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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3:15

김종호(야구선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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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삼성 라이온즈 시절3. NC 다이노스 시절
3.1. 2013 시즌3.2. 2014 시즌3.3. 2015 시즌3.4. 2016 시즌3.5.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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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성 라이온즈, NC 다이노스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 김종호의 선수 경력에 대한 문서다.

2. 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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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 시절부터 공수주를 갖춘 선수라는 평을 받았다. 당시 삼성에는 드물었던 발빠른 쌕쌕이 타자였지만 당시 감독이 베테랑을 중시하다보니 기회가 오지 않았다. 사실 2007 시즌만 하더라도 삼성 타선은 노인정 타선이었다. 주전급 타자 중 20대인 선수는 박한이[1] 조평신 1호기, 2호기 뿐이었으니. 그리하여 2007 시즌 후 바로 군입대를 결정. 노장들이 은퇴한 후 중용되기를 바라며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해 주전 중견수로 활약한 후 제대했다. 다만 입대 2년차에는 경기 도중 머리에 공을 맞아 뇌진탕으로 인해 타율이 2할 6푼대로 저조했다. 명성이 떨어졌는지 이때 삼성 응원가는 없었다.

그런데 군대에 갔다오니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이 넘쳐난다! 이영욱, 정형식, 허승민에 심지어 우타자인 배영섭, 오정복까지…. 더구나 허승민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1군에서 뛰기 시작했다. 오정복은 2010년 5월 월간타율 .367에 4홈런을 쳐내며 아름다운 한달을 보여줬고, 배영섭 또한 시즌 후반[2]부터 중용되기에 이르렀고, 이영욱은 2010년 삼성의 테이블세팅을 책임졌다. 정형식도 2010년엔 가끔 대수비, 대주자 등으로 1군에서 뛰다 2011년부터 중용되었다.

결국 2010 시즌도 2군에서 보내게 되었다. 2010 시즌 최종 성적은 2루타(26개), 3루타(10개), 타점(61개) 부문에서 남부리그 1위를 기록했다(2루타와 타점은 공동 1위). 이외에도 타율 4위(0.285), 도루 4위(25개)를 기록. 또한 2010 퓨처스 올스타전에선 MVP를 수상했다.

그런데도 1군 데뷔를 못 했다. 참고로 2010 시즌 삼성 외야수 중 1군 경험이 없는 선수는 김종호와 고졸신인인 문선엽 뿐이었다. 1군에 백업 외야수로 한번쯤은 올라가지 싶었는데 고졸 2년차, 대졸 2년차 선수에게 밀렸다.

2011 시즌에는 김헌곤, 이경록 등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춘 신인 외야수들이 들어오며 지명타자로 밀려났다. 그러다 마침내 8월 26일 입단 후 처음으로 1군 엔트리에 등록되어, 8월 27일 두산전에서 진갑용의 대주자로 첫 1군 데뷔를 했다! 물론 바로 다음 이닝에서 현재윤으로 교체, 그리고 8월 30일 1군 엔트리 말소되었다. 그리고 1군에서 엔트리 말소된 후 2군 경기 출장 기록이 없었다.

2012 시즌에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해 주전 중견수로 출장했다. 4월 중에 삼성이 7성 을 찍고 다니던 시절 잠깐 1군 맛을 보기도 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다시 2군으로 퇴장. 한편 전년도와 달리 삼성 2군 타자 대다수가 폭망한 것과 달리 혼자 예년과 비슷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8월 19일 1군으로 올라왔다. 1군에서는 우익수 대수비 대주자로 주로 출장했다.

2군에서는 공수주 하나 나무랄 것 없이 빼어난 기록을 보여줬음에도 1군에서 기용이 안 되었던 이유가 드러났는데, 어깨가 약했다. 지난 2011 시즌 팔꿈치 부상을 당했는데, 그 때문에 송구 능력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2011 시즌 KBO 퓨처스리그에서 지명타자로 출장했던 것도 이 때문. 그래도 송구 외에 수비는 괜찮다는 평.

