에서 말소됐다.

8월 10일, 수비에서 크게 흔들리는 김태연과, 주전 3루수가 아닌 정은원이 잇달아 흔들리면서[12] 백업을 위해 1군에 콜업됐다. 이후 10월 3일 경기에서 송광민이 팀 케미스트리를 해친 것에 대한 징계 차원에서 2군행이 결정되자 그를 대신해 선발 3루수로 출장, 2볼넷을 얻어내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10월 9일, 라이언 피어밴드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투런포 포함, 2루타와 안타 등 3안타 4출루로 경기 MVP로 뽑혔다. 송광민이 2군으로 내려간 상황에서 희망적인 점.

10월 13일, 동점 투런 홈런을 날리고 볼넷으로 두 번이나 출루하면서 제몫을 다했다. 팀도 승리하면서 자력으로 3위를 결정,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게 되었다.

준플레이오프 3차전 고척 원정경기 2회 무사 1,2루 찬스 상황에서 전설의 삼중살(트리플 플레이)을 쳤다.

2.1.10. 2019 시즌

4월 2일 팔꿈치 통증으로 말소된 이성열을 대신하여 콜업되었다. 콜업 이후 주로 1루 대수비 혹은 대타로 꾸준히 출장했다.

4월 24일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5회 노시환을 대신하여 1루 대수비로 투입되었고, 연장 11회 말 무사 만루 상황에서 좌중간 끝내기 안타를 쳤다.

5월 4일 KT 위즈 전에서 이창열 타석 대타로 들어서 끝내기 3타점 적시 2루타를 만들어 냈다.시즌 2번째 끝내기 안타였다.[13]

5월 5일 KT 위즈 전에서 대수비 뒤 타석에 들어서 3루수 플라이 아웃으로 어린이날 선물을 주기에는 실패했다.

5월 9일 SK 와이번스 전에서 4타수 1안타 1홈런으로 쏠쏠하게 활약했으나, 생애 첫 멀티홈런을 친 오선진에게 묻혔다.

확대 엔트리 제도가 시행된 9월 1일 양성우, 문동욱 등과 콜업되었고, kt 상대로 쐐기를 박는 쓰리런 포를 치는등 3타수 3안타 3타점으로 맹활약했다. 팀도 6대 1로 승리.

2.1.11. 2020 시즌

스프링캠프에 포함되었으나 20일 다리에 불편함을 느껴 수비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큰 부상은 아니었는지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개막전부터 김태균의 대수비로 출장하며 일찍 1군 무대를 밟았다.

현재 한화의 코너 내야 자원들이 모두 타격감이 안 좋기 때문에 김회성도 간간히 나오고 있다. 다만, 김회성도 상대적으로 나을 뿐 타격감이 썩 좋지는 않다는 평이 많다.

8월 24일 현재 퓨처스에서 정확히 타율 3할, OPS .850을 기록 중이다. 조만간 콜업이 될 법 하지만 아직 콜업 소식은 없다.

퓨처스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시즌 종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 팀을 떠나게 되었고 이후 한화의 전력분석원 제의를 받고 전력분석원으로 부임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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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기자 송중기와 동기다. [2] 경성대학교는 지방대라고 무시되기 쉽고, 실제로 서울의 명문대에 비하면 중량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경성대학교 야구부도 1981년 창단해, 전국대회 우승도 자주한 명망 높은 강팀이다. [3]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의 기록실에 의하면 김회성은 2001년 공주고등학교 소속, 2002년 설악고등학교(舊 속초상업고등학교), 2003~2004년 세광고등학교 소속으로 조회된다. 2002년 속초로 전학갔다가 유급하고, 2003년부터 세광고등학교로 전학해 2학년부터 다닌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4] 이후 2차 지명에서 1라운드에서 고원준을 뽑을 기회가 있었으나, 3년간 투수를 탈탈 털어먹은 김인식 당시 한화 감독이 즉전감 대졸을 원한 결과 원광대학교의 우완 파이어볼러로 평가받은 투수 구본범을 뽑게 된다. 결국 고원준 히어로즈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5] 여담으로 이후 2, 4, 5라운드에서도 대졸 투수를 뽑고 6라운드에서도 대졸 타자인 김강석을 뽑으면서 7명의 신인 중 6명을 대졸을 지명해 즉전감을 건지려고 시도하나 결국 백업으로라도 뛴 선수는 황재규 단 1명에 불과했으며, 황재규조차도 혹사로 오래 버티지 못하고 2010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복귀했지만 2015년에 임의탈퇴 공시됐다가 복귀를 반복한 끝에 2016년에 방출당했다. [6] 이종환은 북일고 출신이라 1차 지명이 가능했으나 프로에 지명되지 못했고, 이후 나지완의 소개를 받아 신고선수로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2015년 5월 6일 트레이드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해 결국 김회성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이종환은 유리몸이었다. [7] 이희근 김강이 상무에 합격했으며, 구본범 허유강이 경찰청에 합격해서 동시에 입대하게 됐다. 재미있게도 이 중 김강을 제외한 전원이 입단 동기이다. 다만 김강은 상무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2012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서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게 되어 한화 이글스를 떠난 후 입대했다. [8] 22일기준 4홈런 모두 솔로 홈런, 무주자시 타율은 .321로 수준급이나 주자있을시 .091... 심각하다. 득타율은 .182. 정과학에 이은 김과학으로 초특급 승진? [9] 심지어 이 때 김태완은 2스트라이크 이후 3점 홈런을 때려내며 한화의 대표 거포 대타임을 증명하였다. [10] 지옥훈련을 겪으면 질문을 할 생각조차 안 날 정도로 힘들고, 또 궁금하더라도 그 카리스마에 쉽게 질문을 던지는 선수도 거의 없다고 한다. [11] 66경기 연속 출루 [12] 원래 정은원은 3루 수비가 영 안 좋았지만, 송광민이 부상으로 내려가면서 어쩔 수 없이 내야 백업 롤로 맡았고, 대차게 몇 번 말아먹고 말았다... 신인의 자신감을 위해서라도 내야 백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13] 외야수의 실책성 플레이가 겹쳤지만, 외야수는 어지간해선 에러가 주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