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원.
1. 개요
김처선과 더불어 연산군 시대를 주름잡았던 환관. 하지만 현대의 대접은 전형적인 간신배로서 김처선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2. 생애
원래 평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돗자리 장수였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것은 성종 때로 주로 왕명을 전하는 승전색을 역임했는데 왕의 신임을 믿고 이런저런 비리에 연루되어 여러차례 처벌되기도 했다. 연산군 때 본격적으로 총애를 받아 권세를 휘둘렀으며[1]그의 아버지도 가자되어 관직이 봉해졌는데 이 때도 여러차례 비리에 연루되어 곤장을 맞기도 했다. 중종반정 때 붙잡혀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종실록에 그 이후의 행적[2]이 나와있어 혼란을 주고 있다.3. 대중매체에서
- 1988년 개봉한 영화 < 연산일기>에서는 배우 김인문이 연기했다. 김자원이라기보다는 김처선에 가까우며 사냥터에서 연산군이 "세자에게 보위를 물려주어도 괜찮은가"라고 물으니 답하길 "세자는 성종대왕을 닮았다"라고 했다가 그 말에 격분한 연산군이 차고 있던 칼을 빼어 찔러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
- 1995년 KBS 드라마 < 장녹수>에서는 배우 정호근이 연기했다. 정하연 작가의 연산군 재평가 의도에 의해 김자원의 간신적 이미지도 많이 약해졌으며 그저 연산군을 충실히 모시는 종복의 이미지이다. 의외로 어린 시절 고자가 되는 부분[3]부터 등장한다.
- 1998년 KBS 드라마 < 왕과 비>에서는 배우 안성민이 연기했다. 기본적으로 연산군의 비위를 잘 맞추는 편이지만 오히려 틈만 나면 자신의 상관인 연산군에게 이래저래 트집을 잡혀 내리갈굼당하고 있는 처지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불쌍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이다. 다만 최후가 다른데 광기에 사로잡힌 연산군[4]에 의해 인수대비로 오인되어 죽임을 당한다. 연산군은 이튿날 임사홍이 전말을 알려주고서야 자기가 죽인 사람이 김자원임을 깨닫는다.
- 2007년 SBS 드라마 < 왕과 나>에서는 배우 강재가 연기했다. 전형적인 간신배이자 사이코패스로 연산군의 복수심을 증폭하기 위해 폐비 윤씨의 무덤에 없던 쥐구멍을 파헤치는가 하면 폭군을 몰아내고 안양군을 옹립하자는 벽보를 조작하여 붙인다. 최종 화에서는 연산군이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하자 기뻐하지만 장녹수와의 대화에서는 연산군이 선정을 베풀면 자신들의 이익은 줄어들지 않을까 간을 보기도 한다.[5] 하지만 바로 그날밤 중종반정이 일어나 반정군이 궁에 들이닥치는데 부하가 달려와 김자원에게 도주하자고 하지만 "전하를 버리고 나 혼자 살 수는 없다"며 연산군을 지키러 가는 작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충신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반정군을 이끄는 박원종과 마주치게 되는데 김자원은 박원종에게 "주상전하께서 네놈을 총애하셨는데 반역을 하다니 하늘이 두렵지도 않냐"며 따진다. 이에 박원종이 김자원에게 "임금의 폭정을 부추겨 억울하게 죽어간 충신들과 백성들의 원수를 갚아줄거다"며 그대로 베어 죽였다.
- 2017년 MBC 드라마 <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는 배우 박수영이 연기했다.
[1]
그가 길에 나서면 사람들이 그에게 절을 해야했으며 말을 타고 길을 다니면 장군조차 말에서 내려야 했으며 그가 궁에 들어갈때 모든 관리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으며 우의정 좌의정조차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라고 했으니 아무리 과장되었다해도 엄청난 걸 알 수가있다
[2]
중종 5년에 절을 허가없이 헐어 목재를 훔쳤다고 대비에게 국문을 당하는 내용이 있다.
[3]
당시의 이름은 개똥이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내시집에
양자로 판 것이다. 이 때 도자장이 바로 쌍라이트 조춘씨이다.
[4]
꿈을 꾸다가 환청을 듣고 침전 밖으로 나가서 마구 칼을 휘두른다. 마지막 회에서 볼 수 있다.
[5]
장녹수는 연산군의 결심이 오래 가지는 못할 거라고 비웃었다.