3. NC 다이노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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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시즌 후 NC 다이노스의 특별 지명으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되었다. 뜻밖의 지명에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등극하기도. 삼성은 원래 즉전급 롱릴리프 투수나 베테랑 야수가 지명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나이도 그다지 어리지 않고 안그래도 포화여서 기회가 없는 외야수가 적절하게 지명되어 안도하는 분위기. 기사를 보면 김종호 자신도 당시의 분위기를 알고 있었고 오히려 절치부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3.1.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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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KBO 리그 도루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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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일, 개인 최초 50도루 달성의 순간

개막 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팀 전체가 부진에 빠져서 초반에는 부진했다. 그러나 점차 1군에 적응하면서 높은 출루율 도루 실력으로 NC의 1번 타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서 김경문 감독이 선택한 이유를 제대로 증명해 주었다. 8월 15일 시점에서 타율 0.301 출루율 0.402, 도루 41개로 1위를 달렸으나 리그 막바지에 체력이 떨어진 탓인지 마무리가 아쉽게 되었다. 타율 3할을 유지했다면 NC 팀 내 처음으로 3할 타자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체력 저하로 9월에 삽을 거하게 푸면서 3할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볼넷도 괜찮게 얻고, 컨택 능력도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2013시즌 최고의 리드오프 자리를 다투는 선수로 급부상했다. 특이한 점은 발빠른 똑딱이 타자면서 땅볼보다 뜬공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땅볼을 치고 빠른 발로 살아남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끝까지 방망이를 돌리면서 제대로 된 안타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연습했다고.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발빠른 1번 타자치고는 삼진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이것에 대해 본인은 공을 길게 보려했던 것이 오히려 삼진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유리한 볼카운트나 기회 때 쳤어야 하는데 소극적으로 나온 게 문제가 된 것 같다고 한다. 삼진 순위 10위 안에서 김종호와 오지환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홈런타자. 자신이 올 시즌의 목표로 삼았던 40 도루를 8월 13일에 달성한 것에 이어, 10월 2일 넥센전에서 50도루까지 달성하며, 2010년 이대형 이후 3년만에 50 도루 기록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2013시즌 도루왕을 확정지었으며, 역대 신생팀 중 첫 야수 타이틀 홀더가 되어 한국프로야구 기록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참고로 삼성 라이온즈 32년 역사상 50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아무도 없다. 외국인 선수까지 합쳐 최다가 1999년 빌리 홀의 47개, 국내 선수로만 한정하면 1996년의 김재걸이 40개를 기록한 게 최다였다. 다행히 배영섭이 김종호와 비등한 활약을 한 덕에 넘어갔지,[3] 삼성 센터라인이 허전했으면 두고두고 까였을 듯. [4][5]

다만, 발이 빨라서 수비 범위는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타구 판단과 펜스플레이, 특히 송구에 약점이 있다. 그리하여 중후반기에 좌익수로 전환해서 수비 부담을 덜었으나, 그럼에도 어깨가 빠진 사람처럼 한 박자 늦게 하는 특유의 송구 자세와 및 송구의 부정확성은 두고두고 고쳐나가야 할 숙제이다. 강견이 아니므로 원래 좌익수가 어울렸으나 삼성 2군에서 우익수 훈련만 받아왔던 것을 감안해, 수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시즌 초에는 우익수로 기용되었다. 그러나 공격에서 자리를 잡은 이후로 권희동이 우익수로 출전하는 경기마다 좌익수로 출전하고 있다. 다만, 시즌 초에는 권희동이 좌익수를 보고 김종호가 우익수에 선 적도 자주 있었다.

시즌 이후 이종욱이 FA로 영입되고 나성범이 우익수로 전향한다고 함에 따라 내년도에는 좌익수 자리에 정착할 가능성이 커졌다.

3.2.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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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9,000만원을 받게 되었다. 처음 NC에 왔을 때보다 3배를 더 받는다고. 한편 자신의 우상이던 이종욱이 FA를 통해 NC 유니폼을 입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종욱을 2번으로 밀어내고 여전히 1번 타자 자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황. 다만 시범경기 중에는 2번 타자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3월 9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 홈 경기에서 선두 타자 홈런을 쳐냈다! 시범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본인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친 홈런이었으나, 그 날 팀은 불펜 들의 방화 14-6으로 떡실신을 당했다.

정작 정규시즌에서는 8타수 무안타의 부진을 보이며 오정복에게 좌익수 주전 자리를 뺏겼고, 4월 6일 넥센전에서는 에릭 테임즈의 대주자로 출전했다가 2루 도루에 실패하는 등 2년차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다 4월 10일 한화전에서 3루타 2개로 부진을 만회한 모습. 그런데 4월 11일 LG전에서 실책으로 2실점을 내주는 등 수비가 불안정하다. 그 사이 비어 있던 톱타자 자리는 박민우가 가져갔다. 그래도 이후로 본인이 다시 절치부심한 덕분에 어찌어찌 선발 라인업 복귀는 성공. 그러나, 4월 29일, 도루 시도중 어깨 부상을 입었고, 이 때문에 5월 1일부로 보호차원에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대신 올라온 선수는 박정준

그리고 정확히 열흘 후인 5월 11에 1군에 복귀했다. 복귀전인 11일 롯데 자이언츠 전에선 4타수 3안타를 기록하며 다시 시동을 거는가 싶더니, 5월 16, 17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두 경기 모두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총합 8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시즌 초로 돌아온 상태.

5월에 잠시 월간 타율 0.324를 보이면서 작년의 모습이 나오는가 했지만 6월부터 하락세가 시작되어 7월 11일 기준 0.241을 기록하고 있다. 6월 타율만 보면 0.190으로 멘도사 라인보다 못한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경문 감독의 총애를 받으며 선발 출장 중으로 선발이 아닐시에는 심지어 대타로라도 들어가면서 출장하고 있다. 덕분에 팬들은 속이 터지는 중.

6월 24일 찰리 쉬렉 노히트 노런 당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주인공이다. 후에 인터뷰에서 당시 중견수인 나성범이 잡아도 되는 타구였지만 자신이 잡고 싶은 욕심에 점프캐치까지 하면서 잡았다고 한다.

7월 24일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진짜 데뷔 첫 홈런을 쳤다! 영상 그런데 이 홈런이 이런 경기 끝에 스코어가 20-9에서 22-9(..)가 되는 홈런이다 보니 분위기상 마음껏 기뻐하지도 못했다. 배트는 슬러거마냥 멋있게 던지긴 했는데 본인도 아차 싶었는지 곧바로 베이스를 빠르게 돌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에는 어느 정도 살아난 모습을 보이면서 전년 만큼은 아니어도 욕 먹지 않을 정도의 성적은 내는데 성공. 8월 8일부터 연속안타를 치며 상당한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다.

7월 타율 0.318, 8월 타율 0.356을 찍으면서 2013년 시즌 초반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가 했으나 9월 32타수 5안타 0.156, 10월 29타수 5안타 0.172로 가파르게 추락했다. 이미 3위로 포스트시즌행을 어느 정도 확정지었던 가운데 오정복, 박정준, 김성욱 등의 대체 자원이 있었음에도 계속해서 주전으로 기용되어 NC 다이노스 갤러리 등에서 김경문 감독의 야수 기용과 함께 달종호, 달호구 등으로 신나게 까였다.

시즌 최종 성적은 113경기 317타수 83안타 0.262 25타점 58득점 22도루로 마감했다.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KBO FA제도로 이적한 롤모델 이종욱과 함께 '종종 브라더스'를 구축하여 화려한 테이블 세터진을 구축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박민우에게 톱타자 자리를 빼앗겼고 그나마 테이블 세터진으로 꾸준히 출전했음에도 출루율이 2013 시즌에 비해 6푼 가까이 하락해 3할을 겨우 넘겼다. 타고투저 시즌에 힘입어 데뷔 첫 홈런[6]도 쳐봤으나 타율이 급추락하고 도루 갯수 또한 반토막이 났으며 볼넷을 19개 고르는 동안 삼진은 55개나 당하면서 선구안에서도 문제를 보이는 등 첫 1군 풀타임 시즌이었던 2013 시즌 이후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는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

2013 시즌에 비해 안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으나 팀이 3위로 올라가고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면서 데뷔 8년만에 처음으로 억대 연봉에 진입했다. 2015 시즌을 앞두고 준주전급 외야수였던 권희동 상무 피닉스 야구단으로 입대한 가운데 시즌 후반 김경문 감독의 눈에 들었던 김성욱이나 백업 외야수로 활약했던 박정준, 오정복등과 함께 좌익수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할 상황. 아예 NC갤에서는 나는 가수다를 패러디하여 '나는 좌익수다(나좌수)' 드립을 쳤다.

3.3. 2015 시즌

파일:NC 다이노스 김종호.jpg
2015년 5월 15일 9회초, 삼성 라이온즈 상대로 결승 투런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도는 장면

5월 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4회말 2:2 동점 2사 2루 상황에서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브룩스 레일리를 상대로 결승 2점 홈런을 쳤다. 시즌 1호

5월 15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9회초 5:5 동점 2사 1루 상황에서 안지만을 상대로 뜬금포를 터뜨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2호

6월 7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6회말 생애 첫 만루홈런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 캐스터가 이 상황을 목소리로 실감나게 전달하지 못한데다, 임정호의 쓰리런이라고 잘못 말했다가 논란이 되었다. 시즌 3호 차후에 정정하기는 했다.

7월 9일 kt wiz전 3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단타로 출루한 뒤, 다음 타자인 나성범 타석에서 도루에 성공했다. 이후 나성범의 희생번트 때 kt 야수들이 홈플레이트를 비운 사이 센스 있는 주루 플레이로 희생번트에 2루 주자가 실책 없이 홈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냈다.[7][8] 관련 기사 영상

7월 10일 넥센전에서 1회에 솔로 홈런을 치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8월 19일 한화전에서 손가락 탈골을 당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서 5경기 출장해 15타수 2안타 타율 0.133으로 부진했다.

최종성적은 113경기 424타수 125안타 0.295 36타점 90득점 41도루를 기록하며 작년의 부진을 뛰어넘은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중반까지 3할의 타율을 유지했으나 8월 이후로 부진한 타격성적을 기록해 결국 개인 통산 첫 3할 타율을 달성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3.4. 2016 시즌

이번 시즌도 어김없이 주전으로 출전하는 중이다.

그러나 4월 22일 이후로 김준완에게 밀려 선발 출전을 한 번도 못하고 있다.

5월 27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6회 2사 후 김호령이 친 좌중간 타구를 잡으려 펜스로 돌진하다가 펜스에 무릎을 부딪혔다. 충격으로 인해 일어나지 못했고, 구급차를 통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MRI 검사 결과 큰 이상은 없었으나 선수 보호 차원에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6월 이후에는 완전히 주전 자리에서 밀린 모습이다. 경쟁 상대인 김준완 김성욱이 포텐을 터트리는 중이기에 대부분 대주자로 출장 중이다.

10월 2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6월 17일 이후 처음으로 선발 출전했다. 그리고 5타수 3안타 3타점에 결승타까지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또한 이 날 2루타 2개를 쳐내며 시즌이 5경기 남은 시점에서 첫 장타를 때려냈다.

3.5. 2017 시즌

김경문 감독이 유망주 위주로 쓰는 방침을 펴는 바람에 이호준, 이종욱, 손시헌, 조영훈, 지석훈 등과 함께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지 못했다.

시즌 초반 박민우 손시헌, 박석민은 부상 때문에 3군에 내려가 있고, 이호준은 선수협 문제와 무릎 부상 여파로 뒤늦게 몸을 만드느라 올라올 수가 없었고, 이종욱은 1군에 콜업돼서 맹타를 휘두르고 있어서 현재 김종호만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2군에 박혀 있다. 한때 도루왕까지 차지했던 타자였음에도 점점 삼성 시절처럼 기회를 잃어 가는 중. 아무래도 NC 외야진 뎁스가 빡빡하기 때문에 거기서 밀린 듯하다.[9]

그래도 2군에서는 맹타를 휘두르며 중심타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 실력을 꾸준히 보이면 부상자나 부진한 선수를 2군으로 내리는 과정에서 1군에 다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군에서 17경기에서 타율 4할에 1홈런 11타점 20득점 6도루로 2군 리그를 폭격하면서 무력시위를 한 끝에 강장산이 4월 27일에 1군에서 말소되면서 빈자리로 콜업되었다.

4월 28일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1삼진을 당했다.

4월 29일 경기에서 박석민의 대주자로 출전하여 시즌 첫 도루를 성공하였으나, 이닝이 끝나자마자 교체되어 내려가서 타석에는 서지 못했다.

결국 4월 30일 조용히 말소되었다. 이재율이 그의 빈자리로 콜업됐다.

현재 2군에서 타/출/장 .377/.437/.591에 10도루로 폭격중이지만 1군 콜업은 요원하다. 현재 팬들은 대놓고 트레이드 카드로 쓰자거나, 2차 드래프트로 다른팀 가서 잘해보라고 할 정도.

퓨처스리그 중후반이 다가오면서 주로 지명타자로 나오거나 아예 출장하지 않는 경기가 많다. 초반에는 2군에서라도 자주 나오면서 2군을 폭격했는데 중반 이후로는 실력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2군에서도 입지를 잃어버리자 향간에서는 이태원처럼 감독에게 찍혀서 1군에 못 올라온다는 말과 박정준처럼 2차 드래프트에 참여하지 못하게 2차 드래프트 직전에 방출한다는 소문까지 떠돌고 있다.

9월 1일 확대 엔트리가 적용되자 1군에 드디어(!) 올라와서 1타수 1삼진을 기록했다.

그리고 9월 3일 도로 말소. 3경기 2타수 무안타 2삼진 1도루 타율 .000을 기록하고... 강진성이 대신 1군에 올라왔다.

결국 끝내 기회를 받지 못하고 시즌 끝. 애초에 이게 예정된 수순이었다.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산력이 좋은 타자인 것도 아니다. 수비는 더더욱 좋지 않으며, 그나마 1군에 발 붙일 수 있는 용도가 대주자인데 그것마저도 10살이나 어린 이재율[10]이 있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2차 드래프트가 마지막 희망으로 남은 상태. 일단 구단에서는 코치 제의를 했다고 한다.

2차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않았다. 아마 방출 → 자유계약 또는 코치 전환으로 갈 듯.

결국 11월 25일 NC 다이노스에서 박민석, 박세웅, 김태우, 조영훈과 함께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완전히 방출됐다.

[1] 그나마도 그 다음 해에 30세였던 데다 빠른 79년생인지라 사실상 30세들과 동기였다. [2] 예를 들면 9월 17일 경기. 이 때 교체 출전하여 볼넷 기록. 그리고 류중일 감독 부임 첫 해인 2011년에 포텐을 터뜨리며 신인왕까지 타버렸다! [3] 배영섭은 타율 뿐만 아니라 출루율도 .402로 9개 구단 1번타자 중 1위였다. [4] 2014년에 김상수가 50도루를 삼성 최초로 기록했다. 그리고 다음 해 박해민이 60도루, 또 다음 해 52도루 기록했다. [5]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는 전통적으로 도루를 통한 발야구의 비중은 높지 않은 팀이었다. 원년부터 1990년대까지는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등의 강타자가 즐비한 데다가 당시에는 해태 타이거즈 MBC 청룡, 청보 핀토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발야구를 선호하는 팀도 없었고, 1990년대 후반기부터 김응용 감독 재임 시절까지는 이마양 클린업이 장타로 해결하는데다 최익성, 박한이, 틸슨 브리또 등 테이블 세터들도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댔으니 여전히 도루왕이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었다. 거기에 선동열 감독 재임기에는 발야구는 고사하고 그놈의 번트로 주자가 1루만 나가면 보내기에 급급했으니 도루왕이 나올리가... 게다가 굳이 특정 타자에게 도루를 시키지 않아도 되었던 게 김재걸, 강명구라는 훌륭한 대주자요원들이 있었다. [6] 물론 시범경기에서 홈런을 친 적은 있으나 정규시즌에서 쳐낸 홈런은 2014 시즌이 처음 [7] 단, 전날인 7월 8일 KIA-넥센 전에서 12회말 희생 번트를 친 타자 주자 고종욱이 1루 베이스를 커버하던 최용규와 충돌한 사이 2루 주자 김하성이 홈까지 들어온 것이 같은 기록으로 인정된 바 있다. [8] 전날 기록은 수비 측의 악송구에 수비수 부상이라는 불운이 겹친 것을 김하성이 우연히 얻어먹은 것이라면, 이날 김종호의 득점은 수비 측이 방심한 틈을 잘 파고든 김종호의 주루 센스가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9] 2017 시즌 NC 외야는 권희동, 이종욱, 나성범이 주전으로 김준완 김성욱이 백업으로 구성됐다. 나성범은 말할 것도 없고 이종욱은 회춘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3할대 타율을 기록했으며, 권희동도 OPS가 0.8로 전역 이후 한층 발전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그 외 김준완과 김성욱도 각각 선구안과 장타력으로 백업을 해 주는 이상, 이들에 비해 공수에서 모두 딸리는 김종호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10] 이재율은 중견수도 가능한 선수라, 좌익수밖에 못보는 김종호를 쓸 이유가 더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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